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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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르니에[1] 가 1967년에 발표한 데뷔작이자 장편소설. 그는 이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곧바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18세기의 고전으로 꼽히는 영국 작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뒤집어서 다시 쓴 소설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95년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는 김화영.
2. 줄거리
버지니아호를 타고 남태평양을 항해 중이던 로빈슨 크루소는 폭풍을 만나 한 무인도에 난파되고 만다. 동료들은 모두 죽었고 자기 혼자만 무인도에 남았다는 사실에 절망한 그는 한동안 무인도를 탈출하기 위해 별의 별 수를 다 써보지만, 몇 달에 걸쳐 힘들게 만든 탈출호라는 배를 육지에서 바닷가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자, 약간 맛이 가서 진흙탕에서 파리들과 뒹굴면서 모든 걸 포기하려고 한다. 그러던 로빈슨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어린 나이로 생을 마친 그의 누이동생 뤼시가 탄 배의 환영을 무인도 앞바다에서 본 뒤부터 무인도를 개척하는 데 힘을 쏟게 된다.
하지만 고독으로 인한 공포와 절망감 때문에 그는 스스로를 무인도 '스페란차'[2] 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혼자밖에 없는 무인도의 법령을 제정하거나, 섬에 있는 동굴 속에 들어가 먹지 않고 자고, 고독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한다. 그 무렵, 로빈슨은 버지니아호에 함께 승선했다가 로빈슨과 같이 무인도에 난파되었지만 처음에는 로빈슨과 합류하길 거부했던 개 '텐'과 재회하여 같이 살게 된다.
그러던 중 남미 원주민인 아라우칸족의 주민 몇 명이 무인도의 해변가로 와서 의식을 치르는 모습을 목격하고 요새와 각종 방어장치를 만들고 대비한다. 이후에 그들이 다시 한 번 무인도를 방문해 의식을 치르는 건 목격하다가, 의식의 일환으로 살해당할 위기에 있던 한 혼혈 원주민이 숲속으로 도망쳐 로빈슨이 숨어 있는 곳까지 오자, 로빈슨은 혼혈 원주민을 뒤쫓던 아라우칸족 한 명을 사살하여[3] 아라우칸족을 내쫓고 혼혈아를 구해주게 된다. 그리고 혼혈아는 '방드르디' 라는 이름을 얻고 로빈슨의 하인이 된다.
방드르디는 로빈슨의 일들, 즉 농사나 목축, 건축 등의 잡다한 일을 도맡아하지만, 로빈슨의 기독교적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익숙치 못했고 또한 로빈슨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끔씩 사고를 저지르면서 로빈슨의 생활방식을 무시하기도 하여 로빈슨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로빈슨은 방드르디를 야만인이라고 앝잡아보고 말을 안 들으면 폭행하는 등 방드르디에게 함부로 굴지만, 한편으로는 같이 있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러한 방드르디의 기독교적, 서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자신이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낡은 사고방식[4] 에 대한 회의로 심적 갈등을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방드르디는 스트레스를 풀 겸 로빈슨이 버지니아호에서 가져온 버지니아호의 선장 피터 반 데셀의 유품인 도자기로 된 파이프를 동굴 속에서 몰래 빨고 있다가, 그가 농땡이를 피우려고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화가 난 로빈슨이 동굴 입구에 다다른 걸 알고는 파이프를 동굴 속에 버리고[5] 맞을 각오로 당당히 동굴 밖으로 나간다. 그런데 로빈슨이 채찍으로 방드르디를 때리려는 찰나, 동굴 속에 있던 화약통에 담뱃불이 옮겨붙으면서 대폭발이 일어나 동굴 및 동굴과 인접한 요새가 모조리 박살나고 만다.[6] 폭발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 로빈슨은 자신이 세운 모든 것이 박살나자 프라이데이와 함께 그냥 야외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대폭발 이후 더 이상 로빈슨과 방드르디는 주인과 노예라는 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친구가 된다.
행복한 생활을 누리던 그들은 어느 날, 무인도로 찾아온 영국 배인 화이트버드호와 접촉한다. 배에서 로빈슨은 선원들에게 핍박받고 있던 화이트버드호의 에스토니아인 소년 수부 자안 넬자페브를 보고 그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자안은 로빈슨에게 관심이 없는 듯하여 로빈슨은 실망하게 된다.
방드르디는 화이트버드호를 구경하며 신기해하고 좋아하지만, 로빈슨은 지난 28년간 멀어져 있었던 유럽인의 사고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거부감을 느끼고 섬에 남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불면증으로 일찍 잠을 깬 로빈슨은 방드르디가 화이트버드호에 타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혼자 남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혼자서 섬을 돌아다니던 그는 대폭발로 부서졌던 동굴 입구의 좁은 틈으로 들어가려다가 그 안에 숨어 있던 화이트버드호의 소년 수부 자안 넬자페브를 다시 만난다. 자안은 자신이 배에서 핍박받고 있을 때 로빈슨이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었다고 밝히면서 새벽을 틈타 무인도로 탈출했으며 로빈슨과 같이 살고 싶다는 뜻을 밝힌다. 로빈슨은 그를 데리고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가 섬 동쪽 해상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화이트버드호를 가리키며, 이제 스페란차 섬을 지나는 배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는 소년에게 '죄디[7] '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3. 작품 해설
작가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로빈슨이 물질문명과 절연된 무인도에 표류했으면서도 등 뒤에 두고 떠나온 과거의 세계, 즉 대영제국의 가치 체계에 근거한 하나의 세계를 무인도에 재현하려고 애쓰며, 오로지 그가 백인이고 서구인이고 영국인이며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로빈슨이 하는 말이 모두 진리라는 전제하에 서술된 그 작품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8]
그래서 그는 과거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무인도에서는 전혀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로빈슨을 재창조하면서도, 방드르디가 소설 속에서 공기 취급만 받는 모습도 마음에 안 들어 프라이데이(방드르디)를 중요인물로 부각시키는 소설을 써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하여 이 소설에서 로빈슨은 과거의 영국을 무인도에 재현하려는 자신의 행동의 결과물들이 불쑥 나타난 방드르디에 의해 모두 무너지면서,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이 얼마나 꼴사납고 터무니없는 짓인지 깨닫고 마침내 자신의 어리석었던 사고방식에서 해방된다.
4. 여담
작가가 원래 철학교수를 꿈꾸다가 대학교수 자격시험에 떨어진 뒤 이 소설을 쓰면서 자신의 철학적 관념을 소설 속에 함유했기 때문에 문체가 추상적인 만연체로 구성되어 있어 약간 지루하기도 하다. 그 때문에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동성애에 관한 묘사도 매우 추상적이라 별로 에로티시즘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로빈슨이 본격적으로 무인도 생활을 하면서 쓰는 <항해일지>가 소설 중간중간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고독과 절망, 자기 위안이 뒤섞여 있는 그의 정신상태를 엿볼 수 있다.
[1] 2016년 1월 18일에 향년 91세로 작고했다.[2] 이 이름은 그가 대학 시절 잠깐 사귀었던 이탈리아 여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3] 사실 로빈슨은 처음에는 다수파인 아라우칸족을 도우려고 했다. 그러면 그들이 의식의 제물을 잡아주어 고마워하면서 자신을 건들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이 숨어 있던 개 텐이 짖어대는 바람에 얼떨결에 아라우칸족 추적자 한 명을 사살하게 된 것이었다.[4] 즉, 당시 유럽인이 가지고 있었던 기독교적, 서구중심적 사고방식.[5] 남아 있던 담배가 얼마 없어서 로빈슨은 니코틴 중독으로 인한 금단증상을 막기 위해 두 달에 한 번씩만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방드르디는 그걸 몰래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6] 이때 텐도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다.[7] 프랑스어로 목요일이라는 뜻이며, 작품에서는 목요일을 하늘의 신 주피터의 날,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일요일 이라고 서술한다.[8] 참고로 로빈슨 크루소 2편에서는 그렇게 영국과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진리로 믿는 로빈슨 크루소가 그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고 심지어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까지 여과없이 보여준다. 아무래도 작가는 2권에 대해 모르거나 혹은 아예 별개의 소설로 보고 신경을 안 쓴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