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 바르찰리

 

'''안드레아 바르찰리의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2011-12 · 2012-13 · 2013-14 · 2015-16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6'''

''' 이탈리아의 축구인 '''
<colbgcolor=#eeeeee> ''' 이름 '''
'''안드레아 바르찰리 UOMRI
Andrea Barzagli'''[1] '''UOMRI[2]'''
''' 국적 '''
이탈리아
''' 출생 '''
1981년 5월 8일 (42세) /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피에솔레
''' 신체 '''
187cmㅣ87kgㅣB형
''' 직업 '''
축구선수 (센터백, 라이트백 / 은퇴)
기술 코치
''' 소속 '''
<colbgcolor=#eeeeee> ''' 선수 '''
론디넬라 칼초 (1998~2000)
AC 피스토이에세 (2000)
론디넬라 칼초 (2001)
피아첸자 칼초 (2001~2003)
아스콜리 칼초 (2001~2003, 임대)
AC 키에보 베로나 (2003~2004)
US 팔레르모 (2004~2008)
VfL 볼프스부르크 (2008~2011)
'''유벤투스 FC (2011~2019)'''
''' 코치 '''
유벤투스 FC (2019~2020)
''' 국가대표 '''
73경기 (이탈리아 / 2004~2017)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은퇴 후 행보
5. 수상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플레이 스타일
7. 여담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전 유벤투스 FC 기술 코치.

2. 클럽 경력


17세 때 현지 세리에 C2 클럽 론디넬라 칼초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당시는 미드필더로 플레이하였다. 1998년 1군팀으로 승격하였고, 2000년 세리에 B의 AC 피스토이에세로 이적하였고 팀을 이끌었다. 2001년 론디넬라 칼초로 이적하였다가 다시 피아첸자 칼초로 이적하였는데 출장기회를 얻기위하여 아스콜리 칼초로 임대되어 46경기 3골을 기록하였다. 여기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고, 힘과 높이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실적을 쌓아 2003년에 루이지 델 네리가 이끄는 세리에 A의 AC 키에보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주전자리를 차지하며 유벤투스 FC로 이적한 니콜라 레그로탈리에의 빈자리를 느낄수 없는 활약을 하였고, '제2의 레그로탈리에'라고 불렸다.
2004년에는 US 팔레르모로 이적하여, 31년 만에 세리에 A로 승격한 팀에서 수비의 핵심으로 성장하였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2007년에는 클럽의 주장이기도 하였다.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FM2008에선 진리 센터백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2008년 고향 피렌체의 클럽이었던 피오렌티나로 이적 할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지만, 팔레르모의 팀메이트이자 친구이기도 한 수비수 크리스티안 자카르도와 함께 5월 28일, 독일의 VfL 볼프스부르크로 수비수로는 당시 분데스리가 최고액(동시에 클럽 최고액)의 이적료 1400만 유로, 팀내 최고 연봉인 40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일년내내 안정된 수비를 보여 리그 총 34경기에 풀타임 출전하였다. 이적 1년만에 보기 좋게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부터 갑자기 슬럼프가 찾아와 본인의 실력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고, 출전 기회도 줄어들었다. 그런 상황에 2011년 1월 27일에 키에보 시절 은사인 델 네리가 감독을 맡았던 유벤투스로 30만 유로에 이적하였다.

2.1. 유벤투스 FC


유벤투스 이적 후 10-11 시즌 후반 15경기에 출전하였다. 이적 후 어시스트를 기록하기도 하고, 돌고래잘리라고 욕 먹기도 하며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팀은 잭팟(77)을 완성하고 말았으니... 델 네리는 당연히 잘렸고, 팀 레전드였던 안토니오 콘테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렇게 11-12시즌이 시작되었고 그는 완벽히 각성하였다.
47실점을 기록하며 7등을 하였던 팀이 11-12시즌에는 20실점밖에 하지 않는 철벽과 같은 팀이 되었고, 각성한 바르찰리도 여기에 크게 공헌하였다. 결국 유벤투스는 '''무패 우승'''을 달성하며 화려한 부활을 하였다. 11-12시즌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레오나르도 보누치, 조르조 키엘리니와 3백을 이루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4-15 시즌에는 장기부상을 끊는 바람에 유벤투스 입단 후 가장 적은 경기에 나섰으나, 키엘리니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바르찰리가 선발출전했다. 하지만 결과는 3-1 패배로 트레블 달성에는 실패했다 .
15-16 시즌은 4-3-1-2 전술이 주가 되고 있기 때문에, 주로 교체출장을 하는 경우가 많으나[3], 출장만 하면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살려내고 있다. 특히,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 세비야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시종일관 오른쪽 라인을 뛰어다니며 적극적으로 플레이, 결승골의 어시스트까지 기록했다.
바르찰리의 나이가 많은 편이기에 유벤투스는 바르찰리의 노쇠화에 대비할 센터백을 영입하였다. 바로 오그본나루가니이다. 그러나 그 바르찰리가 무너지지 않기에 오그본나는 서브에 만족하지 못하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떠났고, 루가니는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체력 관리를 위해서 루가니가 본격적으로 출장하기 시작했다.
15-16시즌 리그 25라운드 나폴리전에서 파트너 보누치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교체되었음에도 신예 루가니를 데리고 절호조의 곤살로 이과인[4]을 꽁꽁 틀어막는 모습을 보이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바르찰리는 15-16시즌 리그 28라운드 아탈란타전에서 골을 넣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골을 넣은건 91경기전 아탈란타[5]전이였다. 코너킥 상황에서 만주키치가 떨어트려준걸 바르찰리가 발리로 마무리했다. 12-13시즌에도 상대가 아탈란타였는데 우연의 일치로 요번 상대도 아탈란타이다.
16-17시즌에서도 그의 기량은 줄어들 기미를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즌 초반부터 보누치, 키엘리니 등의 컨디션이 오락가락하고 베나티아와 루가니 등이 반걸아 부상을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수비수들 중 최연장자임에도 쉬지를 못하고 계속 혹사당하고 있다. 8라운드 기준 팀내 최다경기 출장자로 이름을 올렸고 유벤투스 수비진들의 컨디션에 따라 바르찰리 + ???의 수비진으로 계속 경기를 치르고 있는 통에 그의 기량이 하락할 틈이 없을 지경이다.
아직까지도 3백에서의 스토퍼에다 포메이션 변화에 따라서는 오른쪽 풀백의 역할까지도 소화해낼 수 있는 기량과 체력을 보여주고 있으니 유벤투스 입장으로서는 계속 중용될 수 밖에 없을 수도 있다.[6]
그런데 16-17시즌 초중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결국 바르찰리도 드러누워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부상기간은 대략 한달정도로 예상되나 부상 한방으로 기량이 훅 갈지도 모르는 나이인데다가 저번시즌부터는 부상이 잦은 수비진을 보누치와 더불어 강제로 캐리하던 인물이라 충격이 큰 상황.
17-18 시즌에는 오른쪽 풀백으로 기용시 경기내내 갈피를 못잡는 모습을 보여주어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짐에도 센터백으로서의 기량은 여전히 준수한 편.
2018년 3월 7일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을 마킹하며 구설수에 올랐는데 무려 손흥민을 '''세 번'''이나 밟은 것. 노리고하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밟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무참히 밟았다. 경기내내 거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밟은 것에 대하여 실망감을 내비치는 팬들이 생겼다. 더욱 큰 문제는 심판이 이를 '''보고도 카드 한 장 주지 않았다는 것.''' 본인 말론 워낙 빨라서 막기 힘들어서 그랬다지만....
2018년 6월 28일, 유벤투스와의 계약 기간을 2019년까지 갱신하였다.
18-19 시즌이 끝나는 대로 현역은퇴할 것임을 밝혔다.기사
[image]
리그 37R 아탈란타와의 홈경기가 끝난 이후 현역 은퇴를 가졌다.

3. 국가대표 경력


이탈리아 U-21 대표팀을 경험한 후 2004년에 마르첼로 리피가 이끄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 같은 해 아테네 올림픽의 올림픽 대표팀에 뽑혀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 명단에 선발되어 2경기에 출전해 월드컵 우승 멤버가 되었다. 유로 2008에서는 예선에서 출전해 본선에서도 대회 직전 부상으로 하차한 파비오 칸나바로 대신 마르코 마테라치와 수비 라인을 구성하였으나 조별리그 첫경기 네덜란드전에서 매우 부진하여 0-3 참패에 일조하며 많이 까였다. 이후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면서 폼하락과 부진으로 인해 오랜 기간 대표팀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한동안 잊혀져갔다.
유벤투스로 이적한 이후 폼을 되찾아간 바르찰리는 2011년 10월 7일 약 3년 만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면서 유로 2012 예선 2경기에 출전하였다. 유로 2012 본선 직전에 부상을 당하며 출전이 불투명했지만 조별 리그 3차전 아일랜드 전에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져서 준우승을 차지하였다.
유로 2016에도 부폰, 키엘리니, 보누치와 함께 소속팀 유벤투스의 수비진을 그대로 이식시켜놓은 대표팀 센터백 라인의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대회 시작 전 역대 최악의 스쿼드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였던 이탈리아가 스페인을 꺾고 8강까지 올라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유로 이후 대표팀에서 물러날 의사를 보였지만 벤투라 감독의 설득으로 이를 철회하였는데, 2017년 11월 스웨덴과의 러시아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 합계스코어 0-1로 패하며 이탈리아가 60년만에 월드컵 진출에 실패하자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4. 은퇴 후 행보


은퇴 후 곧바로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 체제의 유벤투스 FC의 수비 코치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2020년 5월 14일에 코로나 사태로 피렌체에 있는 가족들에게 정성을 쏟길 원하기에 유벤투스 코치직 사임을 선언했다.

5. 수상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플레이 스타일


위치선정 능력과 수비 판단력이 좋은 선수이며, 이를 바탕으로 맨마킹과 공을 빼내는 태클에 강점을 보이는 센터백이다. 발이 빠른 편이고 유베 이적 후 몸도 많이 단단해졌으며 미드필더 출신 답게 숏패스 능력이 준수하다. 15-16시즌 전반기 유벤투스가 변형 포백을 사용할 때 무려 라이트백으로 출장하며 오른쪽 라인 전체를 책임진 데서 그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7]. 유벤투스에서 부상기나 폼이 잠깐 안좋을 때를 빼면 조르조 키엘리니레오나르도 보누치보다 대체로 더 안정적이고 탄탄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키엘리니, 보누치, 베나티아 등 쟁쟁한 경쟁자들로 인해 빼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에서 보기 힘들다.

7. 여담


  • 선수생활을 끝내고 유벤투스의 코치가 되었다. 아직 팀에 적응하지못한 마테이스 더리흐트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 리그 우승 복이 많은 선수다. 볼프스부르크로 이적하자마자 구단의 창단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함께 했고, 유벤투스로 이적한 2011년부터는 은퇴할 때까지 세리에 A 8연패를 달성했다. 심지어 3부리그와 4부리그인 세리에 C, 세리에 D 우승 경력까지 있다.
[1] 이탈리아 발음으론 '바르짤리'가 적절하다[2]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3] 3백일 경우에는 거의 선발로 출장.[4] 당시 경기당 거의 1골씩 넣고 있었다.[5] 그는 12-13시즌에 아탈란타전에서 페널티킥골이 전부였다.[6] 유베가 기존의 3-5-2대신 변칙적인 포메이션을 활용할 때 마다 바르찰리가 오른쪽 풀백위치로 빠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주로 콰드라도가 전진 배치될 때 그를 최대한 공격적으로 쓰고 뒤를 커버하는 방편으로 활용되는 듯 하다. 대신 일반적인 풀백들과 같은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안정적인 수비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편이다. 15-16시즌 챔스 맨시티 원정 경기나 올시즌 챔스 리옹원정 경기 등을 참고.[7] 현재에 와선 오른풀백으로 나설때마다 보는사람마저 긴장시키는 수준의 경기력을 보이는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