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대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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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천기개세(東明天氣蓋世)

"고구려 백성들은 들으시오! 이 땅을 다스리는 자가 그 누구더라도 그들을 섬기며 어떻게든 살아남으시오!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라면 자존심 따위는 다 내다버리고 무슨 요구라도 다 들어주시오! 마지막까지 그대들의 목숨만은 끝내 지켜내야 하오! 목숨은 목숨을 낳을 것이오. 하나가 되든 둘이 되든 자식들을 낳아 이 땅에서 키우시오! 고구려는 없어져도 고구려 백성들은 남아 있어야 하오! 백성들이 있는 땅이야말로 고향이고 고국이 아니겠소?! 고향을 잘 지켜주시오. 난 이렇게 떠나가지만 반드시 대의를 품은 자가 그대들 앞에 나타날 것이오. 그 때 그 사람을 도와서 다시 한 번 힘을 합쳐 주시오. 그 때는 그대들이 낳은 자식들이 뜨거운 피를 펼쳐줄 것이오! 대 고구려는 그렇게 영원히 불멸할 것이오!!!"

KBS에서 방영했던 대조영에서는 길용우가 연기하였다.[1] 작중 자식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 때문인지 조카인 숙영을 친자식처럼 여겼고, 숙영 역시 보장왕을 친아버지처럼 여겼다.
연개소문의 손에 의해 등극한, 정통성 없는 임금이기에, 실권은 없는 허수아비로 묘사된다. 그러나 연개소문에게 휘둘렸다는 세간의 이미지 및 작중 유약한 임금이라는 평가[2]와 달리 상당히 중후한 성격의 인물로 묘사되며, 나름 현명하고 결단력도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오히려 고구려 멸망 후에 비중이 높아진다. 보장왕을 견제하던 기존의 고구려 권력층은 이미 죽거나 와해되었으나, 보장왕에겐 고구려의 마지막 임금이라는 타이틀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평양성이 함락되고 고구려가 멸망할 때 대조영이 탈출을 권했지만 고구려와 함께 죽고 싶다면서 거절했고 당나라로 압송된다. 그리고 귀양지에서 한동안 낚시나 하면서 살고 있었다. 귀양살이 할 때부터 야망 없는 무기력한 인물인 척 하였으나, 그 때 우연히 보장왕의 귀양지에 있던 미모사는 보장왕이 큰 뜻을 숨기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후 안동 도독부의 조선 왕으로 임명되고 나서는 매일 취성루를 드나들며 주색잡기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물론 취성루는 사실 보장왕이 책사 미모사에게 뒷돈을 대서 만든, 동명천제단(東明天帝團)의 본거지였으며, 보장왕은 주색잡기에 빠진척 하며 동명 천제단 일원들과 몰래 만나며 고구려부흥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보장왕은 고구려 부흥 운동의 주도자로 대조영을 선택하는데, 당시 대조영은 한성에서 이해고의 습격을 받아 사지가 마비된 상태였고, 대조영을 비롯하여 모두들 절망한 상태였다. 이때 보장왕은 ''''대고구려(大高句麗)''''라는 혈서를 써서 대조영에게 보냈고, 혈서+과거의 환영[3]을 보고 각성한 대조영은 수 많은 재활 훈련 끝에 부활에 성공한다.
대조영이 요동성에 돌아오자 보장왕은 동명 천제단을 창설하였고, 대조영을 중심으로 동명 천제단은 안동도호부로 부임하는 당나라 관리들을 암살한다. 여기서 보장왕은 동명 천제단의 세작 역할을 하는데, 안동도호부를 속이기 위해 동명 천제단에게 쫒기는 척 하여 마치 동명 천제단의 다음 목표가 보장왕인 것처럼 위장한다. 제대로 낚인 안동도호부는 보장왕을 미끼로 함정을 팠지만 동명 천제단은 그 사이 안동도호부를 빈집털이한다.
그러나 이문이 잠입시킨 부하들로 인해 동명 천제단의 정체가 발각되었고, 결국 대조영과 흑수돌, 걸사비우를 제외한 나머지 일원들이 모조리 붙잡히고 만다. 물론 이 때 아무도 자백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장왕이 동명 천제단의 주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진 않았다(당나라 측에선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어서 아직 보장왕을 건드리지 않았다). 설인귀 측에선 대조영을 낚을 겸 이문의 전공을 없애버리기 위해 포로들을 모조리 처형하는데, 대중상이 처형당할 때 보장왕은 자기가 포로들을 처형하겠다고 나서서는, 자기가 동명 천제단의 일원이었음을 당당히 밝힌다. 설인귀 측이 당황하는 사이, 보장왕은 백성들과 고구려 출신 병사들에게 고구려 부흥 운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연설을 하며 포로들의 포박을 풀어준다. 이에 백성들과 병사들은 처형장에 달려들어 포로들을 구출했고, 이를 틈타 미모사 일행이 탈출에 성공한다. 이문이 보장왕을 인질로 삼으면서 결국 대조영이 포로로 잡히게 되었지만, 이때 보장왕이 처형장에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이때 대중상을 비롯한 동명 천제단 인원들이 모조리 처형당했을게 뻔한 상황이었다.
이 직전까지 보장왕은 주색잡기에 빠져있는 역적 노릇을 하고 있었기에, 보장왕은 백성들에게 돌을 맞을 정도로 이미지가 나빴다. 그러나 보장왕이 동명 천제단의 주도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백성들의, 보장왕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달라졌고, 요동성 백성들은 보장왕을 석방하라며 안동 도호부 청사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인다. 이미 처형장 사건 때 백성들이 다수 희생된 관계로, 보장왕 및 대조영 측은 요동성 백성들이 더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그 들이 해산하길 원했으나 백성들은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이에 안동 도호부 측은 백성들을 유혈 진압하고자 한다.
이에 보장왕은 설인귀에게 자신이 백성들을 해산시키겠다며 제안했으나, 이미 보장왕의 영향력을 경험한 설인귀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보장왕의 제안을 거절한다. 제안을 거절하긴 했지만 이때 설인귀는 보장왕을 당 태종과 필적할만한 영웅으로 높이 평가하며 보장왕에게 경의를 표한다. 작중 설인귀는 죽을 때까지 당태종 이세민을 유일무이한 진정한 영웅이자 주군으로 여기는데, 인생의 주군과 동급으로 평가할 정도로, 설인귀는 보장왕의 인품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연남생이 목숨을 건 호소를 하여 백성들을 자진 해산시킨 후, 보장왕이 당나라로 끌려갈 때 또다시 백성들이 몰려오는데, 이때 보장왕이 그들 스스로의 목숨을 아끼라는 연설을 하여 백성들을 해산시킨다. 여기에 힘을 다써버렸는지 귀양길에 중병에 걸리고 만다.
결국 시골[4] 로 귀양을 가는데,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대조영 일행이 죽기 직전의 보장왕을 찾아갔고, 보장왕은 고구려 땅에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자는 자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하며, 대조영에게 '''새로운 국가를 세우라는, 최후의 명령을 내리고 친딸이나 다름없는 숙영을 부탁한다.''' 이에 대조영은 보장왕의 조카 숙영과 결혼한다. 걸사비우와 흑수돌의 부축을 받은 채 결혼식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모습을 끝으로 작에서 퇴장한다.


[1] 길용우는 1990년대 초 역시 KBS의 삼국시대 사극 <삼국기>에서 백제 의자왕으로 출연했다. 한편으로는 태조 왕건에서 복지겸 역을 맡기도 했는데, 태조 왕건에서는 고려 건국 이전에도 복지겸이 왕건보다 관직상 우위에 있는 기간이 대부분이었음에도 명령을 내리기는커녕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2] 양만춘연개소문과 대화할 때, 보장왕을 유약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3] 어머니, 초린, 연개소문의 죽음, 양만춘의 죽음, 불타는 평양성, 신라군의 배신, 이해고의 습격[4] 당나라 기록에 의하면 파촉 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되어 있다. 작중에서 어딘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멀고도 험한 길이라며 보름이 걸린다는 대조영의 언급이 있었다. 작가들이 삼국지를 통째로 베껴 스토리를 썼으니 제작진이 생각한 유배지도 파촉이 맞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