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타니 히토미

 

1. 개요
2. TV
3. 수상
4. 기타


1. 개요


島谷ひとみ
일본가수배우. 레이블은 에이벡스에 소속되어 있다.
데뷔 전 1997년 11월, 제1회 더 재팬 오디션 가수부문에 응모해응모자 약 20만명 중 최종 1인으로 선정이 되었다.
99년 7월 바닝프로덕션과 계약하고 당시 산하 레이블인 에이벡스에서 데뷔를 했는데, 젊은 나이의 여자 가수로는 이례적인 엔카 장르인 "大阪の女"로 데뷔. 가사에도 "젊은 나에게는 엔카가 어울리지 않나요" 라는 가사도 있다. 발매 직후에 오리콘 엔카 차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다.
본 곡으로 1999년 제32회 일본 유선 대상 최우수 신인상 등을 수상하며 엔카 장르로 데뷔한 젊은 여자 가수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기록했다.
이후 00년 2번째 싱글인 "解放區"은 엔카가 아닌 J-Pop 노선으로 전향해 메이저 음악 프로인 뮤직 스테이션 등에 처음으로 출연했다.
이듬해 01년 자넷 잭슨의 히트곡인 <Doesn't Really Matter>를 커버한 3번째 싱글 "パピヨン -Papillon-"으로 30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여담으로 자넷 잭슨이 일본 가수가 번안을 한다는 것에 반감을 느끼고 반대를 했지만 시마타니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에 들어 번안을 허락했다고 한다.
이후 02년 6번째 싱글인 "シャンティ"으로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7위에 올라 첫 오리콘 싱글 주간 차트 Top 10에 진입. 본격적인 인기 가수 노선에 올랐다.
그리고 같은 해 본인 출연의 헤어 제품 광고 CM에 먼저 기용되어 발매 전부터 문의가 쇄도한 "亞麻色の髮の乙女"을 발매했다. 본 곡은 70년대 포크 가수인 빌리즈 싱어즈의 커버 곡으로 시마타니 버전이 본인 최고의 성적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본 싱글은 오리콘 판매량 기준 38만 장을 판매했고 오리콘 싱글 주간 차트 4위를 기록. 그리고 피지컬 판매량을 떠나 관록 해야 할 기록으로는 오리콘 카라오케 챠트 18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연간 차트 1위를 달성했다.
기세를 몰아 같은 해 발매된 2번째 풀랭스 앨범인 "シャンティ"가 오리콘 앨범 주간 차트 1위를 달성함과 동시에 4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싱글과 앨범의 히트로 일본의 최고 연말 음악 방송인 NHK 홍백가합전 첫 출장을 따냈다.
"亞麻色の髮の乙女"의 대히트로 사골을 우려 먹을대로 우려 먹었는데 2번째 풀랭스 앨범이 발매되고 난 이후 리컷 싱글이랍시고 亞麻色の髮の乙女를 에레인지한 싱글을 발매하거나 크리스마스 미니 앨범에는 亞麻色の髮の乙女를 크리스마스 버전이라고 수록하는 등 여러모로 뽕을 뽑았다.
본 곡은 시마타니의 대표곡이자 메가 히트한 덕에 현재 음악 방송에서 마땅히 부를게 없는 시마타니의 18번 곡이 되었다.
이 싱글의 히트를 인정받아 2002년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과 주요 음악 시상식의 본상을 거머쥐며 본인 전성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듬해 2003년은 본인에게 주춤한 한 해가 되었는데 브레이크 한 2002년의 인기를 가져오지 못하고 별다른 히트 싱글이 나오지 못했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노래를 커버하거나, 미디움 템포를 시도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시도를 했으나 반응이 썩 좋지 않았고 소속사와 레이블 역시 신곡 홍보를 하면서도 "亞麻色の髮の乙女"를 더 자주 부르게 하고 대중들에게도 이 곡의 인기가 더 높았다.
그나마 3집의 선행 싱글 "Perseus -ペルセウス-"가 나름 반응을 얻었고 본 싱글의 인기를 이어 3번째 풀랭스 앨범인 "GATE ~scena III~"가 오리콘 앨범 주간 차트 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극장판 노비타의 완냥시공전의 엔딩곡에 기용된 "YUME日和"가 베스트 앨범의 선행 싱글인 탓에 초반 반응은 미미했으나 사람들의 입김을 타고 롱런에 성공해 소소한 히트를 기록했다. 초등학생에게 인기가 높은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기도 했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밝고 긍정적인 가사 덕분에 학부모와 중장년, 초등학생에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참고로 시마타니 히토미는 이 극장판에 주요 게스트 캐릭터 역할을 맡아 성우로 출연하기도 했다.
12월 25일 본인 첫 베스트 앨범인 "Delicious ! ~The Best of Hitomi Shimatani~"가 발매됬다. 본 베스트 앨범은 데뷔 싱글을 제외한 두번째 싱글부터 선행 싱글인 "YUME日和"까지 수록되어 알찬 볼륨으로 발매되어 본인 최대 판매량인 50만 장에 육박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2년 연속 홍백 가합전 출장에도 성공.
베스트 앨범의 호조로 야심 차게 발매한 싱글 "Viola"가 그저 그런 반응을 얻으며 역시 베스트 앨범의 인기를 계승하지 못하고 하락세를 겪고 말았다. 다음 싱글인 "Jewel of Kiss" 역시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오랜만의 대형 타이업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6기 오프닝 테마에 기용된 싱글 "ANGELUS -アンジェラス- / Z! Z! Z! -Zip! Zap! Zipangu!-"가 발매됐다. 약 1년만에 오리콘 싱글 주간 차트 Top 10에 진입하여 8위를 기록했고, 히트에 성공했다. 본 곡은 한국판 이누야샤 오프닝에도 이삭N지연의 멤버 이삭(가수)이 번안해 불렀으며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노래에 속한다.
본 싱글의 인기에 힘입어 발매된 4번째 풀랭스 앨범인 "追憶 + LOVE LETTER"가 오리콘 앨범 주간 차트 7위를 기록하며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가수로의 도약을 시작했다.
05년 역시 대형 타이업인 게임 "A.C.E."의 테마곡으로 기용된 "Garnet Moon / 祈り"가 발매되어 오리콘 주간 싱글 차트 8위를 기록. 크로스 오버 장르 노선의 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
이후 크로스 오버 장르 변경의 집대성인 콘셉트 앨범 "crossover"를 발매했다. 여러 히트 싱글들을 크로스 오버 편곡해 수록했고 신곡들을 포함했는데 꽤 신경 쓴 앨범이나 반응은 냉담했다.
앨범 발매 후에도 여러 싱글을 통해 댄스와 발라드, 록, 팝페라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인기와 판매량과는 별개로 뛰어난 음악성을 선보였다.
다만 크로스 오버 장르의 노선 변경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도 존재하는데, 시마타니와 잘 어울리는 장르는 맞지만 지나친 장르의 변화로 인해 대중들에게 어필이 힘들었으며 정작 본인의 오리지널 곡은 프로모션을 해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는 반면에 커버 곡이나 애니메이션, 게임물의 주제곡은 히트를 하는 이른바 타이업과 커버 곡에 의존하는 형태의 가수로 각인이 되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도 그럴것이 보통 인기있는 가수들은 장르의 변경에 대해 시마타니처럼 거침없이 변경을 하는 경우는 드물며 입지를 다지면서 시도를 하기 마련인데 시마타니의 경우 매 싱글마다 크로스 오버라는 장르의 특성상 장르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곡을 기깔나게 뽑아도 타이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또 초창기 두개의 커버 곡이 본인의 오리지널 곡보다 더 알려졌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박혔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가수 활동을 이어가며 배우의 활동과 여러 레귤러 프로그램의 진행자 및 출연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2. TV


  • 1999년 신스케의 인간 만다라
  • 2000년 hey! hey! hey! music champ
  • 2002년 the 요루모힛파레
  • 2006년 구탄누보
  • 2007년 안녕하세요
  • 2010년 살아 있는 여행 샐러드
  • 2011년 정보 가득 라이브 쇼 모닝 버드!
  • 2012년 music travel
  • 2013년 굴이 있는 세계의 인연 굴이 있는 곳을 가다
  • 2014년 제로의 물부터 꿈의 술을 만들어 내자~ 프로들의 도전~
  • 2015년 일본 명곡 앨범

3. 수상


  • 1999년 32회 일본 유선 대상 최우수 신인상
  • 2001년 34회 일본 유선 대상 유선 음악 우수상
  • 2002년 35회 일본 유선 대상 최다 리퀘스트곡상
  • 2003년 45회 일본 레코드 대상 금상
  • 2004년 37회 베스트 히트 가요제 골드 아티스트상

4. 기타


  • 흔히 일본 가수하면 떠오르는 '비음' 섞인 목소리가 아닌 탁 트인 목소리로 상당히 뛰어난 가창력을 보유한 가수. 트로트 가수 김혜연과 비슷하다는 말도 자주 나왔다(...). 듣다 보면 김혜연이 일본어로 노래부르는가 싶을 정도.
  • 고리오시의 대표적인 가수로 꼽힌다. 지금보다 음반환경이 훨씬 나았던 2000년대 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싱글 판매량이 5만장을 못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고 매 싱글과 앨범의 발매전과 후의 프로모션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의 물량공세를 치뤘는데, 이는 그녀의 소속사가 일본에서 파워 세기로 유명한 바닝프로덕션과 대형 레이블인 에이벡스의 영향이 컸었다. 다만 판매량과는 별개로 시마타니의 인지도가 낮은건 아니였고 계중에서 히트곡 몇 곡은 발굴했다.
  • 한때 제이팝이 한국에서 유행하던 시절 커뮤니티 사이트 더쿠의 전신인 멀티레모니아나 여러 일음 커뮤니티에서 반응이 아주 좋았다. 시마타니 히토미의 한자를 그대로 직역하면 도곡동인데 "도곡동 여사"라는 애칭과 실력이 좋은 덕에 일본 반응은 암전이지만 유독 한국에서 마이너한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