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예배
1. 설명
Frontier Worship
19세기에 발생한 미국 개신교의 예배 형식으로,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이 드리는 예배 형식의 원형이다.
변경예배의 등장은 '''19세기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와 관련이 깊다.''' 골드 러시 등으로 미국인들이 서부로 대거 몰려가면서, 미국 개신교에서도 이렇게 서부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 당시 개신교 목사가 되는 과정은 매우 오래 걸리고 배우는 과목도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서부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따른 목사의 수요'''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일부 개신교 교단들은 이전의 정식 코스에서 벗어나 '''약식으로 목사 육성을 한 뒤에 서둘러 임명'''해 내보내는 방식을 취했다. 약식 코스로 배출된 목사들이 이전의 전통적인 방식대로 예배를 집례하기 어려워지자, 결국 예배 형식이 약식으로 간소화되었고[1] 더 나아가 예배를 개교회의 상황이나 목회자의 특성에 따라 좀 더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되었다. 이런 약식 예배를 가리켜 그 당시 서부 개척지를 의미하던 변경(frontie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변경예배(frontier worship)라 불렀다.
또한 19세기 미국 개신교에서 일어난 대부흥 운동도 변경예배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부흥 운동은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나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데 역점을 두었고, 이리 되면서 전통적인 예배의 형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2. 형식
이전 개신교의 예배는 교파마다 차이가 있긴 했으나, 대체로 설교를 중심에 두고 설교와 더불어 성만찬을 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반면 변경예배에서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회심시키는 것에 '''예배의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예배 구조도 철저하게 사람들을 전도하고 회심시키는데에 목적을 두었다.
대체로 변경예배의 구조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형식은 전통적인 개신교 예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는 아니었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었다. 우선 전통적인 개신교 예배와는 달리 설교를 듣는 준비 과정으로서 열정적인 복음송들을 열창하는 과정이 생겨났다.
또한 설교의 내용도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나 형식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리 되다보니 설교의 내용은 신앙 아니면 불신앙, 천국 아니면 지옥 같은 절대적, 극단적인 내용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초청의 시간에는, 찬양과 설교를 통해 신앙을 가지기로 결심한 사람이나 예전의 형식적인 신앙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서, 그 결심을 모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3. 특징
- 설교 중심의 예배: 개신교 예배는 전통적으로 설교가 중심에 섰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전통적인 예배 형식에서는 성만찬도 함께 드리면서, 말씀의 예배와 성만찬의 예배라는 균형을 나름대로 잡아왔다. 설교와 성찬이라는 예배의 양대 축을 어떻게든 유지해왔던 것. 그러나 변경예배에서는 이 균형이 무너지고 철저하게 설교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예배의 목적을 온전히 전도와 회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성만찬까지 드릴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전통에 있던 포인트를 모두 전도에 몰빵했을 때 나오는 예배 형태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여기에서 좀 더 주제를 확장해보면 보편교회(가톨릭·정교회·성공회)의 예배 스타일과 복음주의 교회의 예배 스타일이 왜 그렇게 다른 지에 대한 실마리가 나온다. 현재 한국의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정교회의 미사/성찬예배를 보며 낯설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편교회에서는 아직도 말씀과 성찬을 예배의 양대 기둥으로 삼고 있으며, 성찬 없이 설교만 있는 예배를 무언가 부족한 예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이들 교파에서는 미사/예배를 드리면서 상황에 따라 강론(설교)을 좀 더 서둘러 짧게 마무리하는 경우가 있으면 있었지, 성찬례를 생략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 철저한 실용주의: 개신교는 비록 개교파별로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방식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변경예배는 전도와 회심이라는 목표에 실용적이지 못하다면 전통도 과감히 바꿀 수 있다고 여겼다. 19세기 대부흥 운동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찰스 피니는 "예배의 진정한 가치는 실용적인 효과를 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고 했을 정도였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개신교의 예배 모범이나 예식서를 따르지 않는 전통 파괴 현상들이 일어났고, 이는 현대에까지 이어지는 무전통의 전통이라는 기묘한 현상을 낳게 되었다.
- 개인주의적 영성: 변경예배의 목표가 전도와 회심에 중점을 두다 보니, 결국 예배의 양상도 한 개인이 신앙을 가지고 회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걸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야 어쩌든 간에 내가 신앙을 가지고 회심하는 것이 중요해지게 되었다. 변경예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각종 복음송들도, 이런 경향 하에서 개인의 신앙과 주관성을 노래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다.
- 무형식의 형식: 실용주의적 특성과 더불어 예배의 기본 틀은 있되 목사가 상황에 따라서 그 순서를 바꾸거나 하는 일이 잦아졌다. 더불어 이전까지 전통적 예배에서는 기도문이 정해져 있거나 적어도 기도문을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변경예배에서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다 보니 즉흥적인 기도가 일반화되었다. 또한 전통적 예배는 엄숙한 분위기에서 드려졌으나, 전도와 회심을 목표로 한 변경예배에서는 감성적인 것을 장려하면서 엄숙한 분위기에서 감정 표출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예배로 바뀌게 된다. 이 때문에 전통적 예배에서는 상상도 못할 괴성과 소란스러움이 일반화되었고 이것이 성령이 역사하는 살아있는 예배로 간주되었다. 또한 전통적 예배에서는 정해진 교회에서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것과는 달리, 변경예배는 예배 장소 또한 즉흥적이었고 고정된 예배당이나 예배를 위한 성스러운 도구의 가치도 점점 희박해지게 되었다.
4. 영향
변경예배는 20세기 현대 개신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미국 개신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예배 형식이 이 변경예배의 형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
TV의 발전으로 나타난 소위 텔레비전 부흥사[2] 들의 예배 형식도 철저하게 변경예배의 형식 아래 있는 모습을 보이는데, 다만 19세기와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TV라는 매체를 사용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뿐이다.
19세기 변경예배는 이 전통에서 배운 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개신교를 전파하면서 한국의 개신교 예배의 모범이 되었다. 실제 21세기 현재의 한국의 개신교 예배형식은 변경예배와 매우 흡사하다.
또한 청년부 예배로 자주 드리는 소위 열린예배도, 성만찬이 없으며 전통적인 예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예배 구성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경예배의 계보를 잇고 있다. 설교보다 찬양의 비중이 더 커진 걸 빼면 변경예배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볼 수 있다.
5. 열린예배(구도자예배)
초반기의 변경예배에서 더 나아가 형식 파괴가 이루어진 예배가 열린예배. 구도자예배(seeker's worship)이라고도 한다.
아예 찬양 콘서트나 뮤지컬 형식으로 바뀐 경우도 많다.
의도는 비신자가 쉽게 예배에 다가갈 수 있고 현대음악(대중음악)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성향에 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의 경건성을 떨어뜨렸고, 예배의 경건성을 찾는 일부 개신교도들이 열린예배에 학을 떼고 천주교나 성공회로 돌아서게 되었다는 비판이 있다.[3]
성인(일반부)예배는 열린예배 형식이 아닌 일반적인 장로교/감리교 스타일로 보는 교회들도 청년부 예배나 교회학교(유치부/초등부/중고등부) 예배는 열린예배 형식을 띄는 경우가 많다.[4] '찬양예배'라 하는 것도 이쪽이라고 보면 된다.
이와 같은 개신교 예배 형식이 가톨릭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 이른바 중고등부 미사, 청년 미사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종파인 가톨릭의 미사는 자잘한 전례에는 변형이 있어도 큰 뼈대는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긴 한데[5] , 일부 청년미사는 개신교풍의 성가를 부르고 오르간 대신 키보드(전자 피아노)와 기타를 친다. 물론 이건 본당마다 케바케라서 어떤 본당의 청년미사는 개신교 청년예배와 분위기가 비슷한 경우도 있고, 어떤 본당의 청년미사는 성인미사/교중미사 못지 않게 어느정도의 예전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6. 부정적 양상
변경예배는 19세기 미국 개신교에 있어서 그 실용성으로 신자를 늘리는데 큰 기여를 하긴 했지만, 부정적인 모습도 많았다.
먼저 지나치게 설교를 강조하면서 '''성만찬이 거의 실종되어 버렸다'''는 문제를 낳았다. 성만찬은 1년에 한번 드리는가 하면, 심지어는 아예 예배 과정에서 실종돼버리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이는 전통 그리스도교가 설교와 성만찬을 동등한 예배의 형식으로 두었고, 전통 개신교에서도 설교를 중심에 두긴 했지만 성만찬도 균형을 잡으려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알맞지 않은 상황. 이런 부정적 양상이 한국의 개신교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의 개신교에서도 성만찬이 더욱 경시되는 결과를 낳고 만다. 본래 성만찬에 대한 인식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부터가 다른데다 각 종파에 따라서도 의견이 다르므로, 개신교에서 왜 성만찬을 가톨릭처럼 중요시하지 않느냐는 것은 다소 포인트가 어긋난 지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경예배에서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한 예배가 지나치게 소란스럽고 감정적이라는 문제를 낳았다. 물론 예배에서 감성의 표출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나, 전통적인 그리스도교는 예배를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보았고 어느 정도 엄숙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변경예배는 살아있는 예배를 강조한 게 지나쳐서, 엄숙성이 결국 실종되고 지나치게 소란스럽고 감정이 지나치게 표출되는 예배로 흘러가 버리고 만것. 이는 한때 현대 사회에서 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이런 경향에 질린 나머지 가톨릭·정교회·성공회의 엄숙하고 정교한 예배를 선호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칼한 일이다.
그리고 예배의 목적이 한 개인의 신앙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극도의 개인주의로 흘러가게 되었고, 이는 결국 개신교의 병폐로 꼽히는 개인주의적 영성으로 이어지게 되고 만다. 쉽게 이야기해서 '''사회가 어찌 흘러가든 다른 사람들이 어쩌든 간에''' 내 신앙만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극도의 개인주의가 다시 '''나만이 옳다'''는 독선으로 연결되어서 근본주의 기독교를 탄생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 반론과 다른 대안들
다만 개신교 쪽을 택한 젊은 그리스도인들중 상당수는 정교한 의식과 전례로 가득찬 가톨릭의 전례가 끌리지 않아서 개신교를 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엄숙한 예배를 추구한다고 해서 꼭 가톨릭이나 정교회식의 예배를 추구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엄숙하면서 격식보다는 설교와 성경 내용에 대한 나눔, 독서토론 스터디 등을 강조하는 교회도 존재하고(한국 장로교가 보통 그렇다. 외국 장로교는 안 그렇다.) 그런 쪽을 선호하는 그리스도인들도 꽤 많다. [6]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한다. 요즘 많아진 락 콘서트를 연상케 하는 예배보다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미사를 마음에 들어해서 가톨릭을 선택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엄연히 있으니까.
또한 종교 집단의 권위와 전통을 중시하는 사상은 신학적, 윤리적 보수주의를 낳을 수 있기에 꼭 어느 하나가 일방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나치게 분화되어 대놓고 서로를 비방하여 잡음을 일으키는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은 '순명과 일치'를 강조하여 품위가 있지만 문제들을 조용하고 원만히 해결해 버린다는 점이 종종 지적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전례를 지키는 것이 반드시 신학적 보수주의로 연결되지만은 않는다.[7] 한국의 경우에도 진보적인 개신교 교파가 오히려 전례형식면에서는 전통을 중시하는 경우도 많다(성공회, 경동교회, 향린교회등).
가톨릭/정교회와 같은 보편교회(주교제 교회)와 달리 개신교는 형식보다는 믿음을 중시하는 신앙관을 갖고 있기에 사실 예배 형식은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고교회파에 비하자면 신학적으로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다만 아무리 형식보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해도, '빵과 포도주로 나를 기념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너무 신경을 안 쓰는 점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는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나무위키를 비롯한 엔하계 위키 등에서 잘못 알려진 사실로 한국의 개신교 예배가 변경예배의 영향을 받아 단순하게 되었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데, 실제로 장로교의 예배 형태는 원래 유럽의 개혁교회에서부터 단순한 형태였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경예배에서 이 단순한 부분이 더욱 심화되었다는 점이 이렇게 한국에서 '변질'하였다는 것으로 와전된 것.
그리고 요즘은 한국에서도 CCM 등 난잡한 음악을 자제하고 다시 경건한 예배 형태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도 존재한다. 시편 찬송가[8] 위주로 된 경건한 분위기의 예배를 드리자는 주장도 있어서 제네바식 시편 찬송가가 번역되기도 했으나 아직도 대다수의 개신교 교회에서는 채택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 가톨릭·정교회·성공회에서는 매 미사/예배마다 빼놓지 않고 드리는 성만찬 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되었다.[2] 영어로는 텔리반절리스트(televangelist)라고 하는데, 텔레비전+복음전도사(evangelist)의 합성어이다.[3] 장로회 교회 중에서도 열린예배 형식이 아닌 장로교의 전통적인 스타일(이것도 초창기 변경예배 스타일이긴 하지만)로 예배보는 교회들이 꽤 있지만, 특히 한국의 경우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 풍조가 극단화되어 있다보니 교단 성향보다는 해당 교회 담임목사 취향을 많이 타서 복불복 성격이 있기에 그런 것을 원천적으로 피하려고 아예 천주교나 성공회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것은 장로교, 감리교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며, 오순절, 성결회 계통의 교회들은 소위 말하는 '경건한 스타일'의 예배가 아닐 가능성이 장로교나 감리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은 편이다.[4] 1990년대 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장로교 스타일(성년부 예배 스타일)로 청년부, 중등부, 초등부 예배를 보는 교회가 드물지 않았으나, 2010년대인 현재는 거의 대부분 열린예배 형식을 띈다.[5] 청년미사가 아무리 개신교풍이라 해도 미사의 기본 뼈대인 입당식-말씀전례(독서)-강론-성찬전례(영성체)-파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6] 가톨릭의 간행물에 실려있는 격식적 내용에 질려버리는 경우도 많다.[7]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면서도 전례형식적으로는 파격적인 경우도 있고(한국의 순복음교회), 신학적으로는 진보~중도적이면서도 전례형식적으로는 보수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성공회, 경동교회). 성공회만 하더라도 전례적으로는 전통주의적이면서도 신학적으로는 진보적인 '''자유주의적 고교회파'''가 존재한다.(물론 동성애, 여성사제 등에 반대하는 '보수적 고교회파' 역시도 존재.)[8] 원래 장로교나 개혁교회에서는 시편에 곡을 붙인 찬송가를 불러야 하는데, 한국에는 오랫동안 들어오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