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오스틴 vs 더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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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라이벌리를 다룬 문서.
오스틴과 락과의 우열 비교는 여전히 유효한 떡밥으로 대체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락, 팬층에서의 인기는 오스틴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락이 영화배우로 크게 성공한 현재에는 더 이상의 비교가 어려워졌지만, 그것과 별개로 프로레슬러로서 팬들이 인정한 라이벌이기도 하고 두 선수 모두 쌓아온 커리어와 명성이 대단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는 애티튜드 시대의 유일무이한 아이콘을 꼽으라면 더 락을 꼽을 것인지 오스틴을 꼽을 것인지 논쟁이 오간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흥행 면에서나, 인기 면에서나, 조명 받은 시기로서나,[1] 상징적인 의미로서나, 상대 전적[2] 으로나 다방면에서 모두 오스틴이 한 수 위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기운다.
오스틴은 이미 1998년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를 꺾고 WWE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해 WWF 섬머슬램(1998)에서도 언더테이커를 클린 핀폴로 잡아내며 메인이벤터로서 탄탄대로를 달렸고, 무엇보다 빈스 맥마흔과의 대립이 폭발적인 히트를 치면서 경쟁단체인 WCW를 패망시킬정도로 WWE의 최 전성기를 이끌었다. 말 그대로 블루 컬러의 정석적인 액션과 거친 캐릭터성 및 카리스마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스에게 억압받는 소시민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활동하며 락보다 훨씬 먼저 회사를 프로레슬링 업계의 부동의 원탑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에 일조했다. '''무엇보다 오스틴과 빈스 맥마흔 일가의 대립이 WWE 역사상 최전성기인 애티튜드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엄청나게 크다.'''
반면 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첫 챔피언에 오르며 메인이벤터 급으로 올라섰지만 그때는 오스틴의 위상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락은 공교롭게도 1999년 레슬매니아 15의 메인이벤트에서 오스틴에게 패해 타이틀을 넘겨준 이후 턴페이스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현란한 마이크웍과 역동적인 액션의 포텐이 터지며 파죽지세로 인기가 치솟았고,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까지 오스틴이 목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한 동안엔 명실상부한 WWE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오스틴이냐 더 락이냐는 논쟁도 이 시점부터였다.
목 부상때문에 장기간 이탈한 오스틴은 2000년 9월에야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 시점은 이미 락이 WWE의 1인자로 챔피언 장기집권을 하던 시기였다. 말 그대로 WWE는 두 명의 아이콘을 갖게된 셈. 경쟁단체인 WCW는 이 시점에서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두 아이콘은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으로 일컬어지는 레슬매니아 17의 메인이벤트에서 역대급 프로모를 뽑아내며 충돌했고, 이는 과거 헐크 호건 vs. 얼티밋 워리어에 뒤지지 않는 위상과 상징성을 가진 대립으로 평가받는다.
레슬매니아 17에서 락에게 승리한 후 악역으로 전환한 오스틴은 패망한 경쟁단체 WCW와 ECW잔당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WWE에 위협을 가했고, 이에 맞선 락은 WWE를 수호하기 위한 리더로 활동했다. 이 대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5:5 매치에서 락의 팀 WWE가 오스틴의 연합군에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
이듬해인 2002년은 둘의 직접적인 대립은 없었지만 레슬매니아 18에서 락은 헐크 호건과의 아이콘 vs. 아이콘 매치를 치러 승리했고, 오스틴 역시 스캇 홀과의 경기라는 나름의 드림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얼마 후 벌어진 WWE 드래프트에서 오스틴은 RAW, 락은 스맥다운 소속이 확정되면서 당분간 둘이 만날 일이 없게되었다. 게다가 오스틴은 회사와의 마찰로 스스로 WWE를 떠나버리고, 락 또한 2002년 8월 섬머슬램을 끝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장기간 이탈하며 둘의 대립은 아예 종결되는것으로 보였으나...
2003년 2월 락은 확 달라진 외모와 함께 거만한 헐리우드 스타 기믹으로 다시 WWE로 컴백했고, 오스틴 또한 WWE와 다시 계약을 맺으며 돌아왔다. 그리고 당시 스맥다운 소속이었던 락은 RAW로 이적해 이 업계에서 못해본 일은 오스틴을 꺾는 것이라면서 다시 한 번 오스틴에게 도전했고, 결국 둘은 레슬매니아 19에서 다시 한 번 충돌하게 된다. 이 경기에선 락이 피니시 기술 락 바텀을 3번 연달아 작렬시키며 오스틴에게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오스틴은 고질적인 목 부상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이 경기가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보다시피 둘이 직접적으로 대립한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1999년 당시의 대립은 락이 오스틴의 위상에 한참 뒤쳐졌고, 둘의 위상이 동급으로 평가받던 시절의 대립은 2001년 레슬매니아 시즌과 WWE vs. 연합군 시절, 그리고 2003년 레슬매니아 시즌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의 간판이자 아이콘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WWE 매니아들 사이에선 오스틴 vs 락은 꾸준히 회자되는 떡밥이며 지금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것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WWE는 2003년을 기점으로 오스틴이 은퇴하고 락 또한 2004년 후로 영화에 전념하며 2011년 컴백 이전까지 무려 7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그 기간동안 단체의 탑페이스가 된 선수가 바로 존 시나였다. 애티튜드 시대의 재미와 흥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골수팬들에게 시나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고 시청률은 폭락했으며, 이는 더더욱 팬들이 오스틴과 락을 그리워하는 반작용도 불러일으켰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시기의 WWE를 그리워할 정도로 당시 둘의 위상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그 탓에 많은 팬들은 다른 vs 놀이처럼 서로를 까내려 못잡아먹는 논쟁과 달리, 오스틴과 락 둘중 누가 우위인가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둘 모두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전술했듯이 커리어 면에선 다방면으로 오스틴이 한 수 위로 인정받는쪽으로 기운 탓이기도 하고, 락의 팬들도 이 부분에서는 딱히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락의 경우 영화배우로서 WWE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고, WWE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No.1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 특히 배우 전업 후 7년만인 2011년 다시 WWE에 깜짝 컴백해 세 차례나 연속으로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장식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인 부분 등이 오스틴과의 vs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커리어를 메꿔주는 편이다.
정리하자면 오스틴은 애티튜드 시대로 상징되는 WWE의 중흥기를 앞장서서 이끌며 단체의 아이콘이 되었고, 락은 오스틴의 공백기동안 그 바톤을 이어받아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둘의 대립은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을 찍으며 전설이 되었다. 풀 타임 레슬러로서 활약하는 동안은 오스틴이 락에 다방면에서 우위를 점하며 WWE의 성장을 이끌었으나, 락 또한 영화배우를 겸업하면서 외부에서 WWE의 인지도를 올려주고, 이미 영화배우로서 성공한 2010년대에 WWE로 다시 컴백해서 활동할만큼 WWE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선수였다. 굳이 '유일무이한' 아이콘을 꼽자면 오스틴에 무게가 쏠리지만, 실상 둘의 우열을 가린다는건 크게 의미가 없을만큼 두 선수 모두 WWE 역사에 빛나는 커리어를 쌓은 마일스톤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라이벌의 기준을 '장기간 대립'으로 한정한다면 오스틴은 언더테이커, 락은 트리플 H쪽이 더 맞겠지만 그럼에도 오스틴 vs 락의 떡밥이 유효한 것은, WWE 역사상 그 둘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있는 위상을 갖춘 선수가 한 손에 겨우 꼽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대립 당시 워낙 치열하게 다툰 것과 별개로 둘은 매우 절친한 사이다. 마지막 경기였던 레슬매니아 19에서도 경기 종료 후 서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서로를 리스펙트하던 사이였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서로와의 대립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또한 락은 오스틴 vs 락을 WWE 역대 최고의 라이벌이라 생각한다고 본인 SNS에 따로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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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라이벌리를 다룬 문서.
2. 상세
오스틴과 락과의 우열 비교는 여전히 유효한 떡밥으로 대체로 대중적인 인지도는 락, 팬층에서의 인기는 오스틴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락이 영화배우로 크게 성공한 현재에는 더 이상의 비교가 어려워졌지만, 그것과 별개로 프로레슬러로서 팬들이 인정한 라이벌이기도 하고 두 선수 모두 쌓아온 커리어와 명성이 대단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도 팬들 사이에서는 애티튜드 시대의 유일무이한 아이콘을 꼽으라면 더 락을 꼽을 것인지 오스틴을 꼽을 것인지 논쟁이 오간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래도 흥행 면에서나, 인기 면에서나, 조명 받은 시기로서나,[1] 상징적인 의미로서나, 상대 전적[2] 으로나 다방면에서 모두 오스틴이 한 수 위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기운다.
2.1. 스티브 오스틴
오스틴은 이미 1998년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를 꺾고 WWE 챔피언에 등극했고, 그해 WWF 섬머슬램(1998)에서도 언더테이커를 클린 핀폴로 잡아내며 메인이벤터로서 탄탄대로를 달렸고, 무엇보다 빈스 맥마흔과의 대립이 폭발적인 히트를 치면서 경쟁단체인 WCW를 패망시킬정도로 WWE의 최 전성기를 이끌었다. 말 그대로 블루 컬러의 정석적인 액션과 거친 캐릭터성 및 카리스마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보스에게 억압받는 소시민을 대변하는 영웅으로 활동하며 락보다 훨씬 먼저 회사를 프로레슬링 업계의 부동의 원탑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에 일조했다. '''무엇보다 오스틴과 빈스 맥마흔 일가의 대립이 WWE 역사상 최전성기인 애티튜드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가 엄청나게 크다.'''
2.2. 더 락
반면 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1998)에서 첫 챔피언에 오르며 메인이벤터 급으로 올라섰지만 그때는 오스틴의 위상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락은 공교롭게도 1999년 레슬매니아 15의 메인이벤트에서 오스틴에게 패해 타이틀을 넘겨준 이후 턴페이스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현란한 마이크웍과 역동적인 액션의 포텐이 터지며 파죽지세로 인기가 치솟았고, 그 해 11월부터 이듬해까지 오스틴이 목 부상으로 장기간 이탈한 동안엔 명실상부한 WWE의 간판으로 활동했다.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오스틴이냐 더 락이냐는 논쟁도 이 시점부터였다.
2.3. 두 명의 아이콘
목 부상때문에 장기간 이탈한 오스틴은 2000년 9월에야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 시점은 이미 락이 WWE의 1인자로 챔피언 장기집권을 하던 시기였다. 말 그대로 WWE는 두 명의 아이콘을 갖게된 셈. 경쟁단체인 WCW는 이 시점에서 이미 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두 아이콘은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으로 일컬어지는 레슬매니아 17의 메인이벤트에서 역대급 프로모를 뽑아내며 충돌했고, 이는 과거 헐크 호건 vs. 얼티밋 워리어에 뒤지지 않는 위상과 상징성을 가진 대립으로 평가받는다.
2.4. 레슬매니아 17 이후
레슬매니아 17에서 락에게 승리한 후 악역으로 전환한 오스틴은 패망한 경쟁단체 WCW와 ECW잔당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끊임없이 WWE에 위협을 가했고, 이에 맞선 락은 WWE를 수호하기 위한 리더로 활동했다. 이 대립은 WWF 서바이버 시리즈(2001) 5:5 매치에서 락의 팀 WWE가 오스틴의 연합군에 승리를 거두며 끝났다.
이듬해인 2002년은 둘의 직접적인 대립은 없었지만 레슬매니아 18에서 락은 헐크 호건과의 아이콘 vs. 아이콘 매치를 치러 승리했고, 오스틴 역시 스캇 홀과의 경기라는 나름의 드림매치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얼마 후 벌어진 WWE 드래프트에서 오스틴은 RAW, 락은 스맥다운 소속이 확정되면서 당분간 둘이 만날 일이 없게되었다. 게다가 오스틴은 회사와의 마찰로 스스로 WWE를 떠나버리고, 락 또한 2002년 8월 섬머슬램을 끝으로 영화 촬영을 위해 장기간 이탈하며 둘의 대립은 아예 종결되는것으로 보였으나...
2.5. 마지막 대립
2003년 2월 락은 확 달라진 외모와 함께 거만한 헐리우드 스타 기믹으로 다시 WWE로 컴백했고, 오스틴 또한 WWE와 다시 계약을 맺으며 돌아왔다. 그리고 당시 스맥다운 소속이었던 락은 RAW로 이적해 이 업계에서 못해본 일은 오스틴을 꺾는 것이라면서 다시 한 번 오스틴에게 도전했고, 결국 둘은 레슬매니아 19에서 다시 한 번 충돌하게 된다. 이 경기에선 락이 피니시 기술 락 바텀을 3번 연달아 작렬시키며 오스틴에게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오스틴은 고질적인 목 부상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이 경기가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3. 정리
보다시피 둘이 직접적으로 대립한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1999년 당시의 대립은 락이 오스틴의 위상에 한참 뒤쳐졌고, 둘의 위상이 동급으로 평가받던 시절의 대립은 2001년 레슬매니아 시즌과 WWE vs. 연합군 시절, 그리고 2003년 레슬매니아 시즌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체의 간판이자 아이콘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WWE 매니아들 사이에선 오스틴 vs 락은 꾸준히 회자되는 떡밥이며 지금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도 그럴것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WWE는 2003년을 기점으로 오스틴이 은퇴하고 락 또한 2004년 후로 영화에 전념하며 2011년 컴백 이전까지 무려 7년의 공백기를 가졌는데, 그 기간동안 단체의 탑페이스가 된 선수가 바로 존 시나였다. 애티튜드 시대의 재미와 흥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골수팬들에게 시나는 그야말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고 시청률은 폭락했으며, 이는 더더욱 팬들이 오스틴과 락을 그리워하는 반작용도 불러일으켰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이 오스틴과 락이 이끌던 시기의 WWE를 그리워할 정도로 당시 둘의 위상은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그 탓에 많은 팬들은 다른 vs 놀이처럼 서로를 까내려 못잡아먹는 논쟁과 달리, 오스틴과 락 둘중 누가 우위인가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둘 모두를 그리워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전술했듯이 커리어 면에선 다방면으로 오스틴이 한 수 위로 인정받는쪽으로 기운 탓이기도 하고, 락의 팬들도 이 부분에서는 딱히 토를 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락의 경우 영화배우로서 WWE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고, WWE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No.1의 지위에 올랐다는 점, 특히 배우 전업 후 7년만인 2011년 다시 WWE에 깜짝 컴백해 세 차례나 연속으로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장식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보인 부분 등이 오스틴과의 vs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커리어를 메꿔주는 편이다.
정리하자면 오스틴은 애티튜드 시대로 상징되는 WWE의 중흥기를 앞장서서 이끌며 단체의 아이콘이 되었고, 락은 오스틴의 공백기동안 그 바톤을 이어받아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둘의 대립은 애티튜드 시대의 정점을 찍으며 전설이 되었다. 풀 타임 레슬러로서 활약하는 동안은 오스틴이 락에 다방면에서 우위를 점하며 WWE의 성장을 이끌었으나, 락 또한 영화배우를 겸업하면서 외부에서 WWE의 인지도를 올려주고, 이미 영화배우로서 성공한 2010년대에 WWE로 다시 컴백해서 활동할만큼 WWE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선수였다. 굳이 '유일무이한' 아이콘을 꼽자면 오스틴에 무게가 쏠리지만, 실상 둘의 우열을 가린다는건 크게 의미가 없을만큼 두 선수 모두 WWE 역사에 빛나는 커리어를 쌓은 마일스톤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라이벌의 기준을 '장기간 대립'으로 한정한다면 오스틴은 언더테이커, 락은 트리플 H쪽이 더 맞겠지만 그럼에도 오스틴 vs 락의 떡밥이 유효한 것은, WWE 역사상 그 둘과 같은 반열에 둘 수 있는 위상을 갖춘 선수가 한 손에 겨우 꼽을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대립 당시 워낙 치열하게 다툰 것과 별개로 둘은 매우 절친한 사이다. 마지막 경기였던 레슬매니아 19에서도 경기 종료 후 서로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서로를 리스펙트하던 사이였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서로와의 대립을 회상하며 즐거워한다. 또한 락은 오스틴 vs 락을 WWE 역대 최고의 라이벌이라 생각한다고 본인 SNS에 따로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1] 오스틴이 한참 메인 이벤터 급으로 조명을 받았을 시기에, 더 락은 아직 트리플 H와 함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놓고 다투는 하이 미드카터급 위치에 불과했다.[2] 레슬매니아에서만 3번을 붙었는데, 두 번이나 오스틴이 승리했다. 그것도 두 번 연속으로. 단순히 레슬매니아 뿐 아니라 더 락은 오스틴 상대로 살아있는 호구 수준이었는데, 1:1 경기로는 유일하게 락이 승을 챙긴 경기가 오스틴 은퇴전이었던 레슬매니아 19였고, 다 : 다 경기까지 합치면 2001 서바이버 시리즈 인베이전 경기에서 락이 오스틴을 상대로 최종 핀폴을 따낸 것이 추가된다. 즉, 락이 오스틴을 핀폴로 이긴 적이 경력 통틀어 두 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