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학파
1. 개요
서강대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서강학파는 1970년대에 수출주도형 성장모델의 이론적 기반을 완성해 한국의 고도성장을 기획했던 서강대 교수 출신 경제 관료집단을 칭하는 말이다. 서강학파의 주요 인사들은 실제로 경제기획원, 재무부 등에서 테크노크라트로 활약하여 한강의 기적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역사
다른 학교도 아니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진들이 경제개발 과정에서 활약하게 된 것은 교수진의 대다수가 미국에서 '선진 경제학'을 배워온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1965년 당시 국내 대학 경제학과 교수 가운데 미국 박사학위 취득자는 서강대 3명, 연세대 2명 뿐이었고, 1971년에도 서강대 5명, 연세대 3명, 서울대 2명에 불과했다. 그 시절에 서강대 경제학과는 경제학 전공 미국 유학 1세대 가운데 3분의 1을 교수진으로 영입했는데, 이는 당시 예수회 위스콘신 관구에서 서강대 교수들의 월급을 일률적으로 미국 달러로 지급했던 덕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재단의 전폭적인 투자에 힘입어 우수한 교수진을 대거 확보한 경제학과는 당시 경제정책 입안자들의 인재풀(pool)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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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우 전 총리, 김만제 전 부총리, 이승윤 교수 등이 각각 재무장관과 금융통화운영위원,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을 맡은 '서강학파 1세대'이고, 이들은 '8.3조치'에 따른 사채 동결과 제2금융권 개발(1972년), 부가가치세 도입(1976년) 등도 대표적 성과로 평가된다. 2세대는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김종인 現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꼽히고 3세대로는 김광두, 김경환, 남성일 현 서강대 교수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서강학파의 맥은 1997년 외환위기 시기 전후로 끊길 뻔 하였으나 아직 4세대 서강학파로 최인, 조장옥, 김홍균 서강대 교수 등이 있고, 5세대로는 허정, 전현배 서강대 현 교수 등이 현직에 재직중이다 당시 경제위기에 대한 경제관료들의 책임론이 급부상했고, 여야간 정권교체도 이뤄졌다.
3. 평가
서강학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의 압축성장에 기여했다는 찬사만큼이나 논란의 대상에 오른 적도 많다. 1960년대 '자주경제론', 1970년대 '종속론' 등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개방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서강학파 1~2세대와 끊임없이 대립했고, 8.3조치 도입이나, 부마민주항쟁의 빌미가 된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비판들이 잇따른다.[1]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청와대가 "서강학파의 불균형 성장론은 실패했고, 이를 대체할 새 이론이 나와야 한다"며 공개 비판하자 이 학과 교수들이 "대학생 수준"이라며 날선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듯 서강학파의 공과(功過)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란 소명에 충실했음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적다. '''"성장을 해서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을 모르는 사람은 그 때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의 말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그밖에도 서강학파는 서강대 경제학과를 한국 유수의 경제학과로 성장케 하는 원동력이 됐고, 서강대의 인지도 향상에 기여했다.
4. 향후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선출 전후로 이 서강학파 밑에서 수학한 학생 세대가 주류를 이룬 서강대학교 출신 금융인 모임('''서'''강'''금'''융인'''회'''), 일명 '서금회'가 새로운 경제인 세력으로 금융권 장악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서금회 출신 금융권 要職 차지 보도
19대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 보좌진 중에도 서강대의 조윤제, 김광두 교수가 참여했다.
미국 경제학회에서 매긴 랭킹에서 서강대 경제학과는 고려대, 서울대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소속 교수로는 Almas Heshmati 교수, 최인 교수, 조장옥 교수 등이 20위 이내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캡쳐본 최신버전
5. 둘러보기
[1] 앞서 남덕우 전 총리가 "정통시장경제"라 했지만, 사실 1980년대의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준으로 따져봤을 때 서강학파의 개발론이 그렇게 "정통"이라 보기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오히려 비정통인 장하준 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 정도. 한강의 기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