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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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미르인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신장 위구르 자치구 국경 지대에 주로 거주하는 여러 민족들을 총칭하는 어휘로, 파슈툰계 언어를 사용하되 순니파 이슬람 대신 시아파 이스마일파를 믿거나 여타 파슈툰인과 별개의 정체성을 가진 민족들을 의미한다. 중앙아시아 민족이지만 산악지대에서 고립된 영향으로 금발벽안이 많아 인류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비슷한 민족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누리스탄인이나 파키스탄의 칼라쉬인 등이 있다.
타지키스탄 등에서 소수민족으로 분류하기보다는 타지크인과 동화 정책을 추구하는 등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정확한 인구 추산이 힘든 편이다. 파미르인 인구는 30만여 명 정도로 추정되며 주 거주 지역은 타지키스탄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아프가니스탄의 바다흐샨 주, 파키스탄의 길기트 발티스탄, 중국의 타슈쿠르간 자치현 등이다.
2. 기원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유목민들인 고대 아리아인[1] 들은 반농반목 사회로 인구가 증가하거나 지력이 고갈되면 마차를 타고 부족 일부가 이주하는 방식으로 거주 영역을 넓혔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중앙아시아 산악지대에도 아리아인들이 정착했다. 고대 이후 튀르크계 유목민들이 확장하며 인도유럽어족 민족들과 통혼하는 과정에서도 척박한 파미르 고원 산악지대에 고립된 부족 상당수가 튀르크계와 혼혈되지 않고 고대 아리아인의 혈통을 보전했으며, 상당수 부족들이 조로아스터교를 받아들였다. 이슬람의 도래 이후에는 이슬람 개종에 저항하다가 근세 들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되, 이슬람 주류 종파와는 다른 이스마일파로 개종하면서 오늘날의 파미르인 사회가 형성되었다.
700년전 발견된 파미르인 유골과 오늘날의 파미르인들의 하플로그룹 모계 유전자(mtDNA)를 비교대조해본 결과 해당 지역 주민들은 큰 이동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세에도 인구 이동이 상당히 흔하던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기준으로 상당히 특이한 경우이다. 물론 파미르인들이 거주하는 파미르 고원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엄청난 험지인 걸 생각하면 딱히 이상한 것도 아니지만[2] . 하플로그룹 분류에 따른 추정에 의하면 파미르인들의 조상은 볼가-우랄 지역 일대에서 기원한 것으로 나왔다.
3. 분류
4. 문화
오늘날 파미르인들이 거주하는 국가 중 타지키스탄은 세속주의 국가로 이슬람 근본주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우며 파키스탄 및 아프가니스탄 내 파미르인 중에서도 탈레반으로 인한 피해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대의 파미르인 부족들의 경우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에 내전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척박한 산악 지역에 고립되어 거주하던 만큼 전통적으로 문명 생활과는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로 중세 초 순례를 나온 불교 승려들은 파미르인들이 사는 지역이 척박하여 약탈을 좋아하고 예의범절을 모르고 상당히 공격적이고 야만적이라는 서술을 남겼다. 티베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주식으로 밀 대신 보리를 먹고 목축을 하면서 영양을 보충하는 편이었다. 땅을 파고 동굴에 거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종종 튀르크계 유목민들이 해당 지역을 약탈하던 때도 있었으나 약탈할 만한 자원도 부족했기 때문에 약탈의 규모도 크지 않았던 듯 하다. 청나라 때 신장 지역에 대한 역사 기록을 보면 타슈쿠르간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을 종종 키르기스인들이 약탈을 시도했으나 역으로 약탈을 나선 키르기스인들이 노예로 잡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듯 하다.
파미르인들은 척박한 지역에 생활하던 관계로 이들이 사육하던 가축들도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고 하며, 고기를 먹는 경우는 드물었고 주로 양젖을 가공해 먹었다. 타지크인이나 위구르인, 우즈베크인과의 교류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어서 차를 마시거나 라그만을 먹는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5. 현황
19세기 중엽 해당 지역의 바다흐샨 칸국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에 병합되기도 했으나, 해당 지역이 교통이 불편하고 자원이나 인구 규모가 대단치 않았기 때문에, 파슈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경계하던 러시아 제국 측에서 오늘날의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일대를 병합하고, 해당 지역은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소련이 해체되면서 오늘날의 타지키스탄의 영토가 되었다.
파키스탄 치트랄 지역에 있는 파미르인들은 종종 탈레반의 공격을 받기도 하지만 길기트 발티스탄 지역의 경우 해외 이스마일파들의 투자로 학교 등이 새로 건설되면서 다른 파키스탄 지역에 비해 생활 수준이나 교육 수준이 높은 편이다.[3]
중국 내 파미르인 인구 대다수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파키스탄과 접경한 지역인 타슈쿠르간 자치현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인구 4만여 명 정도에 달한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타지크인과 별 상관도 없음에도 불구 정치적 차원에서 타지크인[4] 으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에서 타지크인으로 분류되는 민족은 와키인과 사리콜인으로 사리콜인은 타슈쿠르간에서만 거주하던 민족이고 와키인 일부가 근대 타슈쿠르간으로 새로 이민 정착했다고 한다.
[1] 인도유럽어족의 하위 어파인 인도이란어파의 원시 조어를 사용하던 민족으로, 이란계 민족들과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의 인도유럽계 민족들의 공통 조상이다.[2] 그래서 종종 파미르인에 속하는 몇몇 하위 민족 집단과 관련하여 희한한 기록이 많이 나왔다. 가령, 파키스탄령 지역에 거주하던 파미르인 계통 민족인 칼라쉬인들은 19세기에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 이 지역으로 진주한 영국군과 조우한 이후로 21세기까지 다른 민족과 일체의 교류도 하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일부 칼라쉬인 마을에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해 이곳에 진주한 미군의 헬리콥터를 보자 패닉에 빠져서, 주민들이 부랴부랴 마을 공용창고에 보관되어있던 총으로 대응사격을 하기도 했다. 이때 사용된 총이 19세기에 영국군으로부터 받은 머스킷 소총이라서, 이들을 발견한 미군들이 어이없어 한 건 덤이다.[3] 파키스탄 순니파들의 경우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군부 독재자들의 우민화 정책을 지지하면서 90년대 후반에도 문맹률 80%를 찍었던 반면, 이스마일파 와키인들이 많이 사는 훈자 지역의 경우 문맹이 드물고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도 흔하다고 한다.[4] 원래 한자어로 무슬림들을 지칭하던 어휘 "대식"은 타지크가 어원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