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

 


한자
根本主義
영어
Fundamentalism
1. 설명
1.1. 보수주의/권위주의와의 학술적 구분
2. 현황
3. 관련 문서


1. 설명


"근본인 것들을 지킬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한판 붙을 작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1920년대 미국 저널리스트 커티스 리 로우스, 당시 새로 등장한 종교 성향에 대한 논평 中

원리주의라고도 한다. 간단히,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광신도라고 보면 된다.
독실한 신앙이 종교 교리에 충실한 것이라면, 근본주의는 전통주의보수주의 또는 종교극단주의로 오해하나 비교적 이해의 역사가 짧다. 매니토바 대학교에 재직하면서 권위주의 연구로 유명해진 정치심리학자 밥 알테마이어(B.Altemeyer)는 근본주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근본주의란, 인간과 신에 대해서 오류 없이 전하는 종교적 가르침의 세트는 단 하나뿐이며, 이 진리가 오랜 시간 동안의 적용과 규칙에 따라 준수되어야만 한다고 믿는 신념이다.

Altemeyer & Hunsberger 1992년

이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매우 확실히 알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의 경직된 태도는 특정한 세계관이나 신념에 대해서 '''그것 하나만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나타난다. 언뜻 확신에 차 있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이들의 믿음의 이면에는 뜻밖에도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공포,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근본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생활 양식이나 문화에 거부감을 보이고, 성 소수자다른 인종에 대해 더 심하고 모질게 차별적인 행동을 하며, 성경의 내적 모순들에 대해서 더 히스테릭하게 반응하고, 특히 공포와 불안이 심해지면 신앙치료에 대해 심정적으로 더 매달리게 되고, 심지어는 군국주의 역시 더 심하게 옹호한다고 보고하였다.[1]
재미있게도 미국의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성경 문자주의적인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기독교에 관련된 종교 퀴즈가 나왔을 때[2] 평균적으로 '''반타작도 못 했다고 한다'''(…).[3] 이 퀴즈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올린 사람들은 무신론자들이었고[4], 그 다음이 유대인모르몬교인들이었다. 결론적으로 종교에 대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종교적 교리에 대해서도 박식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지식을 있을지언정,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선택된 구절들에만 익숙할 뿐 정작 종교적인 문제들에는 많은 지식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종교 퀴즈에서 점수가 높은 사람들이 일반 상식도 역시 많이 맞추었다는 사실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관련 포스트

1.1. 보수주의/권위주의와의 학술적 구분


심리학에서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차이점을 호모포비아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보수주의자들은 성 소수자들이 "사회의 보편적 성 윤리를 따르지 않고, 통제되지 않는 방종한 생활을 하며, 성 규범을 어기고 가정과 가족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그들을 배척하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처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5] 근본주의자들은 "성 소수자들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게 되면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세계관 자체가 뒤흔들리기 때문에 그와 같은 심리적 불안과 부담감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성 소수자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파이널 퓨전을 일으킨 사람들도 정말 많이 있고, 대체로 근본주의와 보수주의는 서로 함께 움직이는 관계로 취급된다.
흔히 같이 나타나는 권위주의와도 사뭇 다르다. 바실리스 사로글로우(V.Saroglou) 등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들은 공격적인 교리나 구절을 접하면 권위주의자들보다 더 심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보이지만, 반대로 박애와 사랑을 강조하는 교리나 구절을 접할 때에는 권위주의자들보다 덜 배타적이며, 심지어 근본주의자이자 권위주의자인 사람들에게서도 그 배타성이 일정 부분 상쇄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6] 또한 이들은 자신과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에게 한해서는 매우 친절하다고 한다. 짧게 말하면, 이들은 '''선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선해지고, 위험한 교리를 접하면 한없이 위험해지는 반면, 권위주의는 이런 영향이 덜하다는 것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근본주의 세력은 여러 분야에서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특히 정치학계에서는) 자유주의와 대비되는 권위주의 세력의 일부로 보기도 한다.

2. 현황


안 그런 집단들도 있긴 하지만 흔하게 알려진 근본주의 집단들은 대부분 세속 사회와 충돌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교리에 확대해석한 나머지 '''경전의 내용을 자신들이 가장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서술된 것처럼, 종교계에서 근본주의가 나타날 경우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생활양식이나 가치판단 등에 있어 교리에 근거한 자신들의 기준을 절대화 하는 자체는 개인 차원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을 사회 전반에 강요하고 뜯어고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미시 같이 아예 고립적인 근본주의적 집단들은 사회에 물의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는 모양인데, 아미시 공동체 내에서 작은 사회의 전형적인 성폭력, 근친 문제를 보고 그런 말이 나올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유대인 하레디들은 과거 자신들의 조상들도 현실에 맞춰 지키던 600여 개 계율을 현대 문명을 거부하며 지키는데, 이들이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순수 유대인, 즉 과거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언어 토라 뿐만 아니라 세속 지식까지 다 배웠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땅에 무력으로 원주민을 쓸어버리고 유대인만을 위한 신정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19세기까지 정통 유대교 랍비들은 회당에서도 히브리어만 쓰고 개신교식으로 찬송가를 만들어서 활용하자는 진보적인 주장에도 반대했지만, 과격적인 시온주의는 그저 미친소리로 여기고 회당 안에서 시온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들을 빗자루를 휘둘러 쫓아낼 정도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반유대주의, 동유럽의 포그롬이나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유럽 내 보수 정통 신학을 가진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자, 2차대전 전후 평소에 회당에도 나오지 않던 과격 급진 무리들이 자신들이 정통이라 주장받기 위해 극단적 종교근본주의자가 되었다는 시각도 있다.
개신교에서도 우리가 오늘날 근본주의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미지들은 사실 근본주의가 아니다. 18세기 까지 유럽의 개신교 학자들에게 있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는 문구는 1~2세기 사도 시절에만 해당한다고 보는게 통설이었다. 그리고 성령체험, 방언은 역시 성서시대에만 나오는 것으로 보는 은사중지론이 19세기까지 통설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시기 칼로 전도하는 과혁혁명론자와 성령을 직통으로 받는다는 토마스 뮌처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을 이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은사중지론을 설파한 대표적 인물인 벤저민 워필드(B.B.Warfield)는 실제로 장로회의 유명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근본주의하면 보통 이슬람이나 기독교(그 중에서도 특히 극단주의 계통) 등 유일신교 계통 종교들을 떠올리기 쉬우나 실제로는 다른 종교도 근본주의는 당연히 존재한다. 근본주의자들은 나라에 따라서 권유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막장스런 나라들은 아예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서 아예 나라 전체나 특정지역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최근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자경단을 조직하여 이슬람 도축업자들을 살해하고 다니며 미얀마와 태국의 불교도들은 소수 종교인 이슬람과 소수 민족들을 탄압한다.
간혹 아미쉬 공동체들을 근본주의라 여기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방식이나 종교를 절대화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체계를 갖고 살아가는 타인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근본주의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는데, 일단 당장 아미시 공동체가 그렇게 외부에서 보는 것 처럼 털어도 먼지 안나오는 사람들인지 부터 의문이고[7], 애초에 근본주의의 정의에서 사회적 민폐는 부차적 요소고, 17세기 이민 당시의 종교관, 사회관을 의식적으로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아미시는 근본주의 맞다. 이바디 이슬람 처럼 그냥 외부와 차단 자체를 끊고 사는 것이지, 외부 전파를 안한다고 해서 근본주의가 아닌게 아니다.
한국의 경우 매우 보수적인 가톨릭의 모더니즘 비판을 통한 근본주의와 개신교 대다수 교파에서 정통주의적 태도를 통해 근본주의와 비슷하게 보이는 문제[8]는 분명 있을지언정 다른 나라들처럼 타 종교인을 상대로 살해나 테러 등의 종교 분쟁이 미약한 수준이다. 이는 좋은 치안에 기여하고 있다.
근본주의가 한국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 도올 김용옥은 한국은 샤머니즘기복신앙과 유가적 현실주의가 뿌리깊게 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즉, 종교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복신앙적 요소는 종교 내부에서 크게 비판하고 있기도 하고 적대시하는 경향도 있기에 무조건 옳은 주장이라고 하기엔 아니다. 또, 이러한 주장은 주기철을 비롯해서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에게 희생당한 아픈 역사가 있는 기독교인들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와 같은 말의 문제는 이것이 일부 이단 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가령 종교적 가르침에 의한 범죄가 일어났다 하면 해당 종교인들이 발벗고 나서서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의 이름값을 지키기 위해 "이건 근본주의자들이나 극단주의자들이 책임이지 온건(moderate)주의자들은 상관 없음"이라고 하면서 비판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종교에 의한 테러가 많이 발생하는 서구권 등지의 경우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에 책임을 돌리지 특정 종교의 명백히 존재하는 교리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이나 비판이 쉽게 무력화된다는 폐해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부 이단 논리가 지지를 얻는 순간 세를 확장하여 자신들과 믿음의 방향이 조금 다른 집단에 '''너 이단'''이라는 식으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원천봉쇄의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극단적 태도를 해당 종교의 평화적 교리로 비판하려는 운동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근본주의와 극단주의의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 해당 종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온건주의자가 근본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교리에 대한 곡해와 왜곡으로 해석하여 근본주의를 비판한다. 이런 경우엔 온건주의자들은 근본주의가 '''근본'''이란 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불쾌해한다. 해당 종교의 근본이 그런 폭력적 태도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종교들이 과학과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온건주의가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은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서술된 부분이 더러 있고, 무엇보다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없는 민족주의 또는 부족주의적 동기에 의한 행동의 결과물을 근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오류가 많이 범해지고 있다. 가령 불교 문서에 있는 이슬람 대 불교라든지 힌두교 문서에 나와 있는 힌두교 대 타 종교라든지 하는 문제들은 신도들이 불교나 힌두교의 교리를 근본주의적으로 실천한다기보다는 부족주의나 민족주의에 더욱 강한 동기를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는 읽는데 주의를 요하며 꽤 많은 수정이 필요하다.

2.1. 유대교


[image]
경찰과 맞장 뜨는 하레디 유대인. 이들은 평소에도 경찰을 자주 무시하고 세속법을 더럽다(!)면서 언젠가는 자신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이스라엘을 하레디 국가로 바꾸리라고 믿는다. 이스라엘 강경파 중에서 '''가장 강경한'''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하레디 문서 참조.
이들은 또한 매년 진행되는 텔아이브와 예루살렘의 퀴어축제[9]마다 반동성애 항의시위를 하며 축제를 방해하는 걸 막는 경찰과 충돌하기도 한다.
흔히 이들을 바리사이파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AD 1세기경의 바리사이파는 어디까지나 평신도 신학운동이었을 뿐 정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었다. 그리고 신학적 경향이 딱히 근본주의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근본주의적이었다면 예수가 율법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교리를 만드냐는 비난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율법은 해석이 필요한 면이 있다. 토라의 '안식일을 범하지 말라'는 규정만 해도,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예외는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게 마련이며, 특히 율법 규정이 일상생활의 규범이 되는 1세기 유다인의 경우, 그러한 해석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진다. 바리사이파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토라 이외의 전통까지 폭넓게 받아들여 율법을 해석한 학파다.
게다가 자기들과 해석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죽인것도 아니고[10], 모두에게 이러한 해석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다른 학파들과 논쟁이야 자주 벌였지만, 이건 모든 경전의 종교에서 흔한 모습이다. 이런면에서 바리사이는 근본주의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토라 이외의 전승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 토라의 준수만을 주장하여 바리사이와 극단적으로 대립한 사두가이파가 진짜 근본주의에 가깝다.[11] 그럼에도 '''사두가이파는 영혼멸절설을 주장했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때문에 전문 학계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오해가 널리 퍼져있다.
본래 초기 유대교에는 죽은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내세 개념이 희박했다. 초기의 유대교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였고, 죽은 자의 혼백은 지하세계인 셔올로 내려가 잠자는 것처럼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관용 표현으로 '조상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종종 표현한다. 영혼의 부활 같은 개념은 상당히 후대에 생긴 것이며, 바리사이파는 이를 받아들였지만 토라 외에는 인정하지 않았던 사두가이파는 영혼이나 내세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전통적인 신앙 형태를 고수했던 것에 불과하다.
현대 유대교에서 사두가이와 가장 교리가 근접한 분파로는 카라이파가 있으며, 이들도 하레디 못지 않게 근본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12] 하지만 1세기경의 사두가이와 다른 점들도 많으며,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이라면 토라 외에도 이사야다니엘로 대표되는 네비임, 욥기시편 등 케투빔이 포함된 유대교 경전[13] 전체를 인정한다는 점과 '''카라이파는 사두가이파와 달리 부활과 심판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링크1), (링크2) 애초에 이들은 사두가이파가 단절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9세기쯤에 가서 생긴 분파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2.2. 기독교




2.3. 이슬람


이슬람 근본주의는 15세기까지 기독교 문명보다 더 잘 살던 이슬람 문명이 계속 기울면서 이들도 기독교 문명의 산물인 입헌정치,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를 수입해서 부흥하려 했으나 결과가 영 좋지 않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런 와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 본연에 충실하라, '''샤리아가 아닌 모든 외세의 이념은 악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시작했다. 이를 풀려는 의무가 바로 '''지하드'''[14]다. 쿠란 자체가 시대에 뒤쳐지지 말라고 하라는 후대의 해석에 따름을 생각하면 굉장한 모순이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설명은 이슬람 근본주의 문서 참고.
이슬람 근본주의는 교리적 근본주의와 공격적인 극단주의가 둘 다 짬뽕된 형태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명확히 분리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종파에 비해 문제가 되는 그 빈도가 굉장히 높다. 물론 꼴통들 하는 짓거리는 어느 종교, 어느 사회에도 있지만 이쪽은 워낙 스케일이 범지구적이고, 사회 경제적 저개발, 정치적 권위주의와 깊게 맺혀 있으며, 열강들도 입으로는 테러와의 전쟁 운운하지 필요에 따라선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는 이란을 통해 얼마든지 야합하며 세력을 뿌려댈 수 있음으로 21세기 작금에선 전 지구적 골치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게 얼마나 이슬람교 본질적인 폭력성, 억압성의 발현이냐, 아니면 한정적인 작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의해 증폭된, 본질이 아닌 근대적 비극이냐는 끊임없는 이슬람 혐오주의자와 다원주의자간의 논쟁 여부이다.
또한 반유대주의 성향이 심해서 유대인에대한 살인, 테러를 자주 한다.[15] 특히 이스라엘에선 일부 근본주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한달에만 유대인에대한 수십건의 흉기,폭발물 테러를 일으킨다.[16]

2.4. 무신론


역시나 무신론도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무신론 근본주의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무신론자들도 존재하며 일부 무신론 단체에서도 종교근본주의 무신론판이라고 불릴정도로 근본주의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실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구소련이나 북한, 중국같은 나라에서는 국가 무신론을 실행했거나 하고 있으며 프랑스 같이 강한 세속정책으로 인해 무신론 근본주의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2.5. 불교


불교는 이미 교리나 일화에서부터 드러나듯, 비교적으로 타 종교나 사상에 대해 온건하다는 평이다. 이는 모든 갈등과 싸움 또한 집착과 갈애의 결과물로 보는 불교의 특성에 기인하는데, 집착과 갈애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석가모니의 핵심 가르침(지혜)과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자연스레 얻어지는 바른 행위(자비)가 불가사상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임을 생각해 볼 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에게 총질을 한다는 것은 불자들에게 있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사상은 근본주의에 근접할수록 흔히 보이는 결벽증에 의한 대립과 불화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야기하지 않으려는 성격이 더 두드러지는 '''특이한 양상을 보일 것 같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향성이 옳았을 때의 얘기고, 지역의 토속종교 및 문화와 쉽게 융합하는 특유의 친화력 때문에 오히려 민족성을 강하게 띄므로, 이런 방향을 채택한 불교는 매우 강력한 배타성과 광적 공격성을 보인다. 다만 현대의 이러한 사례 대다수는 불교 교리적인 문제로 배타성/공격성을 보인다기보다 민족주의적인 문제를 근간에 두고 적아를 구분짓는 잣대를 '불교도인가'로 두는 양상을 보인다는 게 특이점이다. 이를테면 불교도들에게 핍박받는 로힝야족이나 타밀족의 경우, '''불교로 개종한다 해도 박해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해당 사례가 불교의 문제라기보다 민족주의의 문제라는 근거가 된다. 불교도로 개종한다 해도 여전히 억압이 가해진다는 것에서 해당 문제가 '근본주의 불교'라기보다는 '근본주의 불교의 탈을 쓴 민족주의'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불교에 문제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도 곤란한 것이, 애시당초 불교는 저러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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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물은 '아신 위라투'. 미얀마승려로, 이슬람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보여, 테러마저 불사하는 위험한 인물이다.[17] 성현의 말씀이야 어떻든 결국 어디에나 못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다. 태국에서 또한 비슷한 양상의 이슬람·불교간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 의해 합병당한 티베트의 경우 또한,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독립운동 초창기에는 상당히 거친 모습을 보였다.
근본주의를 논하기도 전에 이미 '''불교가 생활의 전반과 동일시되는''' 티베트인들을 생각해볼 때, 불교를 탄압하고 수백수천의 사찰을 불태운 중국 공산당은 나쁜 놈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달라이 라마가 비폭력노선을 지향하면서 폭력저항은 힘을 많이 잃었다. 티베트인들에게 달라이 라마는 그냥 '부처' 그 자체다. 부처님이 폭력을 쓰지 말라 했으니 그걸 어떤 티베트인이 거역할까? 이 때문에 티베트 지역은 가까스로 미얀마태국의 꼴이 나지 않게 되었다. 만일 달라이 라마가 무장독립운동을 지지했다면, 아니, 묵과하고 넘어가기만 했어도, 지금쯤 티베트 지역의 자살폭탄 테러는 이슬람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비폭력 평화주의 노선 덕택에 티베트 독립운동이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지지를 확보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18]. 마하트마 간디가 행한 비폭력주의 운동 덕택에 영국 제국주의의 잔학함이 만천하에 알려지게 되면서 인도의 독립 운동이 대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반대로 체첸 독립운동가들이 폭력 노선을 고수하다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놈들로 찍히고 지지를 잃고 말았으니, 폭력을 엄금한 달라이 라마의 정책은 굉장히 현명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무장독립운동을 하다가 와하비즘 뽕맞고 맛탱이가 가버린 체첸 독립운동가들의 경우를 보면, 폭력주의 노선을 채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아직도 티베트 불교가 국교나 다를 바 없는 티베트가 무장투쟁을 벌였다면 불교 버전 다에쉬가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무튼 더 이상 폭력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없게 된 티베트인들은 현재 소신공양이라는 걸 하는데, 쉽게 말해 분신자살이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뜻을 관철시키고자 한다. 물론 독립운동인 만큼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과연 이것이 불교의 근본주의와 연관이 되는가에 있어 논란이 있을 법하다. 하지만 그 대상이 한때 제정일치 종교국가였던 티베트임을 감안해 볼 때 이러한 독립운동 또한 일부나마 '극단적 근본주의'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쉬이 부정하기는 힘들다.
한편, 소신공양은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발해 소신공양한 문수스님이라든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며 소신공양한 정원스님 등이 있다.
소신공양 자체가 아닌 자신의 뜻에 더 신경써달라고 한 고인의 유언에 따라 관련 사진자료는 첨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교계의 모습에 대하여 변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소신공양이라는 것은 보통 '''정치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데, 이처럼 불교가 극단적 행각을 벌일 때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다른 외부적 요인과의 결합이 관찰된다. 사실 이건 생각해 보면 근본주의가 아니다. 차라리 '극단주의'라고 볼 순 있을지 몰라도, 순수하게 근본주의라 하기엔 '너무 오염된 사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그자들은 근본주의가 아니라 외부요인과 영합한 극단주의'라고 주장한다면, 같은 이치로 그리스도교나 이슬람의 근본주의 역시 '외부사상과 영합한 극단주의'라는 옹호가 가능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리스도교든 이슬람교든 외부에게 욕을 먹는 모습에 관하여 "그러한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교/이슬람의 모습이 아니다"라는 변명은 매우 흔하다.
'''자결은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불교 교리에서 옳지 못한 행동으로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항상 모든 극단을 지양하고 '중도(中道)'를 따를 것을 가르치는데, 불교 근본주의자가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라 여겨지는 자결을 택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목적과 내용에 따라 소신공양이 매우 거룩한 행위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앞서 말했듯 정치적이거나 기타 이념적인 측면에서의 얘기지 불교의 원리주의적 해석에서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이하 서술내용은 한국불교, 특히 조계종에 한하여 작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최대 불교종단인 조계종도 기본 이념은 불교 근본주의에 기초를 둔다. 실제로 불교정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한창 근본주의를 내세울 때의 조계종은 불교의 발전과 비불요소철폐라는 명목으로 나이에 상관없이 신도들은 무조건 승려에게 존칭을 쓰도록 규정하고, 한국 불교 특유의 발자취에 해당하는 삼성각, 산신각도 철거하며 불사라는 이름으로 자연에 손상이 큰 확대 재건축도 서슴치 않았고, 절에서 하는 천도재와 49재 등도 비불적 성격이 크다며 대폭 단순화하고 축소했다.[19] 서울 조계사는 명색이 조계종의 중심사찰이라는 점 때문인지 이때 간략화한 사찰의례를 계속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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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佛法)에 대처승(帶妻僧)없다."
당시 일본불교의 잔재라 여겨진 대처승(혼인한 승려)에 반발하여 '불교정화운동'을 벌이는 모습
근본주의가 절정에 이르던 시절에는 불자보감(불자독송집)에 토속신 전각에 참배하지 말라고 적거나,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을 불교의 입장을 강조하는 쪽[20]으로만 설명도 하였으나 다시 줄어든 지금은 불자보감에도 딱히 참배 말라는 말은 없고,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 부분도 보다 현실적인 내용[21]으로 바뀌었으며, 불교정화운동을 진행했던 조계종은 견원지간인 태고종승려를 초청해서 사라진 전통 재법을 다시 진행도 했다.[22] 한국 불교계의 어두운 흔적이다.
그러나 그 반작용으로 각종 사고와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지금은 신도들의 별 저항이 없는 대규모 절 개축불사 만 하는 정도다. 이것도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무단 개보수로 학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부른다.[23]
승려에 대한 존대 문제는 승려들의 자질 문제와 맞물려 여전히 문제다. 특히 2012년 조계종 승려들의 흡연/도박 행위가 언론을 타면서, 그 사이 한국불교계 내부에서 쉬쉬하던 승려들의 자질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는 승려들의 성보 도둑질 의혹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현재 성보 도둑질은 허위고 모 불교 언론사의 허위기사라는 게 밝혀졌지만 과거 성보 분실은 사실이며, 이외 대처승 문제나 비리 문제 등과 관련해 조계종과 진보 성향 불교 언론들의 충돌이 심해지는 중이다.
사실 불교개혁 문제는 이미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부터 한국 불교계 내부에서 나오던 문제였다. 당시 한국 불교계는 기존의 구습에서 벗어나는 한편, 일본 사회에서 대중화한 일본불교의 형태를 보고 한국불교 역시 일본불교처럼 대중화하여 불교의 위상을 높이자는 주장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대처승 문제가 나와 타락한 승려들의 논의로 치부하는 경향도 있으나, 이는 만해 한용운 같은 독립운동에 크게 기여한 스님이나 불교계 인사들도 불교의 대중화의 일부로 대처승 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었지 단순히 타락한 승려들의 주장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당시의 개혁주의자들이 한국 불교 내 토속신앙 관련 건물/문화의 철폐, 승려가 양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것 등 각종 개혁을 외친 까닭은 '''근본주의를 내세워 불교의 배를 불리자는 게 아니라, 개혁과 대중화를 거쳐 한국 불교를 건설적으로 발전시키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현재는 불교 교단과 구성원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많이 변질한 감이 있다.
또한, 근래 남방불교[24]가 국내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것이 근본주의와 결합하여, 일각에서 기존의 대승불교를 전면 부정하고 초기불교[25]로의 회귀를 강요하며, 또는 아함경이나 이른바 부처님의 말씀을 담았다는 <빠알리 니까야>[26] 등 "초기불교만이 진짜 불교의 가르침이니 이것만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근본주의 불교라는 것은 그저 서구 기독교 신학 방법론의 영향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참조 링크.
하지만 여기서 확실히 해두어야 할 것은, 교단 내부에서 비불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외부에 나가서까지 타 집단에 시비를 거는 것은 전혀 다른 행위로 구분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근본주의가 위협이 되는 것은 후자와 같이 그 사상이나 이념이 다른 외부사상을 폭력적으로 핍박하기 때문이지, 전자에서처럼 스스로 자정작용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행위 자체는 결코 욕먹을 짓이 아니다.
단지 불교가 지금껏 여러 비불적 민속신앙을 받아줬다고 해서 앞으로도 반드시 받아줘야 한다고 말한다면, (기복신앙을 지양하는) 불자들에게 있어 이는 '''호이가 계속되면 그게 둘리인줄 알아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밖에. 쓸데없는 반발만 일으킬 뿐이다. '''즉, 극단주의적 근본주의는 비난받아야 마땅할지언정, 비불요소 제거 등, 하나의 종교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 자체에 태클을 거는 건 불교 입장에서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다에쉬처럼 타종교인을 참수하는 것도 아니고, 산신각 방문객을 매달아 화형시키는 것도 아닌데 겨우 잘못된 기복신앙좀 없애보려 하는 것까지 '극단적 근본주의'라고 부르는 건 분명한 이중잣대다. 아마도 불교가 토속화된 역사가 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 테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중잣대가 맞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부분으로 한국 불교의 정체성 논란이 있다.
한국 불교는 널리 알려졌다시피 원효의 '화쟁'에서 기인한 '''통불교'''성격을 갖는다. 통불교라 함은 그 의미 자체가 서로 다른 관점과 쟁점을 모두 화해시켜 통합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정체성 논란이 있는 것 자체가 황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사실 대한불교조계종은 공식적으로는 간화선 수행을 하는 남종선을 정통 불교 수행법으로 보며, 중국 남종선 중 임제종파의 법맥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게다가 진각종이나 미륵종[27]같은 일부 종단을 제외하면 태고종을 비롯한 다른 한국 불교 종단들 또한 상당수 '''선종에 속한다.'''
한국 불교의 본질이 이럴진데 현대불교가 대중 포교를 중시하면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간화선보다 염불선이 일반화되질 않나, 승려들의 간화선 수행 축소되고[28], 불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선불교의 정체성 자체가 도전받는다든가[29], 남방불교 수행법이 경쟁적으로 유입되는 등 여러가지 작고 큰 문제들이 선종의 존립 자체에 큰 위기를 안겨 주고 있다.
남방불교 수행의 경우, 기존에 소승이라 폄하되면서 외면받기 일쑤였으나 실질적으로 초기불교의 모습이 더 살아있다는 장점이 있어 불교 근본주의 운동이 거세짐에 따라 다시 각광받게 되었다. 특히 간화선보다 일반인의 접근이 쉬운 위빠사나 수행이 들어오면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교당/대중선원에서 간화선보다 염불선과 위빠사나를 중시하는 등 갖은 논쟁[30]이 일어나고 있다.
현대에 들어 화자되는 극단적 근본주의 불교는 이러한 선불교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여과 없이 남방불교를 대체재로 삼는 양상을 보인다. 즉, 근본주의로 회귀하면서 한국불교에 깃들어 있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맛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조계종을 넘어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선방에서조차 이미 승려들의 40%가 전통적인 간화선을 하지 않고 다른 수행방법을 선택하는 등, 간화선이 아예 사라지게 생겼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31]
윗물이 이러니, 벌써 이로 인한 혼란이 일반 신도층까지 퍼져 아예 조계종에서 수행법에 대한 혼란과 논쟁을 정리한 책을 교단에서 펴내기까지 했는데도 불구, 쉽게 혼돈의 상태가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사실 생각해보면 쉽게 넘길 문제도 아니다. (대승비불설 문서 참고.)
이에 조계종에서도 2013년 간경과 염불 수행을 안거로 인정하면서 실상사에서 간경안거를 시작하고 봉선사에 염불원을 설립하였으며[32], 염불만인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기사 연도에 나오듯이 화두선 외의 수행 인정에 상당히 늦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마저도 조실이나 방장, 선원장 자격 기준이 되는 수선안거로는 인정되지 않아 여전히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33] 더군다나 염불과 간경을 안거로 인정한 후에도 후발조치가 매우 미흡한 상황이다.
여기에 조계종의 고승 송담선사가 탈종을 선언하면서, #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조계종 내부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2위인 태고종 역시 교단 지도부의 충돌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이 발전되는 현재에 와서는 불자들이나 불교 종교인들중에서 불교 관련으로 블로그나 SNS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중 왠만한 경우는 근본주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블로거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특히 경전을 절대적으로 여기면서 경전을 무시하거나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는 사람들을 '''닥치고 단멸론자'''라고 하거나[34], 경전은 믿을 수 있어도 스님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등 그냥 자기 맘에 안 들면 과격한 언동으로 비판하는 경전 근본주의자 같은 위험한 경우도 있으며, 이미 사라진 불교 문화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좋았던 옛날 편향주의자까지 늘어나는 등[35] 그야말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란 경우를 재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2.6. 힌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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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S(민족의용단)의 집회 모습.
힌두교 근본주의는 '힌두 민족주의'(또는 '힌두 트바')라고도 많이 불리는데, 이들은 인도에서 힌두교가 아닌 이슬람기독교에 굉장히 배타적이다. 현재는 그 세력이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과거에 반해 점점 더 부상한다. 이들은 인도의 국가 정체성이나 인권을 중시하는 서구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카스트를 포괄하는 힌두교의 결집을 추구하기 위해서 과거였다면 생각도 못할 하위 카스트와 상위 카스트들이 모여 함께 식사도 하고 하위 카스트 우대 정책도 그대로 지킬 정도.[36] 단 이들은 언제까지나 힌두교 이념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므로 하위 카스트를 차별하는 태도나 하급 카스트 및 달리트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우대 정책을 유지하는건 국민들의 눈치를 봐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도에서 세속주의 성향인 국민회의당과 함께 가장 큰 양대 정당인 인도인민당(BJP)[37]이 힌두교 근본주의 성향이 심한데, 이들은 이슬람과 기독교를 배척하고 위협하는 일종의 '''종교 민병대'''인 RSS를 하부조직으로 둔다. 이들은 1980년대부터 이슬람, 그리고 자유운동가들 및 타종교인들과 극심한 종교 갈등을 일으켜 왔다. '''농담이 아니고 이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정말 인도판 황금새벽당, 아니 그 이상이다.인도 힌두교 극우주의자들의 횡포'''
심지어 이들은 역사도 가위질하려고 든다. 대표적인 예가 '''이슬람을 믿은 무굴 제국은 인도 역사가 아니다!'''하는 식. 무굴제국뿐만 아니라 델리제국 등 '''이슬람 인도국가 및 비힌두교 나라들을 인도사가 아니라며 전부 부정한다.''' 마이클 우드가 쓴 인도이야기라는 책에 실제로 나오는 내용이다!

3. 관련 문서


[1] 이상의 내용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Altemeyer, 2003; Nelson & Milburn, 1999; Saucier & Cawman, 2004; Laythe, Finkel, & Kirkpatrick, 2001; Fisher, Derison, Polley, Cadman, & Johnston, 1994; Rothschild, Abdollahi, & Pyszczynski, 2009; Friedman & Rholes, 2007; Vess, Arndt, Cox, Routledge, & Goldenberg, 2009.[2] 출제 문제들은 1.예수가 태어난 곳은 어디인가. 2. 마더 데레사의 종교는? 3. 연방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공립학교 수업시간에 성경을 가르칠수 있는가? 등 10개의 문제로 성경 문제라기 보다는 종교와 관련된 문제들이다.[3] 다만, 기독교 근본주의는 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특성상 신학적 성과를 잘 올릴 수 없기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4] 무신론자들은 무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 비평을 위한 종교적인 사항들 관심을 많이 갖는 특성이 있다.[5] 방종한 무임승차자나 규범 위반자에 대한 처벌 의지는 보수주의자들의 심리에서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다. Skitka(1992a; 1992b) 등 참고.[6] e.g. Blogowska & Saroglou, 2011; 2012.[7] 해당 문서에 나와 있는 성폭력 같은 문제는 외부에게 피해주지 않으니 근본주의적 민폐와는 다르다는 현대 '''보편''' 인권의 개념을 아예 물말아 먹는 신박한 반론도 가끔은 있는 모양이다.[8] 물론 근본주의 종파도 존재하지만 국내에서는 정통주의, 신정통주의 교단에 비해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9] 약 수만명 규모로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주변 중동,해외 각지의 동성애자들이 모인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하게 동성애가 합법이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퀴어축제를 정부가 전액 지원까지 해주는 성소수자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다.[10] 사실 위에 나온대로 바리사이는 평신도 신학 운동이었기 때문에, 그럴 권력도 없었다.[11] 출처: E. P. Sanders, The Historical Character of Jesus, pp. 44-47, 213-219[12] 하지만 경전 외 전통을 일체 인정 안 하므로 오히려 다른 유대인들보다 편한 점도 있는데, 일례로 '''고기와 우유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13] 케투빔은 시가(詩歌)서, 네비임은 예언서이다. 즉 개신교에서 말하는 구약성경 39권 배치가 유대교에서는 좀 다르게 나타나며, 히브리어로는 각각 첫 글자를 따서 타나크(Tanakh)라고 부른다.[14] 물론, 십자군 전쟁 때의 그 지하드와는 좀 다름.[15] 반유대주의 시위에서 대놓고 유대인을 죽이자고 선동하고, 팔레스타인 정부는 유대인 살해시 연금지급까지 한다.[16] 2019년 3월의 경우 12일엔 가자에서 이스라엘 본토로 폭발물을 단 풍선들을 보내 민간인 무차별 테러, 서안지구서 차량 테러로 군,경2명부상. 20일엔 총기테러로 2명사망,2명중태. 27일엔 흉기,총기난사테러로 민,군2명사망.[17] 이 사람은 이디 아민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바벳 슈뢰더 감독이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18]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중국 공산당이 모종의 이유로 공중분해되면 티베트는 반드시 독립한다'고 예측하는 것이 중론이 되었다. 티베트 독립운동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진행되면서 중국 공산당에게 아무런 빌미도 제공해주지 않았던 탓에, 독립운동가들이 민심을 잃을 가능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놈의 이슬람 근본주의때문에 중국이 무너져도 독립할 수 있을지가 여전히 미지수로 여겨지는 위구르와는 다른 부분이다.[19] 이걸 세게 밀어붙인 승려 중 하나가 유명한 성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그 스님 맞다.[20] "보통 불교가 이만큼 통이 크다"는 식으로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조계종 청년회 홈페이지 등 몇몇은 이렇게 설명하는 일이 은근히 많다.[21] 대중화를 위한 민간신앙의 수용이나, 양자간의 평화로운 결합 등으로 설명한다. 물론 불교가 주체이기에 불교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 자체는 그대로다.[22] 구미래 저,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참조. 내용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신도들의 바람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는 공통점이다.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절에서 여는 각종 법회/재가 절의 재정에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지금도 노보살/노거사(불교에서 여성 평신도는 '보살', 남성 평신도는 '거사'라 한다.)들이 절에 칠성불공, 산신불공 등의 이름으로 바치는 각종 재화(돈이나 등)가 많다.[23] 엄연히 문화재로 지정한 사찰의 내부구조를 다르게 뜯어고쳐 놓는다던가, 비닐장판과 전기/온수 난방을 목조건물에 넣으면서 흰개미를 어느 만큼 줄이던 재래 구들장이 없어지고 습기가 차 흰개미가 늘어난다든가. 후자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전자는 변명 못할 문화재 파괴 행위다.[24] 상좌부 불교, .[25] 실제로는 기존의 남방불교와도 다른 극단주의.[26] 물론 이것이 진본인지 확증할 수 없어 논란이 많다. 대다수 학자들은 이 불경의 일부분은 아함경 등 타 불경과의 겹치는 내용 및 논지의 일관성 등으로 볼 때, 부파불교 이전 수행 공동체의 가르침이리라고 본다. 따라서 일부 부처의 진설을 포함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확증이 어렵다.[27] 본래 증산도 계열의 무을교(戊乙敎)였으나 1964년부터 대한불교미륵종으로 개칭했다.(참조사이트.)[28] http://www.bulkyo21.com/news/articleView.html?idxno=20230[29] 선불교 사상의 근본이 되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다. 유명한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경전에 실린 것이다.[30] 링크 모음:@@@###[31] 논쟁이 한창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한국을 방문한 미얀마의 고승 파욱 스님은, 상좌부불교의 자존심을 드러내며 간화선에 대해 이해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32] 기사는 2014년이지만 2013년 설립이 맞다.[33] 청화 스님 문중은 유일하게 염불을 주력 수행으로 정하고 있다.[34] 정작 현 달라이 라마텐진 갸초는 '불교의 가르침과 과학 이론이 충돌하면 그냥 과학을 믿으라'고 말한 바 있다. 종파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불교계의 네임드 승려가 하는 말인 만큼, 불교 내에서 근본주의가 자라나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35] 대표적으로 탁발문화를 없애버린것때문에 혜민 같은 풀소유자가 늘어나고, 앞으로도 같은 문제가 늘어날 수도 있으니 '''탁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 다만 부활시킨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다가, 애초에 탁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의견은 탁발을 악용하여 돈을 뜨는 가짜 승려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수 주장에 가까워서 현실성도 없어보인다.[36] 물론 더욱 막나가는 힌두교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모습조차 싫어한다.[37]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가 소속된 '''집권 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