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와그너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마무리 투수로 '''별명은 빌리 더 키드'''. 통산 422세이브로 메이저리그 역대 좌완 마무리 중 2위이며[1] 역대 마무리 투수 중에서는 6위이다. 통산 WHIP은 0.998로 1이 채 안되며 이는 1.0인 마리아노 리베라보다도 좋은 수치다. 동시대 마리아노 리베라와 트레버 호프먼에 가려져서 그렇지 통산 기록을 보더라도 이미 준 레전드급인 마무리 투수 중 한명이다.
2. 커리어
2.1. 휴스턴 애스트로스
학창 시절에는 '''원래 우완 투수였지만 좌완 투수로 전향했다.''' 오른팔이 두 번이나 부러지고 난 뒤 바꿔봤는데 오른손으로 던질 때보다 오히려 구속이 더 좋았다고하니 전화위복...[2] 대학시절부터 ERA 1.88에 '''K/9이 19개'''가 넘어갈 정도로 뛰어난 탈삼진 능력을 보이며 1993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하여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활동하면서 탈삼진 1위를 차지하며 팀의 기대를 한몫에 샀다.
1996년 콜업후 마이너리그 때와 달리 구원 투수[3] 로 활동하였고 97년부터 본격적인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해 가공할만한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휴스턴의 뒷문을 단단하게 지킨다. 2000년에는 부상으로 6점대의 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다음해 다시 부활, 1점대~2점대 초반을 넘나드는 ERA을 기록하며 다시금 솔리드한 마무리로 돌아왔다. 2003시즌 오프후 마무리의 자리를 셋업맨인 브래드 릿지에게 물려주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된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필리스로 트레이드 된 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면모를 보였으나 와그너 자신은 '필리스에서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기회가 없다' 라고 공개적으로 팀에게 험담을 했으며 이를 들은 팀 동료인 팻 버렐은 와그너를 '''쥐'''라고 부르며 대놓고 깠다. 당연히 와그너는 FA로 2005시즌 오프후 뉴욕 메츠로 이적했다.[4]
2.3. 뉴욕 메츠
메츠에 이적한 이후에도 2년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여전히 꾸준한 활약을 보였으나 2009년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의 이적과 부상으로 신음하다가 결국 시즌 중반 웨이버 형식으로 방출되었다.
2.4. 보스턴 레드삭스
2009년 8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그를 영입했으며 셋업맨으로써 매우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미 레드삭스에는 조나단 파펠본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2.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10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1년 계약으로 입단해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하고 7승 2패 37세이브, ERA 1.43, K/9 13.5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지만,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즌 종료 후 쿨하게 은퇴했다.
통산 400세이브 달성 영상. 마지막 공의 구속이 98마일(157km)을 찍었다(...).
3.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수 있을 지 의견이 분분한 투수 중 하나. 대체적인 의견은 무리라는 편. 더 많은 세이브를 기록한 리 스미스도 명예의 전당 득표율이 40% 후반에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었다가 마지막 해에 34.2%에 그치면서 후보 자격을 상실한 마당인데,[5] 와그너는 의외로 상복도 없다. 세이브 1위를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6]
와그너의 명전행의 지지하는 쪽에서는 리 스미스와 비교도 안 되게 좋은 방어율을 이유로 삼고 있으며, 부상에 시달린 2000년 한 시즌 이외에는 항상 꾸준한 성적을 내왔다는 것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래저래 은퇴가 아쉬운 상황.
4. 투구 스타일
와그너의 주무기는 유연한 손목과 탄탄한 하체에서 나오는 평균 90마일 후반대에 최고 102마일까지 나오는 강력한 패스트볼이었으며 국내외의 팬들은 그를 보고 '좌완 파이어볼러', '불꽃을 던지는 사나이', 'Billy The Kid'라고 불렀다. 80마일 후반대의 브레이킹볼 역시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 랜디 존슨에게 전수 받은 하드 슬라이더였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와그너 본인은 슬라이더가 아닌 커브를 던지며 존슨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이가 들어선 전성기 때만큼 100마일이 자주 찍히지는 않았지만 꾸준한 자기관리 덕분에 말년까지도 패스트볼의 구속을 90마일 중반대로 유지했다.
5. 연도별 성적
6. 기타
- 1998년 정규시즌 중 對 애리조나 원정 경기에서 토니 바티스타가 친 라인 드라이브 타구를 맞아 두개골 골절 부상을 입어 한 달간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었다. 평균적인 투수들의 신체조건에 비하면 다소 언더사이즈라 시즌중 잔부상도 꽤 있었고 3~4년마다 한번씩 부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이기도 했는데, 와그너의 플옵 마지막 등판인 샌프란시스코와의 2010년 디비전 시리즈 2차전은 연장 10회에 등판해 0.1이닝을 잘 틀어막고도 허리부상으로 내려간 것이 마지막이다.
- 여담으로 김홍시기 기자에 의해 빌리 와그라노라는 이름으로 로컬라이징(?) 당한 적이 있다.
- 201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해에는 10.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10.2%로 조금 낮아진 득표율을 기록. 2018년에 11.1%로 약간 오르긴 했지만 10~11%를 왔다갔다 하고있다. 2019년에는 16.7%로 눈에띄게 오르긴 했지만 아직 20%를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에 31.7%로 껑충 뛰며 약간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46.4%. 6번째 도전에서 유의미한 발전을 보였다.
- 전설급 마무리 투수지만 가을야구에서 못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4경기 나와서 1승 1패 10.03의 방어율에 WHIP은 1.971... 커리어 성적에 비교하면 WHIP은 두 배 수준이고 방어율은 4배가 넘는다. 휴스턴 시절에는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서부터 밀리면서 출장이 많지 않았고, 2006년 뉴욕 메츠 시절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1차전엔 세이브를 따냈지만 2차전에 3실점으로 패전, 4:0으로 앞선 경기에 등판한 6차전에는 2실점 하며 간신히 경기를 마무리하며 크게 흔들렸다. 결국 7차전 동점 상황에서 비교적 잘 던지던 애론 하일만이 오래 던졌고 그 결과 몰리나에게 홈런을 맞았으니... 메츠의 탈락에 어느 정도는 기여한 셈이다.
그나마 2010년에는 NLDS 2차전 연장 10회에 나와서 0.1이닝을 잘 막았지만 직후 부상을 당했고, 애틀랜타도 결국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 와그너의 부재로 인해 7회부터 불펜이 터지면서 역전당해 탈락한지라 그것이 와그너에겐 마지막 가을야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