박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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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탈북자 출신으로 북한 인권운동가를 자칭한다.
1968년 2월 16일 북한의 량강도 혜산시 출생으로 북한의 명문대학인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입학했으나 예비과 과정을 4개월 다니고 학업 성적이 낮아 퇴학당했다. 김일성사회주의노동자청년동맹 청년돌격대 선전지도원을 역임한 바 있다고 한다.[1]
1998년 탈북하여 1999년에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숙부들이 보위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고 사촌들은 꽃제비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2] 2005년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에 대한 내용을 담은 대북전단 배포 등의 활동을 벌이게 되었다고 한다. 2013년에 노르웨이 '오슬로 자유포럼'에서 '창의적 반대운동을 위한 바츨라프 하벨상'(Vaclav Havel Prize for Creative Dissent)[3] 을 수상하였다.
2. 논란 및 사건사고
3. 비판
위 과거 진중권의 말은 탈북자 출신의 영화감독 정성산과 트위터 상에서 벌인 논쟁에서 나온 말인데 이 말만큼 박상학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다. 박상학이 일으키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는 다 '''북한의 마인드를 가진 채로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링크 일단 2014년에 이중간첩 의혹으로 검찰에 고발당한 전적이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그가 보인 행태로 볼 때는 이중간첩이라기보다는 남한 사회에 부적응이 주 원인으로 생각된다. 앞 단락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탈북자들은 대한민국의 체제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4]'''북조선 마인드에서 편만 바꾼다고 남조선 사람 되는게 아니다''' - 진중권
대체로 첨예한 대립이 오래동안 지속된 두 세력의 사이에서, 하나의 진영에서 반대편 진영으로 옮기게 되면 어떤 경우에도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이전에 몸담았던 곳에서는 용서 못할 배신자 취급을 받게 되며, 새로 몸담게 된 곳에서도 적성국가에서 넘어왔다는 사실로 인해 간첩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혐의가 풀린다고 할지라도 '조국을 버리고 온 사람', '자기 주변을 내팽개치고 혼자 도망온 사람'으로 비치는 등 부정적인 시선은 늘상 존재하며, 설령 실제로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가 편집증적인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결국, 한 번 '배신'을 하고 떠나온 사람은 새로 몸담게 되는 곳에서의 경멸을 피하고, 자신이 보호받고 대접 받을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임을 설득하기 위하여 자신이 떠나온 곳을 정말 죽어라 까며, 새로 넘어온 곳의 체제에 대해서는 과잉충성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삐라 쇼를 남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인접한 곳에 살아서 누구보다도 전쟁의 위협을 느끼고 있고 북한을 혐오하는 파주 북부 농촌 지역 사람들조차 왜 삐라 살포를 저지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북한 사람들의 탈북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삐라,대북 방송이기 때문에 박상학 입장에서는 삐라 살포에 목숨을 거는 것을 이해 할 필요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