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디칼리슴

 

1. 개요
2. 상세
3. 현재
4. 기타

[image]
'''노동조합주의, Syndicalism'''

1. 개요


노동자의 파업과 혁명 등을 통해 시장경제와 사회구조를 개혁하자는 이념이다. 쉽게 말해 혁명해서 노동자끼리 잘 먹고 잘 살아보자! 하는 것.[1] 원어 명칭을 보면 신디케이트라는 말과 직관적으로 연관짓기 쉽다.

2. 상세


공산주의가 떠오를 텐데, 실제로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연관이 깊다.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한데, 그 중 한 조각이 생디칼리즘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생디칼리즘이 공산주의보다 더 먼저 나온 사상이고 현대적인 계급투쟁의 전략적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창시자는 조르주 소렐[2]이다. 그는 1900년대 이전에 이미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수면''' 을 주장했고, 현대적인 노동운동이 자리잡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오웬주의를 계승하여 현대적인 노동조합주의와 직접행동을 창시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총파업을 현대 노동운동의 전술로 자리잡게 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생디칼리슴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태동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발원지인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과 미국 서부지역, 남미 대륙, 그리고 호주와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확산되었다. 이후 1900년에서 1940년대까지 이르는 20세기 상반기에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차 세계대전 전후 무렵인 1910-1920년대에 가맹원 수가 절정에 달했다. 특히 종주국인 프랑스에서는 1차 세계대전 전에 노동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3] 하지만 1920년대 이후에는 대안 경쟁세력인 공산주의나 파시즘 등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생디칼리슴 조직은 이들 세력에 흡수되거나 개량주의로 노선을 변경하여 기성 제도권 내로 편입되었다.[4]
지금으로선 뜻밖일지 몰라도, 이 사상은 훗날 사회주의 운동과 파시즘 운동에 각각 일정한 영향을 끼쳤다. 사회주의 진영에는 노동자 계급투쟁에 관해 영향을 끼쳤고, 파시즘 진영에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계급 협조를 통해 노동자 계급의 영역을 인정받는 노선이 자리잡도록 영향을 끼쳤다.[5] 그래서인지 소렐이 죽었을 때 소렐의 무덤에 극좌극우가 동시에 헌화하러 오는 상황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생디칼리슴의 창시자인 소렐은 만년인 1910년 무렵부터 혁명적 생디칼리슴에서 멀어지고 사회민족주의나 반유대주의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악시옹 프랑세즈에 관심을 보이거나 무솔리니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프랑스 최초의 파시스트 정당을 창설한 조르주 발루아는 소렐을 파시즘의 지적 시조로 간주했다. 무솔리니 역시 정권을 획득한 1922년 직후 "내가 가장 큰 빚을 진 사람이 바로 소렐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스페인 팔랑헤의 경우에는 엄연히 공식 명칭에[6] 생디칼리슴이 언급되며, 실제로 국민생디칼리슴(national syndicalism)을 주장했다. 국민생디칼리슴은 프랑스의 통합국민주의와 생디칼리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팔랑헤는 온건한 토지 개혁과 은행의 국유화, 그리고 ‘국민 생디칼리슴(national syndicalism)’을 주창했다. 팔랑헤에 따르면, 국가 생디칼리슴은 기업과 국가의 영향력을 더욱 제한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코포라티즘과 차별되었다.

-케빈 패스모어(Kevin Passmore), 《파시즘》


3. 현재


환경이 많이 바뀐 현재에는 계급투쟁, 파업, 프롤레타리아 혁명 같은 사회 혁명을 기성 좌파들도 "글쎄..." 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거기에다가 좌파가 종교를 없어질 수 없는 것으로 인정까지 하는 데다가 신좌파와 기성 좌파 역시 점점 생디칼리즘을 가부장적이고 꼰대 같은 사상으로 여기고 있어서 생디칼리즘은 현대에 들어와서는 그다지 의미 있는 사상이라고 보기는 힘들고, 과거의 유산이라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쉽게 말해 현대에는 맹목적인 총파업을 통한 계급혁명을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생디칼리즘은 상당히 탈정치적인 총파업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에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사상으로 평가되고 있다.[7]
물론 생디칼리즘은 후대에 아나코 생디칼리즘, 노동자 자주관리(자주권, Autonomy), 내셔널 생디칼리즘 등에 영향을 끼쳤다.
생디칼리즘은 극우부터 극좌까지 다양한 영향을 끼쳤다. 자유지상주의적인 노동조합주의는 아나르코 생디칼리즘처럼 극좌 사상이고, 권위주의적인 노동조합주의는 국민 생디칼리즘처럼 극우 사상이다. 물론 스페인 내전기 팔랑헤와 CNT의 극한 대립처럼, 같은 생디칼리즘이지만 둘 사이는 굉장히 나쁘다.

4. 기타


  • 흔히 '생디칼리'이라고도 적지만 '생디칼리'이 맞는 표기다.

[1] 협동조합주의로 번역이 되기도 하나, 협동조합주의는 더 후대에 나온 사상이고, 계급협동주의로 번역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계급투쟁과는 별 관련이 없다.[2] Georges Sorel, 1847~1922 [3] 다만 프랑스 이외 지역에서는 대부분 소수파로만 남았다.[4] 이용재, ''생디칼리슴의 국제적 비교연구''(프랑스사 연구. Vol 21. 2009)[5] 고전적인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에 관한 지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6] Falange Españ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 국민생디칼리슴 공세평의회 에스파냐 전통주의자 팔랑헤[7] 현대의 총파업은 정치적인 목적의 총파업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생디칼리즘의 파업은 정치적이지 않은 노동계급 투쟁을 위한 경우가 많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특히 한국처럼 탈정치적인 노동운동을 강요받는 국가에서 파업이 어떤 목적을 위해 실행되는지를 관찰해보면 된다. 대부분의 파업은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노동환경 개선이나 직장에서의 노동자 참여권을 확대할 목적으로 결행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