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북주)

 


'''북주 제4대 황제
'''高宗 宣皇帝 | 고종 선황제''''''
'''묘호'''
'''고종(高宗)'''
'''시호'''
선황제(宣皇帝)
'''연호'''
대성(大成, 579년)
''''''
우문(宇文)
''''''
윤(贇)
''''''
건백(乾伯)
'''생몰 기간'''
559년 ~ 580년 (21세)
'''재위 기간'''
578년 ~ 579년(황제)(1년)
579년 ~ 580년(태상황)(1년)
'''묘릉'''
정릉(定陵)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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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 남북조시대 북주(北周)의 제4대 황제.

2. 생애


무성(武成) 원년(559년)에 무제 우문옹과 태후 이씨[1]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년 뒤인 보정(保定) 원년(561년)에 노국공(魯國公)으로 봉해졌다. 우문윤은 건덕(建德) 원년(572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우문옹은 황태자로 책봉된 우문윤에 대해 그가 제위를 능히 감당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였다. 또한 우문윤은 술을 좋아하여 고조가 동궁으로 술을 가져가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무제는 사람을 보내 우문윤을 감시하도록 하였지만, 우문윤은 자신을 꾸미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우문옹의 우려대로 선제는 아버지인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이 잘 다져놓은 나라를 고작 '''1년 만에''' 잘 말아먹었다. 무제가 죽을 때는 슬퍼하는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며, 아버지와는 다르게 사치와 폭정에 열을 올렸다.
우문윤은 북주의 종실이자 자신의 삼촌에 해당하는 우문헌(宇文憲)을 시기하여 주살하였다.[2] 우문윤이 재위한 시기의 궁궐 공사는 삼국시대보다 규모가 더 하였으며, 조정 신하들의 간언을 싫어하여 좌우의 신하를 보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찰하였으며 직언하는 신하에 대해서는 볼기를 치거나 파직시켰다. 선제의 사치와 폭정을 보여주는 또다른 일화로 북주의 종실 중에 우문온(宇文溫)이 있었는데, 선제는 그의 아내인 울지씨[3]를 탐하여 이후 우문온을 죽이고 울지씨를 데려다 황후로 책봉하였다.[4]
선제는 1년 동안 폭정과 사치를 부리다가 579년에 아들인 우문천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자신은 태상황이 되었으며, 나랏일은 모두 황후 양씨[5]의 아버지 양견(楊堅)에게 떠넘겼다. 결국 그가 정권을 장악하고 580년에 선제가 죽은 이후, 양견은 선제의 아들 정제(靜帝) 우문천(宇文闡)에게 선양을 시켜 북주를 멸망시켰다. 더 오래 살았더라면 황제의 폭정에 불만을 품은 세력에게 끔살당하거나, 직접 망국의 군주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22세로 요절해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어엿한 묘호시호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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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은 이아자(李娥姿).[2] 우문헌은 무제의 공신임에도 불구하고 선제의 시기를 받아 사후 억울하게 양(煬)이라는 악시호를 받아버렸다.[3] 이름은 울지치번(尉遲熾繁).[4] 선제 우문윤과 우문온의 계보를 살펴보면, 우문윤은 태조 우문태의 손자이며 우문온은 태조의 큰형인 소혜공 우문호의 증손이다. 즉 선제는 근친상간을 저지른 셈.[5] 이름은 양려화(楊麗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