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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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우리는 패배의 가능성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10]
'''Great Britain no time to lose'''
대영제국은 해 질 날이 없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1883년
1. 개요
'''대영제국'''은 1607년 최초의 아메리카 식민지 건설을 시작으로 1947년 인도 독립, 길게는 1997년 홍콩 반환까지 식민제국으로서의 영국을 일컫는 명칭으로 앵글로색슨 제국이라고도 부른다.
최전성기에는 전세계 육지 면적의 1/4과 세계 인구의 1/6을 보유했으며 영토 면적으로는 역사상 최대, 인구수로는 당대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상세
사실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란 명칭은 정식 국명이 아니다. 지위에서도 영국 국왕은 인도에 한하여 황제 지위를 겸했을 뿐, 통합된 국가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국왕"이었다. 유럽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 후예인 나폴레옹 3세를 제외하고 전통적으로 로마 황제만을 적법한 황제로서 인정해왔으며,[11] 로마 제국의 속주 중에서도 변방, 그것도 완충용 속주 정도로 인식되었던 영국이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기에는 그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1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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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 이후로 옛 식민지들이 대부분 독립하면서 거대 식민제국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 있다. 지브롤터를 제외하면 전부 다 섬이다. (위 그림에서는) 영국령 남극지역도 포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어떤 국가의 영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아직도 영국은 케이맨 제도에서 해가 지면 핏케언 제도에 해가 떠 있고 핏케언 제도에서 해가 지면 영국령 인도양 지역에 해가 떠 있고 인도양 지역에서 해가 지면 아크로티리 데켈리아에 해가 떠 있어 해가 지지 않는다.[16]
전성기 대영제국의 대항마로 꼽혔던 것은 그나마 전반기에는 프랑스 식민제국, 후반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꼽혔지만, 전자는 7년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등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영국이 명확하게 우세를 차지했고 후자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는 패권 경쟁을 했지만 영국이 국력에서 우세한 상황 하에서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와 인구, 군사력의 잠재력을 감안해 미리 대비해 견제한다는 성격이 강했다.[17]
3. 무역
4. 인구
175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183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지역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5. 역사
영토 확장을 기준으로 크게 제1제국(1607년 ~ 1783년)과 제2제국(1783년 ~ 1947년/1997년)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5.1. 대영 제1제국
-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로 유명한 튜더 왕조의 뒤를 이은, 스튜어트 왕조의 첫 왕 제임스 1세때 아메리카의 제임스타운에 도착하며 시작(1607년)
- 내전 끝에 의회에 목이 잘린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를 거쳐,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의 잉글랜드 연방
- 다시 찰스 2세가 돌아와 스튜어트 왕조를 부활시킴. 허나, 제임스 2세 때 명예혁명이 발생해 오렌지공 윌리엄이 상륙, 하노버 왕조가 시작됨. (자코바이트도 생성)
- 하노버 왕조의 조지 시대 중, 조지 3세가 미국 독립전쟁에서 패할 때 까지
이후 영국은 발견한 카리브 해의 무인도를 장악했고 7년 전쟁을 통해 프랑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인도의 벵골 지방과 캐나다의 퀘벡 주도 정복한다.[18] 그러나 1783년에 미국 지역에 있던 아메리카 13개 식민지가 영국의 정책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일으킨 미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파리 평화 조약에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되었다.
영국의 아메리카 주요 영토 지배 시기는 다음과 같다.
- 카리브 섬
- 세인트키츠 (1625년~)
- 바베이도스 (1627년~)
- 앤티가 (1632년~)
- 자메이카 (1655년~)
- 그레나다 (1763년~)
- 트리니다드 (1797년~)
- 영국 기아나 (1803년~)
- 북아메리카 식민지
- 버지니아 (1607년~)
- 매사추세츠 (1620년~)
- 메릴랜드 (1632년~)
- 코네티컷 (1635년~)
- 로드아일랜드 (1644년~)
- 노스캐롤라이나( 1662년~)
- 사우스캐롤라이나 (1662년~)
- 뉴욕 (1664년~)
- 뉴저지 (1664년~)
- 뉴햄프셔 (1679년~)
- 펜실베이니아 (1681년~)
- 델라웨어 (1704년~)
- 조지아 (1713년~)
- 캐나다
- 노바스코샤 (1713년~)
- 로어/어퍼 캐나다 (1759년~)
5.2. 대영 제2제국
- 조지 3세의 시기부터 남은 조지 시대와 이어지는 빅토리아 시대
- 제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후, 1920년경에 제국의 최대절정기
-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국이 해체되기 시작함. 보통 인도가 독립한 1947년까지를 대영제국의 시기로 봄.[19]
영국의 대륙별 초기 영토 지배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아시아
- 인도 (2,921,000㎢)
- 동인도회사보호지 (1,592,000㎢)
- 벵골 (571,000㎢)
- 포트세인트조지 (368,000㎢)
- 데칸디스트릭트 (236,000㎢)
- 봄베이 (154,000㎢)
- 실론
- 모리셔스
- 싱가포르
- 말라카
- 페낭
- 인도 (2,921,000㎢)
- 아프리카
- 케이프오브굿홉
- 시에라리온
- 세네갈
- 고레
- 페르난도포
- 오세아니아
- 오스트레일리아
- 유럽
- 지브롤터
- 몰타
영국은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하고도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를 장악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으나 1971년에는 수에즈 동쪽의 주둔군 5만명을 전면 철수시켰고 1997년에는 홍콩을 반환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많은 영국인들이 1997년에 있었던 홍콩의 반환식을 제국의 종말로 간주하고 있지만 일부는 1947년에 인도가 독립했을 시기로 보기도 한다. 지금도 일부 남아 있는 속령들과 영연방의 존재를 근거로 아직까지도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그리고 또 영국 식민지인 미얀마와 말레이시아가 독립한 시점으로 초첨을 맞추는 사람도 있다.
6. 평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 제국의 대명사로서 대영제국은 가히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가졌다고 평가받고 있으나, 그와 정비례하게 전세계의 식민지인들을 가장 많이 착취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피지배 지역에서의 평가는 좋지 못하다.[20] 이들의 치정은 많은 국가에서 몇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일단 중요한 건 미국인들을 포함하여 대영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국가의 사람들은 지금의 영국은 몰라도 대영제국이라고 한다면 치를 떤다.
특히 대영제국의 범죄 행각은 대표적으로 보어 전쟁 당시 보어인 학살과 감금, 인도,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착취와 학살 등을 들 수 있다. 안다만 제도 같은 경우에는 아예 흔적도 없이 멸망했다.
그나마 규모에 비해서 다른 식민제국보다는 나았다는 평가도 종종 볼 수 있다. 대영제국이 피지배 지역에 관용적이고 피지배민들을 잘 대우해줬기 때문이 아니라, 영국은 다른 식민제국처럼 정복지를 자국으로 직접 병합하기보다는 식민지 개념으로 보고 현지의 문화적 요소까지 강압적으로 말살하려 하지는 않은 데다가, 너무나도 식민지가 광활하였기에 사소한 일상 행정 업무 다수는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간접적으로 통치를 한 경우가 많아 중앙 권력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은 경험이 적었던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국은 수많은 식민제국처럼 끝까지 식민지를 유지하려다가 주민들의 분노를 일으켜 발생했던 독립 전쟁에서 밀려나 독립을 허락하거나 통치를 포기해 버리기보다는[21]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독립을 쉽게 허락했던 편이다. 이러한 평가는 주로 비교 대상인 프랑스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식민지군들과 거대한 전면전을 벌이면서 많은 인명피해를 내면서 했던 것과 달리 영국은 비교적 평화적으로 탈식민지 과정을 거쳤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팔레스타인, 케냐 등의 영국이 직할 통치하면서 폭압을 보여준 곳에서는 영국에 대한 감정이 나쁘다. 게다가 식민지들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악의적으로 경계선을 설정해 독립시켰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하지만 국경선을 만든 아프리카, 중동 같은 지역은 원래부터 국가가 존재한 게 아니라 수많은 부족 사회나 유목민들의 집합이었던 상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현대적인 관점에서의 명확한 경계선을 구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
7. 영향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대영제국이 현대 문명의 형성에 너무나도 큰 영향을 준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당시 대영제국이 건드리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었기에, 현대의 보편 문명을 전세계에 전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영제국은 영어, 의회, 교통, 스포츠, 자본주의, 시간대, 산업 혁명, 정장 등등 수없이 많은 오늘날의 '''인류의 보편 문화'''를 만들어 놓은 엄청난 문화력과 산업력을 가졌고, 또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했던 실행력과 군사력을 가졌다. 현대 세계의 여러 방면의 표준이 영국식이 된 것도 바로 대영제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당장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지금도 세계 공용어 노릇을 하고 있으며,[22] 이들의 복식인 양복이 전세계의 정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산업, 사상, 정치, 군사 등등 '''현대문명의 기준이 거진 전부 대영제국에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그나마 영향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음식 분야에서마저도 , 커리가 지구 반바퀴를 돌아 카레로 변하게 하거나 차 문화를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등, 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영제국이 직접 건드리지 않은 국가들도 결국 영국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교류를 하거나 침략을 당했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가히 전세계가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8. 한자어 명칭
한자문화권(베트남어 등은 예외)에서는 영어 명칭 British Empire에는 대응 요소가 없는 대(大) 자를 붙여서 대영 제국(大英帝國)이라 관습적으로 칭하고 있고 여기에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때문에 영국 제국, 영 제국, 브리튼 제국, 제국주의 영국 등의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실제 쓰임은 일반적이지 않다. 한국에서는 일본 제국, 청나라 등의 예에서 보듯이 실제 정식 국호에 대를 붙였던 제국들조차 대를 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기에 대영 제국은 꽤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명칭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경위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비판적인 관점으로 영국을 타당한 이유 없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면서, 동시에 영국 자국도 고수하지 않은 제국주의적인 명칭으로 불러주는 것이므로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영국의 식민지로 착취당했던 국가들에게는 일본을 대일본제국으로 부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요즘의 역사 교과서나 학술자료에서는 중립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제국', '영국 제국' 등의 표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무렵 고려대학교 총장 현상윤은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처럼 대한(大韓)이란 이름을 제국주의와 연관시키는 인식은 주류가 아니므로 걸러 들어야겠지만 대한민국의 국호가 그러한가를 떠나서, 대한이 대영제국, 대일본제국과 궤를 같이하는 표현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음은 확인해 둘 만하다. 참고로 오늘날 대한(大韓)의 이름은 한국인의 입장에서 (정치형태가 크게 다르지만) 대한제국을 계승한다는 입장에 있으며, 대한(大韓)이란 말은 한반도 토착 세력이었던 마한,진한,변한의 삼한(三韓)이 의미가 확장되어 고구려,백제,신라(변한지역의 가야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의미로 쓰인 것이며, 제국주의적인 느낌을 표명한 것이 결코 아니다. 즉, 대한(大韓)이란 고구려 백제 신라(가야)를 아우른 '큰 한(大韓)'이라는 의미이다. 스스로를 높이는 느낌이 어느정도 있음은 대조선(大朝鮮)의 사례처럼 사실이긴 하다.셋째로 대한(大韓)이란 대(大) 자는 대영(大英)이나 대일본(大日本)과 같이 제국주의 사상을 본따서 지었던 것이니 오늘날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국시로 표방하는 때에 이것을 국호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일보》, 〈헌법 제정과 나의 의견〉, 현상윤, 1948.6.23.
한편 일본에서는 일본 개화기에 영국을 서양 문명의 중심으로 여기던 것과 영일동맹을 매개로 서양의 위대한 '대'영 제국과 자신들의 '대'일본 제국을 대비시키려던 의식 등이 대영 제국이란 명칭을 즐겨 쓴 배경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정설이 딱히 없기 때문에 일부의 견해고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영 제국 명칭의 출처가 일본이라는 결론은 섣불리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점 때문에 묻히는 경향은 있지만 중국 역시 제국주의의 범주에 들어가는 국가고 스스로를 대로 붙여 높여 불렀던 점 역시 일본과 같았으므로 비슷한 관점에서 대영 제국을 인식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으로는 대영 제국은 과거에 영국을 대영(大英)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도 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그 자체는 제국주의나 사대주의 등과 관계없다는 입장이 있다. 지금은 대영제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 대영백과사전[23]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Encyclopædia Britannica) 등의 일부 명칭에 붙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용례가 사라진 표현이지만 예전에는 영국을 대영이나 대영국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조선, 청나라의 공식 외교 문서에서 영국을 대영국이라 표기한 예도 있다.
영국이란 표현은 본래 잉글랜드(England)의 음역인 영길리(英吉利)에서 유래했다. 과거부터 영국 밖에서는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인 영국을 잉글랜드로 대표해 부르거나 둘을 잘 구분하지 않고 영국을 잉글랜드로 부르거나 하는 경우가 흔했고 한자문화권 역시 같은 사정으로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연합 왕국에 대해서도 영길리·영국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그레이트 브리튼'을 같은 한자어 '영국(英國)'으로 표기하면 필요할 때 둘을 구분할 수가 없으니 잉글랜드와 구분해 연합 왕국을 지칭할 때는 대영·대영국 표현이 같이 쓰였다는 것이다.
영국과 같이 '연합 왕국'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특이한 형식이어서 정확히 부합하는 예를 찾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영어 표현에서 'Greater ~'는 어떤 중심 국가와 그 국가의 지배력 또는 문화권이 미치는 주변 권역을 의미하는 범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이란보다 넓은 페르시아 제국들의 영향권을 지칭하는 'Greater Iran', 중화권을 뜻하는 'Greater China', 현재의 인도 공화국보다 넓은 남아시아 지역 혹은 그 밖에 인도 문화의 영향력이 미친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권역을 지칭하는 'Greater India',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그 바깥의 스칸디나비아 문화권까지 함께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인 'Greater Scandinavia' 등이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현재는 주로 '범(凡)- 권'의 형태로 번역되지만 '대(大)-' 또는 '대(大)- 권' 형태로 번역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본토를 제외한 권역 일부를 지칭한다는 면에서 정확한 의미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위 용례들과 같이 영어로는 'Greater Greece'로 번역되는 '마그나 그라키아(Magna Graecia)'가 '대(大) 그리스'로 번역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과 '대영제국'의 관계도 그러한 사례를 참고해서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대영국이란 표현이 등장한 기사다.
조선에도 이미 영국의 존재는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 등을 통해 알려져 있었고[28][29] 영국 배가 다녀간 적[30] 도 있었으나 필담이나마 조선의 관리와 문답한 기록은 이것이 최초다. 영길리국을 대영국이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은 이 기사에서 처음 알려진 것으로 이 기사에 한해서 보면 대영국은 연합 왕국인 영(길리)국을 강조해 부르는 말로서 쓰였다. 다만 이 기사에서도 대영국이라 부르는 이유에 관한 인용 이후에는 다시 영국이라 부르고 있고 실록 전체적으로 아주 드물게 쓰인 표현이다. 외국인과 한자로 나눈 필담이 실록에 실린 것들을 보면 프랑스인이 자신을 '대불란서에서 왔다'라거나 미국인이 '대미국에서 왔다'라고 했다는 경우가 보이는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조선 측이 일일이 대불란서, 대미국으로 불러 주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위 기사를 근거로 대영국은 여러 국가를 통일한 국가라는 의미에서 대를 붙인 것이므로 훗날 고종이 대한이란 국호를 선포할 때 "삼한(三韓)이 하나로 통합된 국가니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1897)라고 했던 것과 같은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6월 25일 어느 국가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 죽선(三帆竹船)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했는데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 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했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했는데 국명은 영길리국(英吉利國)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난돈(蘭墩)과 흔도사단(忻都斯担)[24]
이란 곳에 사는데 영길리국·애란국(愛蘭國)·사객란국(斯客蘭國)[25] 이 합쳐져 한 국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하고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26] 고 지방(地方)은 중국(中國)과 같이 넓은데 난돈(蘭墩)의 지방은 75리(里)고 국중에는 산이 많고 물은 적으나 오곡(五穀)이 모두 있다고 했고 변계(邊界)는 곤련(昆連)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雲南省)에서 발원(發源)하는 한줄기 하류(河流)[27] 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大海)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북경(北京)까지의 거리는 수로(水路)로 7만 리이고 육로(陸路)로는 4만 리이며, 조선(朝鮮)까지는 수로로 7만 리인데 법란치(法蘭治)·아사라(我斯羅)·여송(呂宋)을 지나고 지리아(地理亞) 등의 나라를 넘어서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1832년) 7월 21일 을축 4번째기사)
최남선의 인식으로는 대한과 달리 대영은 영국을 높여 부르는 의미였다는 것으로 앞에 소개한 현상윤의 주장과 비교했을 때 그 취지는 반대되지만 대영에 관한 인식은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대한이라 함은 한(韓)은 한이지만 옛날 같은 작은 한이 아니라 지금은 커다란 한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대한'이란 것은 두 자가 다 합해 국가 이름이 되는 것이요, 결코 대명이나 대영과 같이 높이는 뜻으로 대자를 붙인 것이 아니고 '한국'이라 함은 실제 대한을 간단하게 부르는 것이다.
《조선상식문답》, 최남선, 1946.
일본에서 메이지 덴노 시절 대일본제국 헌법을 만들 때 헌법에서의 일본 국호 앞에 대를 붙여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던 중 나온 발언으로 초안엔 대가 없었기 때문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헌법 기초자 중 한 명인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는 이렇게 답변했다.
프랑스의 브르타뉴와 구분해 불렀다는 것은 영어에서 영국을 가리키는 명칭 중 하나인 Great Britain에서 앞에 Great가 붙은 유래에 관한 것이다. Great Britain은 좁게는 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본토 섬의 지명이자 넓게는 영국 전체의 통칭이기도 해서 Great Britain에서 Great를 '대'로 번역해 대영국이라 한다. 여기서는 영국(Great Britain)을 가리킬 때 대영국이라고도 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으로 일본이 예전에 영국과 맺은 조약 등에서는 영국을 대불렬전국(大不列顛國)이라 표기했다. 대불렬전 또한 Great Britain의 역어로 대는 Great의 직역, 불렬전은 Britain의 중국어 음역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Great Britain을 グレートブリテン(Gurēto Buriten)으로 가타카나로 표기하지만 중화권에서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大不列颠(Dà Bùlièdiān)이라 표기한다.皇室典範には大日本と書けども、憲法は内外の関係もあれば、大の字を書くこと不可なるが如し。若し憲法と皇室典範とは一様の文字を要するものなれば、叡旨を受て、典範にある大の字を削り、憲法と一様にせんことを望む。英国に於て大英国(グレイト・ブリタン)と云ふ所以は、仏国にある「ブリタン」と区別するの意なり。又大清、大朝鮮と云うものは、大の字を国名の上に冠して自ら尊大にするの嫌いあり。寧ろ大の字を削り、単に日本と称すること穏当ならん。
황실 전범#s-1(典範)에서는 대일본이라 쓰지만, 헌법은 대내외의 관계도 있거니와, 대 자를 쓰는 것은 불가할 듯하다. 만약 헌법과 황실 전범이 같은 글자여야 한다면, 말씀을 받들어, 전범에 있는 대 자를 지우고 헌법과 일치케 하길 바란다. 영국에 대해 대영국이라 하는 까닭은 프랑스에 있는 브르타뉴와 구별하려는 뜻이다. 또 대청, 대조선이라 하는 것은 대 자를 국명 앞에 붙여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대 자를 지우고 단순히 일본이라 칭하는 것이 온당하리라.[31]
《明治憲法制定史(下)》, 淸水伸, 1973.
대영국이라는 표기는 일치하지만 문맥상 국호를 높여 부르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예도 있다.
조선은 후기 들어 국호를 대조선·대조선국으로도 표기했는데 조약 등에서 조선과 상대국을 나란히 쓸 때는 상대국에도 으레 대를 붙여 표기했고 그 아래 줄에서 보듯이 조선을 조선이라고 표기하면 영국도 영국이라고만 표기하는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대를 붙여 부른 다른 국가의 예는 아래와 같다.'''대'''조선국 대군주(大君主)와 '''대'''영국 대군주 겸 오인도[32]
대후제(五印度大后帝) 양국의 우호(友好)를 영원히 돈독하게 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피차 왕래하면서 오래도록 통상하기를 의정(議訂)한다.(중략)
조선에 있는 영국 인민과 그 재산은 영국에서 파견한 법률과 소송을 처리하는 관원이 전적으로 관할한다.
조영수호통상조약, 1883.
청나라는 본래 세계의 상국을 자임해 외국에 칙유(勅諭) 외에는 보낸 일이 없다가 나중에 평등한 입장에서 외국에 외교 국서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스스로를 대청국이라 하듯이 상대국 국호 앞에도 대(大)를 붙여 표기했다.'''대'''조선국과 '''대'''아메리카 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은 우호 관계를 두터이 해 피차 인민들을 돌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략)
이후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과 그 인민들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중략)
미국 선척이 조선의 근해에서 태풍(颱風)을 만났거나 혹은 식량·석탄·물이 모자라고 통상 항구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졌을 때는 곳에 따라 정박해 태풍을 피하고 식량을 사고 선척을 수리하도록 한다.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
대조선국(大朝鮮國) 대군주(大君主)와 대프랑스 민주국[33]
〔大法民主國〕 대통령〔大伯理璽天德〕[34] 은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간절히 염원해 피차 왕래하면서 오랫동안 통상하는 일을 의정했다.(중략)
조선에 있는 프랑스〔法國〕 인민과 그들의 재산은 프랑스에서 파견한 형명(刑名)과 사송(詞訟)을 처리하는 관원에게 돌려보내서 전적으로 관할하도록 한다.
조불수호통상조약, 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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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영국에 보낸 국서, 아래는 프랑스에 보낸 국서로 오른쪽 세 번째 줄에 각각 대영국(大英國), 대법국(大法國)[35] 이라 표기되어 있다. 조약에 있어 아편전쟁 이후의 청나라는 상대국 국호에 거의 항상 대를 붙여 표기했다. 청나라가 무려 11개국과 동시에 맺은 조약인 신축조약에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상단을 보면 순서대로 독일(大德), 오스트리아-헝가리(大奧斯馬加), 벨기에(大比), 스페인(大日),[36] 미국(大美國), 프랑스(大法), 영국(大英), 이탈리아(大義), 일본(大日本國), 네덜란드(大和),[37] 러시아(大俄)의 이름 앞에 일일이 대를 붙여 표기하고 있다.
9. 피지배국
캐나다, 13개 식민지(미국), 호주, 뉴질랜드는 영국이 본국 직할 속령으로서 완전한 자국 영토로 생각하고 개발한 영토다. 영국이 대영 제국이라 불리던 시절 아일랜드 섬은 연합 왕국의 일원으로써 해외 영토(식민지)가 아닌 영국의 본국 영토로 있었지만 식민지와 다를 바 없어서 결국 독립 투쟁을 벌여 독립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시적이지만 자치령으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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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단 정책이 나타난 지도로 지도의 연도는 영국에서 독립한 연도[50] )
- 아프리카
- 이집트 (1881~1922, 1952)[52]
- 나이지리아 (1884~1960)
- 남아프리카 공화국 (1795~1910)
- 남로디지아 (1889~1965, 1979~1980)
- 케냐 (1888~1963)
- 우간다 (1894~1962)
- 골드코스트 (1867~1957)
- 영국령 소말릴란드 (1884~1960)
- 소말리아 (1941~1949)
- 감비아 (1821~1965)
- 시에라리온 (1800~1960)
- 베추아날랜드 (1885~1966)
- 바수톨란드 (1868~1966)
- 스와질란드 (1906~1968)
- 북로디지아 (1890~1964)
- 니아살랜드 (1891~1964)
- 모리셔스 (1810~1968)
- 세이셸 (1814~1976)
- 탕가니카 (1916~1961)
- 잔지바르 (1890~1963)
- 카메룬 (1916~1961)
- 리비아 (1942~1951)
- 에리트레아 (1941~1952)
- 유럽
10. 기타
11. 매체에서의 등장
한때 전세계적인 위세를 떨쳤던지라 여러 매채에서 직, 간접적으로 나오거나 모티브가 되고 있다. 어딘가 흔히말하는 영국풍 제국이 나올 경우 십중팔구 대영제국이나 대영제국을 모티브로 한 가상국가다.
- 다이스(EA Digital Illusions CE)가 제작한 게임이자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FPS 게임인 배틀필드 1에서 협상국인 미합중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러시아 제국과 함께 등장 세력으로 나온다.
- 대다수 스팀펑크의 경우 과거 산업혁명 시점이나 직후 대영 제국 본토의 분위기를 모티브로 한다.
-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도 시기상 자주 출현하는 편이기도 하다. 켄웨이 부자와 셰이 패트릭 코맥 등 굵직한 주요 인물들이 대영 제국 출신이며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는 아예 배경이 1868년 산업 혁명 당시의 대영제국이다.
- 코드기어스 시리즈에서는 대영제국 + 미국을 모티브로 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이 나온다. 설정상 미국이 독립 전쟁에 실패하고 영국은 나폴레옹에게 패배해 본토를 버리고 아메리카로 도망쳐 거기서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을 세운다.
- 벤 킹슬리가 주연한 영화 간디에서는 인도의 식민지로서 시달리던 시기 인도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간디의 일생을 조명한 영화답게 대영 제국은 철저히 악역 포지션이다.
- 이연걸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중 하나인 황비홍 시리즈도 청나라 말엽이 무대인 만큼 미국, 일본 등과 더불어 황비홍의 조국 청나라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나온다. 황비홍 시리즈가 아니라도 청나라 말엽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대영 제국이 선역으로 나온 적은 거의 없다. 비유하면 한국 영화에서 조선 말기나 일제시대에서 일제가 철저히 악역 포지션으로 나오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 문명 시리즈에서는 대영 제국이 주요 진영 세력으로 나온다. 정확히는 영국으로 나오지만 문명 6에서는 대영 제국의 성향이 더 강하게 나온다.
- Victoria II에서는 게임의 이름 답게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며 막강한 해군을 이용해 대륙 구석구석을 침략하고 상륙전으로 플레이어를 피곤하게 하는 국가 로 악명이 높다. 시작부터 인도라는 사기급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어 산업발전에 필요한 대부분의 자원이 충족되 잘 큰 독일이나 미국이 아닌 이상 영국의 산업력을 뛰어넘기가 힘든 최강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