싣다
1. 의미
의미가 상당히 특화된 동사 가운데 하나이다. 'A에 B를 싣다'의 구조로, A는 \탈것], B는 [무생물]이어야 하는 제약이 있다. 위의 뜻 풀이에서도 ①에서 '물체'를 운반하겠다고 명시되어 있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B가 [생물], 특히 [인간]인 경우에 '싣다'를 쓰지 않고 '타다'의 사동사인 '태우다'를 쓴다. 간혹 사람에게 쓰는 경우에 "차에 몸을 싣고"와 같이 '몸'이라는 무생물 명사를 끼워넣어서 쓰며, 이러한 용례가 표준국어대사전의 2번 뜻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다. 본 문서에서는 생물인 주어를 '몸'이라는 무생물 명사로 치환한 것이라고 보고 ①과 다르게 보지 않았다.① 물체를 운반하기 위하여 차, 배, 수레, 비행기, 짐승의 등 따위에 올리다.
② 글, 그림, 사진 따위를 책이나 신문 따위의 출판물에 내다.
③ 논에 물이 고이게 하다: '머슴에게 논에 물을 실으라고 시켰다'[1]
④ 기타 비유적 표현 - '기운을 품다': '웃음을 싣고', '바람을 싣고'
'''표준국어대사전'''
②의 의미는 ①의 B의 대상이 [짐]에서 [인쇄 대상]으로, A가 [탈것]에서 [인쇄물]로 의미가 넓어진 결과이다.[2]
2. 다른 언어에서
비교적 특화된 단어이기에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다른 외국어에서도 찾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짐을 싣다'의 경우 한자로는 주로 '負(질 부)'를 사용한다. '지다'라는 훈으로도 알 수 있듯이 자기가 짊어지고 가는 것에도 이 글자를 쓸 수 있어서 '負'를 쓰는 한자어들은 한국어로 '(짐 따위를) 지다'에 대응되는 경우가 더 많긴 하다. '부채 - 빚을 지다, 부담을 지다' 등. 그러나 중국어 문장에서는 '~에 짐을 싣다' 식으로 '負'를 쓴 예가 꽤 있어서 '싣다'로 언해되는 일이 종종 있다.
'싣다'에 보다 정확히 대응되는 글자로는 載가 있으며, ①의 의미를 더 특화할 경우 '적재(積載)하다'와 같은 표현을 쓴다. ②의 의미로 특화해서 쓰는 한자어 동사 '게재(揭載)하다'라고 한다.
영어로는 탈것에 짐을 싣는다는 의미로 'load'와 같은 단어를 쓴다.
일본어로는 '積む', 'のせる(乗せる)'와 같은 단어를 쓴다. '積む'는 '쌓다'라는 뜻도 된다. 나귀나 짐말 따위에 쌓아올리는 것으로 연상된 것 같기도 하다. 후자는 한국어의 '태우다'에 해당되는데, 이에 [짐]을 대상으로도 쓸 수 있다. 글을 싣는 경우 '내걸다, 게양하다'의 의미도 되는 '掲げる'를 쓸 수도 있고, 앞서 말한 'のせる'를 '載せる'로 한자만 바꿔서 쓸 수도 있다.
3. 역사
훈민정음 언해본에서도 '싣-'~'실-' 교체를 보이는 '싣다'의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싣다'는 '얻다'의 동의어인 옛말로 풀이하고 있어 오늘날의 '싣다'와는 동음이의어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표준국어대사전).而終不得伸其情者ㅣ多矣라〮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마침내 자신의 뜻을 실어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훈민정음 언해본(1459)'''
오늘날의 의미대로 '~에 ~를 싣다'의 문형으로 쓰인 최초로 쓰인 사례는 석보상절에서이다.須達歡喜。便敕使人象負金出。八十頃中須臾欲滿。
須達이깃거象애金을시러여든頃ᄯᅡ해즉자히다ᄭᆞᆯ오
수달(須達)이 기뻐하며 코끼리에 금을 실어 여든 경(頃) 땅에 즉시 다 깔고
'''석보상절(1446) <6:25a>'''
'ㄷ' 받침과 'ㅅ' 받침의 발음상의 구별이 없어진 이후로는 기본형에서처럼 '싣-'으로 발음되는 경우에 현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ㄷ' 불규칙 어간 동사들이 그랬듯이 'ㅅ' 으로 적었다. 현대 한국어 표기에서 'ㄷ' 받침은 오로지 'ㄷ' 불규칙/규칙 어간에만 사용되는데, 그렇게 정한 것은 20세기에 이루어진 국문연구의정안(1909)에서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아직 경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씻다'의 어형인 '싯다'와 (자음이 이어지면)[3] 표기상으로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도 앞서 말한 대로 '싣다'는 의미의 폭이 굉장한 한정적이기 때문에 목적어의 종류를 살펴보면 판별할 수 있다.힘이 세여 딤을 만히 싯고(싣고) - '''을병연행록 <2>'''
ᄲᆞᆯ리 니러 ᄂᆞᆺ 싯고(씻고) 옷 닙고 여러 잔 술 먹고 - '''노걸대언해 중간본 <34b>'''
4. 발음
'싣다'는 요근래에 개신적 발음이 등장하여 두 종류로 발음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4.1. 표준 발음
표준 발음은 국립국어원을 참고하면 각각 [싣ː꼬], [싣ː꼬서], [싣ː찌만][4] , [신ː는]이다. 오늘날에는 명확히 구별하지 않으나 장음인 데에 유의할 것.
4.2. 개신음: /싫-/, /시ᇙ-/
'긷다', (궁금한 것 따위를) '묻다'와 같은 ㄷ 불규칙 용언으로서 모음 앞에서는 어간이 [실]로 발음되는데, 근래에는 자음 앞에서도 [실]로 발음하는 일이 많다.
이렇게 발음하면 기본형이 '싫다/시ᇙ다'가 되면서 [嫌]을 의미하는 '싫다'의 동음이의어가 된다.
이 현상은 일종의 패러다임 평준화(paradigm leveling)로 보인다. '싣-'은 본래 모음 어미 앞에서 어간이 '실-'로 교체되는데, 이 '실-' 어간이 자음 어미 앞 환경까지 확장된 것(extension)이다. 한편 그냥 [실다]가 아닌 [실따/실타] 식으로, 곧 '남다'[남따], '신다'[신따]처럼 어미가 경음화되는 것은 본래 불파음 뒤에서만 일어나던 경음화 현상이 /ㄹ/ 뒤에서도 일어나도록 확장된 것일 수 있고,[5] [시는](ㄹ 탈락)이 아닌 [실른](자음동화)인 것도 이와 유관하다고 할 수 있다.
범언어적으로 꽤 흔한 현상으로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단어 'honor' 역시 주격은 'honos'였으나 속격 밖의 다른 격이 'honor-'여서 주격까지 'honor'로 바뀐 예이다.Albright(2005)[6][7] 특히 영어는 대부분의 굴절이 사라진 언어로서 유명하므로 오늘날에 단순한 굴절을 보이는 어휘 가운데 패러다임 평준화가 일어난 사례가 많다. 다만 경음화나 유기음화의 '흔적 현상'이 남아있는 것은 특이한 듯하다.
굴절형에서 기본형이 거꾸로 생겨난 면으로 역형성(backformation)에 속하기도 한다. 역형성은 대체로 파생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은데, 굴절에서 일어난 것이 특이하다.[8] 'ㄷ' 불규칙은 'ㅅ' 불규칙과도 비슷한데, 불규칙 용언의 'ㄷ'을 'ㄽ'으로 바꿔 보면 '싨다[싣따]→실어[시러]'같이 된다.
훈민정음 창제 시기에 '彆'의 한자음이 /볃/에서 /별/로 변화하였으나[9] 입성(폐쇄음 말음을 가진 빠르게 닫히는 성조)인 글자가 '별'일 수는 없기에 '벼ᇙ'로 표기했던 현상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렇게 쓰인 'ㆆ'은 '입성이었다'는 과거의 흔적을 나타내는 표기이기에 후행 자음을 경음화하는 순우리말에서의 'ㆆ'[10] 과는 다소 다르다.[11]
'싣다'의 사동사이자 피동사인 '실리다'가 이 현상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실리다'는 '실이다'로 쓰이다가 달라진 말이다.
5. '싣다'가 활용된 문서
6. 관련 문서
[1] 오늘날에는 '논에 물을 대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2] 글의 이동을 이처럼 실물에 비유하는 것은 요근래 인터넷에서도 글의 복붙에 '푸다'를 써서 '퍼가요'라고 하는 등으로도 자주 볼 수 있다.[3] 모음이 이어지면 '시서', '시러'로 구별된다.[4] 말하는 이에 따라서는 뒤의 소리가 \[ㅊ\]로 날 수도 있다.[5] 격음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하기는 어려우나, 한국어 내에서 경음과 격음의 대체 현상은 상당히 자주 일어나므로 경음화 단계에서 격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싣꼬\]로 발음하던 시절에도 \[싣코\]로 발화하는 화자가 있었을 수 있다는 뜻.[6] The morphological basis of paradigm leveling.[7] 이 굴절은 라틴어에도 있었으며, 영어에도 남아 's-r 교체'로 유명한 현상이다. 특히 /r/ 계열로 이동했다고 하여 'Rhotasism'(R화)에 속한다. #[8] '붇다 → 불다/붏다'도 그런 사례로 볼 여지가 있다.[9] 이 변화가 중국에서의 변화인지 한국 내에서의 변화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고 한다.[10] 15세기에만 'ㆆ'을 사용하다가 그 뒤에는 그마저도 소멸하였다.[11] 이러한 표기를 '이영보래(以影補來) 표기'라고 한다.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以影補來'로 검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