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그니족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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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그니족은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접경 지대 바다흐샨 지방 일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으로 파미르인[1] 의 일파이다. 슈그니어라는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와키인 및 사리콜인과 근연 관계이다. 오늘날 인구는 9만에서 11만 5천여명 사이로 추정되며 이 중 7만 5천여 명에서 9만여 명 정도가 타지키스탄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에 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내 거주하는 슈그니족 인구는 2만 5천여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
2. 역사
이들은 고대 아리아인 중 인도 일대로 남하하지 않고 파미르 산맥 일대에 정착한 부족들의 후손이다. 아리아인의 아프가니스탄 정착은 기원전 2200년경 즈음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 사이의 기간 동안 파미르 산맥에는 기마 유목민 샤카족이 정착했다. 중국 사료에는 이들이 쉬진, 쉬치니 등의 이름으로 알려졌다.[2]
이 지역 주민들은 예의범절이 없지만 대신 매우 용맹하다. 절도나 강도를 목적으로 살생을 행한다. 이들은 불법을 숭상하지 않으며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없다. 이들은 외양부터가 무척 야만적으로 비열해보이며, 의복으로는 짐승 가죽과 모직 옷을 입는다.
- 대당서역기 / 현장 법사
슈그니족에 대한 현장 법사의 기록은 고대 스키타이인들이 흉포하고 잔인했다는 그리스인들의 기록과 흡사하다. 구당서에서는 슈그니 산에 여러 부족들이 각기 다른 수령의 지배를 받으며 동굴에 거주하며 이 가운데 일부는 와칸 계곡의 와키인에게 지배를 받고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서기 8세기 무렵 슈그니인들은 티베트인들과 싸우다 왕이 전사하였다 한다. 무슬림 지리학자 겸 역사학자 알 야쿠비의 기록에 따르면 슈그니인들은 서기 9세기에는 아랍인들에게 정복되었으며 압바스 왕조의 지방 정권 타히르 왕조에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되었다. 서기 10세기부터 12세기 동안의 기간에 슈그니인들은 다른 아프간 부족들과 계속 전투를 벌였으며, 이웃 아프간 부족들이 가즈니 왕조의 지배를 거치면서 불교나 힌두교에서 순니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이에 이들은 이스마일파로 개종하기 시작했다.호밀국(와칸 협곡) 근처 산속에는 아홉 개의 쉬그난 부족들이 있다. 아홉 왕은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사는데 한 왕만이 와키인 왕에게 예속되어 있고 나머지는 각자 모두 제멋대로 자립하여 살고 있어 다른 나라에 예속되어 있지 않다. 근자에 일부 왕들이 안서도호부에 사신을 보내 교역을 하고 있다. 이 땅은 대단히 추우며 설산을 거처로 삼는데 이것이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양, 말, 소, 노새가 있으며 언어는 각별하여 다른 나라들과 같지 않다. 이 나라 앙은 늘 이삼백여 명씩 다른 지역으로 보내 물자를 약탈하도록 하였다. 이들은 비단을 약탈하면 창고에 그대로 쌓아두기만 할 뿐 옷을 지어 입는 법은 알지 못한다. 이 나라에는 불교가 없다.
- 왕오천축국전 / 혜초
아프가니스탄 산악 지대의 파슈툰인의 조상이 되는 에프탈계 산악 민족들이 수백여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순니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동안 아프간 동북부의 일부 부족들은 이슬람 개종을 거부하였고, 이들은 대신 차후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대신 순니 이슬람과 사이가 나쁜 쉬아 이스마일파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학자 칸달라로프는 슈그니인들이 서기 10~12세기부터 다른 아프간 부족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3.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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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그니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험준하고 척박한 산악지대이다. 다행히 사막은 아니라서 파미르 강으로부터 식수를 얻을 수는 있으나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며 무척 춥다. 고대부터 이들은 보리 농사를 지으며 목축을 병행해 왔다. 이스마일파 이슬람을 믿는 슈그니족들은 순니파 이슬람을 믿는 파슈툰족들이 하루 다섯 번 예배를 드리는 것과 다르게 하루에 세 번만 예배를 드리며 오늘날에는 이스마일파 수장 아가 칸 4세의 지원으로 타지키스탄 일대의 슈그니족 거주지역에 학교와 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