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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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기준 오른쪽 여인, 왼쪽의 모자를 눌러쓴 여인은 심수봉이다.
위의 사진과 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뒷모습 사진.
1. 개요
申才順. 심수봉과 함께 1979년 그날 궁정동에 있었던 여인.
2. 상세
1957년 10월 15일생으로 10.26 사건 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던 '''22세''' 여성이었다. 박근혜보다 5살 연하, 박지만보다 불과 1살 연상이었다. 그러니까 나이상으로는 박정희에게 막내딸 같은 여자나 다름없었다. 박정희와는 나이상으로는 '''40살 차이.''' 그러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2학년때 이미 부자집 아들과 결혼해 딸까지 낳았다가 이혼한 이혼녀 신분으로[1] 한양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적을 둔 채 관련 업종에서 활동하다 어느 날 궁정동 박정희의 술자리에 불려가게 되었다.
좀 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당시 친구의 추천으로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을 만났고 박선호가 좋은 자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제안한다. 다음날 10월 26일, 프라자 호텔로 신재순이 가자 기다리고 있던 심수봉을 태우고 박선호가 운전해 6시 40분 궁정동에 도착한다. 대기실에서 간략한 예절교육과 기밀유지서약을 받고 실내화로 갈아 신은 후 핸드백을 맡기고 만찬장에 갔다. 거기에 박정희가 있었고, 당대의 가수인 심수봉도 만났다.
그리고 술자리 도중 김재규가 박정희와 차지철을 쏘는 사건이 벌어졌고, 신재순은 졸지에 역사적 사건의 중요 증인이 되었다. 본인 왈,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연예계 쪽으로 잘 풀렸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여튼 박정희가 죽고 사건이 끝나자 박선호는 다시 신재순과 심수봉을 내자 호텔로 데려다줬다. 데려다주면서 '오늘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허나 워낙 중요한 자리에 있었는지라 훗날 법정에 수시로 들락거렸고, 이후 무성한 루머와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결국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후에 자전적 소설 '그 곳에 그녀가 있었네'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렇게 잊혀 가는 인물이었는데, 2011년 중앙일보의 끈질긴 설득 끝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인터뷰 당시에는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이 인터뷰에서 그녀는 당시 본인이 진술했던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했다는 일명 버러지 발언을 합동수사부의 강요에 의한 진술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2]
심수봉이 진술한 대로 '차지철 너 이 새끼 너무 건방져' 설이 맞을 듯. 상술한 자전 소설에서도 김재규가 차지철을 살해할 때 했던 말의 내용만은 합동수사부에서 강요했던 진술을 그대로 차용했다고 한다.
기사 내용 말미에 심수봉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서술로 미루어 볼 때 심수봉과는 지금도 서로 연락하는 사이인 듯 하다.
3. 매체에서
- 제4공화국에선 나경미가 연기했다.
- 제5공화국에선 조미나가 연기했다.
- 코리아게이트에선 염정아가 연기했다.
- 그때 그 사람들에선 조은지가 연기했다.
- 남산의 부장들에선 조혜주가 연기했다.
[1] 요새야 저 나이에 결혼을 안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이 스무살 넘으면 노처녀 취급받던 시대였다. 아무튼 이걸 가지고 일부 박정희 광빠들은 대학생이 아닌 이혼녀였니 어쩌니 물타기를 하려는 듯 하는데, 당시엔 이혼했으니 결국 싱글이며, '22세의 연극영화과 대학생'이었던 것도 맞다. 게다가 애초 이혼 여부는 궁정동에서 조사할 거리도 아니였다.[2] JTBC 스포트라이트에서 공개한 김재규의 음성을 들어보면 직접 '버러지'라고 했다고 하는 걸로 보아서 심수봉의 증언인 '너 이새끼 너무 건방져'가 아니라 '버러지'가 맞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수십년 후 신재순이 중앙일보에 저렇게 증언한 이유는 불명. 실제로 법정에서 김재규는 차지철은 '덤으로 죽인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언과 처음부터 박정희 대통령을 목표로 했다고 밝히는 바람에 법정에서는 의인, 영웅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고 한다. 이를 경계한 전두환이 차지철과의 개인 원한으로 벌인 것이라고 계속 재판장에 압력을 가했고 심수봉의 발언은 그러한 협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