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
1. 프로필
2. 개요
[image]
'''"Deadman walking."'''[25]
[26]
미국의 前 프로레슬러. 무려 30년을 WWE에서만 활동을 한 전설적인 선수이다.'''"You will Rest In Peace."'''
"'''너는 곧 고이 잠들 것이다."'''
1984년에 프로레슬링을 시작해 여러 단체를 전전하며 레슬링 커리어를 이어오다가, 1990년에 WWE에 입사한 이후 2020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였다. 언더테이커는 역대 WWE 선수들 중에서 이례적으로 '''근속 기간이 가장 긴 선수'''로써, WWE에서만 무려 '''30년'''간 단 한번의 이적 없이 활동해온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27]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언더테이커는 헐크 호건부터 존 시나에 이르기까지 WWE의 '''모든''' 아이콘급 레슬러들[28] 과 대립해본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였다. 아이콘급 레슬러들 외에도 떠오르는 신예들에게 메인 이벤터로 진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 같은 최종보스 역할을 수행해 왔었다.[29]
팬들도 이런 언더테이커의 노고를 잘 알기에 프로레슬링 마니아들은 언더테이커가 출연할 때마다 끊임없는 리스펙트를 보내주며, 그가 선역이었을 때는 물론 그가 악역이었을 때도 환호했었다. 2010년대 이후로는[30] 레슬매니아 시즌 위주로 출연하는 파트 타임 레슬러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도 풀타임으로 활약하기는 어려운 몸상태라고.
2020년 6월 21일 현역 은퇴를 발표하며, WWF를 시작으로 도합 30년을 활약했던 WWE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되었고, 서바이버 시리즈 2020에서 마침내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으며 명예롭게 은퇴를 하게 되었다.
3. 커리어
4. 경기력
5. 평가
언더테이커는 그 당시로서는 가히 충격이라 할 기믹의 레슬러로 WWE에 데뷔해 성공했으며 이례적으로 뛰어난 운동 신경을 가진 거인 레슬러였다. 언더테이커가 WWE에 데뷔할 당시에 WWE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 자이언트 곤잘레스, 빅 존 스터드 등의 크고 굼뜬 거인 레슬러들이 활동했던 시대여서 그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던 시기였는데, 2미터에 가까운 키의 제이크 로버츠의 머리까지 뛰어서 플라잉 크로스라인을 날리거나 상대의 팔을 잡고는 로프 위로 걸어다니는 올드 스쿨 등의 무브를 선보이며 팬들에게 편견을 버리게 한 인물이었다. 경기 조율 능력도 좋아 숀 마이클스와의 헬 인 어 셀 경기는 데이브 멜쳐 평점 5점 만점을 받았으며 이외에 수두룩한 명경기를 만들어낸 능력자였다.
그가 고평가 받을 수 있는 이유 중에는 물론 경기력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만 그에 뒤지지 않게 비중이 큰 게 바로 '''기믹'''이다. 언더테이커가 데뷔했을 때에는 아직 유치하고 만화스러운 기믹들이 있었을 때였고 프로레슬링이 실제 상황이 아닌 연출되는 상황이라는 사실도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였었다. 그래서 이런 언더테이커가 '죽음의 계곡에서 온 장의사' 기믹으로 데뷔했을 때에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특히 어린 팬들의 충격은 이루어 말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피니셔를 먹여도 가뿐히 일어나는 언더테이커의 모습은 흡사 언데드를 연상케 했으며, 링 사이드에서 함께 있던 매니저 폴 베어러의 기묘한 모습 또한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창백한 피부, 검은 모자와 옷, 장송곡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름 돋는 테마곡은 하여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비주얼로 돌아왔고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었다. 데뷔 당시 헐크 호건의 상대로 일회성으로 끝날 기믹이었던[31] 장의사 기믹은 이렇게 성공적인 반응을 얻어서 정식으로 채용된 것. 프로레슬러에게 기믹이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크고, 경기력이 암만 좋아도 기믹에 개성이 없어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둘을 겸비했던 언더테이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는 셈. 게다가 국내에선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시들해져 가던 1990년대 초반에 그 '무적의 헐크 호건'을 이겼다는 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5.1. 팟캐스트 발언 논란
2020년 1월 Joe Rogan Experience 팟캐스트 방송 제1598회에 출연해서 현 세대의 프로레슬러들에 대해 내뱉은 발언들이 큰 논란이 되었다. 그는 해당 방송에 나와서 "내가 옛날에 처음 락커룸에 들어섰을 때는 거친 사내들로 가득찼고 그 중 반은 가방에 '''총과 칼'''을 소지하곤 했다. 근데 요즘 락커룸을 보면 애들이 비디오 게임이나 하고 사람들한테 잘보이려고 애를 쓴다. 아마 시대가 변한 것이겠지만 난 잘 모르겠다. 난 사내가 사내다웠던 '''옛 시절이 좋았다'''."라고 말했는데 이게 방송 후 업계나 팬덤에서 알려지면서 시끄러워진 것.
(애티튜드 시대 시절을 포함한) 과거의 프로레슬러들이 오늘날 스타들에 비해 훨씬 마초스럽고 카리스마있었다는 건 이미 팬들 사이에서도 여러 차례 거론된 일이기도 하고 코너 맥그리거도 스티브 오스틴과 더락을 거론하며 비슷한 소리를 할 정도로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하필 '''총과 칼'''을 운운하고 비디오게임을 거론하면서 신세대 프로레슬러들을 마치 나약하다는 식의 뉘앙스를 내비친 발언은 '''누가봐도 꼰대스러움 그 자체'''여서 현역 레슬러들과 팬들이 크게 분개했다.
이에 로만 레인즈는 SI와의 인터뷰에서 "요즘은 업계 사업전략 자체가 바뀌어서 옛날이랑 비교하는게 옳지 않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게임하면서 팬들이랑 소통하는게 뭐가 문제냐? 가방에 위험한 물건 넣고 다니느니 차라리 게임기를 넣는게 낫다"며 반박했다. 그 와중에 위대한 대선배의 망언을 최대한 쉴드쳐주려고 했는지 "아마 방송 진행자가 부추겨서 평소에 하지도 않은 말을 꺼내게 된거 같다"는 얘기도 덧붙혔다. 에이든 잉글리쉬는 "아니, 그럼 락커룸에서 즐겁게 지내느니 차라리 우리더러 마약같은거나 하고 다니라는거냐"며 반발했고, AEW에서 뛰는 트렌트 바레타는 "감옥에나 갈 소리다"라고 대놓고 지적했다.#
6. 그 외
- 그의 아버지 Frank C. Calaway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해군으로 복무한 이력이 있으며, 언더테이커 본인은 4형제 중 막내였다. 언급된 대로 대학 때까지는 농구를 했었지만 NBA 레벨은 아니었다고. 그러다 레슬링 광팬인 본인의 진로를 고민하다 큰형의 조언으로 뜻을 정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큰형은 본야드 매치가 열리기 이전에 타계했다고 한다.
- WWE의 모든 전현직 레슬러들을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동안 선수 생활을 했던 최장기 근속자다. 헐크 호건이 주름잡던 골든 에라를 거쳐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가 주축이 되었던 뉴 제네레이션, 스티브 오스틴, 더 락, 트리플 H 트로이카가 두각을 드러내던 애티튜드 에라, 존 시나의 독주체제이던 루쓸리스 어그레션, 2010년대의 리얼리티 에라까지 그야말로 WWE의 모든 역사를 관통한 WWE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현대 프로레슬링의 역사 그 자체이다.
- 스맥다운 게임 시리즈 역사상 최고 오버롤인 98을 기록한 선수이다. 해당 작품은 스맥다운 VS 로우 2011이다. 2011 자체가 선수 오버롤이 전체적으로 많이 상향 평준화 된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32] 독보적으로 높게 측정이 되었다. 이는 트리플 H(95), 존 시나(97), 더 락(97), 스티브 오스틴(95), 브록 레스너(95) 같은 시리즈의 전통적인 강캐들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 만화적인 기믹이 대세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기믹치고도 상당히 독특한 기믹이라서 그런지 그의 존재 덕분에 만들어진 기믹 매치가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헬 인 어 셀 매치이고, 캐스킷 매치, 배리드 얼라이브 매치[33] , 인페르노 매치[34] 등이 있다. 게다가 이런 경기들이 대부분 WWE에 정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여러 가지로 공이 크다. [35]
- 자신의 캐릭터에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화가 있다. 한때 하디 보이즈가 갱그럴의 수하로 활동한 뉴 브러드 시절일 때는 입장할 때 불구덩이 속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등 흡혈귀 풍의 악마적 이미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매트 하디가 레그 드롭을 하고 기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경기를 마치고 라커룸으로 돌아오니까 언더테이커가 부르더니 "방금 전에 네가 한 거, 다시는 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고. 언더테이커가 쇼의 모든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있을 수 있었던 일[36] 이기도 하다.
- 입지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본인 스스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에게 적극적으로 잡[37] 을 해주는 편. 과거의 케인이나 한때 최고의 푸쉬를 받던 브록 레스너 및 존 시나, 에지 등등도 언더테이커와의 대립을 통해 듣보잡에서 가능성 있는 유망주로 성장해 결국 잠재력이 폭발했다.
물론 터프 이너프 1기의 메이븐이나 2004년 하이든라히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언더테이커가 이겨도 결국 그 상대를 상당히 띄워주는 식으로 이기기 때문에, 승패와 관련 없이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38] 사실상 WWE 내에서 볼 수 있는 최고급 자버의 역할도 겸직하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잡에 인색한 다른 선수들(단적인 예로 트리플 H)과는 달리 비난 받는 것을 볼 수 없다.
인상적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언더테이커가 WWF에서 데뷔한 뒤 큰 푸쉬를 받으며 단숨에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와 맞먹는 거물로 성장했단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당시 자버 중의 자버[39] 로 기억되던 티토 산타나라는 선수에게 깨끗하게 핀폴 승을 내준 사례가 있었다.[40] 승리를 거두고 그의 테마 음악이 울려퍼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비밀은 바로 이날 쇼가 열린 곳이 티토 산타나의 고향이라는 거였다. 관중들 반응을 보면 알겠지만 이 날만큼은 티토 산타나가 주인공이었기에 언더테이커가 패하는 잡을 해줬던 것.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언더테이커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스탯 면이 아쉬운 편인데 그 긴 커리어 동안, 그것도 메인 이벤터 급으로 뛴 기간이 상당한 데도 그랜드슬램은 커녕 트리플 크라운도 달성하지 못했다. 여기에 스티브 오스틴이 로얄 럼블에서 3회 우승하고 헐크 호건, 숀 마이클스, 존 시나, 바티스타, 트리플 H, 랜디 오턴, 에지가 2회 우승하는 동안, 언더테이커는 1회 우승 밖에 하지 못했다.[41] 그렇지만 비록 깨졌다 해도 레슬매니아 연승은 언더테이커 이외엔 허락되기 힘든 기록이란 걸 생각해보면 벨트나 우승에선 아쉽지만 기록인 면에선 당대 1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유일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42]
인상적인 예를 하나 더 들자면, 언더테이커가 WWF에서 데뷔한 뒤 큰 푸쉬를 받으며 단숨에 헐크 호건, 얼티밋 워리어와 맞먹는 거물로 성장했단 사실은 다들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당시 자버 중의 자버[39] 로 기억되던 티토 산타나라는 선수에게 깨끗하게 핀폴 승을 내준 사례가 있었다.[40] 승리를 거두고 그의 테마 음악이 울려퍼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는데, 비밀은 바로 이날 쇼가 열린 곳이 티토 산타나의 고향이라는 거였다. 관중들 반응을 보면 알겠지만 이 날만큼은 티토 산타나가 주인공이었기에 언더테이커가 패하는 잡을 해줬던 것.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언더테이커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스탯 면이 아쉬운 편인데 그 긴 커리어 동안, 그것도 메인 이벤터 급으로 뛴 기간이 상당한 데도 그랜드슬램은 커녕 트리플 크라운도 달성하지 못했다. 여기에 스티브 오스틴이 로얄 럼블에서 3회 우승하고 헐크 호건, 숀 마이클스, 존 시나, 바티스타, 트리플 H, 랜디 오턴, 에지가 2회 우승하는 동안, 언더테이커는 1회 우승 밖에 하지 못했다.[41] 그렇지만 비록 깨졌다 해도 레슬매니아 연승은 언더테이커 이외엔 허락되기 힘든 기록이란 걸 생각해보면 벨트나 우승에선 아쉽지만 기록인 면에선 당대 1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유일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42]
-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당시 당사자 외의 선수들 중 가장 먼저 나서 빈스 맥마흔을 직접 찾아가 브렛 하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 때 끌려온 빈스는 결국 브렛에게 얻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WF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해서 당시 WWF보다 잘나가던 WCW에서 엄청나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언더테이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WWF에서 뛰며 애티튜드 시대를 받쳐주는 버팀목으로 활약했다. 스티브 오스틴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빈스 맥맨과 언더테이커 두 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실제로 애티튜드 당시 WWF를 보면 언더테이커는 스티브 오스틴 전용 자버에 가까웠다. 거기에다 케인, 믹 폴리 등을 키워준 일등공신에 더 락, 빅 쇼 등의 성장에도 도움을 주었으니... 여러 모로 WWF - WWE 입장에서도, 동료 선수들 입장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존경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인물이라 하겠다. 레슬매니아에서는 연승 기록 유지 때문에 언더테이커의 승리가 뻔한데도 팬들이 환호할 정도다. 브록한테 패했을 당시 팬들의 반응이 과할 정도로 극렬했던 것도 그가 그동안 성실하게 쌓아올린 이미지 때문.
- 짬이나 경력이나 레슬러들이 누구나 납득하는 권위를 갖고 있어서 백스테이지에서 레슬러들을 훈계하는 '레슬러 재판'은 언더테이커의 암묵적인 허가가 있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실제로도 재판장 역할을 하며 어찌보면 선배들이 후배 굴린다고 욕먹을 수도 있지만, 회사와 레슬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언더테이커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을 선다. 사실상 레슬러 노동 조합의 조합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위 몬트리올 스크류잡 일화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점만 보면 빈스와 사이가 나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둘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커트 앵글이 자서전에서 말하기로 (영문 페이지) 한 번은 비행기 안에서 빈스가 장난삼아 커트 앵글의 뒤에서 몰래 접근한 뒤 아마추어 레슬링 식 기술을 걸은 적이 있었다.[43] 둘의 장난에 주변 선수들이 환호하기라도 한 건지 마침 커트가 빈스에게 공격하는 순간 언더테이커가 잠에서 깼고, 커트가 빈스를 팬다고 오해한 언더테이커는 바로 커트를 공격해서 떼어냈다. 다행히도 빈스가 상황을 설명해서 웃으며 끝났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레슬매니아 30 당시 경기가 끝나고 백스테이지 카메라가 찍히지 않는 고릴라 포지션에 들어서자마자 언더테이커가 뇌진탕 증세로 혼절하자 그를 병원으로 옮길 때 빈스가 직접 구급차에 동승해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 이후 쇼는 트리플 H와 스테파니 맥맨이 지휘했다고 한다.
회사 회장님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고참 레슬러를 병원에 데려다 준 게 특별한 이야깃거리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텐데, 빈스는 아버지가 위독할 때도 무대를 감독하느라 자리를 뜨지 않았던 인물이다.[44] 그리고 빈스는 보디빌딩 전문 잡지인 '머슬 앤 피트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슈퍼스타가 누구냐는 질문에 언더테이커를 꼽았다. 그 이유는 충성심, 꾸준함, 그리고 본인 캐릭터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헌신하기 때문이며 언더테이커는 진정한 인격자이자 프로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레슬링 뉴스레터에 게시된 빈스 맥맨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레슬매니아 30 당시 경기가 끝나고 백스테이지 카메라가 찍히지 않는 고릴라 포지션에 들어서자마자 언더테이커가 뇌진탕 증세로 혼절하자 그를 병원으로 옮길 때 빈스가 직접 구급차에 동승해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 이후 쇼는 트리플 H와 스테파니 맥맨이 지휘했다고 한다.
회사 회장님이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고참 레슬러를 병원에 데려다 준 게 특별한 이야깃거리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텐데, 빈스는 아버지가 위독할 때도 무대를 감독하느라 자리를 뜨지 않았던 인물이다.[44] 그리고 빈스는 보디빌딩 전문 잡지인 '머슬 앤 피트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슈퍼스타가 누구냐는 질문에 언더테이커를 꼽았다. 그 이유는 충성심, 꾸준함, 그리고 본인 캐릭터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헌신하기 때문이며 언더테이커는 진정한 인격자이자 프로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레슬링 뉴스레터에 게시된 빈스 맥맨의 인터뷰
- 비슷한 시기에 엄청난 활약을 했던 숀 마이클스와는 서로 상극의 성격이었지만 레슬러로서는 서로 존중했던 관계였다고 한다. 1990년대 무렵에 "링 밖에서의 너는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링 안에서의 너는 존경한다."는 말을 마이클스에게 했다고 한다.
마이클스의 자서전을 보면 마이클스는 언더테이커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성격 차이 때문에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마이클스는 언더테이커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분했다고. 마음을 터놓는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레슬러로서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언더테이커는 항상 숀 마이클스에게 "숀, 너는 링 위에서 너의 모습을 보여주지. 나에게는 그거면 충분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 당시 WWF 최고의 슈퍼스타이긴 했어도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 안하무인 망나니라는 악평을 자주 들었던 숀은 라이벌이었던 브렛 하트와 자신의 대우 문제로 빈스와 한참 언쟁을 할 때 "이 업계에서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언더테이커 밖에 없다." 라는 말을 빈스에게 하기도 했다고. 그 후 숀 마이클스가 결혼하여 성격을 크게 고쳐먹고, 업계에서 서로 비할 바가 없는 베테랑으로서 경력을 쌓은 이후에는 개인적인 친분도 어느 정도 생긴 듯.
이 당시 WWF 최고의 슈퍼스타이긴 했어도 자기만 최고인 줄 아는 안하무인 망나니라는 악평을 자주 들었던 숀은 라이벌이었던 브렛 하트와 자신의 대우 문제로 빈스와 한참 언쟁을 할 때 "이 업계에서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언더테이커 밖에 없다." 라는 말을 빈스에게 하기도 했다고. 그 후 숀 마이클스가 결혼하여 성격을 크게 고쳐먹고, 업계에서 서로 비할 바가 없는 베테랑으로서 경력을 쌓은 이후에는 개인적인 친분도 어느 정도 생긴 듯.
- 강력한 기믹으로 데뷔하였고, 곧 메인 이벤터로 활약했으며, 이후 선수들을 이끌어나갈 경력이 되어서는 후배들을 위해 잡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대표적인 WWE 충성파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로, 회사에서 각본상의 우대를 해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식적으로 탭아웃 패를 당한 적이 없다.
WWF 킹 오브 더 링(1996)에서 맨카인드의 맨디블 클러[45] 에 걸렸으나 탭아웃하지 않고 KO로 패배를 당했고, 2002년 폭주족 기믹일 때 커트 앵글과의 타이틀 매치[46] 에서 커트 앵글의 트라이앵글 초크와 언더테이커의 핀이 동시에 들어갔는데 심판이 3을 세는 순간 탭아웃을 하면서 무승부 처리가 됐다. 통상적인 경우, 핀폴과 서브미션으로 인한 KO와 탭아웃에만 챔피언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해당 경기 이후 챔피언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WWE 섬머슬램(2015)에서 브록 레스너와 맞붙었을 땐 브록의 기무라 락에 걸려 탭아웃을 하긴 했다. 그리고 이를 본 타임 키퍼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벨을 울리긴 했지만 심판이 언더테이커가 탭아웃을 하는 걸 보지 못해서 패배로 처리되지 않았으며 브록을 로우 블로우와 헬스 게이트로 실신시켜 승리를 따냈다. 결국 공식적인 경기 결과로는 탭아웃 패배가 없는 셈.
그리고 WWE 섬머슬램(2015)에서 브록 레스너와 맞붙었을 땐 브록의 기무라 락에 걸려 탭아웃을 하긴 했다. 그리고 이를 본 타임 키퍼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벨을 울리긴 했지만 심판이 언더테이커가 탭아웃을 하는 걸 보지 못해서 패배로 처리되지 않았으며 브록을 로우 블로우와 헬스 게이트로 실신시켜 승리를 따냈다. 결국 공식적인 경기 결과로는 탭아웃 패배가 없는 셈.
- 나이와 그간 누적된 부상들 때문에 경기력이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가 꽤 오래됐는데, 높은 퀄리티와 몰입력을 가진 경기를 만들어낸다. 망할 뻔한 레슬매니아를 본인의 경기 하나로 살린다는 평을 받을 때가 수두룩하다. 다만 노쇠하고 은퇴를 앞둔 현재는 비판의 여론도 있는데, 기량이 크게 저하된 상황에서도 주요 이벤트에서 한자리를 차지한다는 것 때문.[47] 물론 그의 몸 상태를 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그의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법이다. 이는 장시간 경기할 몸 상태가 아닌 언더테이커를 놔주지 않고 그의 상품성을 이용하는 WWE 측에도 큰 책임이 있는 문제이다.
- [image]
본디 1989년에 '조디 린'이란 여성과 결혼하여 사이에 아들까지 얻었지만 결혼 10년만인 1999년에 이혼하고 2000년 '새라'라는 여성과 재혼[48] 하여 두 명의 딸을 뒀다. 두 번째 아내인 새라는 이름을 목에 문신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나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2007년 이혼했고 그의 목에 새겨졌던 문신도 사라졌다. 이후 미셸 맥쿨과 사귀기 시작하여 2010년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이때는 미셸도 언더테이커처럼 재혼이었다고 한다. 이때 하객으로 참석한 빅토리아는 2018년에 인터뷰에서 언더테이커는 꽤 웃기고 좋은 사람이며 미셸에게 딱 걸맞는 남편감이라고 말했다.
- 할리 데이비슨과 같은 오토바이 매니아이기도 하다. 폭주족 기믹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언제나 오토바이를 타고 링에 입장했었고. 2001년 WWE에서 출시한 언더테이커 DVD 'This is my yard'에 의하면 할리를 꽤나 많이 가지고 있고 자주 타는 듯. 이 중 일부는 자선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 1990년 초반 아이큐점프로 연재된 장태산 만화 "스카이 레슬러"에선 최강 보스급 적 레슬러로 나왔다. 대부분 등장 레슬러들이 실제 인물의 이름을 살짝 비틀었던 것과 달리(헐크 리건, 미스터 워얼) 언더테이커는 획 하나만 빠진 언더'데'이커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1, 2부에선 그야말로 최종 보스급이었지만, 3부에선 시작하자마자 사망 크리.
- 종합격투기와는 인연이 없는 정통 프로레슬러임에도 불구하고 MMA 매니아이며, 2011년에서는 홀레스 그레이시 아래에서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배우기도 했다. 비록 19개월만에 블랙벨트를 얻어서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언더테이커의 서브미션은 출중한 편이며, 헬스 게이트를 피니시로 쓴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다.
- 이 글(영어 페이지)의 5번 단락에 의하면 폴 베어러는 언더테이커가 텍사스 레드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할 때에도 매니저를 했다. 폴은 이 풋내기를 과대포장했고 이는 언더테이커가 데뷔전에서 패배하면서 실패로 끝났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지금의 언더테이커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WWE에서 언더테이커가 장의사로, 폴은 그 옆에서 소환자 혹은 추종자 때로는 배신자로 활동하면서 서로 캐릭터를 확립했다. 폴은 언더테이커의 생머리가 붉은 기를 띄는 것을 보고 웬디스 로고 캐릭터에서 따온 별명으로 웬디라고 불렀다고 한다.[49]
- Jim cornete가 폴 페어러 생전에 했던 인터뷰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오이 알러지가 있다.[50] 저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오이를 면전에 들이대면 질겁하고 도망갈 정도라니 거부 반응이 상당한 모양인데, 그다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갭 모에일지도(...)
이에 관해서 폴 베어러와의 재미있는 일화(영어)가 있다. 언더테이커가 장의사 기믹으로 활동한 초창기 시절에는 Old school, 즉 전통적인 설정된 레슬러였기 때문에 특유의 기괴하고 신비한 캐릭터를 확립하기 위해서 WWE 일정에 맞춰 이동할 때 항상 폴과 함께 다녀야 했다. 어느 날 둘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폴은 소변이 급해졌고, 마침 둘은 기름도 넣을 겸 주유소에 잠시 들렀다. 기름을 넣는 것도 늘 폴의 역할이었는데, 폴은 화장실을 먼저 가고 싶었지만 언더테이커는 폴이 급한 줄 몰랐는지 아니면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먼저 기름을 넣으라고 했고 기름을 넣던 폴은 주유하던 중 생각보다 빨리 한계가 와서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게 됐다. 그걸 본 언더테이커는 미친듯이 웃더니 전화로 빈스에게 그 웃긴 이야기를 해줬는데, 문제는 빈스가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는지 그 일이 사내 전체에 퍼졌다. 이에 폴은 언더테이커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그가 마시던 아이스 티에 오이 조각을 넣어서 와플 하우스에서 성대하게 구토하게 만들기도 했고, PPV 백스테이지에서 언더테이커의 모자에 몰래 오이를 숨겨둬서 모자를 쓰다가 구토하게 만드는 식으로 복수했다.
프로레슬링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퍼지는 테이커의 오이 알러지 썰에 대해서 테이커가 직접 언급한 영상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테이커의 실생활을 최초로 영상화한 WWE네트워크 다큐 "LAST RIDE"에서이다. 레슬매니아 경기를 앞두고 크라이오테라피[51] 를 하고 나와서는 "신선한 오이만큼이나 COOL한 기분이다. 난 오이를 싫어하지만"이라며 확인사살 해주었다. 댓글의 현지 팬들은 "이 남자가 오이 싫다는 얘기를 실제로 듣게될 줄이야"라며 놀라는 분위기. 2분 5초부터
프로레슬링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퍼지는 테이커의 오이 알러지 썰에 대해서 테이커가 직접 언급한 영상이 튀어나왔는데, 바로 테이커의 실생활을 최초로 영상화한 WWE네트워크 다큐 "LAST RIDE"에서이다. 레슬매니아 경기를 앞두고 크라이오테라피[51] 를 하고 나와서는 "신선한 오이만큼이나 COOL한 기분이다. 난 오이를 싫어하지만"이라며 확인사살 해주었다. 댓글의 현지 팬들은 "이 남자가 오이 싫다는 얘기를 실제로 듣게될 줄이야"라며 놀라는 분위기. 2분 5초부터
- 미국 최고의 포르노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전 포르노 스타이자 현 미국 기업가 제나 제임슨과 사귀다가 차인 적이 있다. 제나의 자서전 'How to Make Love Like a Porn Star'(포르노 스타처럼 사랑하는 방법) 에 의하면 제나가 16세이던 시절[52] 언더테이커는 제나의 남자친구 소유의 문신 영업소의 단골 고객이었고, 이후 둘은 곧 1년간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언더테이커가 '네 남자친구를 박살내고 널 데려가겠다'는 투의 말을 한 탓에[53] 제나가 언더테이커를 차고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 중후한 이미지지만 술(특히 잭 다니엘 위스키)과 스트리퍼(...)를 좋아했다고 한다. 빈스가 회사 이미지에 문제가 된다고 스트립 클럽에 가는 것을 금지시켰을 때, 마찬가지로 스트리퍼를 좋아하는 케빈 내시가[54] 경기장을 몰래 빠져나와서 술과 스트리퍼를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냈더니 이미 언더테이커가 먼저 와서 구석탱이에 몰래 자리잡고 한 잔 거하게 하면서 구경하고 있었다고. 이 거대한 두 레슬러는 곧 서로에게 썩쏘를 지으면서(...) 축하하고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서 몰래 구경했다고 한다.(...)
-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케빈 내시, 스캇 홀이 사조직 '클릭#6.1.'을 결성해 어울려다닐 때 이 모습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언더테이커도 친한 선수들과 '백 스테이지 크루'라는 사조직을 결성하긴 했지만,[55] 자기들끼리 뭉쳐 스포트라이트를 자신들에게만 비추는 등 권력욕이 강하고 사내 정치에 열심이었던 클릭과는 달리, 언더테이커의 백 스테이지 크루는 그냥 자기들끼리 모여 먹고 마시는 그런 단순한 친목 다지기 정도가 활동의 전부였다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저 클릭 멤버들과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다. 케빈 내쉬와는 절친한 사이이며, 케빈 내시 본인도 인터뷰에서 언더테이커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다. 지명자는 아내인 미셸 맥쿨. 원래 미셸 맥쿨에게 물을 부었던 사람이 언옹인데, 미셸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찬 물을 부었기 때문인지 미쉘이 물을 맞은 후 지명했다. 딸과 함께 서서 자신의 장남을 포함한 여섯 명을 지목한 후 물벼락을 맞았는데, 맞고 호들갑을 떤 미셸과는 다르게 시크하게 Very Cold 한 마디만 남기고 퇴장했다.
- 여러 프로레슬러들 사이에서 언더테이커에 대한 평판은 무척 좋은 편으로, 그를 개인적인 면 혹은 인격적인 면에서 함부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인이 된 얼티밋 워리어는 처음에 언더테이커와 붙었을 때 그의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그와의 관 경기에서 관에 갇혔을 때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는 농담을 던졌다. 또한 더 락은 자신이 신출내기였을 때 언더테이커가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잡을 해주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또한 언더테이커를 가리켜서 "이 바닥에 있기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출처 블로그
- 2001년 인베이젼 당시, DDP와의 대립은 흑역사로 남아있다. DDP가 언더테이커의 실제 아내였던 새라를 스토킹해 언더테이커와 갈등을 빚게 된다는 내용인데, 대립 내용 자체가 워낙 구린 것도 있고 본인 또한 DDP와의 대립을 처음부터 완강히 거부했었다. 이 각본은 결국 DDP를 완전히 묻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 대립이 끝나고 1년 뒤 DDP는 WWF에서 해고된 뒤 DDP 요가를 개발하여 요가 사업가로 변신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구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2017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게 되었다.
- 흉근 쪽이 함몰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으로 드물에 흉근쪽이 내려앉는 증상을 보이는 케이스. WWE 안에서 애티튜드 시대 때도 그렇고 2017년 기준으로도 스테로이드에서 자유로운 선수가 별로 없다. 비슷한 케이스로 스캇 스타이너, 크리스 제리코, 스테파니 맥마흔, 케니 오메가 역시 흉근 함몰 증상이 있다.
- 총 4명의 자녀[56] 를 두고 있으며, 그 중 성인이 된 큰아들 거너의 경우 언더테이커와는 달리 미국 남성 평균보다 좀 작은 키에 마른 체구로써 프로레슬링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다. 애시당초 체격이 말라서 프로레슬링에도 안 맞을듯 하고... 더불어 나이에 비해 노안이다. 자세히 보면 코너 맥그리거와 닮았으면서 순한 맛이 된 듯한 느낌.
- 링에서 기믹상 신비스럽거나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낮은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다르게, 일상에서 목소리는 의외로 근엄함과 거리가 있는 쾌활한 느낌의 하이톤이다. 그의 실생활이 담긴 다큐 "LAST RIDE"의 유튜브 댓글에는 "목소리가 이렇게 다르다니.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의 목소리 차이를 보는 듯 하다"라는 댓글도 있다. 그리고 말버릇 중에서 "You know"를 엄청나게 많이 섞어서 사용하는데, 이는 인터뷰나 다큐 영상의 댓글에 미국 현지팬들도 지적(...)하는 말버릇 중 하나다. 유독 '그..' '저...'를 많이 붙이는 말버릇이 있는 한국인처럼, 미국인 중에서도 you know를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는 편인듯.
- 하스스톤 확장팩인 라스타칸의 대난투 중립 전설 언더테이카의 모티브가 언더테이커다.
- WWF-WWE에서 깊디 깊은 애증 관계로 엮여 있는 동생 케인과는 실제론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워낙 형제 배역을 오래 해서인지 의형제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케인이 본명인 글렌 제이콥스로서 녹스카운티 시장 출마를 선언한 뒤 유세를 같이 하기도 했으며, 시장에 당선되자 '형제'로써 당선을 축하한다는 덕담을 남기기도 했다.
-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획득 기록이 없다보니 그랜드슬램에 달성하지 못했다. 2011년 해부터 레슬매니아에서만 경기를 뛰게되는 프리 에이전트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는 사실상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챔피언 활동은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한다.[57] 결국 2020년 6월 해에 은퇴를 선언 하면서 8년동안 유지 되었던 후보 선수에서 제외 되었다.[58]
- 2010년 WWE 일리미네이션 챔버에서 큰일날 뻔한 적이 있는데 등장하던 도중 코트에 불이 붙어버려서 큰 화상을 입을 뻔한 적이 있다. 코트에 불이 붙자 코트를 바로 벗어버려서 다행히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다.[59]
- 2020년 5월 ESPN과의 인터뷰에서 레슬매니아 33에서 있었던 로만 레인즈와의 경기에 대해 당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직설적인 평을 남겼다. 자신은 로만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경기가 엉망이어서[60] 로만이 안타까웠다고 했으며[61] 당시 표정도 좋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
- 에볼루션 멤버들과 레슬매니아에서 붙어서 모두 이긴 유일한 WWE 슈퍼스타이다. X-Seven에서 트리플 H와 붙은 것을 필두로, 18에 릭 플레어, 21에 랜디 오턴, 23에 바티스타와 붙어서 모두 이긴 케이스.
- WWE의 은퇴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한 몇 안되는 선수중 하나이다.
- KOF 올스타에 WWE 콜라보로 더 락, 존 시나, 세스 롤린스, 베키 린치, 코피 킹스턴과 함께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추가되었다! 과거 언데드 캐릭터에서 차용해온 게 있는지 기술 중에 살짝 떠올라 전진하며 연기를 방출해서 다단 히트 데미지를 주는 기술이 있으며 피니시 스킬은 그의 상징 피니시 무브인 초크 슬램, 스패셜 배틀 카드 스킬은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다. 두 기술 모두 일반적인 점프가 아니라 마법을 쓴 것 마냥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마무리 하며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는 머리를 땅에 찍어버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기를 방출해 다단 히트 데미지를 준다. 다른 다섯 명은 프로레슬러 다운 연출로 만들어졌지만 언더테이커는 여섯 명 중 가장 이질적이고 초능력자 같은 스타일로 캐릭터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 죽음의 계곡에서 온 좀비 장의사에서 어둠의 왕자, 그리고 악역 단체를 이끄는 사악한 교주 캐릭터를 두루 거쳤었는데, 정작 본인은 의외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 브록 레스너와는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였지만, 실제로 싸울 뻔한 적이 있었다. UFC로 진출했던 브록 레스너가 챔피언 타이틀을 케인 벨라스케즈에게 패배하여 퇴장할 때, 관중으로 와 있었던 언더테이커가 브록을 붙잡고서 겨우 이게 다냐?라는 식으로[62]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이때 브록은 정말로 뚜껑이 열려 한 번 붙을 뻔 했지만, 주변에서 겨우 말려서 넘어갔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WWE가 UFC에서 뛰는 브록 레스너를 다시 부르기 위해서 일부러 UFC 경기에 언더테이커를 보내 시비를 걸게 한 거였다고 한다. 즉 ,빈스 맥맨이 브록을 다시 영입하려고 언더테이커를 시켜 일부러 시비를 걸게 해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자 한 언론 플레이였던 것(...) 당연히 이런 내막을 알 리가 없었던 브록은 '이 인간은 왜 갑자기 난리지?'라는 생각에 분노가 차오른 상태였다고 한다. 훗날 다행히 화해했다고.
- 언더테이커는 지금까지의 모든 선수들을 상대 했다고 한다. [63]
6.1. 스맥다운의 레전드
언더테이커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스맥다운의 선수로서 활약했다. 언더테이커 이외에 스맥다운 레전드로 꼽히는 선수는 바티스타, 에지, 커트 앵글, 에디 게레로, 레이 미스테리오, 브록 레스너, 더 락 등등이 있지만, 지금도 스맥다운의 레전드를 꼽으라고 한다면 1위로 꼽히는 선수가 바로 언더테이커다.
빈스 맥마흔은 브랜드 분할 당시 각각 RAW와 스맥다운에 브랜드의 기둥을 맡아 중추적 역할을 할 레전드 한 명씩 배정했는데 그게 RAW에는 숀 마이클스, 스맥다운에는 언더테이커였다.[63] 실제로 숀 마이클스는 은퇴하기 전까지 1회성으로 스맥다운에 출현한 적은 간혹가다 몇 번 있었지만 드래프트나 트레이드를 통해서 한 번도 스맥다운으로 넘어간 적이 없었다.
언더테이커는 사실상 풀 타임 레슬러로서의 커리어 마지막인 2010년까지 스맥다운의 기둥 역할을 맡았고, 스맥다운이 선수를 전부 RAW에 뺏기고 시청률이 바닥을 찍을 때도 스맥다운의 시청률을 견인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2010년 레슬매니아 26이 끝난 뒤 숀 마이클스의 은퇴로 인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언더테이커는 2011년부터 RAW에만 출연하기 시작했다.[64] 그 뒤로 스맥다운 출연이 손에 꼽을 정도로 횟수가 적어졌는데 언더테이커가 2011년 RAW에 복귀한 이후 스맥다운에 출현한 횟수는 단 세 번으로 2013년 더 쉴드 vs 파괴의 형제 & 대니얼 브라이언 6인 태그팀 경기 때[65] 그리고 2016년 스맥다운 900회 특집에서 잠시 커팅 에지에 모습을 보였을 때, 2018년 10월 16일 스맥다운 1000회 세그먼트 때다.
이때 세그먼트에서 "스맥다운은 언제나 나의 집이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1년 이후 스맥다운 출현 횟수가 적어져도 그는 여전히 스맥다운을 대표하는 전설이라고 봐야 할 듯. WWE에서도 충분히 이를 인지하는지 그간 레슬매니아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던 그가 2018년 10월 16일 화요일 펼쳐질 스맥다운 1000회 특집에서 레전드로서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10월 16일자 스맥다운에서 스맥다운 900회 특집 이후 오랜만에 모습을 보였지만 "D-Generation X, At WWE Crown Jewel, I just got three words for you. Rest in Peace."라는 겁나게 짤막한 세그먼트를 보여줬고 기념할만한 스맥다운 1000회에서 이렇게 짧은 세그먼트가 메인 이벤트였기 때문에 또 다시 빈스 맥맨이 얼마나 스맥다운을 개취급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 파괴의 형제, DX는 대립 중에 있고 트리플 H는 당시 에볼루션 복귀 세그먼트를 위해 백스테이지에 있었고, 숀 마이클스, 케인도 각각 스맥다운에 출현한적이 있었기 때문에 [66] DX, 케인을 불러와서 4명이서 싸우다가 파괴의 형제가 이긴뒤 특유의 제스쳐를 하고 세그먼트가 종료된다는 멋진 아이디어도 있었는데, 달랑 저 한마디만 하고 1000회가 끝나서 엄청 욕 먹었다. 그전까지는 1000회 특집에 걸맞게 나름 성대하게 펼쳐졌지만, 마지막이 아쉬웠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6.2. 레슬매니아 전적
7. 둘러보기
[1] American Bad Ass 시절 중,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던 2002~3년 당시 스스로 붙인 그의 별명. 이 별명 때문에 이 시기의 언더테이커를 Big Evil 기믹이 따로 존재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스타일의 변화 외에는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선역을 맡던 2002년 이전과 달리 악역이었기에 두 시기를 구분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2] 2011년에 트리플 H와 대립할 당시에만 쓰인 일회성 별칭이다.[3] 2012년경 트리플 H와 대립하던 시기에 잠깐 사용하였다.[4] 그의 지인들과의 관계로 미뤄보아 실제론 1962년생이란 소문이 있었다. 언더테이커의 기량이 갑작스럽게 크게 줄어들자 사실 나이가 더 많아 그런 것이 아니냐며 설득력을 얻어 일파만파 퍼졌으나 그가 실제 생년월일을 인증하면서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사실 젊은 시절의 혹사가 쌓여 갑작스럽게 기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이 업계에서 꽤 흔한 사례이지만 46세의 나이임에도 볼팅 플란챠를 구사하며 명경기를 만들어내던 언더테이커였기에 팬들 입장에선 그리 길지 않은 경기마저 힘겨워하는 언더테이커의 모습이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5] 여타 거인 레슬러가 그렇듯 약간 과장된 프로필 키. 젊은 시절 키는 약 203~204cm 정도로 추정되며 고관절 수술, 노화등으로 인해 현재는 키가 199cm 정도로 약간 줄었다. [6] 각본상 데스 밸리, 다만 폭주족 기믹 때는 정상적으로 텍사스 휴스턴이 출신지로 소개되었다. 현 거주지는 텍사스의 주도 오스틴이다. [7] WWE에 데뷔하기 전인 "민" 마크 시절에 사용했던 피니쉬 무브이다. 턴버클 위에서 사용하는 정석적인 자세와 다르게, 올드 스쿨 시전방식과 같이 약간 옆에 있는 로프로 걸어간 다음 사용했다. WWF에서는 1991년 초 터그보트와 경기할 때 썼다(이 영상은 3월 15일). 7 forgotten WWE finishers에서도 맨 마지막으로, 역시 1991년 3월 Stars & Stripes Forever 91 때 썼던 모습을 볼 수 있다.[8] 회사 정책으로 금지된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9] 드래곤 슬리퍼로 헬즈 게이트를 장착하기 전인 폭주족 기믹 시절에 사용했었다.[10] 2002~3년 빅 이블 기믹 시절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잠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2007년 말부터 이 기술도 피니쉬로 쓰고 있다. 이 기술도 피니쉬로 쓰게 된 이유는 언더테이커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많이 줄었기 때문. 이 시절부터 라스트 라이드를 스스로 직접 들지 못하고, 상대가 코너에서 텐 펀치를 먹이는 상황에서 반격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술명은 처음엔 트라이앵글 초크라고 명명되었다가 다시 데빌스 트라이앵글로 변경되었고 최종적으로 헬즈 게이트라는 명칭으로 완전히 정착했다.[11] Kid Rock의 곡.[12] 림프 비즈킷의 노래. 이 곡의 라이센스 기간 만료 이후에 제작된 영상물이나 DVD에서는 Rollin'을 들을 수 없다. 대신 WWE 자체 제작 음악인 Going Postal이 덧씌워진다. 이런식으로[13] Dead Man 노래에 보컬이 추가된 테마곡.[14] Graveyard Symphony를 21세기 식으로 리메이크 한 테마곡. 여담으로 이 테마는 과로사라는 스트리머의 참수 노래로 쓰이고 있다.[15] Johnny Cash의 곡으로 2011년 트리플 H와의 대립을 위해 사용한 단발성 테마곡. 원래는 스팅을 위해 WWE가 준비한 테마곡이였으나 스팅이 TNA와 재계약함에 따라 이대로 버리기는 아까웠는지 여기서 쓰게 되었다.[16] 레슬매니아 36에서 16년반만에 폭주족 기믹으로 복귀하면서 사용한 테마로, 메탈리카의 곡이자 현역으로 사용한 마지막 테마[17] 현 NWA 텍사스 헤비웨이트 챔피언[18] 인베이전 각본 당시 2001 섬머슬램에서 케인과 함께 딴 것이다. 이 당시 두 사람은 이미 WWF 태그팀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동시에 양 세력의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19] '''30번으로 출전해서 우승.''' 최초로 30번은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깼다.[20] 레슬매니아 27에서 벌어진 트리플 H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맞고 킥 아웃 하는 장면.[21] 당시 1위는 숀 마이클스였다. 이 리스트가 발표된 건 2010년 숀 마이클스의 은퇴 경기 직후여서 약간의 보정이 들어갔다는 해석을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딱히 반박을 할 만한 순위도 아니다. 헐크 호건이나 스티브 오스틴 등과는 달리 두 선수는 WWE 성골이기 때문. 결정적으로 이 순위는 선수들이 뽑았다.[22] 전무후무한 21연승을 자랑한다[23] 영화 트리플 X의 OST 수록. 언포기븐 2002의 메인 테마곡이기도 하다.[24] 해당 영상은 01년도 후반 오스틴 Desire영상이 나올 시기에 같이 만들어진 영상이고 위에 Adrenaline이 배경음으로 삽입된 영상은 03년도에 새로 만들어진 영상이다.[25] 언더테이커가 등장한 후 링으로 걸어오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애티튜드 시대 이후부터 쓰였다.[26] 언더테이커가 각본상 일시 하차하거나 부상 등으로 인해 나타나지 않다가 복귀할 때 현지 해설진이 '''The Deadman has risen'''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27] 실제로 2000년대부터 언더테이커를 해설진이 소개할 때 Legend(ary)라는 수식어가 종종 붙는다.[28] 골든 에라의 아이콘 '''헐크 호건''','''얼티밋 워리어''', 뉴 제너레이션의 양대 아이콘인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애티튜드 시대의 양대 아이콘인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더 락''', PG 에라의 아이콘인 '''존 시나'''.[29] 물론 그도 데뷔 초기에는 수많은 강호들을 잡아내던 메인 이벤터였다.[30] 정확히는 2011년에 레슬매니아 27에서 트리플 H와 경기를 가진 이후부터.[31] 다르게 말하면, 시작부터 '''메인 이벤터'''였다는 뜻이 된다.[32] 여성 선수들도 70을 넘겼다.[33] 생매장하는 컨셉의 경기로, 상대를 깊은 구덩이에 넣은 뒤에 흙으로 묻어버리면 승리한다.[34] 사실 이 경기는 케인 덕에 생긴 이유가 더 크지만.[35] 아이러니하게도 이 펀자비 프리즌 매치마저도 언더테이커가 가장 먼저 경기를 가졌다. 정작 그레이트 칼리는 부상 때문에 빅 쇼가 경기를 대신 뛰었다. 칼리는 2007년에 바티스타와도 이 경기를 치뤘는데 반응이 별로였다고 한다. 칼리가 WWE를 떠난 뒤 펀자비 프리즌 매치는 한동안 잊혀졌다가 2017년 랜디 오턴과 진더 마할이 WWE 배틀그라운드(2017)에서 펀자비 경기로 대결하게 되면서 정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36] 보통 자신의 경기나 세그먼트가 있는 상황에서 다른 레슬러의 것까지 전부 실시간으로 피드백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레슬러들은 메인 이벤트 정도만 현장에서 지켜본다고.[37] 대개 신인 선수들을 띄워주기 위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베테랑들이 경기에서 져주는 것[38] 제프 하디 역시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통해 싱글 레슬러로의 입지를 다졌다.[39] 1980년대에는 중견급 강자였으나, 1990년대 들어서는 이기는 경기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1991년 3월에 펼쳐진 레슬매니아7에서 캐나다 경찰 기믹의 마운티에게 패했으며 딱 이 정도 수준의 레벨이었는데 그해 10월에 '언더테이커'를 잡은 것이다. 참고로 레슬매니아 7은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데뷔전이며 1980년대를 주름잡던 슈퍼플라이 지미 스누카와 붙어 압도적인 승리를 따내며, 그 후 레슬매니아 연승 신기록을 세워나가게 된다.[40] 물론 납골단지로 공격하였기에 완전히 깨끗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도 '툼스톤 파일드라이버'의 언더테이커에게 '파일 드라이버'를 난사하는 등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즉, 두들겨 맞고 있다가 운 좋게 납골단지 공격으로 이긴 게 아니라, 티토가 파워업하여 파일 드라이버를 3번 연속 꽂아넣은 후에 '확인사살'처럼 납골단지샷을 날려 완전히 보내버린 거니, 이 경기에서 만큼은 티토의 힘은 헐크 호건이나 워리어 수준이었다.[41] 그것도 WWE에서 활동한 지 17년 만인 2007년 로얄 럼블에서... 그래도 최초로 30번 징크스(30번은 우승하지 못한다)를 깼다.[42] 이는 언더테이커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기도 한데, 로얄럼블에서 우승하는 선수는 레슬매니아에 챔피언쉽을 걸고 도전하는 도전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지는 반면,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에서 기다리는 최종보스의 이미지가 강하게 구축되었기 때문이다.[43] 원문은 On a plane ride, Vince decided to sneak up behind Angle and take him down amateur-style, starting an impromptu match in the aisle.[44] 빈스가 참 인정머리 없는 인물 같지만, 사실 빈스는 친부를 엄청나게 존경한다.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양부 밑에서 힘들게 살다가 친부와 살게 된 이후 처지가 180도 뒤바뀌었기 때문.[45] 손에 Mr. Socko(미스터 삭코)라는 이름의 양말을 끼고 입 안에 넣어서 턱을 공격하는 기술이다. 손을 물면 손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은 아랫턱 부분을 손아귀로 꽉 잡을 경우 아파서 물기는 불가능해진다.[46] 앵글이 도전자[47] 레슬매니아 34의 존 시나와의 대립 빌드업에서는 위클리에서 나오지 않는 테이커를 두고 시나 혼자 세그먼트를 진행하고 혼자 도발하면서 원맨쇼를 했으며, 정작 당일날 등장했을 때에는 시나의 위상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스쿼시 매치로 끝났다. 2018년에는 호주와 사우디 투어에도 참가하면서 처참한 퀄리티의 경기를 보였는데, 이 시기부터 그에 대한 비판이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제는 은퇴를 앞둔 상황이다 보니 전무후무한 레전드였던 그의 은퇴 경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것도 한 몫한다.[48] 1999년 싸인회를 할 당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양로원에서 일을 하던 새라가 할머니를 모시고 갔고 여기에 첫눈에 반한 언더테이커의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두 사람 다 운동을 좋아하여 금방 친해지고 곧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새라는 WWF의 역대급 저질 각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베이전 시절 DDP의 스토킹 각본에 실제로 출연하였던 적도 있다.[49] 영문 페이지 밑에서 8번째 줄. Paul Bearer’s nickname for the Undertaker is “Wendy” because of his natural red hair and freckles like the little girl on the Wendy’s logo.[50] 우리나라 공인 중에서 오이 알러지를 가진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제시카가 있다. 갓세븐의 멤버 영재도 오이 알러지가 있어서 오이를 못 먹는다고.[51] 질소 냉매를 이용해 영하 100도 이하의 기계에 들어가는 한냉요법으로 근육통과 관절통 경감에 효능이 있다.[52] 언더테이커는 65년생으로 띠동갑이다.[53] 원문은 ‘I’m going to kick your boyfriend’s ass and take you away with me’.[54] 6번 내용(영어 페이지)[55] 언더테이커의 복부에 새겨진 B.S.K 문신은 바로 이 조직의 이니셜이다. 주요 구성원은 요코주나와 찰스 라이트, 사비오 베가.[56] 거너 빈센트 캘러웨이(1993년생), 체이시 캘러웨이(2002년생), 그레이시 캘러웨이(2005년생), 카이아 페이스 캘러웨이(2012년생).[57] 셰이머스, 존 시나 또한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을 획득하지 못해서 그랜드슬램 달성을 못했으며 존 시나는 1년에 10회 미만 기준으로 선수 활동하는 기준이다보니 가능성이 없어 보이며 그나마 셰이머스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58] 이와는 별개로 현재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AJ 스타일스는 언더테이커가 아직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벨트를 한번도 얻어보지 못한 사실을 상기시키면 벨트와 커리어를 건 리매치를 트위치 방송에서 제안하기도 했다.[59] 이전에 폭죽 담당자에게 불길이 너무 가깝다고 건의했지만 담당자는 건물 설계상의 문제 같다고 씹어 버렸다.(...) 사고 이후 체임버에서 감정을 추스르는 동안 그는 그 작자가 내 눈에 안 보이게 하는 게 좋을 거라고 스태프들에게 경고했다.[60] 얼마나 경기가 엉망이었냐면 경기중 언더테이커의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반격하려고 로만 레인즈가 언더테이커를 뒤집어 드는 상황이었는데 로만 레인즈는 힘이 부족해 언더테이커를 2번이나 들어올리지 못했고 결국 언더테이커를 살포시 내려놓은 뒤(...) 다시 일으켜 세워 슈퍼맨 펀치를 먹였다. 거꾸로 들어올리는데 실패했다면 정자세로라도 언더테이커에게 툼스톤을 다시 시전하기라도 해야했겠지만 결국 로만 레인즈의 경기 운영 능력이 얼마나 미숙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버리고 말았다. 참고로 툼스톤을 뒤집는 무브는 지금보다 언더테이커가 체중이 더 많이 나가던 시절에 랜디 오턴도 성공했었다.(...)[61] '로만에게 실망했다'라고 잘못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오역이다. 물론 언더테이커 본인의 본심은 다를 수 있으나 최소한 인터뷰 내용만 봐도 후배에게 대놓고 질책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애초에 disappointed for A랑 disappointed in A랑 의미 자체가 다르다.[62] 이런 느낌이였지만 실제 언옹이 말한 YOU WANNA DO IT은 "한 판 할까?"라는 뜻이다.[63] 언더테이커가 얼마나 오래 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63] 다만, 언더테이커는 처음 브랜드 분리 당시 드래프트 1픽으로 RAW에 지명되었으며(당시 스맥다운 1픽은 더 락) 스맥다운 소속이 된 것은 분할한 후 시간이 흐른 9월부터다. 때문에 언더테이커와 마이클스가 같이 로우에 있던 시절도 있었다.[64] 당시엔 이미 로스터 분리가 무의미해진 상태였다.[65] 이 경기가 언더테이커의 마지막 스맥다운 경기다.[66] 숀 마이클스는 스맥다운에 일회성 출현한 적만 몇 번 있었지만 케인은 스맥다운 소속으로 꽤 오래있었음에도 1000회 특집에 등장하지도 않았다.[67] 여담으로 지미 스누카의 양아들인 심 스누카는 후에 레슬매니아 25에서 언더테이커의 노 터치 플란차를 맞는 카메라맨으로 레슬매니아에 등장했다. 이 때, 노 터치 플란챠 접수를 심하게 잘못해 언더테이커에게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직접 보자[68] WWF 레슬매니아 X은 등 부상으로 인해 참전하지 못했다.[69] 바디슬램 후, 로프반동을 이용한 플라잉 클로스라인으로 승리.[70] 경기복장은 회색 장의사.[71] 이 경기에서 승리로 2회 WWF 챔피언 등극.[72] 이 경기로 케인은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최초로 버텨낸 선수로 인정되었다. 또한, 경기 후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케인이 의자 위에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가했다. [73] 경기 후, 부하인 브루드를 소환하고 보스맨을 교수형에 처했다. 가히 언더테이커의 레매 경기 중 최악의 결말'''이었다.'''[74] WWF 레슬매니아 2000은 사타구니 부상 때문에 참전하지 못했다.[75] 본래 싱글 매치지만, 심판이 쓰러지고 나면서 계속 장외 경기가 된 탓에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처럼 흘러갔다.[76] 본래는 네이선 존스를 파트너로 가진 태그 팀 매치였다.[77] 참고로 림프 비즈킷은 레슬매니아 19의 메인 테마인 Crack Addict도 라이브로 불렀다.영상[78] 브랜드가 다른 선수들 간의 대결. 당시 랜디 오턴은 로우 소속, 언더테이커는 스맥다운 소속이었다. 당일 커트 앵글 vs 숀 마이클스의 인터프로모셔널 경기도 열렸다. 브랜드간 매치 업은 레메24에서 우마가 VS 바티스타의 경기로 한 번 더 열리게 된다.[79] 상대방을 관에 집어넣은 뒤, 관뚜껑까지 닫으면 승리하는 경기[80] 2007년 로얄 럼블에서 언더테이커가 우승하여 도전권을 얻었다.[81] 언더테이커의 레메 연승 기록과 숀 마이클스의 은퇴를 건 경기[82] 이름만 다르지 No DQ 매치와 룰은 같다.[83] 승리를 하긴 했으나, 패배한 트리플 H가 스스로 경기장을 떠난 것과 달리 언더테이커는 체력이 크게 떨어지다 결국 들것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이 실제 상황인지 연출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어쨌든 이런 모습이 나온 관계로 언더테이커가 레슬매니아에서만 경기를 뛰어도 알바라고 비난받는 일은 거의 없다.[84] 레메20 이후에 복귀한 기믹을 이 명칭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편의상 레메 20~27 복귀 이전까지를 데드맨으로 칭하고, 레메28부터의 기믹을 이 명칭으로 칭함. 사실 이 단어 자체는 애티튜드 시대부터 존재했다.[85] 언더테이커는 숀 마이클스, 케인, 트리플 H와 레슬매니아에서 2회 이상 맞붙었는데, 이중 트리플 H만 3번이나 붙었다.[86] 기믹 매치 + 스페셜 레프리 + 특정 선수와의 3차전 겸 최후의 결전 + '한 시대의 끝'이라는 특별 부제 + 20연승 경기 + 역대 경기 중 최장기전 등등.[87] 게다가 헬 인 어 셀 매치의 경우, 동일한 컨셉을 지닌 별도의 PPV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헬 인 어 셀의 창시자 겸 최다 출전자와 두 번째로 많은 출전 횟수를 지닌 최다 승리자가 서로 맞붙는다는 특별한 상징성 때문에 별다른 반발이 제기되지 않았다.[88] 이 날, 일부러 세그먼트를 길게 잡았음에도 기상청의 예보보다 훨씬 해가 늦게 지는 바람에 어둑해야 분위기 살아나는 두 캐릭터의 컨셉이 다소 바래진 감이 있었다. 그런데 레슬매니아 9에서 열렸던 경기도 해가 떠 있었다(이때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그랬다).[89] 30에 이어 역시 평이 꽤 나쁜 경기. 브록 레스너와의 경기가 경기의 질을 떠나서 그간 유지되어 오던 연승 기록을 건드려서 크게 비난을 받았다면, 이번 경기는 여러 모로 좋지 않은 경기 내용을 보여주어 큰 비난을 받았다. 굉장히 루즈한 흐름 끝에 결국 로만에게 스피어를 3방 맞고 패배했다. 언더테이커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상대인 로만은 언더테이커의 경기력을 띄워주기는 커녕 눈에 거슬릴 정도로 기술 삑사리를 남발했다. 이렇게 메인 이벤트라는 경기가 내용도 버벅이는데, 가뜩이나 안티가 많은 로만이 승리했을 뿐더러, 사실상 언더테이커의 마지막 경기라는 이야기도 많으니 평이 좋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미 레스너에게 패하면서 연승 기록의 상징성이 사라진 상태였는데) 그간 WWE에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헌신해 온 대 선수의 말로라고 하기엔 참 초라해보이는 결말이 되고야 말았다. 그런데 2018년 3월 12일 RAW에서 존 시나가 언더테이커에게 도전 의사를 밝히며 레슬매니아 34에서 언더테이커를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되었다.[90] 레슬매니아 35는 불참하였다[91] 즉 이 경기는 언더테이커의 커리어 사상 마지막 레슬매니아 경기였다. 또한 후술할 이유로 인해 언더테이커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92] 이번 레슬매니아 한정으로 기존 데드맨 기믹을 반 쯤 벗었다. 단 데드맨 테마곡인 Rest in peace는 살짝 들려줬다[93] 레슬매니아 36은 레슬매니아 역사상 최초로 이틀 분할로 개최했다.[94] 언더테이커가 이 경기 이후에 은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고, 서바이버 시리즈(2020)에서 은퇴 세그먼트를 선보임으로 확정.[★]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95] 특별심판 숀 마이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