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커즈 버지니아

 

'''빅커즈 버지니아(Vickers Virginia)'''
1. 제원
2. 개발 배경
3. 기체 구조
4. 추가 개량
5. 운용
6. 2선에서


1. 제원


처녀비행 : 1922년 11월 24일
운용시기 : 1924년~1941년
개발 및 생산 : 빅커스(Vickers Limited)
승무원 : 4명
전장 : 15.93 m / 전폭 : 26.77 m / 전고 : 5.54 m / 익면적 : 202.4 m²
중량 : 4,377 kg ~ 7,993 kg
동력 : 네이피어 라이언(Napier Lion) VB 직렬 24기통 수랭식 엔진(각 580 hp) 2기
최대속도 : 173 km/h
항속거리 : 1,585 km
상승한도 : 4,210 m
상승률 : 5,000ft(1,520 m)까지 10분
무장 : .303 빅커스 기관총 3정 / 폭탄 1,360 kg
생산수 : 124대

2. 개발 배경


전간기 영국 공군의 주력 폭격기를 10년 이상 해먹은 기종인 빅커스 버지니아는 1차 대전의 중폭격기인 빅커스 비미(Vickers Vimy)의 개량형을 요구한 영국 항공성에 의해 1920년부터 구상이 시작되었다. 항공성은 1921년 1월 13일에 빅커스 개발진들에 대하여 2대의 프로토타입을 발주했고, 그 뒤를 이은 추가 시제기도 이듬해인 1922년 9월에 주문했다. RAF는 1차 대전에서 비미 폭격기의 성능에 대체적으로 만족했기 때문에, 버지니아는 전체적으로 그 설계를 답습했고 그런 탓에 두 선후배 기종은 서로 흡사했다.

3. 기체 구조


그러나 후배 버지니아는 선배 비미에 비하면 동체는 3미터, 양 날개는 6미터 더 길어진데다 선배가 지적받던 조종사의 시야를 개선해달라는 해묵은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각부 배치에 만전을 기했고, 기수에는 방어용 총좌를 설치했다. 또한 철제 프레임, 목제 뼈대 위에 천을 씌웠던 비미에 비하면 빅커스 타입 57(Vickers Type 57)로 불린 버지니아는 알루미늄을 구조 재료로 쓰고 캔버스를 입혀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
중폭격기로 태어난 빅커스 타입 57은 당대 초강력 엔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던 네이피어 라이언 수랭식 24기통 엔진을 쌍발로 달아 숨을 불어넣었다. 완성된 버지니아의 원형 1호기는 1922년 11월 24일에 마틀샘-히스 비행장에서 처녀 비행을 개시했다. 당시는 풍동 데이터 해석이 오늘날처럼 쉽지 않았던 탓에 거의 모든 시제기가 한 두가지 눈에 띄는 결점들이 따라오게 마련이었는데 버지니아는 예외였다. 이어진 예심을 통해 엔진의 파워를 2엽 프로펠러가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항을 지적받았고, 4엽 프로펠러로 교체하게 된다.

4. 추가 개량


1차 대전 당시, 폭격기가 전투기의 공격에 지나치게 무력했던 전훈을 되새긴 RAF는 신형 중폭격기들은 강력한 방어능력을 갖추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 요구에 대해 빅커스 스탭들은 양 날개 위에다 총탑을 추가했지만, 이 거추장스러운 설비들은 생산형에서는 삭제되었다. 공기역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칠 주날개의 이런 사양 변경은 버지니아의 날개 모양을 바꾸게 된다. 즉 버지니아 Mark I부터 Mark VI까지는 처음 붙여진 쭉 뻗은 직선 날개를 지니고 있었지만, Mark VII 부터는 외측 날개 앞전에 약간의 후퇴각을 주어 날개에 불연속면을 만들어주었다. 또한 Mark III로 시작해서 Mark VII까지 형식은 꼬리를 연장해 그곳에 테일거너를 배치했다. 이 자리는 별도로 타고 내리게 되어 있어 비행 도중 후방 사수는 다른 승무원들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버렸고, 오로지 조종석에 달린 전성관을 통해서 기장하고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의 최후기형에 해당되는 Mark X은 1924년 연말에 도입되었는데, 각 형식 합계 124대의 버지니아가 생산되었고 그 중에서 50대는 버니지아 Mark X이 차지했다.

5. 운용


버지니아의 초기형인 버지니아 Mark I으로 편성된 첫 스쿼드론은 1924년에 창설되었다. 솔직히 버지니아가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하지만 이 시대는 자고 깨어나면 새로운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는 때였던 탓에 얼마 안가 후계 기종이 요구되었고, 복엽기의 시대가 저무는 것 또한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빅커스 버지니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까지 일선에서 계속 쓰였는데, 아마도 두 번째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지 않았다면 더 오래 쓰였을 것이 분명하다.
RAF의 중폭격기 버지니아는 페어리 헨든(Fairey Hendon)과 핸들리 페이지 헤이포드(Handley Page Heyford)에게 점차 최일선의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핸들리 페이지 햄든(Hampden)과 암스트롱-휘트워스 휘틀리(Whitley), 그리고 좀 더 혁신적인 빅커스 웰링턴(Wellington)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차례차례 대체되었다. 그렇지만 1934년까지도 이 복엽 폭격기는 RAF 폭격기 부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던 기체였다.

6. 2선에서


버지니아는 30년대 중반부터는 폭탄을 실어나르는 대신 엔진 나셀 뒤에 점프 플랫폼을 추가하는 개조를 가해 항공 촬영이나 낙하산 훈련을 위해 사용되었다. 항공성 위원회는 영국 본토항공전을 앞두고 있던 1940년 6월 26일에 만일 독일군전차 부대가 상륙해서 침공해오면 그들을 막기 위해 37mm 중기관포(Coventry Ordnance Works gun)을 기수에 달고 일종의 대전차 공격기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하여 의논하기도 했지만, 이 방안은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이처럼 1930년대 중반부터 버지니아는 실험이나 훈련용 이외의 전투 임무로는 쓰이지 않았더라도, 몇몇 기체는 연료탱크와 급유 호스를 추가하는 개조를 받고 공중 급유를 위한 첫 번째 테스트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빅커스 개발진들은 버지니아를 설계하면서 동시에 빅커스 빅토리아(Vickers Victoria)라는 수송기와 병행하여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때 버지니아의 주날개 디자인을 공유하기도 했었다.
낡은 복엽기를 오래도록 험하게 굴린 탓에, 버지니아 폭격기는 사고로 인한 추락이나 파손도 자주 겪었다. 합계 81대의 버지니아 폭격기가 손실되었지만, 이것은 당시의 평균적인 항공기 사고율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이었다. 이처럼 나이를 먹으며 노후 기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RAF는 1941년 12월까지 헨로우(Henlow) 비행장에서 대기시키며 낙하산 시험 비행을 지원하는 임무를 계속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