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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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는 독일 베를린에 있는 공립대학교이다. 현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약칭은 "하우(HU)"와 "훔볼트". 빌헬름 폰 훔볼트[1] 의 건의를 받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1810년 창립하였다. 처음엔 교명이 베를린 대학교(Universität zu Berlin)였다. 그러다 1826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이름을 따서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zu Berlin)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대학 본관이 자리잡고 있는 거리명을 따서 운터덴린덴 대학교(Universität unter den Linden)라 부르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학 소재지가 소련군 점령지역에 속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들어선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 1949년에 대학 건립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훔볼트 형제를 기념하여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던 대학 관계자들이 1948년 서베를린에 세운 대학이 베를린 자유대학교(Freie Universität Berlin)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대학교 중 하나로, THE 세계 대학 랭킹에서 67위, U.S. 뉴스 & 월드 리포트에서 90위를 기록하고 있다. 55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연관되어 있으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칼 마르크스가 머문 학문의 전통적인 요람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전 세계의 자연과학과 철학 연구를 이끌어왔으며, 현대 대학교육의 모델이 된 연구와 학습을 병행하는 훔볼트식 고등교육 모델 (Humboldtian model of higher education)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2. 대학 본관
베를린의 자랑거리인 미테(Mitte)의 운터덴린덴(Unter den Linden) 한복판에 있기에 대학 찾기는 아주 쉽다. 단 이는 총장실이나 입학처, 학생식당 등이 있는 본관(Hauptgebäude)이다. 많은 독일 대학들은 한국식 캠퍼스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훔볼트대의 경우도 단과 건물들 다수가 미테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게다가 수학-자연과학 학부(이른바 아들러스호프 캠퍼스)는 미테가 아니라 트렙토(Treptow)에 자리잡고 있다.
이 본관은 본래 호엔촐레른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하인리히 왕자 궁전(Palais des Prinzen Heinrich)이었다. 건축물 자체가 18세기의 바로크 스타일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역사성 높은 유적이면서 베를린 최중심지에 자리잡고 있는 종합대학의 본관이라는 특수성도 돋보이기에 연간 수십만명이 방문#하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발돋움해 있는 상황.
정문 앞 및 정문과 건물 사이의 정원을 낀 포장길에 자주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평범한 학술 서적은 물론 동독 시절의 서적, 배지, 우표 같은 기념품들도 같이 구입할 수 있다. 중앙홀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 대학 기념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 '훔볼트 스토어'가 자리잡고 있으며, 1층과 2층 사이의 계단 벽에는 이 대학 졸업생인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언급한 다음과 같은 명언이 금박으로 새겨져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1953년 독일 사회주의통일당의 발의로 장식된 이 문구를 놓고 동독 붕괴 이후 맹렬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과거사 청산을 이유로 철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실제로 대학 본부에서도 철거를 강행할 예정#이었지만, 옛 동독 관계자들과 진보 지식인들, 그리고 학생들이 철거안에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결국 1998년 대학 평의회의 의결을 통해 보존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는데, 이 금박 장식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꽤 많다. 2층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을 위시하여 대학 출신 유명인사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데, 아무래도 아인슈타인을 촬영하는 관광객들이 많은 편.
3. 중앙도서관(그림 센터)
이 대학 중앙도서관은 오랜 기간 베를린 국립도서관(Staatsbibliothek zu Berlin)과 역사를 공유해 왔는데, 1831년 대학 중앙도서관이 창립되기 이전엔 베를린 국립도서관이 동시에 대학 중앙도서관을 의미했다. 참고로 국립도서관이 1913년 현 위치(Unter den Linden 8)로 이관하기 전까진 베를린대 본관 맞은 편인 베벨플라츠 2(Bebelplatz 2)의 건물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현재 이 건물엔 (법대 도서관을 포함하는) 법대가 상주하고 있다. 이후에도 중앙도서관 소재지가 국립도서관의 관할 구역인 도로텐슈트라세 27(Dorotheenstraße 27)이었기에 완전한 독립이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2005년부터 국립도서관을 보수,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헤시셰 슈트라세 1~2(Hessische Straße 1-2)의 건물(현재 캠퍼스 노르트 도서관)이 중앙도서관의 임시 거처가 된다. 이후 2009년 이 대학에서 강사로 활약했던 그림 형제를 기려 명명한 ‘야코프 빌헬름 그림 센터(Jacob-und-Wilhelm-Grimm-Zentrum)’가 게슈비스터 숄 슈트라세 1~3(Geschwister-Scholl-Straße 1-3)에 개관하며 진정한 의미로 독립된 중앙도서관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 대학에는 각 학과마다 도서관들이 따로 존재했지만, 새로운 중앙도서관이 개관하며 상당수 도서관들이 문을 닫고 소장 자료들을 모두 중앙도서관으로 이관시켰다. 현재 남아 있는 도서관 분관은 총 10곳.
중앙도서관인 그림 센터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탔을 정도#로 건축물로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서 도서관임에도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하곤 한다. 하지만 개관 이후 내부 시설이 급속도로 낙후되고 말았다. 독일의 대학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공공 시설로 간주하기에 별다른 제재 없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는 데다, 상술한 대로 관광객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이라서 사용자 숫자가 상당히 많고 심지어는 노숙인들의 왕래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시설관리를 철저하게 해오지를 못했는데 특히 화장실이 꽤나 지저분한 편. 다행히도 2019년 후반기에 보수 공사를 실시했다.
4. 이 대학 출신 유명인물
5. 관련 문서
[1]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