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瀟灑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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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찾아가기
3.1. 교통편
3.2. 입장료
3.3. 인근 관광지
3.4. 편의시설
4. 소쇄원의 구성
4.1. 소쇄원 48영
5. 기타


1. 개요


조선 중기에 건축된 한국 전통의 별서정원.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다. 근처에 전라남도 교육연수원이 있다. 다듬지 않은 자연과 어우러진다는 조선시대의 특유의 조경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다. 조선시대 별서 양식 중에서 그나마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대한민국 내 몇 안 되는 정원이기 때문에 조경시험에서 자주 나오는 이름들 중 하나다.
2008년 5월 2일부로 사적에서 명승으로 재분류되어, 명승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의 옛날 단어이다. 또 맑을 소(瀟)자나 뿌릴 쇄(灑)자는 인명에서나 아주 가끔 발견될 정도로 현대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한자이다.

2. 역사



1755년의 소쇄원도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선비 양산보(梁山甫)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양산보는 본래 조광조(趙光祖)의 제자였으나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음을 당하자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인 담양으로 내려와서 은둔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정확한 건축연대는 논란이 있다. 호남의 대표적 유학자인 하서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 즉사"가 지어진게 1528년이고, 송강 정철이 지은 "소쇄원제 초정"이라는 시에 의하면 소쇄원은 정철이 태어난 해에 지어졌다라고 언급했다. 정철은 1536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때 완성된것인가라는 추측이 나온다.
하지만 면앙정 송순이 소쇄원을 두고 지은 시가 1534년에 나왔기 때문에 적어도 정철의 언급은 착오로 보인다. 대체적으로 김인후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1520년대 중후반부터 건축이 시작되어 1536년 정도에 완공되었을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본래 은둔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지만, 워낙 풍경이 좋은 곳이라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문학과 학문연구의 산실이 되었다. 김인후, 정철, 송순 이외에도 의병장으로 유명한 제봉 고경명, 이황과의 사단칠정 논쟁으로 유명한 유학자 기대승 등도 소쇄원을 찾아와서 양산보와 교분을 나누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양산보는 죽으면서 유언으로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것이며, 후손 어느 한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양산보의 후손들은 그의 유언을 철저하게 지켜서 소쇄원을 지켜왔다.[3]
그러나 정유재란때 왜군이 담양으로 쳐들어와서 소쇄원을 불질러 양산보가 지은 소쇄원은 소실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칠천량 해전으로 원균이 수군을 말아먹고 전라도가 왜군의 침입을 받게 된 탓이다.
이후 양산보의 손자인 양천운이 소쇄원의 복구를 시작해서 고손자인 양경지때에 상당부분 복구 되었지만, 수많은 조선 중기 학자, 문인들이 보고 즐기던 경치와 정원이 소실되고 이후에 재건된 것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다행인게 1548년 김인후가 소쇄원 48영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꽤 자세하게 서술한 탓에 상상 정도는 가능하다는 점이며 1775년 소쇄원도라는 판화를 통해 소쇄원 48영과 비교할 수 있는 그림자료도 존재해서 원형 자체를 생각조차 어려운 다른 한국 내 정원양식들보다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애시당초 복원한 소쇄원이랑 여기에 나오는 48영과 비교해도 몇 개만 다를 뿐 대부분은 비슷하게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자료들 덕분이라고 한다.
광주 충효동의 환벽당, 송순이 지은 면앙정등과 함께 가사문학권으로 지정되어 있다.

3. 찾아가기



3.1. 교통편


광주광역시에서 이곳으로 가는 버스는 187번이 있다. 운행 간격은 2018년 기준 5~60분이다. 주요 경유지로는 산수오거리, 서방시장, 말바우시장 등을 거친다. 그외 188번도 있으나, 이 노선은 시 외곽만을 운행해 석곡동, 망월동 주민이 아니라면 탈 경우가 없다.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담양225번역시 소쇄원을 경유한다.
187번을 타고 와서 하차 태그 시 시외요금 100원 결제된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충효동 환벽당 정류장[4] 에 내려서 걸어가도록 하자.
정류장 이름이 소쇄원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고 내릴 수 있다.

3.2. 입장료


후손들이 소쇄원을 꾸준히 유지/보수하고 있으며, 수익을 위해서가 아닌 유지비 명목의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할 때 사유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2015년 기준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3.3. 인근 관광지


소쇄원 주변은 가사문학의 중심지로, 문인들이 시를 짓던 정자들이 많이 있다. 대부분은 직접 출입이 가능하며, 특별한 입장료는 없다. 다만 정자와 정자 사이의 거리는 도보로 걷기에 조금 멀 수도 있다. 막상 가도 크게 볼 건 없으나, 그 당시 사람들이 이런 느낌으로 글을 썼을 거란 느낌을 상상해보면 좋다.
특별히 안내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은 경우에는 구글 지도로도 찾을 수 있다.[5] 고등학교때의 가사문학을 잘 공부해두면 묘하게 여행에 도움이 된다.
근처에 가사문학관이 있으며, 입장료를 내고 입장할 수 있다.
참고로 같은 담양에 있는 죽녹원까지 거리는 상당하다. 여기서 죽녹원을 가려면 광주 버스 충효187 (배차간격 1시간, 매시 40분 소쇄원 앞 도착)이나 담양 버스 225 (배차간격 1시간, 매시 정각 소쇄원 앞 도착)를 타고 광주 북구 농산물직판장에서 담양 버스 311로 환승하자.

3.4. 편의시설


소쇄원 내에는 특별한 편의시설이 없다. 밖으로 나와 길을 건너서 저수지 방향으로 가다보면, 간단한 분식을 취급하는 매점 겸 휴게소가 있다.
점심 시간을 끼워 이동을 한다면 도시락이나 간단한 요기거리를 챙기는 게 좋다.
입구에서 잠깐 걸어가면 한정식 식당이 있으므로 점심/저녁은 걱정 할 필요 없다.

4. 소쇄원의 구성



  • 제월당 - 좌측 위
  • 광풍각 - 중앙
  • 대봉대
  • 고암정사 - 좌측 아래, 터만 남았다.
  • 부훤당 - 좌측 아래, 터만 남았다.

4.1. 소쇄원 48영


하서 김인후가 1548년에 지은 시로서 건물, 지형, 식생, 동물, 공간 등의 구성요소와 사용모습 등을 그리고 있어서 불타 없어지기 전의 소쇄원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할 수 있게 해준 자료들 중 하나.

5. 기타


사진빨을 더럽게 못 받는 곳 중 하나. 그래도 종종 웨딩 사진찍으러 오는 커플도 있는모양.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친화적인 정원이라 아름다운 구도를 잘 포착하지 않으면 그냥 산에 정자 하나 세워둔 것처럼 찍히기 쉽다. 또한 정원이 다 그렇듯이 계절에 따라서 분위기가 천차만별.
소쇄원을 처음 들어갔을 때 나오는 대나무 숲 때문에 죽녹원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차를 끌고 왔다면 모를까, 여기에서 죽녹원으로 이동하는 건 쉽지 않으니 주의하자.[6]
[1] ⓒ 2007 by 방형준(才誠) , http://www.liberotown.com/2007/05/01/07040506-%EB%8B%B4%EC%96%91-%EC%86%8C%EC%87%84%EC%9B%90-%E6%BD%AD%E9%99%BD-%E7%80%9F%E7%81%91%E5%9C%92/ [2]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광풍각이라는 이름의 정자이며 옆의 누운 나무는 나무로 된 수로.[3] 참고로 이 유언은 당나라 이덕유라는 사람이 평천산거계자손기에서 말한 것이 시초다.[4] 소쇄원으로 부터 걸어서 10~20분 거리에 있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우니 참고하도록 하자.[5] 예를 들어 '식영정'을 찾아보자[6] 대중교통으로 죽녹원에 가려면 225이나 187번을 타고 문흥지구입구까지 나가서 311번을 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