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카족
Sakā (고대 페르시아어)
Sacae (라틴어)
शक (산스크리트어, "샤카")
塞 (한자, "변방 새")
1. 개요
샤카란 원래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 페르시아인들이 스키타이인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원시인구어로 궁수를 뜻하는 단어 *(s)kéwd-e-ti[1] 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스키타이계 종족들은 서로는 현대의 헝가리에서 남으로 아프가니스탄, 동으로 알타이-간쑤성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스텝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페르시아인들은 이들을 모두 샤카라고 불렀다. 후대의 그리스 로마 역사가들은 이들을 구분하여 서쪽인 동유럽에 있던 이들을 스키타이, 동쪽인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이들을 샤카라고 하였다.
하지만 샤카라는 것이 특정 부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스텝 지대에 살던 여러 유목민 부족들을 모두 뭉뚱그려 부른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스키타이 계열이나 이란어족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2. 역사
이들은 아케메네스 왕조나 파르티아에 정복되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살았다. 키루스 2세가 샤카의 일파로 추정되는 마사게타이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적이 있는 반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 당시 가우가멜라 전투에서는 샤카 족의 카타프락토이가 페르시아 측에 서서 싸웠다.[2]
파르티아가 페르시아를 장악한 이후 BC 2세기 경에는 중앙아시아에서 밀려난 대월지가 서쪽으로 쳐들어왔는데, 여러 샤카 부족들이 월지의 공격으로 남쪽으로 밀려났다. 그 와중에서 박트리아 왕국이 붕괴되었고, 파르티아도 왕이 전사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건실한 국력을 지녔던 파르티아는 방어에 성공하고 이란에 귀순한 소수이외에 대부분의 샤카 족은 이후 인도 방향으로 밀려 이동했다.
인도로 밀려나기 전에 있었던 그 땅을 사카스탄이라고 하였는데, 현대 이란의 파키스탄 접경지대인 시스탄-발루치스탄 지역이다. sistan은 sakastan이 변형된 것이다.
이후 이들은 신드-구자라트-라자스탄 지역을 정복하고 정착했다. 기원후 1세기 경에 해당 지역에 곤도파레스 왕조, 혹은 인도-파르티아 왕국이 들어섰으며, 대부분의 인도-파르티아와 인도-사카 세력은 이후 서서히 파르티아와 쿠샨 왕조에 복속되어 페르시아화, 인도화 되었다. 호탄에 잔류한 샤카족들도 쿠샨 왕조의 영향을 받았으며, 소그드인은 마사게타이의 후손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