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더 키드
1. 개요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매카티 주니어로, 흔히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서부 개척시대 때 활동했던 범죄자.
2. 상세
2.1. 전설적인 총잡이
서부개척시대였던 1859년에 태어난 빌리 더 키드는 어릴 때부터 비범했다. 12살이 되던 해, 자신의 어머니를 강간한 남자를 자신이 평소 들고 다니던 접이식 나이프로 찔러 죽였는데 빌리의 '''첫 살인'''이었다.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 후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15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그러나 빌리는 탈옥에 성공했고, 이후 경찰과 보안관들이 체포하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사망할 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빌리는 1877년 뉴멕시코주 링컨 카운티의 존 턴스톨이라는 인물의 밑에 들어가 존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다. 바로 경쟁자들을 처단하는 것. 존 턴스톨의 상점은 승승장구하였으나 존의 사업을 방해하는 두 사람, 10년 전부터 링컨 카운티의 상권을 주름잡던 로렌스 머피, 제임스 돌런이 바로 눈엣가시였다. 물론 그 두 사람도 존 턴스톨을 탐탁치 않아 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1878년 2월 18일에 마을 보안관 윌리엄 브래디에게 뇌물을 줘서 상거래 문란 혐의로 존 턴스톨을 체포하여 제거하고자 했다. 이때 존 턴스톨은 체포 과정에서 보안관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자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그리고 여기서 빌리 더 키드가 역사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빌리 더 키드는 곧바로 존 턴스톨이 고용한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그의 복수를 결심, 보안관은 물론 로렌스 머피, 제임스 돌런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행동을 시작했다. 특히 보안관 윌리엄 브래디와의 혈투는 역사 속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었다. 하지만 결국 윌리엄 브래디와 로렌스 머피, 제임스 돌런을 모두 사살하는 데 성공한다. 물론 이 때문에 정부 당국에서 체포에 나서자 빌리 더 키드는 동료들과 함께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때 내걸린 현상금은 1천 달러. 현상금을 쟁취하기 위해 보안관 두 명이 달려들었으나 맨몸으로 이 둘을 제압하고 탈출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빌리 더 키드의 명성은 올라갔고, 그 누구도 그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빌리가 사망할 때까지 총 21명을 죽였다. 참고로 멕시코인, 인디언을 제외한 숫자로 그들을 넣으면 배로 올라간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그 후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살인과 강도짓, 경호원 일을 하며 삶을 연명했는데, 그러던 와중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3] 이라는 바텐더와 친해졌다. 허나 얼마 안 가 팻 개릿이 보안관으로 뽑히자, 빌리는 개릿에게 쫓기다가 1880년 12월 붙잡혔다.
그리고 개릿에게 붙잡힌 지 4개월 후인 1881년 4월 18일, 탈옥에 성공하고 이것이 뉴욕 타임스에 실려 유명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14일, 결국 그를 체포했던 팻 개릿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 또한 의견이 분분한데, 실은 탈옥에 성공해 숨어지냈다는 설이 있다.
위 내용과 같은 묘비가 세워졌다고 '잘못' 알려졌다.Truth and History.
진실과 경력.
21 Men.
21명을 죽인
The Boy Bandit King
소년 악당왕.
He Died As He Lived
그따구로 살더니 그따구로 죽은
William H. Bonney "Billy the Kid"
윌리엄 H. 보니 "빌리 더 키드"
2.2. 진실
우선 빌리 더 키드, 아니 윌리엄 매카티의 이야기는 살이 굉장히 많이 붙은 이야기다.
- 우선 윌리엄 매카티의 어머니 캐서린 데빈(Catherine Devine)은 그가 보는 앞에서 강간당한 적이 없다. 당연히 그가 12살이 되던 해에 살인을 저지른 적도 없다.
- 윌리엄이 처음 범죄를 일으킨 것은 15세였던 1875년 9월에 세탁소에서 옷과 총을 훔치다가 보안관들에게 체포된 것이다. 이 건으로 감옥에 들어갔으나 탈옥에 성공했다.
- 탈옥 이후 애리조나 주에서 목장일을 도우며 근근히 살아 갔는데 1877년 8월 17일, 자기를 괴롭히던 프랭크 케이힐[4] 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의 나이 17세.
- 이후 뉴멕시코 주로 달아난 그는 존 턴스톨의 밑에서 카우보이로 일하였다. 1878년 2월 18일에 존 턴스톨이 체포당하는 도중 저항하다가 보안관 윌리엄 브래디에게 총살당하자 그를 위해 복수를 결심했다. 그와 뜻을 함께하는 카우보이 동료 5명과 함께 1878년 4월 1일 식사 도중 발견한 윌리엄 브래디와 그의 부관 2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 이후 이들은 살인자로서 모든 도시인들의 적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들이 죽어나가자 윌리엄을 필두로 도주를 시도, 링컨 카운티를 벗어났다.
-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뉴멕시코 주지사로 부임한 루 윌리스가 링컨 카운티에서 벌어진 사건의 주모자들을 모두 사면해준다는 발표를 한다. 이때 윌리엄 매카티는 루 윌리스에게 자수의 편지를 보냈고 루 윌리스도 그를 사면해주려 했으나 지방검사가 주지사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사형을 구형, 판사도 이를 받아들이며 사형이 선고되었다.
- 1881년 4월 28일, 교도소에 갇혀있던 윌리엄 매카티는 교도관 제임스 벨과 로버트 올린저를 사살하고 탈옥에 성공한다.[5] 이때 뉴욕 타임즈에 윌리엄의 이름이 실리며 서부 제일의 무법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 그리고 현상수배가 되어 현상금 약 5백 달러가 걸렸는데, 뉴멕시코주 보안관 팻 개릿은 윌리엄을 3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찾아내는 데 성공, 포트 섬너(Fort Sumner)에 은거 중이던 빌리 더 키드를 발견하고 사살한다. 당시 무기도 없는 맨몸으로 먹을 것을 가지러 방에서 나왔다가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마지막 말은 "Quién es? Quién es?"(스페인어로 "누구냐? 누구냐?")[6] 참고로 팻 개릿은 바텐더로 일한 적이 없고, 윌리엄과 아무 일면식도 없었다.
- 그가 총 21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실제 살해한 수는 그 절반에 못 미친다. 혼자 살해한 것이 4명, 도움을 받아 살해한 것이 5명. 이렇게 된 건 그의 악명이 널리 퍼지면서 살인을 다 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란 주장이 있다.
- 또한 민간설화에는 성격 나긋나긋한 의적으로 표현되지만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비정한 미치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영화 '영건'에서 잘 묘사되는데, 자신과 뜻을 달리한 친구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 그리고 실제 그의 묘비는 다음과 같다.
3. 여담
- 현존하는 그의 사진은 두 장뿐이다. 위 독사진은 빌리 더 키드가 1879년~1880년에 뉴멕시코주 포트 섬너(Fort Sumner)의 사진관에서 25센트를 주고 찍은 사진인데 2011년 6월 25일 경매를 통해 230만 달러, 한화로 약 24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사진이 남을 수 있었던 건 빌리 더 키드가 친구 댄 데드릭(Dan Dedrick)에게 이 사진을 선물했고, 이후 댄 데드릭의 후손인 업햄(Upham) 집안이 소유하기 때문. 사진을 보면 알수있듯이 체형이 특이해서 어좁이에 엉덩이가 넓었는데, 이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또한 바로 위의 사진은 한 골통품 가게에서 단돈 2달러에 팔리던 사진이었는데, 2010년에 구매자가 감정을 의뢰해본 결과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한 빌리 더 키드의 사진으로 판정되었다. 이 사진은 5백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가 매겨져 있다.
- 2010년 뉴멕시코주의 주지사 빌 리처드슨은 빌리 더 키드의 죄를 사면해주고 그를 이용한 관광상품을 개발, 지역홍보에 활용하려 했으나, 피해자 후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 그의 가족으로 패트릭 매카티(아버지), 조셉 메카티(형제)가 있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빌리 더 키드는 실제로는 악명 높은 서부시대의 무법자였지만 전형적인 서부 총잡이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지라, 악역으로 등장할 때는 주인공이 쓰러뜨려야 하는 최종보스 내지 라이벌로 묘사되고 주인공으로 등장될 때는 안티히어로로 묘사된다.
- 1988년 영화 영건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빌리 더 키드 역은 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맡았다. 하지만 줄거리는 엄청 각색되었으며 찰리 신,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키퍼 서덜랜드, 더모트 멀로니,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같은 당시 청춘 스타들이 화려하게 나왔다. 배우들이 이렇다보니 실제인물과 달리 엄청 미화된 미남으로 나온다. 영화평은 별로였으나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하여 1990년에 2편도 나왔다. 1편에서는 톰 크루즈가, 2편에서는 존 본 조비가 총맞아 죽는 단역으로 나왔었다. #
- 1993년 얼라이브 소프트웨어라는곳에서 MS-DOS 게임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으며 게임의 시작은 감옥 탈출이고, 마지막은 팻 개럿을 상대한다. 전반적으로 탑뷰 액션이지만 감방탈출이나 노인의 광산 같은 에피소드는 횡스크롤 액션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점프할때 내는 '핫!' '핫!'소리가 일품. 일부 에피소드만 수록된 쉐어웨어버전이 돌기도 하였다.
- 심슨 가족 할로윈 에피소드에서 리사가 '윌리엄 보니가 21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만 보고 스프링필드의 총기를 없애는 운동을 했다가 이를 보고 부활한 빌리 더 키드와 일당[7] 에게 스프링필드가 점령당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 보드게임 중 하나인 와이어트 어프에도 등장한다.
- 유명 보드게임 뱅에서는 그를 기반으로 한 '윌리 더 키드'라는 캐릭터 카드가 있는데 특수능력이 한 턴간 쏠 수 있는 '뱅'의 횟수를 1에서 무제한으로 늘려주는 상당히 좋은 능력이라 4대 강캐릭터로 분류되었었다. 다만 확장팩 등장 이후엔 강캐릭터까지는 아니게 되었다.
- 콜 오브 후아레즈 : 건슬링어에도 등장. 팻 개럿과 총격전 중인 것과 4개월 뒤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 빌리 와그너의 별명 중에 이것도 있다.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은 빌리 더 키드에 대한 "The Ballad Of Billy The Kid"를 작곡하기도 했다.
- 그 밖에 샘 페킨파 감독의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1973)이 있는데, 한국 비디오 제목은 관계의 종말이란 해괴한 제목으로 나왔다. 그것도 1시간 넘게 삭제하고..
- 키아누 리브스 무명 시절에 나온 코믹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러 나라를 내왕하면서 인물들을 현대 미 합중국으로 데려온 주인공 둘 덕분에 현대 미합중국으로 오게 된다. 여기에서는 백화점에서 총기 코너를 보고 좋아라 총을 골라 천장에 쏘다가 경비원들에게 잡혀 끌려나간다.
- 영웅전희에도 미국 영웅 중 한사람으로 나온다.
- 무한 중독성으로 유명한 독일의 팝 그룹 징기스칸(가수)도 빌리 더 키드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위인 15명 중에 포함되어 나왔다. 다만 위에서도 나왔듯이 본질이 악당인 사람을 가지고 위인이나 영웅으로 나오는 점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건 아직 판단이 미숙한 유소년기 대상 시청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악역이 소환했다.
- 뉴타입에도 연재된 바 있는 시키 사토시의 만화 'RIOT' 에서 동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서부극 요소를 가미한 퓨전 판타지 만화이며 내용은 주인공이 훔친 마도서를 둘러싼 추격극 & 모험담. 빌리 더 키드 외에도 실존 인물에서 차용한 이름의 캐릭터들이 여럿 나온다. 액슬 로즈라거나 리치 에드워즈 등..
- 모바일게임 영웅 for Kakao에서는 빌리 더 키드를 모티브로 한 키드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 Fate/Grand Order에서는 아처 클래스로 등장한다. 빌리 더 키드(Fate 시리즈) 문서 참조.
- 영화 아임낫데어에선 밥딜런의 여섯 아이덴티티 중 하나로 등장한다.[8] 실제로는 사망하지 않고 생존해서 떠돌다 한 마을에서 정착했다는 설정. 굉장히 점잖고 진보적인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는 밥 딜런이 빌리 더 키드의 이야기를 좋아한 이유, 그리고 그의 사상을 대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추가로 밥 딜런은 샘 페킨파가 만든 빌리 더 키드 서부극인 관계의 종말에서 음악을 담당하고, 비중높은 조연으로도 출연했다. 리차드 기어가 연기했다.
-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모략의 일환으로 빌리 더 키드처럼 꾸민 장비와 아메리카 원주민(해당 작에서는 "인디언"이라 호칭)으로 꾸민 부하들이 여포의 말을 끌고 가는 부대를 약탈한다. 빌리와 원주민이 같이 어울려다닐 리가 없다는 논리로 간파.
- 미스터 피바디와 셔먼 쇼에서는 악당으로 나왔다. 심의 문제인지 진짜 총이 아닌 물총(...). 여자로 변장하여 강도짓도 했다
- 넷플릭스 드라마 퍼니셔의 최종 보스인 빌리 루쏘는 본인의 이름을 빌리 더 키드에서 따왔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사람 잘못 건드려서 배신당해 죽었다고 했는데 극 중에서 프랭크 캐슬과 빌리 루쏘의 꼬이는 관계를 생각하면 씁쓸한 대목.
[1] 그의 나이 17세 기준.[2] 현재 남아있는 사진이 권총 홀스터를 왼쪽에 찬 것으로 나와있어서 한때 왼손잡이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사진이 좌우가 뒤집어져서 인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게 밝혀진게 의외로 얼마 안되어서 영화에서도 왼손잡이로 연출 된 적이 많다.[3] 1850~1908. 전직 들소 사냥꾼. 팻 개릿도 땅 문제를 두고 지인과 논쟁하다 제시 브레이젤(1876~1913)이라는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현재 개릿이 살해된 장소에 표식이 남아 있으며, 개릿을 살해한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4] 인근에 사는 대장장이였다.[5] 교도관들이 수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갑이 느슨했는데, 그 틈에 수갑을 풀고 제임스 벨에게 달려들어서 벨의 총으로 벨과 로버트 올린저를 죽였다. 이후 교도관들의 총과 말을 훔쳐서 달아났다.[6] 이때 조명이 어두워서 팻 개릿을 인식하지 못했다.[7] 제시 제임스 형제와 선댄스 키드, 그리고 빌헬름 2세(...)[8] 다른 인물들은 케이트 블란쳇,크리스챈 베일,히스 레저등의 어마어마한 배우가 출연하여 각기 시대별로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