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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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
2. 생애
1921년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온면# 출신으로 1937년 서울로 상경해 태평레코드에서 데뷔하였다. 17살의 나이인 1938년에 오빠는 풍각쟁이를 발표해 유명해졌다.[1] 사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좋게 평가받고 있는 건 박향림의 가창력. 가창력 좋은 사람도 박향림의 가창력은 쉽게 따라잡지 못한다.
반면 두고두고 까이는 요소가 있다면 단연 친일 행적이다. 1942년 남인수, 백년설과 함께 혈서지원을 불렀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광복 직후 출산하였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연을 나섰다가 산후병이 발발하여 1946년에 죽었다.
3. 대표곡
- 오빠는 풍각쟁이
- 청춘극장
- 전우치
- 그대의노래
- 너와나
- 오빠의 그것
- 너무 좋아오
- 아잉
4. 여담
- 우리나라 최초의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멤버로 활동했다.
[1] 박향림 사후 50년이 지난 1996년 이래로 저작재산권이 만료되었고, 최근 복고분위기를 타면서 광고에서 많이 써먹고 있는 멜로디이다. 2003년 저작권법 개정 이전 저작물이라 개정 전 유효기간인 50년을 적용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