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찬요
1. 중국의 농서 사시찬요(四時纂要)
중국 당나라 시기의 시인이었던 한악(韓鄂)이 996년에 펴낸 농서. 현재 일본과 대한민국에 소장되어 있다.
그간 잃어버린 동아시아 농서의 원형을 많이 담고 있는 책으로, 발견 당시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비록 농정에 관한 내용보다는 미신적인 내용이 전제 내용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나 이러한 내용들도 당시 동아시아의 민속사(民俗史)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본국인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이후 완전히 소실된 상태이며, 해외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오랫동안 완전히 소실된 것으로 여겨져왔으나 1960년 일본에서 1590년(만력 18년) 대한민국 울산 지역에 주재하던 경상 좌병영에서 목판으로 인쇄했던 약탈 문화재가 발견되면서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동아시아의 대표적 고전 농서로 한중일 삼국에서 중요한 연구자료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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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7년 6월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의성 김씨 남악종택에서 1400년대 초반에 간행한 판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발견된 서적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시찬요 판본으로 태종 재위시기에 계미자로 인출된 것이 밝혀졌다.예천서 현존 최고본 추정 사시찬요 나왔다, 현존 최고본 사시찬요(四時纂要) 발견…"국보급 가능성"
지금으로부터 600여년 전에 당시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던 금속활자로 간행된 책으로 엄청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 중국과 일본 학계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
2. 한국의 농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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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7대왕 세조의 명으로 1450년대에 금양잡록, 촌담해이 등의 저자로 유명한 강희맹이 저술한 한국의 농서. 위에서 설명한 중국의 농서 사시찬요와는 내용이 많이 다른 한국의 농서이다.
강희맹은 당시 유명한 예술가였던 강희안의 동생으로 명문가이며 농학가인 권문세가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였으며 관직을 버릴 생각까지 할 만큼 농사일에 흥미를 가지고 살았다. 이에 전문가 이상의 구체적이고 혁신적으로 당대의 농업문화 및 기술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이나 금양잡록(衿陽雜錄)에 없는 주곡 이외의 원예, 특작, 축산, 농산가공 등을 다양히 다루었다는 면에서 15세기 농서의 부문간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둘째로 채소는 주곡 못지않게 중요한 작물임에도 만일에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에 관련된 기록이 없었다면 기술사적으로 15~16세기의 기록이 없이 17세기 초의 한정록(閑情錄)과 같은 농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취약점을 보충하고 대신해 준다. 또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초록한 농서로 우리나라 독자성을 내보인 책이다. 이런 점에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는 우리에게 대단히 귀중한 15세기 농업기술의 분석 자료로 평가된다.
위에 설명된 사시찬요에는 없는 양계나 대나무 재배술을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초록하였고 봄 가뭄이 들 때의 볍씨 파종은 농사직설(農事直說)에서, 그리고 양잠술은 양잠경험촬요(養蠶經驗撮要)와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초록하고 있다. 그리고 과수, 화훼, 경제수는 그의 형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의 내용을 참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한반도 풍토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식 한자이름 등이 나와서 한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사용된다.
강희맹의 사시찬요는 한국사 시험문제로도 자주 출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