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정치인)
1. 소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09년 경상북도 상주군에서 태어나 상주공립농잠학교를 졸업하였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상주군 갑 국회의원에 당선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 1950년 7월 북한에 의해서 납북되었으며, 정확한 연도를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별세하였다.
2. 생애
고향인 경북 상주군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1950년 5월 30일에 치러진 제2대 총선에서 경상북도 상주군 갑 국회의원에 당선하였다. 국회의원으로 대한잠사회 중앙위원, 대한농민회 중앙위원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6월 25일에 조선인민군의 전면적인 남침에 의해서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6.25 전쟁 발발 시점에 제2대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당시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에 있는 처제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강 다리가 끊어져 피난을 하지 못하고 서울에 있다가 1950년 7월경[2] 에 3명의 북한 조직원이 찾아와 잠깐 물어볼 말이 있다며 데려간 뒤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후 50년대 후반에 경북 상주군에 북한의 간첩이 넘어와서 활동하다가 자수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북한의 협동 농장에서 박성우 전 국회의원을 목격했다는 풍문 이외에는 전해진 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유가족들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서 1956년 북한에 있는 남북 촉성회에 있다가 협동농장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확인하게 된다. 협동농장에 옮겨진 점을 미루어 볼 때, 북한 당국의 노선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아서 보내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2005년 7월 27일 동아일보를 통해 평양에 있는 재북인사의 묘(일명 62기 묘지)[3] 에 1954년 2월 4일에 서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출처
하지만 앞서 대한적십자사가 확인 한 바에 따르면, 1950년대 중후반에도 행적이 있어서 정확한 사망연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들 박두곤씨의 증언
[1] 2005년 7월 27일 동아일보를 통해 평양에 있는 재북인사의 묘(일명 62기 묘지) 1954년 2월 4일에 서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56년에 북한에서 남북촉성회에서 협동농장으로 옮겨졌다고 했으므로 정확한 사망연도를 알 수 없다.[2] 정확한 날짜는 가족들도 모른다고 한다.[3]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데, 미군정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백상규,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송호성,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현상윤 등이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민족주의자로 분류되는 사람들로 전쟁 시기에 납북 또는 자진 월북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1956년 7월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하였다.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