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친일 잔재설

 


1. 개요
2.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의 잔재인가?
3. 문제점
4. 결론
5. 관련 문서


1. 개요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습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습니다.

사상범과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00주년 3·1절 기념식 기념사 中 영상 전문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사상범과 '빨갱이' 라는 표현이 ‘친일잔재’라고 언급하였던 사건.

2.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의 잔재인가?


'빨갱이'라는 용어가 친일 잔재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빨갱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해방정국에서 등장한 극우파 보수정권의 잔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이는 진보성향지인 경향신문의 논설에서 「실제 상징언어로 '빨갱이'가 대두된 것은 해방정국 이승만의 등장부터」로 언급되고 있는 점에서도 미뤄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념에 관련없이 극우파에 반하는 이들을 빨갱이로 규정한 정황」에 대한 근거로 「중간파나 자유주의자까지도 극우가 아니면 빨갱이로 규정되었다」라는 청주일보 독립신보 1947년 9월 12일의 기사를 인용하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에 대해 기독교 우파지인 크리스천투데이는 칼럼에서 「독립신보는 극렬 좌익지였으며, 따라서 이들이 토로하는 "빨갱이로의 매도"의 신빙성이 떨어짐」이라는 입장을 표현했으며, 독립신보를 극좌익지로 분류한 근거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점에서 인정될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빨갱이'라는 용어가 일제 관료들에 의해 시작되어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 찍는 말로 사용되었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 참고로, 당시 일제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묶는 카테고리는 불령선인이었으며, 일본인을 포함해서는 비국민이라는 카테고리 또한 존재했으므로, 사회주의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조선의 독립운동탄압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둘째로, 기념사 전문에서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을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라고 표현했으나, 일제의 공산사회주의 탄압은 1910년 5월에 발생한 고토쿠 사건[1]의 날조를 기점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일제의 이러한 반공성향은 본격적인 한반도 식민통치에 선행하는, 그보다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의 본격적인 노선전개와 그 탄압에 선행하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시정부 민족지도자들을 포함한 독립운동가 내부에서 또한 자유시 참변을 기점으로 반공정서가 강화되었는데, 이것이 일본제국의 반공정서에 동조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문수 지사 같은 경우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그럼 김구 선생님도 빨갱이로 잡혀간 거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따라서 「좌우이념의 갈등이 일제의 모략으로부터 시작된 친일잔재다.」 라는 논리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로, 일본제국의 반공 근거[2]와 해방정국 이후 친일파들의 반공근거[3]는 상이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지 않고 단순히 「해방정국의 보수우파가 친일파와 결탁했고, 친일파가 일제와 마찬가지로 반공을 지향했으므로, 반공은 친일이다」라고 주장하려는 논리 또한 합리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무분별한 반공문화가 국민통합을 해쳐왔고, 사회주의 세력 축출과정에서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빨갱이로 몰려 희생된 참사가 근현대사에 얼룩진 점, 해방정국 냉전체제에서 친일파가 당시 위정자들과 결탁한 과거 및 이들이 친일 과거사 청산을 피하기 위해 반공을 방패로 들고 나온 점 등은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함에 있어 당연히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반공은 정부 수립 이후 자체적인 이념갈등 및 군부독재 정권시절의 영향으로 봐야하는 것이지, 이것을 그 자체로서 '일제잔재'라고 해석하거나, 혹은 나아가 '친일파가 과거사 청산을 피하기 위해서 내놓은 꼼수'라는 시각만을 강조해서 받아들이는 것은 왜곡된 점이 있으며, 이는 자칫 반공 자체를 친일잔재로 확대해석하는 데 이용되기 쉽다. [4]

3. 문제점


해당 발언의 해석에 있어 단순히 정치적 성향 차에 따른 주관적 추측을 넘어 정치적 의도가 전무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지적 또한 존재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 전문에서 해당 발언은 단순히 「 '빨갱이' 용어가 친일잔재이므로 사용하지 말자 」 라는 언어적인 관점에서 얘기를 하고자하는 맥락이 아니라, '빨갱이' 용어의 기원을 밝히면서,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걸친 반공문화를 어떻게 규정하고 반응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한반도 화합정책을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청산해야 할 친일잔재이다"라는 의도로 말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전문을 직접 인용하자면

(일제로부터 변형된) 색깔론이 정치적 경쟁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니, 이러한 빨갱이 색깔론은 하루빨리 청산해야할 친일잔재"라고 밝히면서, "이념의 적대를 지우고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진정한 광복을 완성할 수 있다"라고 마무리 짓고 있는데, 이는 곧 「이념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은 친일잔재요 구시대적 유물로 해석된다」라는 논리로 압축될 수 있다. 「이념적으로 북한을 적대시하는 것은 친일잔재요, 구시대적 발상으로 해석된다」라는 주장에 있어, 「북한을 이념적으로만 적대시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해석된다」라는 논거까지는 정당한 비판일 수 있으나, 자칫 「친북정책에 대한 반대는 북한을 이념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의한 의견」이라는 논거와 연계된다면 「친북정책에 대한 반대는 친일잔재에 기반한 구시대적 이념갈등이다.」라는 식으로 매도당할 가능성 또한 충분한 것이다.

해당 발언은 사실로 인정할만한 근거가 부족한 발언임과 동시에, 친일반민족행위와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을 자칫 같은 선상에서 해석하게 되는 논리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충호 작가의 제0시: 대통령을 죽여라가 연재될 당시 5월 27일 올라온 공지에 이런 말이 있다.
'빨갱이(명사) : 친일파, 또는 총칼로 정권을 잡은 쿠데타 세력이나, 정권 유지를 위해 자국 국민을 학살한 자를 비판하는 상식적인 사람을 이르는 말.'
더 이전부터 이런 발언을 한 걸 보면 사실 해당 논설의 원조는 이충호 작가이고 이것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불명이다.

4. 결론


'빨갱이'라는 낙인이 친일 청산을 가로막고 빨갱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일제 시대부터 해방 이후에 이르기까지 우익 정권의 유지를 위해 오용, 남용된 경우가 많았지만 (기사 2번항목), '''빨갱이라는 용어를 친일 잔재로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5. 관련 문서




[1] 사회주의자들의 일본 천황 암살미수[2] 반제국주의, 반천황제, 반식민통치 등등 일본인도 해당[3] 반민법 저지를 위한 목적으로 냉전체제 이념대립을 이용하여 자신에 반하는 세력을 제거[4] 그리고 보통 망각하거나 심지어는 거꾸로 생각하기 쉽지만, 친일몰이를 국내 정치계에서 가장 처음 활용하고 또 가장 극성으로 사용한건 이승만 대통령이다. 이 사람은 자기 반대파를 빨갱이로 몰아넣거나 친일파로 몰아서 감옥에 보내거나 정치적으로 탄압하는 식으로 독재정치를 공고히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