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파
1. 설명
Isma'ilism
8세기 후반에 성립하였다. 역사적으로는 7이맘파라고도 불린다.
6대 이맘 자파르 알 사디크(Ja'far al-Sadiq)의 장남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Isma'il Ibn Jafar)의 장남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Muhammad ibn Ismail)을 7대 이맘으로 추종한 분파. 이와는 달리 12이맘파는 자파르 알 사디크의 차남 무사 카딤(Musa al-Kadhim)을 7대 이맘으로 세웠다. 장남인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는 자파르 알 사디크보다 먼저 사망 하였다.
교리는 시아파 가운데서도 영지주의, 신비주의 경향이 강하며, 분파가 매우 많다. 순니 이슬람에서 환생, 윤회 관련한 교리가 없지만 이스마일파에서는 전생의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교리가 있다.
현재는 타지키스탄 동부에 제일 많으며,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파키스탄 북부 길기트 발티스탄과 아자드 카슈미르, 인도령 카슈미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방에도 일부가 거주하며, 그 외 키르기스스탄 남부, 우즈베키스탄 남부와 투르크메니스탄 북부에도 극소수가 존재한다.
2. 역사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의 사후에 그 자손이 이맘을 계승하였는데, 이스마일파의 전승에서는 이들은 아바스 왕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스스로 정체를 숨겼다고 알려져 있다. 8대 이맘, 9대 이맘, 10대 이맘이 정체를 숨겼으며, 이들은 스스로 이맘임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기록에서는 완전히 다른 일반인 신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압둘라 마흐디 빌라흐(Abdullah al-Mahdi Billah)가 스스로 이맘임을 드러내고 파티마 왕조의 칼리파가 되었다.[1]
압바스 왕조 치하에서 시아파 이맘들은 탄압받았는데, 감금당하거나 독살당하는 등 영향력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맘의 혈통임을 주장하는 파티마 왕조가 튀니지에서 봉기, 이집트까지 점령하고 카이로에 도읍을 하고 칼리파를 선언하면서 압바스 왕조의 헤게모니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파티마 왕조에 대항하여 후우마이야 왕조까지 칼리파를 자칭하면서 이슬람 세계는 세 칼리파가 공존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카이로에서 번영을 누렸으나, 칼리파 알 하킴의 실종 이후 실권을 잃었고 군인과 관료들에게 휘둘렸다.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가 압바스 칼리파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파티마 칼리파를 더이상 세우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멸망하였다.
3. 분파
3.1. 무스탈리파
Mustaali/ Taiyabi
파티마 8대 칼리파 Al-Mustansir Billah 사후 자식 형제들 간의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분쟁에서 동생 무스탈리(Musta'li)를 추종한 자들의 집단이다.
오늘날 대부분 아가 칸을 중심으로 뭉쳐있는 니자리파와 달리 여러개의 분파로 분열되어 있는 상태다. 보흐라파(Bohra) 신자의 대부분은 예멘과 인도에 분포한다.
3.2. 니자리파
Nizāri
파티마 8대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 빌라하(Al-Mustansir Billah) 사후 자식 형제들 간의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분쟁에서 형 니자르(Nizar)를 추종한 자들의 집단이다.
반란 직후 니자르는 감금된 후 암살되어 생을 마감했지만, 추종자들은 니자르는 모습을 감췄을 뿐이고 언젠가는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맘'과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가 하산 사바흐이며, 유명한 '''어쌔신'''들이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니자르의 적인 재상 알 아흐달을 암살하고 니자르 대신 칼리파 위를 차지한 알 무스타일의 아들 알 아미르를 암살하는데 성공하며 복수를 하였다. 이후 이란과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때 상당한 세력을 쌓아올렸지만 훌라구의 서정과 바이바르스의 토벌에 의해 붕괴하였고 음지로 숨어들었다.
3.2.1. 아가 칸
페르시아로 이동한 니자르 파에서 44대 이맘 하산 알리 샤(Ḥassan ʻAlī Shāh)(1800~1881)가 페르시아의 샤의 공주와 결혼하고 아가 칸(Aga Khan) 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아가 칸은 나중에 인도로 이동하였으며 (현재 근거지는 영국이다.), 아가 칸의 지위는 현대까지 계승되고 있다.(현재 아가 칸 4세, 1936년생)
'아가 칸'은 영토는 없지만 막대한 부와 엄청난 수의 추종자[2] 를 보유하고 있어 사실상 일국의 군주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3] 본래 아가 칸 파벌은 이스마일=니자리파의 한 갈래였지만, 이스마일=니자리파 가운데 가장 확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보니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리아 등에 퍼져있던 니자리계 분파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가 칸을 이맘으로 인정하고 따르게 되어서 세력이 더욱 확대되었다.
사실상 현재 이스마일파의 분파 가운데서는 가장 세력이 크며, 이스마일=니자리파의 종주를 칭하고 있다. 아가 칸 4세는 극단주의 성향이 강했던 이스마일파를 세속,[4] 온건 성향으로 개혁하는 인물로, 이스마일파 소수민족들이 사는 산간 벽지에 학교를 비롯한 여러가지 편의 시설을 지어주고 투자해주는 정책을 통해 이스마일파 신도 전반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과거 악명높은 극단파 암살단의 후예가 현대 무슬림 세계에서 세속주의 온건파로 바뀐 아이러니한 상황.''' 아가 칸 가문이 유럽으로 생활 근거지를 옮긴 지가 오래 됐고, 아가 칸 4세만 해도 이미 혈통의 3/4가 유럽인이고, 본인과 아들들도 유럽/미국인과 결혼했으니 이슬람 근본주의보다는 아무래도 서구적 가치관에 익숙하리라 본다.
3.3. 드루즈파
부하라 근교 태생의 이스마일파 신학자 앗 다라지가 이집트 파티마 왕조에 가서 창시한 종교로 시리아에 주로 분포하며, 요르단, 레바논, 이스라엘에도 소수 신도들이 있다. 앗 다라지는 다른 성직자들과 싸우다 쫓겨났는데, 초기 드루즈교 성직자들은 종교 창시자 앗 다라지가 빠진 자리를 메꾸기 위해 실종된 파티마 왕조 6대 칼리파 알 하킴이 사실 마흐디이며, 그는 지금 모습을 감추고 있고 언젠가 재림할 것이라는 교리를 도입했다. 즉 종교 창시자 자리에 실종된 칼리파 하킴을 대신 앉혀놓은 것. 교리적으로 신비주의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며, 가르침에서 여러모로 이슬람에서 동떨어진 것이 많다.[6] 사실, 이 때문에 대다수 근본주의 성향 무슬림들은 드루즈파를 일종의 떨어져 나간 사이비 종교로 취급하고 주류 이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
[1] 여기서 "아무리 봐도 이거 족보 날조한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종교적 신념이니 그렇다고 치자(...)[2] 정확한 추산은 불가[3] 영국으로부터는 전하(His Highness), 팔레비 왕조 이란으로부터는 전하(His Royal Highness) 칭호를 받았으나, 후자는 현재 쓰지 않는 듯.[4] 나이트 클럽에서 술 취해서 주먹다짐하고 카지노에서 도박하는 세속화 말고, 과거와 다르게 여성의 사회 참여를 장려하고 이슬람과 직접 관련 없는 학문도 교육을 적극 권장하는 형태의 세속화를 말한다.[5] 일단 하나만 말하지면, 순니 와하브파는 음악을 절대 금기시한다.[6] 특히 복장이 다른 이슬람 종파들과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