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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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 시설 중 하나. 강이나 하천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수위와 흐르는 수량이 불규칙하게 변하기 때문에 이것을 일정한 수준 유지하게 하고자 만드는 구조물이다. 강이나 하천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상류의 물을 어느 정도 가두어 흐르는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방앗간처럼 물의 힘을 이용해 동력을 요하는 시설물은 사시사철 일정하게 하르는 하천이 필요하기도 하였거니와, 농업용수나 식수 보급에도 용이하고 하천에 일정한 수위의 물이 있어야 여객선이나 무역선 등의 교통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목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문명에서 전 세계에 걸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1] 현대에 와서는 보의 수위 조절 기능을 더욱 유효해지게 하고자 현대다운 공법을 이용하여 보의 모양이 다양해지고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른 수위의 널뛰기를 줄이고 구조물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그만큼 보 구조물의 길이를 키워야 하는데 당초 강의 폭은 일정하기 때문에 보 자체를 대각선이나 반원형, 궁극으로는 지그재그형으로 개량하여 길이를 키우는 것이다.
댐의 소규모 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량의 물을 가두어 전기 발전의 용도로 쓰기 위한 댐과는 목적과 용도가 조금은 다르다. 보라고 반드시 호수나 저수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물을 보다 대규모로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보와 댐의 어중간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만드는 경우도 있으며, 소수력발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쬐끄만 보에서도 약간이나마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계절마다 수위 변화 폭이 큰 특성상 곳곳에 보가 설치되어 있다. 작은 하천에서 콘크리트로 막혀 있는 게 보이면 그게 보다. 한강 서울 구간에도 물 속에 보가 있어서 유람선이 운항할 수 있고, 물이 적정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4대강 정비 사업 때문에 강 곳곳에 보가 세워졌다. 우리 나라 하천은 하상계수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하천이 중상류 이상에선 보가 없으면 아예 여름 외엔 물길을 보기 어려운 건천이 되거나 이용할수 가 없을 만큼 수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식수든 농업용수든 물고기를 기르든 이용하려면 보 설치는 필수다.
낚시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윗부분은 물이 깊어서 큰 고기들이 보 옆에 붙어 있고, 물이 넘쳐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부분은 산소가 풍부하며 위어서 떠내려 온 벌레 같은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역시 고기들이 모인다. 계곡 작은 보 근처에서는 꺽지, 좀 큰 데서는 붕어나 배스, 피래미를 잡을수 있고 연어나 송어가 있는 데도 있다. 하류에서 상류로 물고기가 쉽게 오를수 있도록 어도를 만들어 놓은 곳도 많다. (위 사진에서 보 오른쪽, 지그재그로 물이 흐르는 곳이 어도이다)
다리는 아니지만, 물을 건널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보 위는 미끄러워서 실족해 빠지기 쉬우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비 올 때 건너다 빠져 죽는 사람도 많다. 낚시하다 미끄러져 빠지는 사람도 많은데, 일단 빠지면 작은 보일지라도 미끄럽고 잡을 게 없어서 올라오는 게 쉽지 않으니, 낚시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는 장화와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하자.
보(洑)가 터진다는 뜻으로 "무언가가 세차게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댐이 터진다'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다만 '보'는 '댐'보다 훨씬 작다). 농경에서 평소에는 물을 저장하기 위해 쓰는 저수지를 만들고 그 저수지의 물을 가두기 위해 흙으로 쌓아둔 보를 유지하지만, 장마 등으로 인해 비가 세차게 오면 저수지의 물이 너무 고여서 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보가 무너지면 그 아래있는 논들은 전부 침수된다.
봇물이 터지면 보이는 상황 때문에 답이 없다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실제로 그렇게 쓰이는 편이다. 이를 테면, "너 진짜 봇물 터지듯이 사건사고가 터진다."는 사건사고가 봇물 터지듯이 잊을 만 하면 터진다는 얘기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보에서 도랑과 연결된 부분을 터트려서 저수지에 쌓인 물을 빼주어야 하는데, 고여있던 물이 터트린 좁은 공간으로 빠져나가려 하기 때문에 물이 세차게 쏟아질 수밖에 없고, 이를 가리켜 봇물 터진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한데 이 '''봇물 터진다'''를 봊물(보지 + 물), 즉 애액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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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돌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짤방이다. 두 줄 이상의 말풍선 오른쪽에 공백이 크거나 프로필 사진이 말풍선을 가리는 경우 등은 거의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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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워낙 좋았는지 후속작과 컨셉#s3이 많이 나타났다.
네이트 판에서의 반응을 보면, 현실에서도 저속한 의미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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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지다'는 국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서적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농경이 더는 익숙하지 않은 사회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조선시대부터 쓰인 관용어구를 헷갈린다는 건 어휘력 부족일 뿐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서적[2] 이나 뉴스에서도 자주 쓰이는 만큼[3] 스스로 책이나 뉴스도 제대로 읽지 않는 무식함을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경우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어휘를 모른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어휘가 있다면 응당 물어보거나 직접 찾아봐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인데 그러한 절차도 없이 '''자신이 모르는 어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함부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비하하는 등의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로 물어보기 힘들더라도 상대방을 신뢰한다면[4]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남을 까내리니 문제다.
결국 함부로 남을 쏘아붙인 것에 대한 대가는 본인의 무식함을 인증함과 동시에 뭐만 하면 야한 생각부터 떠올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되돌아올 것이다.
- 한자: 洑
- 영어: weir
- 독일어: Wehr
1. 개요
수리 시설 중 하나. 강이나 하천은 계절이나 날씨에 따라 수위와 흐르는 수량이 불규칙하게 변하기 때문에 이것을 일정한 수준 유지하게 하고자 만드는 구조물이다. 강이나 하천에 장애물을 설치하여 상류의 물을 어느 정도 가두어 흐르는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를 막기 위함이 아니라, 방앗간처럼 물의 힘을 이용해 동력을 요하는 시설물은 사시사철 일정하게 하르는 하천이 필요하기도 하였거니와, 농업용수나 식수 보급에도 용이하고 하천에 일정한 수위의 물이 있어야 여객선이나 무역선 등의 교통에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목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문명에서 전 세계에 걸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1] 현대에 와서는 보의 수위 조절 기능을 더욱 유효해지게 하고자 현대다운 공법을 이용하여 보의 모양이 다양해지고 있다. 날씨와 계절에 따른 수위의 널뛰기를 줄이고 구조물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그만큼 보 구조물의 길이를 키워야 하는데 당초 강의 폭은 일정하기 때문에 보 자체를 대각선이나 반원형, 궁극으로는 지그재그형으로 개량하여 길이를 키우는 것이다.
댐의 소규모 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량의 물을 가두어 전기 발전의 용도로 쓰기 위한 댐과는 목적과 용도가 조금은 다르다. 보라고 반드시 호수나 저수지가 생기지는 않는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물을 보다 대규모로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보와 댐의 어중간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만드는 경우도 있으며, 소수력발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런 쬐끄만 보에서도 약간이나마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계절마다 수위 변화 폭이 큰 특성상 곳곳에 보가 설치되어 있다. 작은 하천에서 콘크리트로 막혀 있는 게 보이면 그게 보다. 한강 서울 구간에도 물 속에 보가 있어서 유람선이 운항할 수 있고, 물이 적정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4대강 정비 사업 때문에 강 곳곳에 보가 세워졌다. 우리 나라 하천은 하상계수가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하천이 중상류 이상에선 보가 없으면 아예 여름 외엔 물길을 보기 어려운 건천이 되거나 이용할수 가 없을 만큼 수위가 낮아지기 때문에, 식수든 농업용수든 물고기를 기르든 이용하려면 보 설치는 필수다.
낚시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윗부분은 물이 깊어서 큰 고기들이 보 옆에 붙어 있고, 물이 넘쳐서 작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부분은 산소가 풍부하며 위어서 떠내려 온 벌레 같은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역시 고기들이 모인다. 계곡 작은 보 근처에서는 꺽지, 좀 큰 데서는 붕어나 배스, 피래미를 잡을수 있고 연어나 송어가 있는 데도 있다. 하류에서 상류로 물고기가 쉽게 오를수 있도록 어도를 만들어 놓은 곳도 많다. (위 사진에서 보 오른쪽, 지그재그로 물이 흐르는 곳이 어도이다)
다리는 아니지만, 물을 건널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만 보 위는 미끄러워서 실족해 빠지기 쉬우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비 올 때 건너다 빠져 죽는 사람도 많다. 낚시하다 미끄러져 빠지는 사람도 많은데, 일단 빠지면 작은 보일지라도 미끄럽고 잡을 게 없어서 올라오는 게 쉽지 않으니, 낚시할 때는 미끄러지지 않는 장화와 구명조끼를 착용하도록 하자.
2. 봇물 터진다
보(洑)가 터진다는 뜻으로 "무언가가 세차게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댐이 터진다'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다만 '보'는 '댐'보다 훨씬 작다). 농경에서 평소에는 물을 저장하기 위해 쓰는 저수지를 만들고 그 저수지의 물을 가두기 위해 흙으로 쌓아둔 보를 유지하지만, 장마 등으로 인해 비가 세차게 오면 저수지의 물이 너무 고여서 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보가 무너지면 그 아래있는 논들은 전부 침수된다.
봇물이 터지면 보이는 상황 때문에 답이 없다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실제로 그렇게 쓰이는 편이다. 이를 테면, "너 진짜 봇물 터지듯이 사건사고가 터진다."는 사건사고가 봇물 터지듯이 잊을 만 하면 터진다는 얘기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보에서 도랑과 연결된 부분을 터트려서 저수지에 쌓인 물을 빼주어야 하는데, 고여있던 물이 터트린 좁은 공간으로 빠져나가려 하기 때문에 물이 세차게 쏟아질 수밖에 없고, 이를 가리켜 봇물 터진다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한데 이 '''봇물 터진다'''를 봊물(보지 + 물), 즉 애액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image]
가장 먼저 돌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짤방이다. 두 줄 이상의 말풍선 오른쪽에 공백이 크거나 프로필 사진이 말풍선을 가리는 경우 등은 거의 확실.
[image]
반응이 워낙 좋았는지 후속작과 컨셉#s3이 많이 나타났다.
네이트 판에서의 반응을 보면, 현실에서도 저속한 의미로 인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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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봇물 터지다'는 국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서적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농경이 더는 익숙하지 않은 사회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조선시대부터 쓰인 관용어구를 헷갈린다는 건 어휘력 부족일 뿐 다른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서적[2] 이나 뉴스에서도 자주 쓰이는 만큼[3] 스스로 책이나 뉴스도 제대로 읽지 않는 무식함을 자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경우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단순히 어휘를 모른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어휘가 있다면 응당 물어보거나 직접 찾아봐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인데 그러한 절차도 없이 '''자신이 모르는 어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함부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거나 비하하는 등의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바로 물어보기 힘들더라도 상대방을 신뢰한다면[4]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다른 의미가 있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르는데도 의심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남을 까내리니 문제다.
결국 함부로 남을 쏘아붙인 것에 대한 대가는 본인의 무식함을 인증함과 동시에 뭐만 하면 야한 생각부터 떠올리는 사람이라는 평가로 되돌아올 것이다.
[1] 한반도처럼 여름과 겨울의 강우량이 극단으로 갈리는 곳에서나 보가 발달할 듯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유럽처럼 하천과 강으로 국제무역을 하던 곳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보가 많다.[2] 천승세 소설가가 지은 <봇물은 터졌어라우>라는 작품도 있다.[3] 봇물 터진다는 표현이 서적에서 어느 정도로 자주 쓰이냐면 전혀 다른 상황에 쓰는 예시이긴 하지만 누구나 잘 아는 속담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표현보다도 자주 쓰인다.[4] 상대방이 저급한 언어를 자신 앞에서 함부로 꺼낼 리가 없다는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