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직설

 

1. 개요
2. 내용
3. 문제출제 유형


1. 개요



조선시대에 발간된 농서. 세종의 왕명으로 정초가 편찬하여 세종 11년(1429) 간행.

2. 내용


정초, 변효문 등이 왕명을 받아서 1책으로 편찬하였다. 1286년 원나라에서 편찬한 농상집요와 같은 중국의 농서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는 농사기술을 수록하였다. 전국의 우수한 농사꾼들의 경험을 직접 지방관리들이 모아 편찬했다.
여말선초에 쓰였던 중국의 농상집요에 수록된 농법은 화북식 농법을 바탕으로 하는, 밭농사와 조농사 중심의 농법이었다. 게다가 화북식 밭은 이랑이 좁고 높으며, 이랑과 고랑을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하지만 당시 고려와 조선의 밭은 이랑이 넓고 낮으며, 고랑과 구분이 미미하였다. 또한 조선에 와서 농법은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논농사, 즉 벼농사 중심으로 발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농상집요의 농법을 조선의 풍토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 조선에 맞는 농서를 편찬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논밭갈이에 관한 내용과 종자의 선택과 저장법에 관한 내용 삼(麻), , 기장··수수, , ··녹두, 보리·, 참깨, 메밀에 재배법에 관한 내용 총 10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에는 밭작물의 파종법과 벼의 파종법, 경작방식에 관해 나온다. 그래서 조선후기에 성행하는 모내기법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모내기법은 상당한 저수량을 필요로 했기에 가뭄이 들면 망하는 농사법이었으므로, 수리시설이 부족했던 조선 전기의 상황에 비롯하여 농사직설에서는 권장하지 않았다.
사실 농사직설에는 맹점이 존재했다. 농사직설은 삼남지방의 농법을 조사하여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농서였고, 권농관이 이를 토대로 농법을 농민에게 보급할 때, 북방지역에는 불만과 저항이 있었다. 그 이유는 농사직설을 편찬할 당시 조선의 농법은 남방식과 북방식으로 서로 달랐다. 삼남지방을 중심으로 이룬 남방식 농법은 한정된 집약적인 토지에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이었고, 북방식 농법은 인구밀도가 적은 북방을 중심으로 한정된 노동력으로 많은 토지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농사직설의 농법은 북방 현실에 맞지 않았기에, 조선왕조실록, 특히 세종실록에 함길도[1]와 평안도에 농사직설의 농법을 보급하기가 어려움이 여실히 나온다.
조선 초에 발간된 농서로 우리 실정에 맞게 내용을 꾸렸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농서의 3단 테크인 농상집요(고려 후기)-농사직설(조선 전기)-농가집성(조선 후기) 테크의 중간에 있어 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은 무조건 알아야 한다. 농상집요와 달리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게 서술되었다는 것이 포인트.
이후 개정과 증보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내용이 추가되었고 조선시대에 나오는 여러 농서에 영향을 주었다.
요즘 최근에 발매된 어떤 게임으로 인해 주목받는 고서이다.

3. 문제출제 유형


농사직설은 농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종 시기 때 편찬된 대표적인 것으로 보기 1개를 차지하는 용도로 출제되며 오답형으로는 조선 전기 때 편찬된 농사직설을 조선 후기나 다른 왕 때 편찬됐다고 종종 출제된다. 편찬자도 구별해야 하는데 농상집요는 이암[2], 농사직설은 정초, 농가집성은 신속이다.

[1] 함경도의 조선전기 명칭[2] 편찬자가 아니라 원으로부터 들여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