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하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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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
1. 개요
랴오둥 반도와 산둥 반도로 둘러싸인 바다로 면적은 78,000 km²이다. 보하이만, 라이저우만, 랴오둥만의 세 개 만과 보하이 해협 등이 있다. 만들의 이름은 각각 인근의 지명 발해, 옌타이시 라이저우(내주), 요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2. 명칭
보하이 해는 발해만으로도 불리며, 발해(勃海)를 중국식으로 읽은 것이 보하이이다.[1] 중국은 지금도 이 표기를 쓰고 있으며 형태 자체는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만(灣)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표기법상 보하이만으로 쓴다. 발해라는 국명은 이 바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발해라는 나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쭉 쓰여왔던 명칭으로 동북공정류의 중국의 시도와는 전혀 관련 없다. 당장 원소가 발해태수였고, 헌제의 황자 시절 작위 중 하나가 발해왕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자.
3. 오염
1980년대까지는 어창(魚倉)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이 서식하는 바다'''였다.''' 그러나 환경 문제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위대한 대륙의 마인드로 오염을 막을 환경 규제가 매우 미약해서, '''해안은 중금속이 끊임없이 몰려들고 먼바다에선 쉴새 없이 기름 유출이 벌어지고 있는 바다'''이다.
황하의 흙탕물이 이 보하이만을 거쳐 황해로 흘러든다. 그 외에 랴오허(요하)와 롼허강 등 많은 큰 강들이 보하이해로 흘러든다. 랴오허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게 상류에 커얼친, 훈탄타커 등 사막이 있어서 황하 못지 않은 흙탕물을 바다로 끊임없이 배출한다. 게다가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와 있으나마나한 환경규제로 인해서 보하이만 연안 도시들에서 많은 유해 물질이 흘러들어간다. 이런 요소들이 합쳐져서 보하이해의 물은 우리가 아는 황해보다도 더욱 탁하고 더럽다.
‘천국의 해변’ 中 보하이… 생명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바다로
보하이만 내에 유전이 있어서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유전들에서도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011년 보하이 만 곳곳의 유전에서 발생한 원유 유출 사고 때문에 보하이 만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2011년 6월 4일 처음 유출이 확인되었는데, 대응을 어떻게 했는지 이후 5개월동안 다른 유전들에서도 유출 사고가 잇따라 일어났다. 중국은 사건을 '''한 달 후인 8월에 발표'''해 사고를 은폐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았다. 보하이 만 5~6,000㎢가 오염되었고, 유출 책임사 코노코필립스는 10억 위안의 피해보상금을 냈다. 사실 보도통제등의 요인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바다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중국 어선들이 툭하면 황해의 한국 영해에 들어와 불법 조업을 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황해의 중국 영해는 보하이해처럼 모조리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그 결과 수산 자원이 엄청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쪽 바다에 잡을 것이 없다 보니 북한과 밀약을 맺어 북방한계선을 침입해 조업을 하는 것.
그래도 2010년대에는 공장을 다른곳으로 이전하고 환경규제도 강화했으며 돈을 들여 정화작업을 해놓았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수질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동안 각종 사건사고와 있는데다가 각종 산업폐기물들이 지하에 묵혀져있는 관계로 이전보다 수질이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수질 오염은 심각한 편으로 정화했다고는 해도 급수외 수질에서 4급수 정도로 정화한 수준이다.
4. 기타
고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당장 황하 하류 부분의 보하이만은 약간 반도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는데, 이건 황하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변화한 1853년부터 현대까지 지속된 황하의 퇴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랴오둥 반도 안쪽의 만 역시 퇴적 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고대에는 만이 훨씬 깊었다.[2]
산둥 반도와 랴오둥 반도가 접하는 보하이 해협에 다롄과 옌타이를 잇는 해저터널을 뚫을 계획이다. 2016년에서 2020년 사이에 건설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자세한 내용은 발해만 해저터널 문서 참고.
결빙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2013년에는 지속된 한파로 보하이만 15,231㎢, 라이저우만 2,900㎢, 랴오둥만 5,650㎢가 얼어붙어 어민들의 어업과 여객선 운항 등이 중지되었다. 기사
[1] 삼국지에서 원소가 발해 태수였다고 나오는데 그 발해가 보하이해 근방에 있는 발해군을 일컫는 말이다. 또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가 황자 시절에 받은 작위 역시 처음에는 발해왕(勃海王)이었다가, 이후에 진류왕(陳留王)으로 진봉되었다.[2] 보하이해뿐 아니라 그냥 황해 자체가 옛 후빙기 초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산둥 반도의 경우, 아예 후빙기 초기에는 섬이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인데, 이 정도로 퇴적물을 걷어내 바닷물을 채워 보면 사실상 현재의 중원 평지 거의 대부분은 물에 잠긴다. 과거 고대 중국의 동쪽 해안 지역에는 늪 등 습지가 많았는데, 이것 역시 과거에 바다였던 곳이 황허, 훼이허, 양쯔강 등의 지속적인 퇴적 작용으로 메워지고 담수화하면서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이호 등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여럿 생겨났다. 사실 한반도도 큰 차이는 없는것이 삼국시대 당대에 호남평야 지대 상당수가 바다나 갯벌이었으며 심지어 전주 앞까지 바다였다(!!!) 인공적으로 간척을 한 부분이 크게 작용은 하지만 그렇다고 퇴적을 무시할수 없다는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