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강도
1. 개요
북한이 1954년 신설한 도. 함경남도에서 대부분의 지역을 떼어왔고, 함경북도, 평안북도에서도 일부 지역을 떼어서 합쳤다. 보통 (작명 시점 기준) 그 도에서 잘 나가는 도시의 앞글자를 따서 도 이름을 짓는 것이 일반적인데[3] 량강도의 도명(道名) 유래는 좀 특이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강들인 압록강과 두만강, 2개(兩)의 강(江)을 양쪽에 끼고 있다고 해서 량강도이다.[4] 남한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은 량강도. 이는 두음 법칙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남한의 보도자료에서는 양강도로 기록하므로 양강도로도 이 문서로 들어올 수는 있다. 반면에 똑같이 북한에서 신설한 도인 자강도는 압록강을 끼고 있다고 강 자가 들어간 건 아니다.[5]
2018년까지 1시 11군이었으나, 2019년 삼지연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2시 10군을 갖게 되었다. 인구는 약 72만 명으로, 이는 남한의 남양주시 인구와 비슷하다. 남양주시의 인구 밀도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다.
풍산개의 고향인 김형권군의 소속지역이기도 하다.
2. 지리 및 기후
조선시대와 현재 북한에서도 추방/유배지역으로 잘 쓰는 곳(...). 산이 험준하고 고원지대라서 그런 듯하다.
이런 험준한 산들이 즐비하고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여름에 서늘하며 겨울에 매우 춥다. 당장 추위로 악명높은 개마고원이 도 중앙에 있고, 거의 모든 군의 1월 평균기온이 -15℃에서 -20℃에 달하는 '''한반도 최악의 혹한 지대'''로 유명하다.
하지만 훌륭한 자연경관이 많고 한반도의 대표적인 강이 두 개나 흐르며, 백두산이 위치한 도이기 때문에 자연적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함으로 인해 해당 지역 출신들이 북방 내에서 매우 용맹하기로 정평이 났다. 환경이 좋지 못하니 용맹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에서 키워지는 풍산개 역시 마찬가지다.
3. 특징
한반도에서 가장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이고 백두산을 비롯한 개마고원의 심장부로, 남한의 한라산보다 높은 고봉들이 즐비하고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오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 위치이다. 북한 정권 치하에서 매우 낙후했을 듯하지만 신경쓰는 지역 중 하나인데, 실제로 북한에서 이곳의 자연 보존이나 관광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리고 북한에서 자기들이 말하는 소위 '혁명 유적' 이 많다. 김씨 일가의 이름들을 갖다붙인 지명도 그래서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알린 보천보 전투가 이 지역(현 보천군 일대)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고 낙엽타고 압록강 도강했다는 설화가 만들어졌다. 즉 북한에서 말하는 '혁명 유적'이 많다. 그리고 북한에서 민족의 성지로 매우 신성시하는 백두산도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김일성과 관련한 장소나 건물이 많아 북한에서는 여행 1번지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만포청년역과 혜산청년역을 잇는 길이 250km짜리 혜산만포청년선을 청년돌격대를 동원해서 뚫어버렸다. 이게 놀랄 만하니, 백무선도 뚫기 빡세다고 표준궤 개궤에 실패한 북한이 한반도 최북단을 지나는 노선을 만들었다.
혜산만포청년선, 백무선, 백두산청년선 등 철도망을 주로 깔았지만 도로망도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다. 다만 량강도 서쪽 부분인 신갈파진 쪽에서 함경남도 부전군 쪽으로 빠져나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탈북자들의 주 루트. 압록강과 두만강의 강폭이 매우 좁아지는 상류 지역이므로 중국과의 국경에 아주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헤엄을 칠 줄 모른다고 하더라도 걸어서 지날 수 있을 만큼 강이 좁아지는 구간도 많다. 탈북에 주로 쓰는 루트는 이쪽의 혜산시 일대(현 위연역 인근)와 대홍단군 일대(신동혁 씨가 탈출했던 루트)가 유명하다. 다른 쪽으로는 주로 함경북도의 회령시나 온성군 쪽으로 탈출하는 모양.
납치되었는데 해적을 때려잡은 북한의 배 이름인 대홍단호는 이 량강도의 대홍단군에서 딴 것. 대홍단감자도 대홍단군의 감자를 말하는 게 맞으며, 비단 대홍단군 뿐만 아니라 량강도의 감자는 유독 크게 잘 자란다고 하는데 이는 기후 덕분. 원래 감자는 춥고 건조해야 감자 알이 굵게 맺히는 걸 생각하면[6] 그만큼 춥고 건조한 곳이고, 그래서 사실 주식용 작물로는 감자만 잘되고 다른 건 하나도 안 된다. 심지어 북한 하면 떠올릴 옥수수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 외에는 내한성 식물인 홉이 잘 자라, 북한에서 대동강 맥주의 원료로 쓰고 있다.
하위 행정구역을 보면 사람 이름이 행정구역 이름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다. 김일성이 내키는대로 아버지인 김형직, 숙부인 김형권, 아내(김정일의 모)인 김정숙의 이름을 따 각각 김형직군(옛 후창군), 김형권군(옛 풍산군), 김정숙군(옛 신파군)이라 명명해서 우상화했다.[7]
4. 출신 인물
- 박상학 - 새터민, 북한 인권 운동가.
- 김기룡 - 북한의 정치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 김영철 - 북한의 군인, 정치인.
- 박연미 - 새터민, 북한 인권 운동가.
- 한송이 - 새터민, 채널A 이만갑 출연자.
- 정민우 - 새터민. 전 조선인민군 중대장, 채널A 이만갑 출연자.
5. 하위 행정구역
6. 광복 직후/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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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따라서 면적이 오락가락한다.(...)
[1] # 다만 련봉1동, 련봉2동 중 어느 곳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2] 남한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도인 제주특별자치도의 인구가 67만명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덩치에 비해 매우 적은 수치다. 통일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 존립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3] 충청(충주와 청주)도, 전라(전주와 나주)도, 경상(경주와 상주)도, 함경(함흥과 경성)도, 평안(평양과 안주)도, 강원(강릉과 원주)도, 황해(황주와 해주)도가 이런 사례다. 더 나아가면 고려의 양광(양주와 광주(廣州))도, 북한의 자강(자성과 강계)도도 있다. 다만 경기도는 예외, 경기도는 지방 고을 이름보다는 서울(京)을 둘러싼(畿) 지역이라 하여 붙은 도명이다.[4] 메소포타미아 역시 2개(兩)의 강(江)을 양쪽에 끼고 있다는 뜻. 이쪽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5] 자강도는 자성군과 강계시에서 이름을 따 왔다.[6] 춥고 건조하면 얻은 양분을 위로 줄기나 싹을 뻗어올리는데에 쓰지 않고 덩이줄기 부위인 감자알에 저장하게 된다.[7] 전세계적으로 사람 이름을 지명에 붙이는 경우가 그렇게 보기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주로 서양권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피휘의 전통에서도 알 수 있듯 공공재에 사람 이름을 직접 붙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예외로 세종특별자치시나 베트남의 호치민 시 등이 있지만, 묘호 등 '호'를 쓰면 썼지 이름을 직접 쓰는 경우는 한국에서 매우 드물다. 게다가 '''저들이 과연 이름을 붙일만큼 존경받을 위인인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 북부 보천면이 이동[9] 대진면과 보천면 남부가 이동. 보천면의 중심지가 남부에 있었기 때문에 보천군이란 지명은 이 군이 가져가게 된 것.[10] 운흥면과 봉두면이 이동. 헌데 정작 운흥군의 중심지는 봉두면에 있다.[11] 서부 삼서면, 자서면, 신파면이 이동. 원래는 신갈파진(신파면)에서 신파군이었으나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다. '''김일성의 아내 되시겠다.'''[12] 원래는 후창군이었으나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다. 김형직은 '''김일성의 아버지'''.[13] 일부 지역이 운흥군, 삼수군, 풍서군으로 떨어져나가면서 면적이 줄어든 것.[14] 다 떼주고 면 3개 반 정도만 남았는데도 면적이 이 정도다...[15] 고작 면 두 개를 떼어서 새로 신설한 게 전부이건만 면적이 이 정도다. 동북부의 동하면만 이동.[16] 이쪽은 면 3개가 떨어져나간 것.[17] 풍서면 북부와 웅이면, 그리고 갑산군 산남면 일부를 합쳐서 신설한 면. 헌데 정작 풍서면의 중심지는 김형권군으로 넘어갔다.[18] 풍서면 남부와 안산면, 안수면을 합친 것. '''김일성의 숙부'''였다.[19] 동부 천남면이 이동[20] 서부 삼장면의 절반이 이동. 헌데 이게 삼지연시 면적의 절반이다...[21] 삼장면의 나머지 절반과 삼사면의 북부 1/5 정도가 이동. 맨손으로 해적을 때려잡았다는 북한의 그 대홍단호는 여기에서 따온 것.[22] '''삼사면 나머지가 이 정도 크기다.'''[23] 북서부 수하면만 옮겨갔다.[24] 8개 면이 남았다.[25] 서북부의 동상면이 이동. 참고로 동상면이 동하면보다 남쪽에 있다.[26] 5개 면이 남았다.[27] 남서부 2개 면이 이동[28] 북부 5개 면이 이동[29] 동부에 약간의 면적을 얻은 것 빼면 거의 경계선이나 면적이 변한 게 없다.[30] 북부 6개의 면이 이동[31] 동부 2개의 면이 이동[32] 구 함주군과 현 함주군은 지역만 놓고 보면 거의 다른 군이나 다름없다. 구 함주군의 서남부 소수 면만 남아 있었기 때문. 현 함주군의 대부분 면적은 정평군에서 가져온 것.[33] 동남부 퇴조면이 이동. 이 퇴조면을 락원으로 개칭했다.[34] 서남부 삼호면이 이동[35] 백지도는 2003년 기준으로 작성된 지도인데, 흥남시가 다시 함흥시 흥남구역으로 편입된 것은 2005년의 일이기 때문에 번호가 붙어 있다.[36] 북부 2개의 면이 이동. 헌데 이게 함주군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37] 북부 3개의 면이 이동. 유명한 요덕 정치범수용소가 여기에 있다.[38] 구 영흥군의 중심지가 여기에 있었다.[39] 여기저기 취한 면적이 있어서 면적이 오히려 늘어난 케이스. 이 중 동쪽의 250㎢만 현재 고원군으로 남아 있고 서쪽의 788㎢는 수동구로 분리된 상태.[40] 북부 3개의 면이 이동[41] 남부 1개의 면이 이동[42] 남부의 면 경계선의 변화는 없다.[43] 남부 2개의 면이 이동[44] 최남단의 면 1개중 3개리가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