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토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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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2.1. 외형
2.2. 도입 이유
2.3. 사용
3. 기타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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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거 1970~90년대에 현금 대신에 사용되었던 일종의 버스 승차권.

2. 상세


버스 토큰은 회수권과 함께 버스요금계의 쌍두마차였다. 서울 기준으로 1977년 12월 1일 첫 시행되었고 1999년 사용 중지 처분되었다.

2.1. 외형


주 제조사는 풍산금속으로, 우리나라에서 한국은행에 납품하는 동전을 만들거니와 해외로도 수출하는 기업체다. 외형은 가운데가 뚫린 동전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크기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오십원 주화와 비슷한 크기다. 구멍이 뚫린 이유는 진짜 동전과 구분하기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컸고,[1] 생산에 필요한 금속량이 줄고 무게가 가벼워져 휴대가 편해지는 등 여러가지 장점이 있었다.

2.2. 도입 이유


버스 토큰이 도입된 이유는 버스 이용에 현금 거래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도입 당시에는 버스마다 안내양이 있어서 기사는 운전을 하고 안내양은 요금 정산을 맡았는데 안내양이 중간에 현금을 가로채는 경우가 빈번했다. 때문에 버스 회사들은 버스 운행이 종료되면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몸수색을 해야하는 등[2]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현금이 아닌 다른 승차권 개념이 필요해진 것.
회수권의 경우에는 종이로 만들기 때문에 제작단가가 비교적 싼 것이 장점이나, 인쇄품질이 좋지 않았던 당시 회수권은 일회용이라 재사용할 수 없고 인구 많은 도시에서 회수권을 위조한다거나[3] 버려진 회수권을 주워서 재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필요가 있기도 했다. 결국 튼튼하고 휴대하기 편한 버스 토큰이 널리 사용되었다.

2.3. 사용


토큰을 찍어내고 관리를 해야하는만큼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에서만 토큰이 사용되었는데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수원시[4], 마산, 대구광역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5], 천안 정도만 회수권 대신 토큰을 이용하였다.
서울에서는 시행 초기에는 일반용 토큰(황동)과 학생용 토큰(백동)이 있었으나, 관리상 어려움이 많아 1979년 5월 학생용 토큰은 폐지되었고 회수권으로 대체되었다.[6] 그리고 그해 12월 일반인 버스요금이 60원에서 80원으로 인상되었는데, 버스 토큰의 가격이 오르기 전에 사재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해서 이 때부터 토큰의 요금이 오를 때마다 황동 토큰과 백동 토큰[7]을 번갈아가면서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버스 토큰을 요금이 오르기 직전에 토큰을 구입해서 사재기해놓으면 두 차례의 요금 인상 후에는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봤자 몇년 묵혀서 몇십원 굳는 거라서 효용은 그다지.[8] 사재기가 계속해서 이뤄지자 1999년 토큰 제도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사용된 토큰은 백동 토큰에 도금을 한 붉은색 토큰을 썼다.

3. 기타


현재는 이미 전자식 교통카드에 의해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운임 지불 수단이지만, 부산에서는 '''2016년에도''' 노란 색깔의 토큰을 쓸 수 있으며 여기서는 교통카드를 쓰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무임승차용이라고 한다. 대구에서는 1983년부터 사용되어 2007년에 없어졌으며,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서 2008년 7월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 관련 문서



[1] 한국은 구멍 뚫린 동전이 없다.[2] 역으로 몸수색을 빙자하여 직원이나 남자가 성추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발생했고 이게 생각 외로 흔했다. 당대 버스 안내양 관련 회고를 보면 꼭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3] 회수권 한 장을 휴지마냥 두 장으로 얇게 분리해서 두 배로 늘리는 것은 굉장히 흔한 수법이었다.[4] 하지만 수원에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거의 회수권을 썼다.[5] 2004년 10월 9일 폐지.[6] 폐지 이후에도 10년 정도 유통, 사용되기는 했다.[7] 위 학생용 토큰 디자인에 '학생' 문구만 삭제했었다. 간혹 삭제되지 않은 구 토큰이 있기도 했지만.[8] 1980년대에는 인플레이션이 년 10~20% 정도라서 인플레이션 대비 손해다. 인플레이션 개념이 없는 일반인들이 모르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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