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만찬
1. 개요
그리스도교의 성례.[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마태오 복음서 26:26)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과 그 기념의 의미로 제정한 성만찬을 중심으로 한 예배 형식으로, 그리스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예배 방식이다. 위의 최후의 만찬 당시 예수가 빵과 포도주를 들어 기도한 후 이것이 자신의 피와 살이라 말하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성체성사 혹은 성만찬 의식이 나오게 된다. 이 때문에 그 당시 초기의 교회 내부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많았으며 심지어 바울로가 어떻게 성만찬을 제정했는지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제정했는지를 말해주는 문장이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이래도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일만은 칭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1고린토 11,20-26. 공동번역 성서 1999년 개정판)
2. 신학적 입장
2.1. 가톨릭, 정교회의 성체성사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찬예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한 바 대로 행하는 기념(Annamnesis)임과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제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친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찢기신 몸과 피를 하느님께 바친다는 의미로 이 성찬예배에서 사용하는 빵과 포도주가 신비로이[2] 주님의 몸과 피가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3] 그래서 성찬예배는 매우 정형화된 패턴에 따라 대부분의 교파들이 거의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성체성사의 절정부에서 사용하는 경문은[4] 사실 번역만 조금 다를 뿐이지 사실 동일한 표현과 내용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5] 또한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눈다는 것은 교회와 신자 그리고 주님이 유기적으로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성찬례는 그야말로 그리스도교 예배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성체성사 항목 참조.
2.2. 동방 교회
정교회, 그리고 비칼케돈 교파인 오리엔트 정교회 등 '동방 교회'에서는 성찬예배(Θεία Λειτουργία, Divine Liturgy)라는 표현을 쓴다.
정교회는 바로 아래 항목에서 설명하겠지만 '리뚜르기아'('백성의 일'이라는 뜻)라고 하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서는 '수르프 바다락'('거룩한 희생'이라는 뜻), 시리아 정교회에서는 '카디쇼 꾸르바나'[6] ('거룩한 봉헌'이라는 뜻)이라고 부른다.
2.3. 개신교
가톨릭과 정교회가 7성사를 중시하는 반면, 개신교는 성경에 언급된 것만 성례가 될 수 있다는 논지에 따라 세례와 성만찬만을 인정하고 있다. 요한 복음서에 언급된 세족례도 행하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세족례는 성목요일 저녁을 제외하고는 공적인 예배에서 드려지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겠다는 상징적인 차원의 행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물론 서구권의 개신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성사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관습'''으로 행하는 것이다. 침례교 한정으로 '주의 만찬' 이라고 한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루터주의와 개혁주의의 입장 중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성만찬에 대한 입장인데, 루터파 신학에서는 공재설 혹은 실재설(consubstantiation)을,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츠빙글리의 기념설(상징설)에서 장 칼뱅의 영적임재설을 취한다. 다만 과거 16~17세기에는 분열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으나 현재에는 개신교 교파 내에서 그다지 심각한 신학적 차이점으로 여기진 않으며, 1973년 '로이엔부르그 합의서'에서 다음과 같이 루터와 칼뱅의 성찬론은 같은 의미를 표현만 다르게 한 것이라는 데 합의하였다.[7]
또한 개신교에서의 성찬의 의미는 어느 신학을 따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단 공통적으로 가톨릭에서 처럼 떡과 포도주가 진짜 예수님의 살점과 피가 된다는 교리는 따르지 않고 칼빈의 신학을 따를 경우엔 영적임재설을 따르고 있고 알미니안 신학을 따를 경우 그냥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는것을 기념하는것으로 끝낸다. 하지만 가톨릭이건 정교회건 개신교의 모든 교단들도 공통적으로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이 사람들의 죄를 위해 고통당하셨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는것은 똑같다.18. In the Lord's Supper the risen Jesus Christ imparts himself in his body and blood, given up for all, through his word of promise with bread and wine. He thus gives himself unreservedly to all who receive the bread and wine; faith receives the Lord's Supper for salvation, unfaith for judgement.
19. We cannot separate communion with Jesus Christ in his body and blood from the act of eating and drinking. To be concerned about the manner of Christ's presence in the Lord's Supper in abstraction from this act is to run the risk of obscuring the meaning of the Lord's Supper.
20. Where such a consensus exists between the churches, the condemnations pronounced by the Reformation confessions are inapplicable to the doctrinal position of these churches.[8]
2.3.1. 성공회
개신교 중에 성공회는 처음에 켄터버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가 1549년 《공동기도문》를 펴내며 루터파의 성찬 입장을 모호하게나마 지지했다가 1552년 견해를 수정하여 츠빙글리의 견해를 받아들였다. 이는 영국 국교회가 독일보다는 스위스 남독일의 개혁파 계열의 신학자들이 영국으로 초청하여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9] 최종적으로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전신) 《39개 신조》를 통해 공식적으로는 화체설(化體設, transubstantiation)을 부정하고 있으며, '''성사적 임재설''' 입장을 취하고 있다.[10] 그러나 성공회는 신자 개개인이 화체설 입장을 취하는 것을 특별히 제재하지는 않는다. 말만 성사적 임재설이고 성체의 실체적(물질적) 변화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가톨릭/정교회의 변화설의 본질적인 맥락(real presence)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고교회파 일부) 성공회인도 있다.
이러한 관용은 영국교회의 역사에 기인한다. 종교개혁 이전부터 14세기 롤라드파와 존 위클리프가 주도하여 화체설을 부인하여 헨리 5세 시기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며, 16세기 들어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10여년전부터 이러한 운동이 잉글랜드 교회에서 다시 살아났다. 헨리 8세 시절 가톨릭 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했음에도 가톨릭 교리에 기운 헨리 8세는 화체설을 부인한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신학자들을 화형으로 태워 죽였고, 메리 1세 시절에도 지속되었다.
메리 1세 시절과 대륙에서 가톨릭 세력들이 개신교 신자들을 색출하여 탄압할 때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이들을 잡아 넣었고, 이에 따라 화체설을 부인하는 복음주의자 (청교도)들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서 '''"화체설은 빵을 섬기는 우상숭배"'''라 하여 정권교체 후 다시 가톨릭 신자들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이용했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러한 갈등에 대한 반성으로 교회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개인의 신앙에 관해서 존중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가톨릭의 전례를 따라 면병과 포도주를 사용하며, 매 감사성찬례마다 거행한다.
2.4. 종교개혁 시기의 성만찬 논란
종교개혁 당시 종교개혁자 그룹은 크게 둘로 나뉜다. 독일 지역의 마르틴 루터 그룹과 스위스 지역의 개혁파 그룹이다. 성찬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견해는 '공재설(Consubstantiation)'로, 빵과 포도주 주변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임한다는 견해다. 이는 가톨릭의 화체설 이론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을 신학과 관련없는 이론으로 부인하며 빵과 포도주가 실재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빵과 포도주와 함께 머물러있다는 견해이다.
마르틴 루터의 성만찬에 대한 개념을 공재설이라고 하는데[11] 가톨릭의 화체설(변화설)과는 차이가 있다. 변화가 성체성사를 행할 때 빵과 포도주가 '형상은 그대로지만 속성이 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 된다'는 개념인 반면, 공재설은 형상과 질료 개념은 폐기하고 성서 해석으로 '빵과 포도주 자체의 예수 그리스도가 깃든다는(임재) 개념이다. 마르틴 루터와 가톨릭의 차이는, 가톨릭은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즉 파스카 신비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본 반면, 마르틴 루터는 '이미 희생은 드려졌으니 그것이 매번 재현된다는 건 무리다' 하여 희생제사라는 개념에 반대했다는 것이다.[12]
중세 가톨릭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함께 주던 것이 포도주를 주지 않고 빵만을 주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가톨릭 성체성사의 근본개념인 화체설[13] 에 입각한 결과였다. 화체설에 입각하면 빵과 포도주는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기 때문에 신자들이 포도주를 받아들 때 부들부들 떨다가 흘리는 일이 생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신자들에게는 빵만 주고 포도주는 주지 않았다. 포도주를 흘린 사제는 심하면 손가락을 잘라서 벌하기도 했다. 한 입에 다 들어갈 크기의 면병을 주기 때문에 빵가루 흘릴 일은 없다.
얀 후스[14] 와 후대 마르틴 루터는 성경에 나온만큼 '''둘 다 줘야 한다'''는 입장을 폈지만, 새로운 개혁을 급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여전히 신자들 중에는 가톨릭 교회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16년 동안 가톨릭 식대로 빵만을 주다가, 16년이 지나서야 빵과 포도주를 함께 주었다. 신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문맹에 일자무식인 탓에, 교회에서 말하는 형상이니 질료니 임재니 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기존의 성찬식 때 빵을 축성할 때 라틴어를 주술적 의미로 알거나 입에서 빵을 꺼내어 집안에 귀신 쫓는 용도로 썼기 때문에 과격한 변화는 혼란을 주기 때문이었다.
반면 개혁파 그룹은 입장이 좀 달랐다. 우선 개혁파 그룹의 1세대 격은 울리히 츠빙글리이다. 츠빙글리는 성찬을 단지 '기념'으로만 보았다. 예수님이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enim Corpus Meum''')"하셨을 때의 라틴어의 Be 동사인 '이다(est)'는 문자 그대로 사실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말일 뿐, 마르틴 루터처럼 그리스도의 몸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을 제정할 때의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인 '이것은 나의 살이다' 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살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의 의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회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츠빙글리는 루터의 해석법이 중세 가톨릭의 4중적해석법에 머물렀다며 크게 비판하고, 여기서 츠빙글리는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들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식을 할 때 결혼 반지를 나누는 것처럼, 반지 자체가 결혼은 아니지만 아내가 남편과 잠시 떨어졌을 때 반지를 보며 결혼의 의미와 남편을 기억한다.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그분과의 관계를 기억라는 상징일뿐이라는 해석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신자들의 문맹 문제는 글과 함께 교리를 가르쳐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15][16]
결국 두 종교개혁가, 루터는 성만찬을 행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몸으로 임재한다고 한 것과는 달리, 츠빙글리는 '''직접 몸이 임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 마르틴 루터와 갈등을 일으켰다.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가 회동해서 동맹을 모색했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두 사람의 성만찬에 대한 배경개념이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서학 박사출신 마르틴 루터가 볼 때, 츠빙글리의 이런 해석법은 정상이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는 츠빙글리가 성서해석을 제멋대로 한다며 분노했는데, 이미 이전의 츠빙글리의 행적때문에 그를 부정적으로 보게 된데다가[17] 이런 행적이 종교인이 말씀에 멀어져서 망가진 것으로 보았기에 츠빙글리의 해석론 자체를 아예 틀려먹은 걸로 보았다.
마르틴 루터는 사제가 되기 전 철학도였으며 인문주의의 크게 받기도 했으나, 명백히 틀리지 않은 이상 가톨릭의 기존 성서 해석법을 인정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13세기에야 교리로 정착한 가톨릭의 화체설은 근거가 없다 하여 부정했지만 성서학 박사로써 "이것은 내 몸이다"의 해석은 비유나 신비적 계시가 아니라 그대로 직접적인 사실로 받아야들여야 한다 주장했다. "만약 츠빙글리처럼 몸이 임재하지 않는다면, 전지전능한 그분은 새장에 갇힌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성서학적 입장에서 비판했다.
반면 츠빙글리는 역시 사제 출신이긴 하나 루터보다 인문주의에 더 기운 사람이었다.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이자 신학자였던 베설 한스포르트(Wessel Gansfort)와 코르널리스 훈(Cornelis Hoen)의 영향을 받아서 '내 몸이다'의 루터의 해석을 중세 가톨릭의 4가지 해석방법론에 머물러 있다며 크게 비판했고, 합리적 태도에서 성찬은 주님을 기념하는것일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1531년 루터의 해석법을 비판하는 서적에선 "기독교인이 식인종이냐"라며 비꼬았고, 츠빙글리 지지자들은 "빵도 십자가에 메달려야 되냐?" 라며 북독일의 루터파 진영과 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마르부르크 회의에서 츠빙글리와의 회담이 결렬되자 "츠빙글리와 포도주를 마시느니, 교황주의자와 피를 마시겠다."라며 역시 불편함을 넘어선 적대감까지 드러냈고, 츠빙글리 또한 "루터의 주장은 가톨릭 주장처럼 식인종이나 할 소리"라고 빈정댔다.
츠빙글리의 동료였던 남독일의 마르틴 부처와 루터의 동료이자 한 세대 연하 신학자인 필리프 멜란히톤은 둘사이에서 영적 임재설을 제시하며 두 진영의 타협을 권했으나, 당시에는 무산되었다.
개혁파 그룹의 2세대 격인 칼뱅은 츠빙글리와 함께 개혁파 그룹으로 묶이지만 성찬에 대한 입장은 전혀 달랐다. 성찬에 대한 칼뱅의 입장은 '성령 임재설' 혹은 '능력주의(virtualism)'이다. 칼뱅은 그리스도 인성의 편재설을 근거로 루터의 공재설을 비판하였으며, 성찬에 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라고 보았다. 칼빈에 따르면 성령의 역사는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 즉 부활 후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연합을 도모하며, 지상의 성도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결합한다고 보았다.
한편 종교개혁자는 아니지만 개신교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룹은 감리회이다. 존 웨슬리를 비롯한 초기 메도디스트(Methodist)들이 '메도디스트(규칙쟁이)'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는 이들이 규칙적으로 모여 성찬을 했기 때문이었다. 존 웨슬리는 성찬에 심취했다고 할 정도로 성찬을 대단히 사랑한 인물이었다. 성찬에 대한 존 웨슬리의 견해는 virtualism, 정확히는 칼빈의 견해와 다른 견해들을 종합적으로 중용을 가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성만찬의 빵과 포도주에 물체적, 육적으로 현존한다고 본 화체설과 공재설에는 분명한 반대를 표했다. 또한 상징에 불과하다는 츠빙글리의 견해를 반대하면서 실제적인 임재이되, 그리스도의 신성이 직접 임재한다고 보았다.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와 연합한다고 본 칼빈과는 분명 다른 전개인 셈이다. 이에 대해 노로 요시오(野呂芳男)는 칼빈는 성도가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연합하는 견해로,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지상에 있는 성도들에게 임해 연합하는 견해로 정리했다.
그러나 정작 존 웨슬리는 성찬에 대한 구체적 이론을 정리해 공표하기 보다는 인격적 현존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제시하면서 신비의 영역으로 두었다. Osburn 저 '존 웨슬리의 시적 저작'에 따르면 예전에 참여하는 이들을 은혜의 그릇으로, 그 역사의 방법을 신비로 묘사하며 알 필요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당시 존 웨슬리가 몸 담고 있던 성공회는 성찬을 자주 드리지 않았다. 웨슬리 사후 19세기 성공회에서는 옥스포드 운동(The Oxford Movement)이 벌어졌는데, 이는 성공회의 전례를 전통으로 바꾸는 운동이었다. 곧 성찬을 자주 시행하고, 전통적인 전례 양식대로 예배를 드리는 운동이었는데 많은 수의 교회사가들은 존 웨슬리가 옥스포드 운동의 선구자이자, 옥스포드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지적한다.[출처]
이렇게 성찬에 대한 존 웨슬리와 종교개혁자들의 공헌이 큼에도, 개신교가 성찬을 비하하는 것처럼 기록하는 것은 진실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해와 무지를 불러일으키는 데 한국의 개신교의 역할이 상당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의 개신교가 성찬을 자주 시행하지 않고, 그에 따라 성찬을 잘 모르는 이유는 한국에 처음 들어온 선교사들이 복음주의 성향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개신교의 교회 구조는 감리교나 성공회의 중앙 집권 체제가 아닌 개교회주의를 띠기 때문에 선교 초기에는 안수 받은 목회자의 수가 모자라 성찬을 자주 시행할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미국도 선교 초기 시절에는 설교 중심의 기도회 스타일의 예배를 대부분 드렸다.[18]
이제 미국 개신교도 성찬의 중요성을 알고 많이 변화해 가고 있지만, 한국의 개신교는 보수적인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아직 초기의 모습이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 한국 개신교 선교의 역사가 200년도 채 안 됐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한국도 선교 초기엔 안수 받은 목회자가 모자랐으며, 들어와 있는 목회자들의 성향 자체가 성찬보다 설교를 중요시 생각했기 때문에 성찬이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성찬에 대한 개신교의 신학은 결코 빈약하지 않다. 성찬에 대한 문제는 한국의 개신교 내에서도 이미 문제의식을 가지고 성찬을 회복하는 움직임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 특히 에큐메니컬 계열 교단인 감리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오순절교회 측에서 성찬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19] 다만 성만찬을 부활절 기간에만 하는 관례가 단지 보수적인 신학관 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합동이나 고신 측에서도 성만찬을 최소한 분기별로 자주 해야 한다는 주장을 가끔 볼 수 있다. 반대로 빵과 포도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루터회나 성공회라도 성만찬을 잘 하지 않는다.
추가로 성찬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에 대해 적자면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 약칭: W.C.C.)' 산하 기구인 '예배와 직제 위원회'가 정한 '리마 예식서'를 들 수 있다. WCC 예배와 직제 위원회에서는 1982년 개신교 각 교파를 아우를 수 있는 성찬예배 형식을 지정했다. 이것이 페루의 수도인 리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이를 '리마 문서'라고 부른다. 리마 문서에는 가톨릭, 그리고 정교회와 호환될 수 있도록 고대 교회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기도문과 전례적 요소가 수록되어 있다.
3. 성만찬 참석 기준
성만찬의 대상을 어떻게 잡느냐는 크게 2가지로 나뉘어진다.
- 공개 성만찬(Open Communion) -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만찬을 시행하는 방식. 이 방식도 교회나 교단에 따라서 제각각인데 방문객과 5세 이상 어린이도(!) 성찬을 받을 수 있는 수준에서부터 최소한의 조건(세례[20] , 교단 소속 여부)만 만족하면 되는 수준까지 다양한 편이다.
- 폐쇄 성만찬(Closed Communion) - 세례를 받고 입교의식까지 거친 정식 교인에게만 성만찬을 시행하는 방식으로, 개신교에서는 일부 보수적인 교단들이 이렇게 행한다.
예장통합과 같은 일부 교단에서는 유아성찬 문제가 논의되기도 한다.
4. 교파별 예식의 형태
4.1. 가톨릭, 정교회와 같은 보편교회의 성찬예배
통합적인 의미는 성체성사, 가톨릭의 경우에는 미사/성찬의 전례, 정교회일 경우에는 성찬예배 문서 참조.
4.2. 일반적인 개신교에서의 성찬
개신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찬 예배, 혹은 성찬 자체만을 가리켜 '성찬식' '성만찬' 등으로 부른다. 침례회에서는 '주의 만찬'이라고 한다. 개신교가 성만찬을 소홀히 여긴다는 지적이 있는데, '''한국의 개신교 한정으로는 맞는 말'''이며 나라별 혹은 개교회별로 다르다. '''[24] 외국 나가면 대형교회라도 월1회 하는 교회도 있다.'''[25] 장 칼뱅은 '''성만찬은 신앙에 매우 유익이 되니 자주 하는 게 좋다'''고 했다.(출처) 다만 개신교는 설교가 예배에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톨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성만찬이 경시되어 보일 뿐이다. 일단 한국의 개신교에서 두드러진 설교 본위 예배 양식은 원래 스코틀랜드나 네덜란드[26] 처럼 개혁주의가 메인인 나라들이 기원인데다, 미국에서 변경예배(Frontier Worship)라는 이름으로 더욱 간략화된 것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성공회와 루터회를 제외한 대다수의 개신교 교파라면 장로회, 감리회[27] , 침례회, 순복음교회 할 것 없이 예배는 순서가 거기서 거기다.
빵은 국내 개신교회의 경우 카스테라[28] 를 많이 사용하며 (루터회, 성공회를 제외한) 미국, 유럽 개신교에서는 식빵[29] 혹은 베이킹 소다로 구운 케이크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부 교회에서는 가톨릭에서 쓰는 것과 비슷한 제병을 구입해서 쓰는 경우도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수입된 사각형 무교병을 잘라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수입 무교병은 비싸서 일반 교회에서 쓰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무교병 대신 아이비 크래커를 쓰는 교회도 있다. 또한 성찬예식 중 목사가 성만찬 제정사를 읊으며 빵을 들어 쪼개보이는 예식이 있는 감리교회에서는 목사가 예식에 사용하는 빵으로 쪼개는 모양이 잘 드러나는 러스틱 브레드나 가톨릭에서 거양성체할 때 쓰는 것과 비슷한 크고 둥근 면병을 쓰기도 한다. 한편 개신교에서 쓰는 개역한글/개역개정 성경에서 빵을 '''떡'''이라고 번역한 것 때문에 일부 교회에서는 떡을 사용한다고 하며, 실제로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경우 쌀로 빚은 백설기 떡을 사용한다. 포도주는 성만찬용 포도즙을 만들거나 사다 쓰며, 포도주를 사거나 담궈 쓰는[30] 경우도 보인다. 일부 교회는 구하기 쉬운 일반 포도주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금주 교리를 가진 보수 교단의 교회들은 포도주 대신에 포도즙을 쓰는 경우가 많다.[31]
이는 성체성사를 중시하는 교단(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의 신자들이 보면 저래도 되나 싶을 일이겠지만, 애당초 희생제사를 재현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기념하는 예식이고 화체설(변화설)을 부정하기에 가톨릭처럼 엄격하게 규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재설을 따르는 루터회도 그렇고, 성만찬하고 나서 남은 빵과 포도주는 그저 빵, 포도주일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 감실을 두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남은 떡과 포도주는 공식적으로(총회법) 대부분의 총회에서는 태우거나, 묻거나, 장로(목사포함)들끼리 경건하게 처리하라고는 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냥 버리거나 다음 성찬식을 위해 재활용하거나 간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만큼 떡과 포도주가 중요하지 않다. 여기에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면 우상숭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32]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회와 성공회의 경우에는 가톨릭처럼 철저한 전례에 맞춰서 성만찬(성체성사)를 하므로 가톨릭의 방식대로 면병을 사용한다. 그래도 루터회는 일부 상황에 한해서 다른 개신교처럼 카스테라나 일반 빵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경우 개교회 중심이라는 교단 특성상 각 교회 여건에 따라 무교병과 포도주를 구입하거나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성만찬을 하는 방식도 각 국가나 교파에 따라 그 양상이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장로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신교의 경우 '''대부분 서서 한다는 것이 큰 특징으로''' 이는 종교개혁 시절부터 가톨릭의 계급제도[33] 와 평신도의 장궤행위를 부정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서서 빵과 포도주를 나눈다'''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루터회의 경우 종교개혁 당시부터 타 개신교와 여러가지 견해가 달랐던 관계로 가톨릭의 장궤 영성체마냥 무릎을 꿇고 성만찬을 받는 교회들이 많았으나[34] 현대에는 일부 정통주의적인 교회를 제외하면 루터회에서도 서서 성만찬을 받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한편 성공회의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의 경우 성체성사의 형식은 가톨릭과 거의 동일하고, 영성체 예절도 가톨릭과 비슷하게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다.
분잔[35] 의 경우 현대에는 위생문제 등으로 인해 신자별로 각각 작은 잔에 나눠서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떡을 포도주에 찍어먹는 경우도 있다. 일부 유럽 국가의 교회에서는 '''커다란 금속제 잔을 돌려서 준다''' 물론 한 사람이 마시고 나면 '''목사가 천으로 쓱 닦아주고''' 다음 사람한테 넘기는 방식이다. 미국이나 해외에서는 한층 더 편리하게 아얘 잔과 떡이 합쳐진 일회용 성찬포도주도 있다. 비닐을 뜯으면 떡이 나오고 또 뜯으면 포도주를 마실수 있다.
전반적인 형식은 개교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일부 예전을 중시하는 교회(특히 루터회나 기장, 감리회)는 가톨릭의 성체성사의 전례와 비슷한 예식서를 만들어 따르기도 한다. 내용이 천주교/성공회처럼 정해진 것은 아니나, 대략 다음과 같다.
성찬식 예배 순서는 다음과 같다. 약간씩 다를 수 있다.집례자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회중 : 목사님과도 함께 하시길 빕니다.
집례자 : 우리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회중 : 이것은 바르고 마땅한 일입니다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성만찬은 부활절 같이 중요한 절기에 하는 것'이란 인식이 있다. 이는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때에는 성찬식을 자주 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장로교회가 이렇게 성만찬을 적게 하는 근거는 개혁교회의 시초인 츠빙글리가 성만찬은 '''너무 중요하기에''' 자주 해선 안된다며 분기에 한 번만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서 찾는다. 한편 장 칼뱅은 될 수 있으면 자주 하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제네바 시 의회의 반발 등 현실적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성경봉독 - 고린도전서 11장 17절~34절 中
설교 - 간단하게 설교한다.
찬송 - 144장(고난), 229장(성찬) 등을 부른다. 이때 집례자와 분병.분잔위원[36]
은 성찬보를 연다.분병기도 - 집례자가 떡을 들고 기도한다.
분병 - 집례자-분병위원-회중 순으로 나눈다.
분잔기도 - 집례자가 잔을 들고 기도한다.
분잔 - 분병과 같은 순서로 나눈다.
기도
정리
축도 - 예배중에 하는 경우는 예배의 축도를 한다. 성찬식만 진행하는 예배에도 축도한다.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초창기 한국에서 포도주를 구하기도 어렵고, 현대에는 대형교회에선 준비와 한 시간을 초과하는 예배시간에서 성만찬시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기에 현실적으로 자주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 같은 주교제 교단의 교회들은 주일 미사에 참례하는 인원이 보통 100명 내외이며, 많아야 200-300명 정도이기 때문에[37] 매주 성체성사를 하는 데에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교회들은 조금만 커져도 500-1000명을 훌쩍 넘어가니 성만찬을 준비하고 집례하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 개신교회들이 성만찬을 자주 안하는 데에는 이런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러나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리스도의 명령인 성찬식을 소홀히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문제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최근에 성만찬을 중시해야 한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고, 개 교회에 따라 다르지만 성만찬의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일단 아주 적게 하는 경우 1년에 한 번 정도 하는 경우도 있고 그 경우는 부활절이 가장 많다. 그 다음 주로 1달에 1번, 매달 첫째 주일에 하는 경우도 많다. 대체적으로부활절 전후, 맥추절, 추수감사절, 송구영신예배 등의 절기예배 시점에 행하기도 하고, 절기와 상관없이 3달에 한번 무작위로 정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교단에 따라서는 매주 성만찬을 실시하는 교단도 있다.[38]
이는 개신교 예배가 지나치게 말씀 위주로 흘러가거나, 이게 지루하다고 매번 부흥회 같은 기도회 형식의 찬양예배를 열거나 콘서트 같은 형식을 방불케하는 소위 열린 예배의 폐해에 대한 반동으로도 나타나는 경향이 일부 있다. 가톨릭의 경우 미사에서 강론과 함께 성체성사가 이루어지면서 나름대로 전례가 시각적 효과도 있고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설교만 이루어지거나 너무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열린 예배가 되려 너무 번잡하거나 시끄러워 성스러운 느낌이 안 든다는 반발과 지적이 많아서, 성만찬을 통해 이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 다만 가톨릭/정교회/성공회처럼 매주 성만찬을 드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 대다수 개신교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규모가 큰 대형교회에서 성찬을 준비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빵과 포도주를 구하는 것도 일이지만 개인용 잔에 담고 빵을 자르고 설거지하는 것도 정말 많은 인원이 매주 필요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성만찬을 할 때 예식용 장갑[39] 을 끼는 관습이 있는데, 정작 다른 나라의 교회에는 없는 관습이라고 한다. 국내에서 사용하는 성찬기는 대부분이 금, 스텐 등 금속제품으로 땀이 있는 맨손으로 만지면 얼룩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새는 도자기 제품도 간간이 보인다.
한편 영미권이나 네덜란드(특히 바이블벨트로 분류되는 지역에 있는 보수적인 교회들)에서는 1분기당 1~2회 하는 관습이 대체로 보편적인데 네덜란드 교회의 성만찬은 특이하게도 '식사'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인지 뷔페처럼 길쭉한 테이블에다 의자까지 해놓고 앉아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방식이다.(바로 이런 식)
4.2.1. 감리교의 성찬식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예배서에 실린 성만찬 예문(禮文)은 다음과 같다. 단, 예문을 예배서에 실린 그대로 지키지 않는 교회도 많으며, 대개 이 예문을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적절하게 편집하여 성찬식을 거행하곤 한다. 예배서를 보면 성찬식이 없는 예배와 있는 예배가 둘 다 실려 있으며, 성찬식은 예배 순서상 봉헌(봉헌찬송, 봉헌기도) 이후 진행된다.
1. 성찬으로의 초대
> 회중: 또한 목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집례: 마음을 드높여
> 회중: 하나님께 올립니다.
> 집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감사를 드립시다.
> 회중: 바르고 마땅한 일입니다.
> 회중: 저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어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 집례: 때로는 저희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고 말씀의 법도를 벗어나 살 때에도
> 회중: 주님은 한결같이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구원의 바른 길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 집례: 더욱이 저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몸소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찾아오셔서 저희의 죄와 허물을 그 한 몸에 지시고 고난까지 당하셨습니다.
>회중: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로 구원을 맛보며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충만히 체험하고 약속하신 영생을 누릴 소망 속에서 영광의 주님만을 한결같이 기다립니다.
>집례: 그러하기에 이 땅 위의 온 백성과 하늘의 거룩한 성도, 또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양합니다.
>집례: 거룩하신 하나님, 복되신 성자 예수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저희는 새롭게 태어났고 잃었던 길을 되찾아 생명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회중: 해마다 이 부활의 절기만 되면 그 수난과 승리의 역사를 감격 속에 상기합니다.
> (집례자는 떡을 두 손으로 든다.)
> 감사기도를 하신 다음, 떼어
> (집례자는 이 때 떡을 두 손으로 뗀다.)
>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해 내어 주는 나의 몸이니,
> 먹을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라.”
> (떡을 내려놓는다.)
>식후에, 주님께서는 잔을 드시고
> (집례자는 잔을 두 손으로 든다.)
> 감사기도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돌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을 마시라. 이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새 언약의 피니
> 이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념하여라.”
>(잔을 내려 놓는다.)
> 회중: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리라.
> 거룩하신 하나님, 일찍이 주님께서 세상에 보내셨던 성령을
>지금 다시 보내 주시사 진설된 떡과 포도주 위에 임하셔서
>이 식탁을 성별하여 주옵소서.
>또한 성령께서 여기 모인 저희 위에 함께 하사
>이 떡과 포도주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시며,
>이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을 입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받게 하옵소서.
>회중: 오! 주님, 어서 오셔서 이를 이루옵소서.
> 회중: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소서. 서로서로 하나가 되게 하소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게 하소서.
> 집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위로의 거룩하신 성령과 더불어 모든 영광과 존귀가 영원토록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있사옵니다.
> 회중: 아멘.
8. 주님의 기도
> 다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회중: 또한 목사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집례: 이제 화해와 평화의 징표로 서로 인사를 나눕시다.
> 회중: (모두 전후좌우 성도에게 인사를 나눈다)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회중: 아멘.
> 집례: (잔을 두 손으로 든 후) 이 잔을 함께 나눌 때에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게 됩니다. (집례자는 잔을 내려놓는다)
> 회중: 아멘.
> 집례: (떡을 주면서) 이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혹은 “하늘의 떡,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한다.)
> (잔을 주면서) 이는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혹은 “구원의 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라고 말한다.
> 회중: (받는 이는 목례를 하면서) 아멘.
> (왼손은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십자형을 만들어 떡을 받은 후, 오른손으로 떡을 집어 포도주에 담갔다가 먹거나, 또는 떡과 함께 포도주잔을 받아 먹고 마신다.)
4.3. 루터교회의 성찬예배
루터교회는 종교개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마르틴 루터가 처음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의 의도나 원래 루터가 가지고 있던 가톨릭적인 배경 때문에 매주 성만찬을 하고 정형화된 전례문에 따른 예배형식을 유지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북유럽 지역의 루터교회처럼 국가중심의 교회로 개편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에서 루터회로 바꾼 교회의 경우에는 예배 모습만 봐서는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다. 한국의 루터교회의 경우, 개신교는 개신교인지, 사용하는 용어나 예배 의식의 여러가지 면이 한국의 전형적인 개신교 예배 모습을 많이 닮아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루터교회의 배경을 생각했을 때 이들의 성찬예배는 한국 개신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장로회 교인들이 참여한다면 상당히 어색할 정도로 형식화된 예배이긴 하다.
다만 루터교회의 예배가 무조건 성찬을 동반하는 건 아니며 그냥 기도문과 성경 봉독, 설교만 하고 마치는 경우도 많다.[46] 엄연히 개신교이고 개교회주의 성향도 생각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4.4. 성공회의 감사성찬례
성공회에서는 감사성찬례라고 불리는데, 오늘날 성공회의 예식 형태는 가톨릭 전례를 본따고 있다. 제아무리 성공회 안에 전례 중심의 고교회파와 복음주의적 경향의 저교회파가 존재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성공회의 모토는 '보편교회'이며 다만 전례와 성직 중심의 고교회파에서 개신교적인 저교회까지 모두를 포용한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때문에 성공회 전례는 기본적으로 루터회보다 훨씬 가톨릭에 가까우며 더욱이 성공회 한국관구의 경우에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파 선교사들에게 전래를 받아 어떨땐 한국 가톨릭 이상으로 장엄하게 전례를 드리기도 한다.
루터회와는 달리 예배에서 성찬 없이 설교만 하는 경우는 없다. 주일 뿐 아니라 주중의 모든 예배에도 성찬이 동반된다.
자세한 내용은 감사성찬례 문서와 성체성사 항목을 참고.
4.5.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의 성찬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는 성만찬을 성찬이라고 칭한다. 기독교 회복주의 교파 중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는 매주 예배 시마다 성찬을 실시한다. 성찬 형태는 대게 다른 개신교와 유사하다. 하지만 빵은 식빵을 찢어 조각을 내서 사용하고 포도주가 아닌 그냥 물을 준다.[47]
4.6.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성만찬
재림교회에서는 매 분기마다 성찬식을 실시하며, 방식은 개신교와 비슷하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요한 복음서에 나온 것처럼 세족식을 실시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