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클리츠코
1. 개요
우크라이나의 前 권투선수 및 정치인. 2014년에는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의 시장직과 상원의원직 및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의 당수를 겸임하기도 했으나 2016년 탈당했다.
2. 선수 시절
권투선수로써는 203cm 112kg의 헤비급 복서로 1999년 WBO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뒤 동생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와 함께 복싱의 최고 인기체급인 헤비급을 10년 넘게 양분하던 2000년대 최강의 헤비급 복서였다. 통산 전적은 45승 2패. 2003년 레녹스 루이스에게 패한 후 2012년 9월 8일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까지 연승을 달리며 WBC 헤비급 타이틀을 사수했다. 나머지 IBF, WBA, IBO, WBO 헤비급 챔피언은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의 차지. 형제 대결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뜻이라 한다.
아마추어에서 활동할 때 금지약물이 적발되어 라이선스가 정지되는 바람에 킥복싱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195–15 80KO를 거두었으며 1993년에는 판크라스 무대에서 뛰기도 했다. 24승25패9무의 mma선수 야나기사와 류시와 싸운 적도 있다.[2] 킥복싱 데뷔 초기에는 영국의 펠레 라이(Pele Reid) 에게 스피닝 헤드킥으로 KO를 당하는 굴욕적인 일도 겪었지만, 후에 킥복싱 룰에 적응한 이후에는 펠레보다 뛰어난 선수들을 모두 꺾었다. 1996년부터 다시 복싱계로 돌아왔다.
이 두 형제가 십 년 가량 헤비급 권좌를 차지하며 40이 되도록 내려오지를 않아서 복싱 강국 미국에서는 헤비급이 비인기체급이 돼 버렸다. 하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권에서는 최고의 스포츠스타 중 한 명으로 이 두 형제의 경기는 수만명을 수용하는 야외 스타디움에서 열리며 시청률도 50% 이상을 보장한다.
가히 21세기 복싱 헤비급의 가장 위대한 선수라 할 수 있으나 복싱이 막장화된 한국에서는 듣보잡일 뿐... 경기 스타일도 우월한 체격조건과 안정적인 잽, 정확한 원투를 바탕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타입이라 화끈한 타격전을 선호하는 한국에서 팔리는 스타일이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펀치력이 없는 복서는 아니다. 45승 중 KO승이 41승. 클리츠코의 비디오에서는 거대한 헤비급 상대들이 원투 한방에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한 턱이 약한 블라디미르에 비해 비탈리는 강철턱의 대명사로 동생보다 훨씬 투박하게 경기를 한다. 블라디미르가 코리 샌더슨에게 패하자 자신이 나서 샌더슨을 잡은 건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이 경기는 비탈리 클리츠코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최고의 명경기 중 하나로 뽑힌다.[3][4]
역대급 철권들과 싸웠던 셰넌 브릭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싸웠던 복서 중에서 펀치력이 가장 강했다고 한다. [5]
3. 주요 경력
- 1996년 11월 16일 토드 브래덤戰 2회 KO승 커리어 첫 승
- 1999년 6월 26일 허비 하이드戰 2회 KO승 WBO 헤비급 타이틀 획득
- 2000년 4월 1일 크리스 버드戰 9라운드 종료 후 어깨부상으로 기권[6] WBO 헤비급 타이틀 상실 (커리어 첫 패)[7]
- 2003년 6월 21일 레녹스 루이스戰 WBC 헤비급 타이틀전 닥터스탑 TKO패[8][9]
- 2004년 4월 24일 코리 샌더스戰 TKO승 WBC 헤비급 타이틀 획득[10]
- 2005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 선언, 타이틀 상실. 3년뒤인 2008년 현역복귀
- 2008년 10월 11일 사무엘 피터戰 8회 TKO승 WBC 헤비급 타이틀 획득 (1차 은퇴후 현역 복귀전)
- 2012년 9월 8일 마누엘 카戰 4회 TKO승 WBC 헤비급 타이틀 방어 (현역 은퇴전)
4. 정치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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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부터. 2004년 오렌지 혁명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며 키예프 시의원을 거쳐 2012년 우크라이나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의원들의 몸싸움을 팔짱끼고 쳐다보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 성향은 키예프 출신 서우크라이나인답게 반러시아-친서방적. 2013년 유로마이단 시위에서는 시위단의 상징적 존재로 부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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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강의 복서도 최루탄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2014년 4월 9일에는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친러 의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영상이 나오기도 했다(...)링크[11]
2014년 5월 27일. 키예프의 시장에 당선되었다. 임기는 5년으로 2019년에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아 연임중이다.
5. 가족 관계
- 블라디미르 로디오노비치 클리츠코[12] (부친), 나데즈다 울야노프나 (모친)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남동생)
- 카야 클리츠코 (조카딸)
-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남동생)
- 나탈리아 에고로바 (부인)
6. 기타
- 2010년에 클리츠코 형제의 우표가 발행되었다.
- 복싱 세계챔피언 중 최초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스포츠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전문분야는 사회발전 관리분야라고 한다. 이러한 부분이 본인의 정치적 커리어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동생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 역시 함께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같은 복서 출신인 이 분과 비교했을 때 정치적 커리어만 놓고 보면 훨씬 성공했으며, 우크라이나의 국회의원 겸 키예프의 시장직을 맡고 있다. 키예프 시장으로서의 능력도 역시 인정받으며 여전히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것은 아니다.
[1] 의원 임기는 4년이며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 재선되었다.[2] 결과는 전원일치 판정승.[3] 이전 버전에는 비탈리의 턱이 약하다고 되어 있었으나 이는 오류이며 유리턱은 동생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의 이야기이다.[4] 코리 샌더슨은 비탈리에게 패한 후 4경기를 더 치르고 은퇴했으며 2012년 강도에게 총을 맞고 사망했다.[5] 브릭스는 레녹스 루이스 그리고 후에 복귀한 조지 포먼도 대전을 했던 경험이 있는 복서이다.[6] 9라운드까지 88-83 88-83 89-82 3심 모두 클리츠코의 압도적인 우세로 판정하고 있었다. 남은 3라운드를 모두 내주더라도 승리가 확실했기에 아쉬운 상황.[7] 이 패배는 코리 샌더스의 경우와는 정반대로 동생인 블라디미르가 설욕해주었다.[8] (커리어 마지막 패)[9] 레녹스 루이스는 당대 헤비급 부동의 최강자로 여겨졌으며, 신체조건 역시 클리츠코 형제 수준으로 우월한 복서였다. 전문가들은 루이스의 우세를 예상했으나, 의외로 클리츠코가 눈가 커팅 이후 출혈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기 전까지는 파워펀치를 포함한 유효타 적중횟수와 적중률에서 앞서는 모습을 보여주며 루이스의 안면을 멍들게 했다. 심지어 시야가 차단되고 어퍼컷을 몇차례 허용하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꾸준히 전진일변도로 루이스를 상대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으나, 상처가 심하게 벌어질 것을 염려해 링닥터와 레프리의 협의 하에 6라운드 TKO가 선언되었다. 헤비급 최강자의 자리를 정식으로 물려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표하며 리매치를 요청했고, 루이스는 "상대가 원한다면 해야 한다" 는 뉘앙스로 답변했으나, 이를 번복하고 은퇴한다. 아무래도 루이스가 노장의 반열에 들어서는 나이였고, 전성기 시절에 비해 맷집은 늘었지만 조금 굼뜬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등 하락세에 들어설 조짐이 보였던데다가, 어퍼컷을 3연속으로 허용하고도 원투 스트레이트로 응수하던 클리츠코의 인자강(인간 자체가 강한)적인 면모를 확인했기에 리매치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때문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시기에 은퇴했다는 의견도 있다. [10] 이미 문서에서 언급되었듯, 코리 샌더스는 비탈리의 동생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를 전 경기에서 넉아웃시켰기에 비탈리 클리츠코 입장에서는 복수전으로서의 의미가 강한 경기였다. 초반에는 코리 샌더스의 폭풍같은 펀치러쉬에 당황하며 1라운드를 내어주기도 했으나, 특유의 무쇠턱으로 잘 버텨낸 뒤 특유의 원투 스트레이트를 활용해 포인트와 데미지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샌더스는 무리한 공격을 시도하다 오히려 지쳤고, 비탈리 클리츠코는 이를 놓치지 않고 8라운드에 스트레이트 연타를 감행하며 TKO승을 거둔다. 한편 코리 샌더스도 지기는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레프리 스톱 전까지 계속 주먹을 내는 감투정신을 보여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11] 보면 알겠지만... 다들 이 사람의 '''떡대를 보고 겁에 질려서 다가가지도 못한다(...). ''' [12] 1947~2011, 소비에트 공군의 장교, 최종계급은 소장, 암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