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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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영화계의 거장 중 한 명인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 소련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아람 하차투리안
- 미그 전투기 설계자 중 한 명인 아르툠 이바노비치 미코얀
2. 상세
오늘날 아르메니아인들이 아르메니아 다음으로 제일 많이 거주하는 국가가 바로 러시아이다. 공식적으로는 1,182,388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거주하며 조부모 중 한 쪽이 아르메니아인인 경우까지 합하면 그 수는 290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메니아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및 크라스노다르 일대이다.
중세부터 아르메니아인들은 상인으로 유명했으며 이들은 러시아와 중동을 잇는 통상 교역에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약삭빠른 상인으로 유명했으나 아르메니아가 아시아 무슬림들로부터 핍박받는 불우한 기독교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과 다르게 심한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 분할 과정에서 획득한 영토에서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사업을 하는 것을 크게 제한했던 것과 다르게 아르메니아계 상인들은 러시아 제국의 두 수도 내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오늘날에도 두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편이다. 러시아 제국 내에서 일부 고관대작들은 아르메니아계 혈통을 물려받았다.
특히 1826~1828년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 일대에서 이란의 카자르 왕조 세력을 축출하면서 아르메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아르메니아인들의 러시아 이주는 훨씬 더 가속화되었다. 오스만 제국 말기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 대학살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아나톨리아 동북부 일대의 아르메니아인 상당수는 당시 러시아 제국령 아르메니아로 피난했다.[1] 아르메니아는 산악 지형이 많고 척박한 빈촌이 많았기 때문에 소련 시절에도 약 85만여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소련 내 다른 지역으로 이민하였다 한다. 소련 내에서도 아르메니아인들의 위상이 작지는 않았는데, 소련의 영화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작곡가 아람 하차투리안, 소련 미그 전투기 설계국의 아르툠 이바노비치 미코얀이 아르메니아계였다. 아르메니아계 소련인 중에서는 민족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이지만 출신지는 조지아의 트빌리시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아르메니아 본토는 구소련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상당히 낙후된 지역에 속하지만, 오늘날의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내에서 비교적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은 민족 집단에 속한다.
3. 문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성문화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아르메니아인 여성들의 성격이 상당히 드세다는 고정 관념이 있는 듯 하다. 재밌게도 이웃한 아르메니아와 이웃한 조지아 같은 경우에는 동유럽 내에서도 성문화가 가장 보수적인 지역으로 유명하다. 여담으로 소련 문화계에서 활약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상당수가 조지아 트빌리시 출신인데,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은 트빌리시의 중산층 상인 집단을 구성했기 때문이다.[2]
러시아내의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들은 아르메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또한 오늘날에도 아르메니아 내 거주하는 아르메니아인들 중에서도 러시아 내 대학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