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

 

1. 아르테미시아 1세
1.1. 개요
1.2. 평가
1.3. 등장 매체
2. 아르테미시아 2세
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1. 아르테미시아 1세



1.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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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misia
페르시아의 속주인 카리아와 할리카르나소스의 여왕(실제로는 사트라프)으로 고대 그리스어로 Ἀρτεμισία, 페르시아어로 آرتمیس 이다. 생몰연도는 기원전 480는 ~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서 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할리카르나소스의 사트라프 리그다미스 1세이며, 어머니는 크레타 출신이라고 하며 단호감과 지적 능력의 소유자라고 한다.
그녀가 중요한 것은 살라미스 해전에 참전하였고 페르시아군에서 유일한 여성 지휘관이란 것이다.
그녀는 살라미스에 머무는 그리스 해군을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그동안 점령한 곳을 다스리며 그리스 폴리스들의 내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크세르크세스에게 조언을 하였다.

만일 폐하께서 해전을 서두르지 않으시고 해군을 육지 가까운 곳에 정박시킨 다음 그리스인들과 대치만 하신다면 폐하께선 폐하의 목적을 달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폐하를 상대로 오랫동안 연합할 수 있는 자들이 못됩니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분을 일으킬 것이고 폐하는 이렇게 쪼개진 자들을 각각 처리하신다면 결국 그리스인들은 흩어져 그들의 도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병력의 수적 우세에 자신감이 붙어 있는데다가 살라미스의 정복에 관심이 많은 크세르크세스는 이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은 패하였다. 이때 페르시아군을 지휘하던 아르테미시아는 그리스인들의 추격을 받았는데, 그리스인들은 아르테미시아가 여자 주제에 적장으로 전장에 나온 데다가 아테네를 다른 자들과 함께 불태웠으므로 그녀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으며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팔레네 도시의 아미니아스의 배에 의해 추격당하고 있던 아르테미시아는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페르시아 전함을 공격하였다. 그러자 그것을 본 아테네 인들이 '어? 저건 아군인 듯?' 하면서 뱃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1] 이때 천행(?)으로 그 전함은 생존자 한 명 없이 전멸하였으며, 또한 크세르크세스 주위의 아첨꾼이 지금 아르테미시아가 용감히 싸운다고 크세르크세스의 주의를 환기시켰고 이 때 다른 해군들도 아르테미시아처럼 털리기 바빴던지라, 크세르크세스는 주변의 신하들에게 ‘나의 남자들은 모두 여자가 되었고 나의 여자는 남자가 되었군’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투가 끝난 후 크레스크세스는 그녀에게 그리스식 청동 갑옷을 상으로 주었다고 한다.
이후 마르도니우스가 크세르크세스에게 '자신에게 병력을 주면 그리스를 정벌할테니, 그 동안 폐하는 페르시아로 돌아가십시오.'라고 진언하자 크세르크세스는 아르테미시아를 불러 전일 해전을 기피하라는 아르테미시아의 조언이 감명 깊었다며 마르도니우스의 진언에 대해서도 그녀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이에 그녀는 어차피 전쟁의 목표가 아테네 정복이기에 아테네를 파괴한 만큼 목표는 완수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매우 기뻐하며 마르도니우스의 청을 들어주고, 자신은 그녀와 함께 부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돌아갔다고 한다.
돌아간 직후 그녀는 상당한 신임을 받았으며, 헤르도토스가 할라카르나소스를 떠날 당시 그녀의 손자인, 리그다미스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고 한다.[2]

1.2. 평가


당시 남성중심 사회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능력의 인물이다. 살라미스 해전 당시 페르시아 아군의 전함을 공격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미 그 시점에선 전황 자체가 페르시아에게 막장으로 흘러가고 있던지라 아르테미시아로선 궁여지책일 수밖에 없었다. 정 책임을 묻는다면 애초에 아르테미시아의 조언을 듣지 않다가 해전을 말아먹은 크세르크세스를 비판하는게 먼저일테니.

1.3. 등장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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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제국의 부활에서 에바 그린이 연기를 하여 혹평을 받는 작품에서 그나마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가 되었다. 캐릭터 설정은 역사와 판이해졌다. 어렸을 적에 그리스군의 침략을 받아 아버지는 그대로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강간당해 죽었다. 그녀는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바로 앞에서 똑똑히 목격했다. 그녀 자신도 저 때 유괴되어 노예선에 성노예로 몇 년이나 산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전작에서 레오니다스에게 우물에 떨어져 끔살 당한 페르시아 사자[3]가 그녀를 구해주었다. 그후 그녀는 페르시아로 건너가 귀족으로서의 교육을 받고 여전사가 되었다.
이런 비참한 과거를 가진 덕에 그리스에 대해 크나큰 원한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적도 페르시아의 강대한 군사력을 이용해 그리스에 복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크세르크세스 이상으로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을 주도하는 인물이다. 아버지를 잃은 황태자 크세르크세스를 꼬드겨 신왕으로 마개조시킨뒤 전쟁을 일으켰고, 그녀 자신도 복수귀가 되어 해군 지휘관으로서 전쟁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영화에서는 악역으로 나와 그에 걸맞게 마지막에 테미스토클레스의 칼에 배를 관통당하여 죽는다. 그러나 그리스에 대한 복수심과 집착이 이해되는 과거와 배우의 카리스마가 합쳐져 상당한 매력을 뿜어냈다. 여성 악역으로서의 매력만이 아니라 검술의 달인이자 본인 스스로도 뛰어난 지휘관이기 때문에 무인으로서의 출중한 역량을 뽐내기도 했다. 사실상 이 영화의 진 주인공.


2. 아르테미시아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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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이의 여성 통치자이자 태수로, 고대 그리스어로 Ἀρτεμισία이며 생몰연도는 ? ~ 기원전 350년.
그녀는 선왕 마우솔로스의 누나인 동시에 아내였다. 그의 부친 헤카톰누스는 전임 사트라프(태수) 티사페르네스가 암살되고 나서 그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마우솔루스는 헤카톰누스와 자신의 노력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창출한 왕이었다.
아르테미시아는 그녀의 동생이자 남편이 죽은 후 2년간(기원전 353년부터 기원전 351년까지) 재위했다. 그녀의 통치는 페르시아 사트라프라는 신분에 걸맞도록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그녀의 남편과 같은 원칙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로도스 섬의 과두제통치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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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남편이자 동생인 마우솔로스의 죽음에 대해 특히 비통한 슬픔을 나타내며 그의 뼛가루를 포도주에 타서 마시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겠노라 맹세했으며 할리카르나소스에 마우솔로스 영묘를 세웠다고 한다.[4] 이 영묘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힌다.
브리태니커에 의하면 의학 및 식물학 연구도 했다고 한다. 속의 학명인 'Artemisia'가 그녀의 이름을 따 왔다.

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항목으로.

[1] 아르테미시아의 군인들이 그리스군과 무장이 같아서 얼핏 봐서는 피아식별이 잘 되지 않았다.[2] 헤로도토스도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이다.[3] 스파르타쿠스(드라마)의 독토레와 같은 배우[4] 본인 역시 죽어서 여기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