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리베라
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야구 역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자 '''명예의 전당 최초의 만장일치 입성자.''' 별명은 모(MO: '''M'''arian'''O'''), 샌드맨, 슈퍼 마리아노,[3] The Last No. 42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또한 데릭 지터, 호르헤 포사다, 앤디 페티트와 함께 '양키즈 간판 스타 4인방(Yankees Core Four)'의 일원.
통산 성적은 19시즌 동안 1115경기 82승 60패 652세이브(역대 1위), 1283.2이닝,[4] ERA 2.21(라이브볼 시대 1위), 조정 ERA 205(역대 1위), fWAR 39.2, bWAR 56.3, WPA 55.75,[5] 1173K, K/9 8.22, BB/9 2.01, K/BB 4.1, HR/9 0.5를 기록했다. 엄청난 커리어
등번호 42번을 메이저리그 공식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달고 있었으므로, '''마지막으로 42번을 단 메이저리그 선수'''이다.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의미에서 사무국 차원에서 그의 등번호를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한 연도가 1997년인데 리베라는 그 이전부터 42번을 달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기에 예외에 해당되었다. 한편 리베라 외에 등번호 42번을 달 수 있었던 선수는 브루스 수터가 있었다. 그의 등번호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공동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2. 선수 경력
파나마의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부터 고기잡이 배를 타며 고기잡이를 하며 지냈다. 어릴 때는 유격수로 활동했으나 그를 눈여겨본 양키스 중남미 담당 스카우터가 투수로 전향을 권유하여 투수로 전향했다. 공의 구속은 80마일 중반대에 머물렀지만 스카우터들은 유연한 투구 모션과 제구력을 보며 성공을 확신했고, 결국 리베라는 1990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다. 입단했을 때 받은 금액은 고작 2000달러. 입단 후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 특히 빠르면서도 각이 큰 슬라이더를 가다듬으며 팀의 유망주로 급부상하였고 1995년부터 선발 투수로서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선발 투수로선 썩 좋지 않은 편이였으나 1995년 디비전 시리즈에서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인상적인 투구를 보이며 불펜에서 가능성을 찾았고 다음해부터 구원투수로 보직을 옮겨 1996년에는 셋업맨으로 활약하였고 사이 영 상 투표에서 3위에 오른다.
1996년 시즌 출발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초반에는 추격조로 시작했지만, 4월 19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3이닝 퍼펙트로 홀드를 기록하면서 토리 감독의 신뢰를 얻게 된다. 이틀 쉬고 22일에도 3이닝 퍼팩트, 3일 쉬고 26일에도 3이닝 퍼펙트를 던졌다. 특히 하루 쉬고 28일에도 3이닝 퍼팩트, 또 하루 쉬고 30일에 2이닝 퍼팩트를 던지는 등 놀랄만한 회복력을 보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토리 감독은 언급한 바 있다. 결국 4월 19일부터 5월 21일까지 26이닝 무실점, 이 기간 동안 15이닝 무피안타를 기록하며 필승조 로 완전히 자리를 굳히게 된다.
특히 1996년 시즌 양키스 선발진은 이닝이터가 사실상 페티트 한 명이었고 데이비드 콘이 부상으로 한동안 이탈했기 때문에 중간계투진 역할이 중요했는데, 구원진도 밥 위크먼과 제프 넬슨이 모두 4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때문에 이 시즌 리베라는 이기는 경기에서 선발투수와 웨틀랜드 사이를 이어주는 불펜 소년가장 역할이나 다름없었다. 특정 중간계투 투수를 마음껏 굴리는(...) 토리 감독의 성향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이 시즌인데, 리베라는 이 시즌에 등판한 61경기 중 3이닝 투구가 8경기, 2이닝 이상 투구가 27경기에 달할 정도로 멀티이닝 필승조로 정말 원없이 굴렀다. 순수 구원 이닝으로만 107.2이닝 투구.
당시 AL 사이 영 경쟁 선발 투수들의 성적이 매우 저조했던 걸 감안해도, 세이브 5개에 불과한 불펜 투수가 사이 영 1위 표를 받은 사례는 이해 리베라가 유일하다. 당시 양키스 마무리는 1996년 월드시리즈 MVP였던 존 웨틀랜드였고 뛰어난 마무리 투수였기에 96 시즌 후 FA가 된 웨틀랜드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리베라를 마무리로 하는 건에 '보스' 조지 스타인브레너가 결사반대를 했었다는 후문이 있다.[6] 그러나 브라이언 캐시맨 단장 등 여러 관계자의 설득을 통해 셋업맨이었던 리베라가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리베라는 커터를 던지지 않았고, 심지어 마무리가 된 1997년 전반기까지도 커터가 없었다. 이때의 리베라는 90마일 중반대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앞세워 탈삼진을 잡아내는 파워 피처였다. 마무리 전업 초창기에는 3경기 연속 불을 지르는 대실수를 하는 바람에 온 뉴욕에서 미친듯이 까였으나[7] 이때 감독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일 마무리는 바로 너다."''' 라는 말에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마리아노 리베라는 마무리 투수로 데뷔하자마자 단번에 43세이브를 거두며 위력을 알렸으며 이후 꾸준히 30~40세이브를 거둔다.
2008년 9월 22일, 구 양키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 세이브 상황이 아닌 7-3으로 리드하던 9회초에 등판하여 브라이언 로버츠를 1루 땅볼로 잡아내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구 양키 스타디움은, 85년 동안 26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화려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리베라가 문을 닫았다.[8]
2.1. 2009 시즌
2009년, 지난 시즌 종료 후 어깨 수술의 여파 때문인지 5월 7일 기준으로 12경기 등판하여 피홈런 4개 및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 중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감을 되찾아 가고 있다. 그리고 6월 28일 뉴욕 메츠 원정에서 8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⅓이닝 동안 안타 1개를 맞았지만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켜내면서 시즌 18세이브째를 챙겼다. 그러면서 트레버 호프만에 이어 ML 역대 2번째로 500세이브 돌파라는 기록을 썼다. 또한 9회초에는 2사 만루에 타자로 들어서서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볼넷을 골라내 밀어내기로 커리어 첫 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반기는 평균자책점 2.43 23SV/24SVO를 기록하면서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7월에는 평균자책점 0, 10SV를 기록하면서 최고의 폼을 과시했으며, 8월에도 평균자책점 0.79와 8SV를 기록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시즌 최종성적은 평균자책점 1.76, 44SV/46SVO, WHIP 0.90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는 더욱 철벽같은 피칭을 선보였다. 10월 25일 ALCS 에인절스 전 1실점을 제외하고는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12경기 16이닝 WHIP 0.94 15탈삼진, ERA 0.56과 5SV를 기록하며 환상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거기다 마쓰이 히데키의 고질라 모드가 발동되면서 커리어 5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2.2. 2010 시즌
2010년 5월 16일, 미네소타 트윈스 전에서는 그랜드슬램을 허용하면서 평균자책점 제로 행진이 중단됐으며, 시즌 첫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또한 만루홈런을 맞은 것은 통산 4번째로, 2002년 7월 15일 이후 거의 8년 만이다. 또한 이 피홈런으로 인해 리베라는 홈에서의 51연속 세이브 성공이 중단되며 에릭 가니에와의 타이기록에 만족해야 했다.[9] 또한 리베라는 2005년 5월 7일 이후 처음이자 통산 4번째 밀어내기 볼넷도 허용했다. 이후 6월에는 24타자 연속 범타 처리라는 기록을 썼으며, 2010년 7월 1일 기준으로 11연속 세이브 성공과 함께 15경기 17이닝 연속 무실점(피안타율 .074 WHIP 0.41)을 이어가고 있다. 7월 1일 현재까지 시즌 평균자책점 0.89, 피안타율 .118, WHIP 0.59, 18SV를 기록하면서 40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상당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전반기 최종 성적은 평균자책점 1.05 20SV WHIP 0.64를 기록했다. 8월까지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커리어하이를 새로 쓰는 듯했다. 하지만 9월에 평균자책점 4.76에 3차례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고전하면서 막판에 스탯을 깎아먹었는데, 시즌 최종성적은 평균자책점 1.80, WHIP 0.83, 33SV를 기록했다.
2010년에 3년 4500만 달러 계약이 종료되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는데 같은 해 자유 계약 선수가 되어 팀과 계약에 난항을 겪은 데릭 지터와는 다르게 한국 시간 12월 3일 2년 3000만 달러에 재계약을 마쳤다. 이 과정에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 LA 에인절스 등이 3년 기간에 총액이 더 높은 계약을 제시했지만 핀스트라이프가 좋다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하고 양키스와 적절한 금액에 계약 연장을 체결했다. 덕분에 데릭 지터는 골수 양키스 팬들에게조차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라이벌인 보스턴에서 오퍼가 들어오자 리베라는 '오 나에게 관심 가져 줘서 ㄱㅅ' 하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2.3. 2011 시즌
새로운 계약의 첫 해인 2011년, 여전히 양키스의 마무리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4월 중순까지 WHIP 0.48 7세이브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지 않는 등 환상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그러나 19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전과 24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에서 연속으로 부진하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도 순식간에 0에서 2.53으로 올랐다. 이후 다시 5월 중순까지 세이브와 무실점을 이어가며 다시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러다 5월 18일 볼티모어 전에서 다시 털리며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한편 5월 25일,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통산 1000번째 등판을 가졌다.''' 1이닝 무실점을 펼치며 팀의 7-3 승리를 지켰다.
6월에는 블론세이브 없이 10경기 10이닝 8세이브 평균자책점 0.90 WHIP 0.70을 기록하며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6월 마지막 3경기에서는 출루 허용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7월 3일 뉴욕 메츠 전에서는 1실점을 내주면서 간만에 블론세이브를 기록했지만, 다른 경기들에서는 무실점 피칭을 선보였으며, 9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1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전반기 성적은 '''평균자책점 1.85 WHIP 1.00 22세이브 4블론'''으로, 40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후반기 들어서도 7월에 모든 세이브 상황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8월에는 슬슬 체력이 딸리는 것인지 7일 보스턴 레드삭스 전에서 블론세이브를 범하더니, 9일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전에서는 1이닝 2피안타 1피홈런 2실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11일 에인절스 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실점을 기록하며 3경기 연속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평균자책점도 2.40으로 많이 상승했다. 그래도 8월 남은 경기에서는 6경기 5세이브 무실점을 기록하며 슬럼프를 딛고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2011년 9월 13일, 시애틀 매리너스 전에서 1이닝 2K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트레버 호프만의 뒤를 이어 사상 2번째 '''600세이브''' 마일스톤을 달성했고, 17일 토론토 블루제이스 전에서 1이닝 1K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트레버 호프먼과의 세이브 타이 기록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9월 19일에 미네소타 트윈스 전에서 통산 '''602세이브'''를 달성, '''메이저리그 올타임 세이브 리더'''가 되었다. 미네소타 트윈스전 9회 초 풀 이닝
시즌 최종성적은 평균자책점 1.91 44세이브 5블론 WHIP 0.90을 기록하며 41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포스트시즌에는 ALDS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전에서 2경기에 등판해 1.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으나, 팀은 시리즈 스코어 3-2로 탈락했다.
2011년이 끝나고 불혹을 넘긴 마당에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그간 영 좋지 않았던 성대 때문이라고. 팔꿈치 수술인 줄 안 사람들은 전부 뒤집어졌다(...).
2.4. 2012 시즌
201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시즌 개막전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 0.1이닝 2실점 블론세이브를 범한 것을 제외하곤 여전히 나이가 무색케 하는 피칭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2012년 5월 3일 배팅 연습에서 외야 수비를 하던 도중 플라이 볼을 잡는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을 다쳤고, 정밀 검사 결과 '''십자인대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진단 받았다. 3명의 의사에게 정밀 검진을 받고 합병증까지 있다는 이야기로 많은 팬들이 걱정했으며, 종아리 혈전을 발견해 그 부위 역시 수술을 받게 될 예정이다. 6월 12일에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고, 선수 본인은 본의 아니게 은퇴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렇게 끝을 보는 건 역시 아쉬운지 은퇴 의지를 표명했던 당초 입장과는 달리 '''"I will be ok. I will be back."'''이라는 말과 함께 '''2013년 복귀를 선언했다!''' '가장 위대한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2012년 아메리칸 리그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 Enter Sandman과 함께 등판하여 공 한 개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
2012년 시즌 종료 후 1년 1000만 달러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그리고 2013년 초, 2013년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라 천명하였다. 그렇게 원정 경기마다 리베라의 마지막 시즌을 기념하는 선물과 기부[10][11] 등을 통해, 정말 모 옹의 마지막 해임을 알려주었다.
2.5. 2013 시즌
2013년, 부상 복귀전이었던 4월 4일 보스턴 레드삭스 전에서 1실점을 기록했지만, 세이브를 달성하며 약 11개월 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리고 만 4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부터 블론 세이브 하나도 없이 세이브 기록을 이어나가며 5월 16일 기준으로 16세이브를 기록하며, ML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5월 28일 뉴욕 메츠와의 서브웨이 시리즈 2차전에서 시즌 첫 블론 세이브와 패전을 기록했다. 이후 6월 8일 시애틀 매리너스 전에서는 통산 630번째 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전반기 동안 세부 스탯을 보면 피안타율 .265에 WHIP 1.25로, 여태껏 보여준 것에 비해서는 약간 불안했지만 평균자책점 1.83과 30세이브 32탈삼진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나이를 잊게 하는 활약을 했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올스타에 선정되었는데, 아메리칸 리그가 3:0으로 앞서고 있던 올스타전 8회 말에 자신의 등장 곡인 Enter Sandman과 함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 1이닝을 삼자범퇴로 막고 올스타전 MVP로 선정되었는데 이 올스타전 MVP 수상으로 리베라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불펜 투수가 되었다.
7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원정에서도 은퇴 기념 행사가 이루어졌다. 재키 로빈슨의 아내인 레이첼 로빈슨의 인터뷰 영상이 전광판을 통해 방영되었으며, 다저스는 1만 달러를 리베라 재단에 기부하는 동시에 리베라 사진이 들어간 낚싯대를 선물했다. 이 날 다저스타디움에는 사무엘 잭슨을 비롯해 코비 브라이언트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경기를 관전했다.[12] 그리고 9회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하며 자신의 통산 642세이브 째를 기록했다. 시즌 34세이브.
8월 7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전과, 10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전에서는 2경기 연속으로 거하게 털렸다. 2경기 모두 실점을 허용하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1.56에서 2.08로 급증했다. 그리고 11일 디트로이트 타이커즈 전에서 등판하여 선두 타자 미겔 카브레라에게 추격의 솔로 홈런을 맞은 데 이어, 1사 후 빅터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솔로 홈런을 허용하며 '''또'''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ML 데뷔 후 커리어 최초 3경기 연속 블론세이브. 시즌 평균자책점도 2.44까지 올랐다. 이번 시즌 블론세이브가 5개인데 최근 11경기에 무려 4개를 기록 중이며, 이 기간 동안 평균자책점 5.25에 홈런을 4개나 허용하며 급격하게 구위가 저하된 모습이다.
9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에서 1.2이닝 무실점 세이브를 기록하면서, 통산 650번째 세이브를 달성했다. 시즌 42세이브를 기록하면서, AL 세이브 부문 선두 짐 존슨과 1개 차이로 줄였다. 다음날 세이브를 달성하며 AL 세이브 부문 공동 선두가 되었다!
2013년 9월 22일 일요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그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기사 시즌 잔여 경기가 6경기나 남아 있었지만[13]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일요일에 은퇴식을 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그의 등번호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이 행사에는 조 토레 전 양키스 감독, 마쓰이 히데키, 데이비드 콘, 버니 윌리엄스, 티노 마르티네스, 호르헤 포사다 등 예전 동료들과 더불어 리베라의 등장 음악인 Enter Sandman을 부른 메탈리카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그리고 전 구단 영구결번 42번의 주인공인 재키 로빈슨의 부인인 레이첼 로빈슨 여사와 딸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덤으로 앤디 페티트도 이날이 은퇴 선언 이후 양키 스타디움 마지막 등판 경기였기 때문에 팬들에겐 남다른 하루가 되었을 듯하다. 이 날 리베라는 1.2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9월 26일,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양키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경기 8회 1사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울려퍼진 Enter Sandman과 함께 등판했다. 9회 2사까지 출루 허용없이 아웃 카운트 4개를 잡은 상황에 양키스 더그아웃에서 투수 교체 사인을 보냈다. 다만 특이하게 리베라를 교체시킬 때 감독이나 투수 코치가 아닌 '''앤디 페티트와 데릭 지터가 올라왔다'''. 이에 리베라는 웃음을 지어봤지만, 이내 페티트에게 안겨서 펑펑 울었고, '''이 장면에 전미가 울었다.''' 내려올 때부터 커튼 콜이 끝날 때까지 모든 관중이 일어나 떠나는 세이브왕에게 기립 박수를 쳤고, 리베라는 모자를 벗으며 화답했다.
리베라의 은퇴 경기. 이처럼 감동적이고 명예로운 장면은 아마도 드물 것이다.
이후 시즌 마지막 원정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잘하면 리베라가 '''외야수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사가 나왔'''었'''다. 조 지라디 감독이 3연전 중 한경기에 리베라를 중견수로 1이닝 정도 쓸 의향이 있는데, 8회에 중견수, 9회에 마무리로 나올 가능성이 언급되기도 했다. 기사 하지만 리베라 본인 스스로가 더 이상 등판할 계획은 없다라고 밝혔으며(기사),[14] 휴스턴과의 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도 리베라가 중견수로 나오는 일은 없었기에[15] 결국 9월 26일 양키 스타디움 등판이 리베라의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시즌 후반에 접어들며 역시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 건지 구원 실패가 꽤 많이 늘긴 했다. 평균 자책점도 2008년 이후로 제일 안 좋지만, 수비 무관 평균 자책점인 FIP는 3.05로 1998년(3.48)과 2000년(3.28) 다음으로 가장 높은 기록이다. 피홈런율(0.84), 홈런/플라이 볼 비율(10.2%) 모두 메이저 경력 평균의 약 1.6배[16] 에 육박하며, 무엇보다 블론 세이브가 7개이다. 세이버 매트릭스 사이트 팬그래프에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안 좋은 기록이다. 물론 자책점과 FIP, 블론 세이브 모두 리베라치고 좋지 않다는 거지, 보통 투수가 저 정도라면 준수하다 못해 생애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그렇게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6승 2패 44세이브 ERA 2.11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무리 투수이지만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규정 이닝(1000이닝)을 돌파했기 때문에 통산 조정 평균 자책점이 1위이다(205). [17] 그런데 이는 그만큼 등판도 자주 했다는 소리이기에 보스턴 중심 타선에게 어느 정도 패턴이 간파되어 시즌 초 간혹 헤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러 홈 플레이트에서 멀찍이 떨어져서 몸쪽으로 붙어 들어오는 커터를 공략하지만 그럴 경우엔 그냥 바깥쪽으로 제구를 하기 때문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래도 불혹이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메이저리그 최고급의 마무리로 활약했다. 야구에서 마무리 투수로 장수한다는 것은 매우 대단한 일인데, 기록의 내용도 전설.
2004년 팀 동료였던 크리스 니코스키의 리베라에 대한 회고
3. 포스트시즌에서의 대활약
[image]
정규 시즌에도 강력한 마무리가 포스트시즌에 나가면 그야말로 언터처블이 된다.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은 96경기, 141이닝 8승 1패 '''42세이브,[18][19] ERA 0.70!''' WPA로 따져보면 더욱 사기적인데 리베라의 통산 포스트시즌 WPA는 무려 '''11.7!''' 불펜 투수들중 2위 기록은 2.7이고 선발 1위라는 커트 실링이 4.1, 타자 1위라는 데이비드 오티즈가 3.2를 기록했다. 이런 활약으로 1999년 월드시리즈 MVP, 2003년 ALCS MVP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9년 포스트시즌에도 12경기 등판, 16이닝 1실점, ERA 0.56에 14삼진으로 명불허전의 모습을 보여줬다. 필 휴즈, 조바 체임벌린 등 양키스 셋업 맨들이 부진하자 아예 8회부터 나와서 상대 타선을 틀어막기도.[20] 이렇게 오랜 기간 플레이오프를 뛰어 왔음에도 위력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진정한 'Mr. October'. 트레버 호프먼과 리베라를 비교할 때면, 늘 이런 포스트시즌의 강력함을 가지고 리베라가 우위라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포스트시즌이 아닌 리그 커리어만 따져도 확실히 리베라가 위긴 하다. 커리어 ERA를 따져도 리베라가 2.21, 호프먼이 2.87로 리베라가 더 낮고 이닝, 세이브수 등 모든 지표에서 리베라가 우위를 점한다.[21] bWAR만 해도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삼진, FIP을 중시하는 fWAR은 리베라가 두 배 이상 높다. 세부 성적만 보면 리베라-호프먼 간의 격차보다 호프먼-와그너 간의 격차가 더 작다. 물론 그렇다고 호프먼이 안좋은 선수란 건 절대 아니다.[22]
하지만 리베라에게도 포스트시즌 흑역사 세 번이 있는데 하나는 2001 월드 시리즈 7차전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아 월드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것. (당시 영상을 보면 2루-유격수 사이를 뚫고 나가는 안타로 끝내기인걸 직감한 리베라가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씨익 웃는다) 또 하나는 2004 ALCS 보스턴 원정 4, 5차전에서 연속으로 블론 세이브를 한 것. [23] 이 당시 친척이 상을 당해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게 보스턴의 역사를 바꿀 줄이야. 그리고 1997년 클리블랜드와의 디비전 시리즈, 2승 1패로 앞선 4차전 8회 말 2아웃 2-1 리드 상황에서 인디언스 포수 샌디 알로마 주니어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한 것. 9회에는 라미로 멘도사가 나와 패전 투수가 됐고, 이어 5차전도 인디언스가 승리하며 양키스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4.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야구와 전혀 무관한 삶을 지내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인이라 자선 활동을 하고 있으며, 3월 6일 소식통에서는 NEW ROCHELLE에서 교회 재건축을 위해 3백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알려졌다.
아들인 마리아노 리베라 3세가 2014 드래프트에서 양키스에 29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2013 시즌 후 시애틀 매리너스와 장기 대형계약을 맺으며 양키스를 떠난 로빈슨 카노에게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같은 지구 앙숙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더 낫다고 했을 정도. 여기에 대해서 팬들은 2013 시즌 후 은퇴한 자신과 2014 시즌 후 은퇴할 데릭 지터가 양키스를 떠나면 새로운 양키스 캡틴이자 양키스의 간판으로 카노가 되어주기를 바랐는데 협상 난항 끝에 양키스를 떠나버리자 섭섭한 마음을 드러낸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4년 11월 초 모 헤드폰 회사의 프로모션으로 내한 하기로 했으며, 11월 12일 네이버 스포츠 라디오 mlb쇼에서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하며 공개방송이 예정됐지만 공개방송은 취소됐다. 이벤트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장소는 영등포 타임스퀘어.
2014년 11월 14일 휘문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또한 2014년 한국시리즈가 7차전까지 가게 될 경우 7차전의 시구를 그가 직접 하는 것으로 예정됐었지만 6차전에서 끝나 취소됐다.
민주당 지지성향이 강한 파나마계 미국인 그룹에서는 보기 드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2020년 3월, 몇 달간 큰 이슈를 만든 2019 MLB 사인 훔치기 스캔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의해 다소 가라앉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를 피트 로즈의 승부조작 사건과 비교하며 크게 비판했다.# 여담으로 이 소식을 전한 야후스포츠의 반응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휴스턴의 행동을 비판하면서 "만약 리베라가 휴스턴을 상대했다면 사인훔치기는 큰 문제가 안됐을 것이다. 타자들은 리베라가 커터를 던질 줄 알면서도 리베라를 공략하지 못했다."라며 리베라의 위용을 각인시켰다.
5. 피칭 스타일
데뷔부터 96~7년경까지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투 피치 조합이었다가, 커터를 익히고 투심을 추가하며 슬라이더를 버렸다. 즉, 포심 '''패스트볼''', 컷 '''패스트볼'''(커터), 투심 '''패스트볼'''까지 속구 세 개만 던졌다.
2006년까지만 해도 투구 비중이 약 1:1에 가까웠으나 2007년에 3승 4패 ERA 3.15 30세이브 4블론으로 '''커리어 로우'''급 기록을 찍은 후 점차 커터 비중을 늘려 가며 리바운딩에 성공했다. 2008년의 구질 구성을 보면 포심+투심 18%, 커터 82%, 2009년은 포심+투심 7%, 커터 93%, 2010년은 포+투심 15%, 커터 85%. 이렇게 커터 비중을 늘려 가는데도 피칭 밸류에 있어서 오히려 투+포심과 더불어 비중이 대폭 증가한 커터까지 점수가 올라갔다. 사실상 타자들 입장에서 구질은 다 아는 '''원 피치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알고도 정타를 만들 수 없는 리베라의 괴물 커터의 위력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
5.1. 역대 최강의 커터 달인
[image]
'''리베라의 주 무기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유연한 투구폼에서 나오는 자신만의 특유한 그립을 가진 커터이다.''' 뉴욕 타임즈에서 'How Mariano Rivera Dominates Hitters'라는 이름으로 리베라를 분석한 동영상이 있다. 2010년 기사이긴 하지만 리베라 표 커터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패스트볼 항목에 들어가 컷 패스트볼 부분을 보면 알겠지만, 보통 투수들이 던지는 커터는 슬라이더와 비슷한 그립이다. 결국 커터는 공을 횡방향으로 휘게 만드는 구질이다. 따라서 공에 횡방향 회전을 주기 위해서는 슬라이더처럼 공의 실밥이 손가락과 세로로 겹치게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손가락이 횡으로 움직일 때 실밥이 손가락에 걸려 공에 횡방향 회전을 주려는 팔꿈치와 손목의 회전이 제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image]
슬라이더 그립.
반면 보통 포심 패스트볼 그립은 실밥을 손가락과 직각으로 걸치는데, 이렇게 하면 손가락이 공의 밑을 긁으며 공의 진행 방향과 같이 움직일 때 실밥이 손가락에 걸려 손가락에 의해 전달되는 힘이 온전히 백 스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심 패스트볼 그립으로는 커터나 슬라이더처럼 횡방향 움직임을 크게 줄기 어렵다. 물론 포심 패스트볼의 횡방향 변화량이 큰 투수들도 있지만, 그런 투수들의 포심도 커터처럼 작정하고 던지는 무빙 패스트볼만큼 큰 움직임를 보이지는 않는다.
[image]
포심 패스트볼 그립.
[image]
커터 그립. 보면 알겠지만 포심 패스트볼 그립과 큰 차이가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보통투수들이 이렇게 공을 잡으면 손가락이 횡방향으로 움직일 때 실밥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공을 상대적으로 헛긁게 되고 횡방향 움직임이 떨어지게 되지만, 리베라는 엄청난 손가락 힘, 특히 중지 손가락 힘으로 이런 단점을 무시한다. 어마어마한 손가락 힘이 보통 사람은 공에 줄 수 없는 추가적인 힘을 전달해 횡방향 회전을 주는 것.
사실 리베라는 포심을 던질 때부터 이런 횡방향 움직임을 보였으니, 자연히 리베라의 커터는 남들과 다른 그립일 수밖에 없다. 리베라는 당시 팀메이트인 라미로 멘도사와 캐치 볼을 하다가 그 선수가 공이 자꾸 오른쪽으로 온다며 불평한 데에서 자신만의 커터 그립을 개발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의 주력 구종은 포심과 슬라이더였지만 이 커터를 습득한 이후 그는 '''전설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서클 체인지업이나 투심도 던지게는 됐지만 역시 리베라 하면 커터, 커터 하면 리베라.
종합해 보면 리베라의 커터는 일반적인 투수들은 따라할 수 없으며, 사실상 변형 포심 패스트볼에 가깝다. 때문에 전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 현 볼티모어 오리올스 단장인 댄 듀켓이 '리베라의 커터는 커터가 아니라 포심 패스트볼이다'라고 주장한 것도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 사람은 커터 무용론을 펼치며 리베라의 커터는 리베라만 던질 수 있는 구종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포심 패스트볼 그립으로 커터를 던지면 유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상에도 나오지만 우선 투구 폼으로 구종을 판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포심을 던질 때 백 스핀에 집중되는 팔꿈치와 손목의 힘을 횡회전으로 돌리는 게 아니라 손가락 힘을 더해서 횡회전을 만들어 내는 것이므로 포심 패스트볼과의 구속 차이도 적고 횡회전을 위해 백 스핀을 희생하기 때문에 공의 수직 무브먼트, 덜 떨어지는 정도를 포기하는 다른 투수들의 커터와 달리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포심 수준의 수직 움직임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리베라의 커터도 횡회전에 어느 정도 팔꿈치와 손목의 힘은 필요하기에 리베라의 커터도 리베라의 포심보다는 약간 느리긴 하다. 다른 투수들처럼 그 차이가 심하지 않아서 그렇지. 또 수직 움직임의 경우 땅볼 유도를 위해 리베라는 일부러 커터의 수직 움직임을 죽여서 던진다. 양키스 구장은 홈런이 잘 터지는 타자 친화형 구장이기 때문이다.
이후 리베라는 자신의 커터를 여러 투수들에게 전수를 해 주었지만 원조만큼 뛰어난 사용자는 전무할 정도. 리베라의 커터처럼 구속과 무브먼트를 모두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처럼 타고난 손가락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베라 이후 수준급 커터를 던지는 투수로는 로이 할러데이와 크리스 카펜터가 유명한데 할러데이는 움직임이 리베라보다 적고 카펜터는 포심과 구속 차가 4마일 가량으로 많이 난다.
2010년대 들어 리베라의 후계자 소리를 듣는 선수는 오히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켄리 잰슨. 리베라처럼 전체 투구 중 90% 가까이 커터를 던지는, '칠 테면 쳐봐' 식의 피칭 스타일이나 마무리에서 오히려 더 능력을 발휘하는 강심장이 리베라와 흡사하다. 또 잰슨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계속 바깥쪽으로 휘어져서 고민했었다는 비화까지 리베라와 똑같다. 바꿔 말하면 리베라의 손가락 힘과 재능을 잰슨도 타고났다는 이야기. 게다가 잰슨에게 커터를 가르쳐 준 사람은 양키스에서 코칭 스태프, 불펜 포수로 일하며 리베라의 커터를 수없이 받아 본 마이크 보젤로였다. 당연히 보젤로가 잰슨의 모델로 삼았던 선수도 리베라이고, 잰슨은 보젤로와 함께 리베라의 비디오를 분석하거나 리베라의 투구 이론에 대해서 듣거나 하며 커터를 향상시켰다. 이런 점에서 잰슨이 리베라에게서 간접적으로 커터를 배웠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잰슨은 타자 구장인 양키 스타디움과 달리 투수 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에서 활동하므로 홈런을 두려워하지 않고, 리베라와 달리 로버슨처럼 공의 수직 움직임을 살려 탈삼진 위주의 피칭을 한다. 물론 잰슨이나 로버트슨이나 당대의 뛰어난 마무리는 될 수 있어도 리베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선수들이며, 따라잡으려면 한참 멀었고 그 확률도 지극히 낮다.
간혹 상황에 따라 90마일 중반대 패스트볼이나 투심을 가미하는 경우가 있다. 리베라의 커터는 좌타자 몸쪽을 귀신 같이 파고들어 배트를 쉽게 부숴버려서 '배트 파괴자(Bat Breaker)'라는 칭호가 붙었다.
[image]
'''방망이 깎던 노인'''. 자세히 보면 수많은 투구 영상을 겹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릴리즈까지 동작이 거의 하나로 일치하는 걸 볼 수 있다. 부드럽고 안정적인 딜리버리 자세를 계속 유지하던 것이 리베라의 강점 중 하나였다.
그 커터 자체도 투구 분석을 다 해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횡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커터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종적''', 그러니까 스플리터보다 보다 예리한 움직임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종커터까지 섞어 던진다. 아래로 떨어지질 않나, 바깥으로 빠지질 않나, 몸쪽으로 파고들질 않나 타자 입장에선 아주 환장할 노릇. 참고로 스스로가 밝히길, 자신이 쓰는 커터 구질은 '''하나 더''' 있다. 이는 '''포스트시즌에만 던지는 커터'''이며 '''스위퍼'''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기존의 커터보다 횡무브먼트가 더 강해진 커터인데, 이미 커터의 달인을 넘어 커터의 신이라 부를 경지에 오른 셈.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성적이 좋아진 비결 중 하나가 있었는데, 포심과 컷 패스트볼의 구속 차이가 한 선상에서 '''수렴'''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95마일이던 포심 패스트볼이 4마일이나 구속이 떨어질 동안, 컷 패스트볼은 93마일에서 '''2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아 두 구종은 사실상 같은 속도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또한 컷 패스트볼의 궁극적 목표는 포심인 줄 알고 타자가 휘두르길 바라는 구종이라는 것인데 같은 속도로 들어오는 만큼 리베라에게 있어서 득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구속이 많이 죽은 상태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도 여전히 '커터'는 91마일을 넘었고 몇몇 전문가들은 오히려 이 줄어든 구속 때문에 3~4 마일 정도 차이나던 커터와 패스트볼의 구속이 일치하게 되어 더 구분이 안 되는 통에 나이 40이 넘어서도 공략이 어려운 투수가 되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5.2. 뛰어난 제구력
커터에 대한 얘기만 계속했지만 리베라의 강점은 또 하나 있다. 오히려 이것이 커터보다 위력적일 수도 있는데... 리베라의 '한 시즌' 가운데 몰리는 실투는 한 자릿수에 불과할 정도로 제구가 뛰어나다. 한 게임을 분석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공이 코너에만 들어갈 정도. 코너웍 제구가 안 돼서 볼이 빠지면 빠졌지 가운데로 몰려서 큰 거 맞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보기 힘들다. 가뜩이나 커터의 회전이 엄청나서 까다로울 지경인데, 이러한 공이 도무지 정면으로는 오지 않고 코너로만 파고 들어오니 타자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악마같은 코너웍을 구사해 리베라 상대로는 스위치 히터가 좌타석에 안 들어서고 우타석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다.
6. 기타
- {{{#!html
}}}
2013년 9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 전, 리베라 영구결번 기념 행사로 메탈리카가 리베라의 등장곡인 Enter Sandman을 직접 연주했다. 메탈리카 멤버들이 자이언츠 팬[24] 이라 일부러 이 경기에 초청했다. 양키스 유니폼입기 싫으니까 유니폼에도 메탈리카라고 적힌걸 입었다.
- 메탈리카의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을 등장 테마로 쓰는 걸로 유명하다. 메이저리그 내에서 트레버 호프먼의 등장 음악인 AC/DC의 '지옥의 종소리(Hells Bells)'와 함께 가장 유명한 등장 음악 중 하나. '빌리 더 키드' 빌리 와그너도 엔터 샌드맨을 자신의 테마로 썼다[25] .
- [image]
2013년 7월 2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이색적인 의자를 선물받았는데, 바로 부러진 배트로 만들어진 의자. 명칭은 '산산조각이 난 꿈의 의자'라고 한다. 치퍼 존스의 은퇴 이후 각 구단은 위대한 스타 선수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원정지를 돌 때 선물을 주곤 하는데 당시 상대 팀인 미네소타 트윈스 구단 측에서 선물로 준 의자가 바로 이것. 리베라의 주무기인 커터로 타자들의 방망이가 자주 부러진 것에서 착안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 2013년 9월 15일 보스턴 레드삭스 원정에서도 레드삭스가 리베라의 은퇴 기념 행사를 열어줬는데, MLB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면 초반은 레드삭스가 2004 ALCS에서 리베라를 무너뜨린 이야기를 회상하고 있다(...).
- {{{#!html
}}}
비록 리베라는 양키스와 야구계를 떠나지만 뉴욕 브로드웨이 4번 가 모퉁이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겨 양키스 팬들은 계속 그를 기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2014년부터는 아메리칸 리그 구원 투수상을 '마리아노 리베라 구원 투수 상(Mariano Rivera American League Reliever of the Year Award)'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내셔널 리그는 '트레버 호프먼 구원 투수 상(Trevor Hoffman National League Reliever of the Year Award)'. 1976년부터 2006년까지 양대리그 구원투수상이 있었으나, 2005년에 DHL Delivery Man of the Year이 갑툭튀, 2013년까지 리그 합쳐 1명만 수상했었다. 어찌보면 이전의 양대리그 구원투수상이 부활한 셈.
- [image]
-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한테 안타를 맞은 적이 있다.
- 현역 시절 대표적인 천적이 있는데, 2019년 같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에드가 마르티네즈다. 둘의 상대전적은 19타수 11안타(홈런 2개, 2루타 3개), 볼넷 3개, HBP 1개다. 그래서인지 리베라는 10수 끝에 헌액된 에드가에게 농담 삼아서 "내 공이 크니 저녁을 사달라"는 말을 했다.
- 2019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유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대통령 자유메달은 미국의 국가안보 및 세계평화, 문화적 기여 등을 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미국에서 민간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 훈장이다. 리베라는 현재 미국 대통령 자문기구인 스포츠피트니스영양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리베라는 트럼프 아들과 함께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선거 자금 모금을 주도하기도 했다.#
6.1. 가족
- 슬하에 3남이 있다. 부인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귀고 지낸 소꿉친구로 리베라처럼 독실한 크리스천이다.[26] 본인 말로는 야구선수가 안 되었다면 선교사가 되었지 않았을까 한다고. 인터뷰에서 '난 아무런 능력이 없다. 그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도와주실 뿐이다.'라고 밝혔다. 글러브에 성경 구절을 새겨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27]
- [image]
리베라의 큰 아들인 마리아노 리베라 3세는 현재 아버지와 같은 우완 투수로 활동 중이다. 외모가 젊은 시절의 리베라하고 판박이다. 그리고 2014년 드래프트에서 양키스에게 29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 마리아노 리베라의 아버지의 이름도 마리아노 리베라이다. 큰 아들의 이름도 마리아노 리베라. 그래서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그의 아버지를 Mariano Rivera Sr., 자신을 Mariano River Jr.라고 썼는데 은퇴하면서 아버지 얘기보다는 야구를 하는 아들 얘기가 더 많이 나오다 보니 본인이 Sr.가 되었다. 아들의 Legal name은 Mariano Rivera III 라고[28] .
- 리베라의 사촌동생인 루벤 리베라도 메이저리거 출신으로 90년대 말 양키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9] 에서 외야수로 활약했다. 이 루벤 리베라는 클럽하우스에서 데릭 지터의 물건을 훔쳐서 팔다가 적발, 방출되었다.
- 2019년 2월 AP통신은 20일(한국시간) 리베라가 혼외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고국인 파나마 사법당국의 출석 요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리베라는 파나마 언론을 통해 이러한 혐의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 뒤 "나는 항상 좋은 아버지로 행동해왔다"고 강조했다. 혼외자 측 변호인인 요바니 오르테가는 통신을 통해 "리베라는 사법당국의 출석 요구에 응하는 대신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만들려고 미디어 앞에 섰다"며 비난했다. 오르테가는 리베라가 2년 전부터 혼외 자녀인 11살 아들과 15살 딸에 대해 발길을 끊은 것은 물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6.2. 패션
사복 패션이 영 괴상하고, 보기 안좋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가히 메이저리그 최악의 패션 테러리스트. 그래서 팬들은 평상시에도 경기 유니폼을 입고 다니라고 할 정도. 수트를 입으면 그래도 괜찮다.
[image]
루키 카드.
[image]
브롱스 스타일.
[image]
2014년 11월 11일 내한 당시.
허나 은퇴 후 수트 및 포멀룩을 자주 입는지라 꽤나 패션감각이 나아졌다는 평은 듣는다. 장족의 발전을 보여준 현재
7. 명예의 전당 입성
마리아노 리베라는 누구나 무난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교척도이자 기준이 될 트레버 호프먼이 3수 끝에 턱걸이 입성에 성공했기에 약물이 드러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의 대형사고가 없는 한 마리아노 리베라 역시 명예의 전당 입성은 당연할 것이다. 호프먼도 첫 턴에서는 물을 먹었기에 리베라마저도 첫 턴에 안 되면 대체 마무리는 누가 첫 턴이 될 수 있냐는 이야기가 나올 상황이었다.[30]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기우였다는 듯, 사전 집계 결과 '''만장일치''' 득표를 기록하였다.[31] 물론 사전 집계 특성상 득표율이 내려갈 확률이 높지만 적어도 90% 중반대 득표율이라는, 불펜투수로서는 상상도 못할 득표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1월 19일 45.1% 투표 시점에서도 여전히 100%로 만장일치.
그리고 현지시간으로 2019년 1월 22일, 최종 득표율 '''100% 만장일치'''로 입성에 성공하였다. 이로써 최초의 만장일치 명예의 전당 입성자가 되었다. # 단, 1명은 기권.
7.1. 명예의 전당 만장일치 논란
만장일치에 관해서 논란은 있는 편. 리베라가 아무리 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지만, 어디까지나 불펜인데, 굳이 타자는 포함하지 않고 투수로만 줄여도 선발인 랜디 존슨이나 그렉 매덕스조차 기록하지 못한 투표율 100%가 합당하느냐 하는 것. 요지는 '''1,200이닝 마무리 투수가 5,000이닝 선발투수보다 위대한가?''' 하는 논란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들 끼리도 득표율이나 도전 횟수 등으로 은근히 우열을 가리는 성향이 있다보니 나오는 논란이다.
원인은 빅유닛이나 매덕스가 입성했을 때와는 달리, 2016년부터 은퇴한지 오래 된 기자들이 선거인단에서 대거 제외되면서 보수적인 기자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 그래서 만약 존슨이나 매덕스가 리베라와 비슷한 시기에 은퇴했더라면 득표율 100% 달성이 가능했을 거라는 의견도 많다. 보수적인 기자들 중에는 아무 이유 없이 1회차에 올라온 선수에게는 투표하지 않는 식의 꼰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명예의 전당 입성 투표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기는 매우 쉬워지는 추세다. 예컨대 최초의 5인에 속한 월터 존슨만 봐도, 리베라의 기록조차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위대한 업적을 쌓았는데도[32] 83% 득표에 그쳤다[33] . 상술했듯 투표인단이 많이 축소됐고, 이 과정에서 투표권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그 베이브 루스와 타이 콥도 100%를 찍지 못했는데 네가 감히' 라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유력 입성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 기자들도 상당수 있었기에 리베라는 어느정도 간접이익을 봤다. 그러므로 2010년대 후반 이후로는 첫턴 입성에는 여전히 의의를 둘 만하지만, 득표율 가지고 선수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기는 매우 힘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리베라가 100% 득표에는 성적 이외의 분야, 좋은 이미지라든가 마무리 투수라는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1인자의 위치를 고수했다는 상징성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WAR로 보자면 명전 투표에서 계속 물먹고 있는 커트 실링이 리베라보다 뛰어난 투수다. 하지만 실링은 계속해서 트위터로 인생을 낭비하고 쓸 데 없는 언플에 극우파 성향까지 보여서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궈버렸고, 리베라는 그와는 정반대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했기에 이런 차이가 났던 것.
결국 리베라는 '''양키스 후광 효과, 변화하는 HOF 분위기, 때마침 투표인단 축소, 본인의 좋은 이미지''' 등 여러요소가 합쳐져 위로 더 압도적인 성적을 올린 선발투수 명예의 전당 입성자들도 못받은 만장일치를 마무리 투수로 받은 것이다.
8. 연도별 성적
8.1. 정규시즌
'''파란색'''은 구단 내 역대 1위, '''빨강색'''은 MLB 역대 1위.
8.2. 포스트시즌
빨강색은 MLB 역대 1위.
[1] 그는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그의 자서전 <더 클로저>에서 이를 볼 수 있다.[2] 652세이브[3] 당연히 슈퍼 마리오에서 따온 것이다.[4] 통계 사이트에서는 투수의 비율 스탯 규정 이닝을 1,000이닝으로 잡지만 MLB에서는 2,000이닝으로 잡는다.[5] fWAR은 불펜 투수들 중 2위와 10 이상, bWAR은 6, WPA는 20이상 차이가 난다.[6] '''"시퍼런 애송이를 어케 믿어! 웨틀랜들 잡앗!!''' / 진정하십쇼 보스! / 리베라 빨리 올라가!" - 당시 보스는 자숙기간... 최훈의 MLB 카툰에서[7] 존 웨틀랜드는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해서도 괜찮은 활약을 했다. 당연히 전년도 주전 마무리이자 월드시리즈 MVP가 물러난 뒤에 들어온 쌩판 모르는 뉴비가 제대로 공백을 메꾸지 못하고 불이나 지르니 폭발하는것이 당연했다.[8] 마지막 승리투수는 앤디 페티트, 양키스의 마지막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데릭 지터.[9] 이날 경기 전까지 리베라가 홈에서 마지막 블론세이브를 범한 것은 2007년 8월 14일이었다.[10] 2012년 치퍼 존스가 은퇴할 때도 정말 엄청난 선물 공세가 이어졌었는데, 리베라도 원정 경기 때 상대하는 홈 팀 관중들이 어마어마한 환대를 보였다.[11] 리베라는 2000년대 후반부터 스프링 캠프 때 "올해까지만 하고 은퇴할 거임"이라는 인터뷰를 매번 하곤 했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번복한 건 아니기에 은퇴 번복이라고 까기는 애매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은퇴 번복이라 할 수 있는 행동을 종종 했기에 더더욱 이런 느낌이 강하다.[12] 사무엘 잭슨은 경기에 앞서 다저스 라인업을 소개했고, 호날두는 시구에 임했다.[13] 덕분에 처음으로 '''현역 선수가 영구결번에 지정되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14] 양키 스타디움 마지막 경기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은 마음과 2012년 십자인대 부상 재발 우려가 겹쳤기 때문이다.[15] 커티스 그랜더슨이 3연전 모두 풀 타임 중견수로 활약했다.[16] 메이저 평균 피홈런율 0.50, 홈런/플라이 볼 비율 6.5%[17] MLB닷컴의 비율스탯 규정이닝은 2000이닝.[18] 공교롭게도 자신의 등번호와 똑같다.[19] 이 중 31세이브가 1.1이닝 이상 투구하여 달성한 세이브이다![20] 경기당 이닝을 계산해 보면 대략 두 경기에 한 번은 2이닝 등판을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양키 왕조 당시 양키스의 플레이오프 득실마진은 내셔널리그에 왕조를 구축하고도 WS 우승은 1회에 그쳤던 브레이브스의 득실 마진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인데, 양키스가 더 많은 영광을 차지했던 것은 접전 상황에서 리베라를 마음껏 갈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 야구에서 양키스를 상대하는 팀 입장에서 양키스의 단 한 선수를 빼게 한다면 압도적으로 리베라가 꼽히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21] 설령 ERA가 비슷하다고 해도 아메리칸 리그 동부와 내셔널 리그 서부의 화력, 그리고 최고의 투수구장인 펫코 파크에서 호프먼이 뛰었다는 걸 감안하면 리베라가 더 우위를 점할텐데 ERA까지 0.6 이상 더 낮으니 말 다 한거다. [22] 호프먼은 1998년 월드 시리즈 3차전과 2007 내셔널 리그 와일드카드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두 번 모두 2점 리드를 안고 등판해서 3점을 내주며 무너진 적이 있다. 아래 후술한 리베라의 포스트시즌 흑역사만큼 많이 회자되는 블론 세이브다.[23] 다만 5차전은 1점차 무사 2,3루 상황에서 등판했다.[24] 메탈리카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산다.[25] 샌드맨(Sandman)은 서구동화에 나오는 '잠의 요정'으로 빛나는 모래가 담긴 주머니를 차고다니는데 이 주머니에서 꺼낸 모래를 사람에게 뿌리면 그 사람은 잠이 든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타선을 잠재우는 존재"라는 뜻.그리고 샌드맨은 어린이들이 꾸는 악몽이란 의미로 리베라의 등판이 곧 상대팀에게는 악몽이란 의미이다.[26] 아내는 오순절교회 신자.[27] 리베라는 은퇴 후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선교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28] 이와 비슷한 것으로 조지타운 대학 농구팀 감독인 존 톰슨 John Thompson III은 아버지였던 존 톰슨 2세 John Thompson II의 이름을 썼고 할아버지의 이름 역시 존 톰슨 John Thompson이었다. 미국에서는 아버지나 조부의 이름을 아들이나 손자가 써도 무방하다.[29] 이라부 히데키의 권리를 양키스로 팔 때 그 맞상대로 지목되어 트레이드 되었었다.[30] 세이브 개수는 호프먼, 리베라가 큰 차이가 없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세이버메트릭스를 동원하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대부분의 지표에서 리베라가 압도하는데다가 리베라는 타자구장인 양키 스타디움을 홈으로 사용했고 호프먼은 투수구장인 펫코 파크를 사용했다. 그래서 fwar은 무려 두 배나 차이가 난다.[31] 명예의 전당 사전 집계 사이트인 BBHOF Tracker 집계, 전체 투표 32.0%[32] 레퍼런스에서나 팬그래프에서나 존슨의 통산 WAR은 리베라의 WAR의 3배 수준이다. 물론 선발투수와 구원투수라는 포지션 차이가 있긴 했지만, 이건 리베라가 선발투수로서 성공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통계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구원투수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견실한 선발투수만 못한 건 사실이므로...[33] 사실 이건 월터 존슨의 정이 많은 이미지, 동 시대 사람들보다 부족한 임팩트, 부드러운 젠틀맨 이미지로 인해 이 정도에 그친것이다. [34] 규정 1000이닝 이상[35] mlb.com 공홈에선 1999년부터 집계[36] 7차전 이전 까지만해도 무실점 무블론의 엄청난 마무리였지만, 결국 7차전에서 1점차를 지켜내지 못하며 역적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