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풍각쟁이

 


1. 개요
2. 가사의 해석
3. 가사
4. 그 외


1. 개요


일제강점기 여가수 박향림(1921~1946)이 1938년 콜럼비아 레코드를 통해 취입한 노래로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만요(漫謠)[1]이며, 김해송에 의해 작곡되어 박향림이 곡을 받아 보컬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사는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 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성이나 평양과 같은 대도시 중류층의 생활상[2]을 담고 있다. 현대에 들어 이 곡을 각색하거나 그대로 부르자면 원곡을 부른 박향림의 독특한 창법과 레코드 특유의 음을 재현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이 곡을 불러본 경험이 있는 가수의 말에 의하면 음의 오르내림과 콧소리를 모두 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콧소리에 치중하면 음이 평탄해지고, 음의 기교를 살리면 콧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브라스 밴드의 사운드가 생각보다 수준급이다.
원곡의 가수인 박향림은 나중에 백년설, 남인수와 함께 '''대표적인 전시 친일가요'''인 혈서지원을 부른 적이 있었다. 다만 이것이 자발적인 것인지 강압에 의한 것인지 여러시각으로 갈라지고 있다. 본명이 박억별이던 박향림은 광복하고 난 뒤 25세 나이에 요절했다.[3]
박향림 가수의 사후 50년이 지나며 현재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된 작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태진노래방금영노래방에 등록되어있다. 금영은 68131번, 태진은 13168번.

2. 가사의 해석


가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오빠는 떡볶이불고기처럼 맛있는 거는 다 뺏어먹고 자신에겐 콩나물오이지만 줬으며, 여동생한테 온 편지 몰래 훔쳐 읽고, 공연 구경하러 혼자 가는 등의 악행을 저지르는 오빠딴따라(풍각쟁이) 같은 심술쟁이에 트집쟁이라고 욕하는 내용의 노래다. 이 노래가 1930년대에 나온 노래임을 생각해 볼 때, 당시로선 가사가 정말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었고, 예나 지금이나 오빠들의 행동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시는 여성(특히 젊거나 어린 여성)이 혼자 놀러 다니거나 돌아다니기란 현대보다 훨씬 힘들었고, 특히 공연장, 극장 등의 오락시설에 출입하다가 들키면 불량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는 시대였다. 일부 엄격한 여학교에서는 학생의 극장 출입이 적발되면 아예 정학이나 퇴학 처분을 내리기도 했고, 어린 소녀가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본 동네 어른들이 "그 여자애가 '''바람'''났다"라고 끔찍한 소문을 퍼트리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한편으로는, 1930년대는 '모단걸', '모단보이'같은 단어가 이 시기의 유행어이기도 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그나마 혼나거나 손가락질을 안 당하고 하고 싶은 구경을 하는 방법은 그나마 보호자를 동반하는 것인데, 동네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만큼 보수적일 것이 뻔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해봤자 혼쭐만 날 게 뻔하니 그나마 비슷한 세대인 오빠밖에 같이 가줄 사람이 없는 것. 즉, 괜히 혼자 공연장 갔다고 트집잡는 게 아니라 여동생도 명치좌 한 번 가보고 싶어 데려가달라고 졸랐는데 생까고 혼자만 갔다는 이야기다.

3. 가사


오빠는 풍각쟁이[4]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몰라이 난 몰라이 내 반찬 다 뺏어 먹는 건 난 몰라이.
불고기, 떡볶이는 혼자만 먹구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
오빠는 트집쟁이야, 머,
오빠는 심술쟁이야, 머.
난 시려[5] 난 시려 내 편지 남몰래 보는 것 난 시려.
명치좌[6] 구경갈 땐 혼자만 가구
심부름 시킬 때면 엄벙뗑[7]허구
오빠는 핑계쟁이 오빠는 안달쟁이[8]
오빠는 트집쟁이야.
오빠는 주정뱅이야, 머,
오빠는 모주꾼이야, 머.
난 몰라 난 몰라이 밤 늦게 술 취해 오는 건 난 몰라
날마다 회사에선 지각만 하구
월급만 안 오른다구 짜증만 내구
오빠는 짜증쟁이 오빠는 모주쟁이[9]
오빠는 대포쟁이야.[10]

4. 그 외


1990년대 중반 방송된 SBS 전 예능 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에서 흘러간 옛 가요를 소개하는 코너였던 '불멸의 우리 가요' 첫 회에서 소개되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독특한 보이스에 노래 가사와 잘 맞는 코믹한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일으켰고, 덕분에 재조명받은 이 곡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역할을 재연한 건 유채영.
1999년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국희에서는 어린 신영이 레코드 사장 앞에서 부르는 노래도 삽입되었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맛깔나게 불러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2004년에는 웅진식품에서 만든 어린이 음료인 초롱이 광고에서 가사가 개사되어 등장하기도 했다. #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 삽입되기도 했다.
리듬게임 펌프 잇 업 NX에 수록된 바 있다. NX2까지 수록된 후 이후 버전에선 삭제. 리믹스나 채보 자체는 그냥저냥 별 특징이 없는 데 비해 딱히 해외에 인지도가 없는 곡이었고 MV도 인기를 끌지는 못 했기 때문에 이후 버전에는 실리지 못했다.
2009년 1대 100 5단계에서 거꾸로 문제로 나왔을 때 해당 노래의 빈칸인 떡볶이를 맞히는 문제에서(다른 보기는 백김치, 호박전) 1인을 포함한 25명 가운데서 최후의 3인이 결정되었다.(송준근 포함) 아마 30년대 노래에 떡볶이는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떡볶이는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있었던 요리며, 그 이전에도 조선 시대에 궁중떡볶이가 있었다.
전주와 간주 부분에서 나오는 멜로디는 러시아의 작곡가 이폴리토프-이바노프의 "코카서스 풍경" 모음곡 중 4악장 "사다르의 퍼레이드" 멜로디이다. 꽤나 자주 연주되던 곡이다 보니 발췌해서 붙인듯 하다.
2011년부터 제작된 시사풍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었다. 이쪽은 클럽 리믹스 버전.
가수 써니힐의 곡으로 유명한 '나쁜 남자'에서 이 가사를 패러디한 부분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그분풍자했다는 의혹을 받는 곡이기도 하다.
드라마 각시탈의 주인공 이강토가 엔젤클럽에서 즐겨부르는 곡이기도 하다.[11]
2013년 런닝맨 환생 특집에서는 강남스타일에 대응했다.
2014년에는 미스터피자 홍두깨번 광고에도 나왔다.
2018년 1월에는 전자랜드 광고에도 나왔다.

[1] 해학과 풍자를 담은 우스운 노래. 193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함.[2] 특히 곡의 후반부에 나오는 회사원에 대한 내용이 이를 가장 잘 반영한다.[3] 출산한 직후에 강원도 홍천군에서 열린 공연에 참가했다가, 산후병이 발병했다고 한다. 그후에 1946년 7월 에 동양극장에서 박영호가 추도사를 읽은 박향림 추도 공연이 열렸다.[4] 시장이나 집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하며 돈을 얻으러 다니는 사람. 요샛말로 딴따라.[5] "싫어"의 경기 방언. "시리다" 등 다른 말일 가능성도 아주 조금 있을지도 모르지만[6] 지금의 명동 예술극장. 참고로 일본에도 한자가 같은 극장인 메이지좌(明治座)가 있었는데 도쿄 대공습으로 불탔다.[7] 가사에 엄범"땡"으로 잘못 적힌 경우가 많다. 엄벙"땡"은 사전에도 없으니 단어 뜻에 대한 막측이 난무하여 방송 등에도 잘못된 뜻으로 소개되곤 한다. 엄벙뗑의 뜻은 "얼렁뚱땅 넘기다"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일제시대엔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엄벙뗑 : 어떤 상황을 얼김에 슬쩍 넘기는 모양. 또는 남을 엉너리로 슬쩍 속여 넘기게 되는 모양.*유의어:얼렁뚱땅.> <엉너리 :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어벌쩡하게 서두르는 짓.>[8] 걸핏하면 안달하는 사람. 혹은 소견이 좁고 인색한 사람.[9] 고주망태처럼 만 마시고 행패부리는 사람을 말한다. 한 마디로 술 마시고 진상부리는 인간.[10]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를 빗댄 사람.[11] 남자가 부르기에는 가사가 좀 꽁기꽁기하다(…). 아마 각시탈과 일본제국 경찰이라는 이중생활을 하는 자신을 '''셀프 디스'''하는 의도로 부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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