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린교회

 

<color=#ffffff> '''한국기독교장로회
향린교회
香隣敎會 | Hyangrin Church (PROK)'''
<colbgcolor=#b4d457><colcolor=#ffffff> '''설립일'''
1953년 5월 17일
'''소속국가'''
[image] '''대한민국'''
'''소속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노회'''
'''서울노회'''
'''담임목사'''
김희헌 (2017 ~ '''現''')
'''표어'''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3길 27-5 (을지로2가)

'''링크'''
/ /
1. 개요
2. 민주화운동의 성지
3. 논란
3.1. 이적 단체와의 커넥션 논란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위치한 개신교 교회.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3길 27-5 (을지로2가)이다. 교단은 한국기독교장로회. 특이하게도 1953년 12명의 평신도들에 의해 창립되었다. 창립할 때 교파 분열과 교권 싸움이 없는 초기 기독교 정신에 충실한 교회를 지향했다. 향린이라는 이름은 '향기로운 이웃'이라는 뜻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1]
1953년 지금의 교회가 위치한 곳에서 안병무를 비롯한 12명의 소장파 개신교인들이 한국 개신교의 개혁과 한국 사회의 위기 극복을 과제로 삼고 창립하였다. 처음에는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고 목회자도 두지 않는 평신도 중심의 초교파 독립교회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교인이 점차 증가하고 창립자 중 몇 사람이 외국 유학을 떠나자 교회의 성격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결국 1959년 기성 교단의 하나인 한국기독교장로회[2]에 가입하였고, 1974년에 김호식 목사를 1대 목회자로 청빙하면서 일반 교회 체제로 전환하였다.
명동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함께 6월 민주항쟁의 성지이기도 하다. 태생도 태생이고 기독교장로회 소속인지라 예장 합동 등으로 대표되는 일반적인 인식의 보수적인 개신교와는 달리, 억압받고 소외당한 자들의 편에 서신 예수님의 정신에 입각해 성소수자 인권, 노동자 인권, 전통 문화 계승, 민주화, 남북관계, 신자유주의 저지 운동 등 진보, 좌파 성향의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교회 전면에 국가보안법 폐지, 자유무역협정 반대를 주장하는 구호가 걸려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심지어 이러한 집회에 참가하면, 향린교회 깃발을 들고 참가한 청년들을 매우 높은 확률로 볼 수 있다.
투명한 재정과 공정한 운영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분립 개척(교인 수가 너무 많아져서 일부가 떨어져나간 것이다.)한 교회로 강남향린교회[3], 들꽃향린교회[4][5], 섬돌향린교회[6]가 있다. 이 세 교회는 '''교회법상으로는 별개의 교회'''지만, 향린공동체란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같이 예배를 드리며, 집회에는 거의 100% 함께 참여한다. 한국의 개신교의 보수적인 면이나, 불투명한 재정과 운영에 불만을 가진 개신교인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특히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는 성소수자들이 성도로서 죄의식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교회이기도 하다. 사실 단순히 '기독교인이지만 성소수자를 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반동성애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싸움꾼들이다. 단적으로 섬돌향린교회는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 참여하는 연대체의 일원이며, 퀴어문화축제에서도 다른 향린교회나 로뎀나무그늘교회[7], 대한성공회[일부] 등의 개신교 계열 퀴어문화축제 참가 단체들과 함께 인간 띠를 둘러 혐오세력의 도발에 맞서거나 무지개 깃발을 걸고 찬송가를 부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당연히 보수성향의 개신교 교단과 교회들에게는 박멸의 대상이다. 정기적으로 누군가 오물을 투척하고 게시판에 공격성 악플을 남긴다.
또한 이 교회는 다른 쪽으로도 진보적이다. 전통문화 계승의 일환으로 찬송가 및 예배를 전통 국악으로 바꿔서 행하는가 하면[8], 다른 보수 개신교와는 달리 '음주가무'에 관대해서 교인들과 목사가 술자리를 가지는 일도 있다. 대체로 집회 끝나고 밥 먹으러 가서 막걸리 한 잔. 교회에서 '인문학 마시기 - 스피릿으로 끓어 올린 인문학'이라 하여 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술 시음회를 연 적도 있다.
교회가 위치한 지역이 재개발 구역에 지정되어서 종로구 내수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2021년에 이전할 예정이다.#

2. 민주화운동의 성지


[image]
1987년 5월 27일, 경찰의 감시를 따돌린 재야인사 150여명이 3층 예배실에 모여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의 발기인 대회를 열었다. 이후 ‘국본’으로 알려진 이 조직이 6월 항쟁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어떻게든 이걸 막고 재야인사들을 검거하기 위해서 명동성당에 엄청난 병력의 전의경을 집결시켰는데, 대담하게도 바로 명동성당 코앞에 있는 향린교회에서 대회를 했다고 한다.[9] 교회 정문에 20주년을 기념하여 단촐한 기념비도 만들었다고 한다.
60여 년의 한국 현대사 격동의 현장 속에 있었던 교회이고 민중신학의 상징적인 교회이고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 노동운동 등 여러 재야운동과 민중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독재정권의 온갖 핍박과 수난, 감시를 당해온 교회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반기독교 정서가 급증하여 향린교회의 민주화 운동, 민중운동 또한 무자비하게 격하되고 평가절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하지만 관점에 달리하면, 순수한 민주화 운동을 지향한다고 보기 어려우며 대한민국의 법치 질서와 공권력을 부정하는 행태가 동반되어 논란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바로 밑의 항목을 참조하자.

3. 논란



3.1. 이적 단체와의 커넥션 논란


1987년부터 2003년까지 향린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던 홍근수 목사는 대법원에서 이적 단체로 판결받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본부 준비위 집행위원을 역임하기도 하고 KBS 심야토론 중 공산주의는 인도주의라고 발언하기도 하였다. 기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준비위원회가 1991년 향린교회에서 결성되었다. 기사 범민련 초대 의장이었던 강희남 목사가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란 유서로 자결을 하여 논란을 가져왔는데 향린교회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기사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 김기종이 이 교회에서 열리는 평화 소모임에 자주 참석한 것도 논란이 되었다. 기사
향린교회의 전 담임목사였던 조헌정 목사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행사에서 “하루속히 남북의 대결 상황을 끝내고 미국의 조종으로부터 벗어나서 평화적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라는 발언을 하였는데 현재의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 반(半) 봉건사회로 보고 있는 NLPDR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기사

3.2. 천안함 음모론 논란


천안함 피격사건 발생 이후인 2010년 5월 25일에 향린교회에서 천안함침몰사건 관련사회단체 비상시국회의 및 기자회견을 개최해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와 당시 여당을 비판하였다. 기사
천안함은 조선인민군 해군의 어뢰에 피격당한 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향린교회의 전 목사인 조헌정 목사는 8년 전 북한 어뢰 공격이라는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에 대한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재조사를 요구하는 등 천안함 음모론에 불을 지피고있다. 기사

4. 관련 문서



[1] 가까운 거리만큼 떼어놓을 수 없는 이웃이다.과거 민주화 시절 명동성당에서 이루어질 국본 출범식이 정부의 방해로 무산될뻔 했으나 바로앞 향린교회로 장소를 옮겨 그대로 진행했다. 향린교회의 담임목사는 CPBC평화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2] 한국기독교장로회(속칭 기장)는 대단히 진보적인 교단이다. 이 교단의 대표적인 목회자가 바로 문익환 목사이다.[3] 서울특별시 송파구 거마로10길 23(서울특별시 송파구 거여동 198-5) 소재[4]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대로 991(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456-9) 소재[5]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김경호 목사는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 촛불집회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6]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10길 26(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635-9) 소재. '인권재단 사람'과 같은 건물이다.[7]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같은 건물을 쓰는 한국 유일의 성소수자 교회로, 이분들도 만만찮은 강성이다.[일부] 청년들과 젊은 사제들이 대체로 진보적인 성향을 띤다.[8] 국악 찬송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곡이 '어허라디야 상사디야'라는 노래다. 이 노래는 비단 향린교회뿐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자주 부르며, 우리 전통 노동요와 같은 메기고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노래를 만든 이건용 교수는 사실 성공회 신자다. 그래서 이 노래는 성공회 성가에 수록되어 있다.[9] 향린교회는 명동성당에서 나와서 100여 m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