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 키엘리니

 



'''조르조 키엘리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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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벤투스 FC 역대 주장 '''
잔루이지 부폰
(2012~2018)

'''조르조 키엘리니
(2018~)'''


현역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잔루이지 부폰
(2010~2018)

'''조르조 키엘리니
(2018~)
'''

현역

'''조르조 키엘리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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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2014-15 · 2017-18
2012-13 · 2014-15 · 2015-16 · 2017-18 · 2018-19




'''조르조 키엘리니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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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FC No. 3
'''조르조 키엘리니[1]
(Giorgio Chiellini)
'''
<colbgcolor=#000> '''생년월일'''
1984년 8월 14일 (39세)
'''국적'''
[image] 이탈리아
'''출신지'''
토스카나 주 피사 도 피사
'''신체조건'''
187 ㎝ / 85 ㎏
'''포지션'''
'''센터백''', 레프트백[2][3]
'''주발'''
왼발
'''등번호'''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3번
유벤투스 FC - 3번
'''후원사'''
푸마
'''유스클럽'''
[image] AS 리보르노 칼초 (1990~2000)
'''프로클럽'''
[image] AS 리보르노 칼초 (2000~2004)
[image] ACF 피오렌티나 (2004~2005)
[image] '''유벤투스 FC (2005~ )'''
'''국가대표'''
105경기 8골 (이탈리아 / 2004~ )
'''SNS'''
| |
1. 개요
2. 클럽 경력
2.1.1. 2005~2016
2.1.2. 2016-17 시즌
2.1.3. 2017-18 시즌
2.1.4. 2018-19 시즌
2.1.5. 2019-20 시즌
2.1.6. 2020-21 시즌
3. 국가대표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기타
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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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국적의 유벤투스 FC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센터백[4]이다.
2005년 유벤투스에 합류한 후 잔루이지 부폰, 레오나르도 보누치, 안드레아 바르잘리 등과 함께 유럽 최고의 수비진을 구축하며 세리에 A 9연패를 이끌었다. 또한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유로 2012 준우승에 기여했다.

2. 클럽 경력


6살 때 리보르노와 유스 계약을 맺고 쭉 클럽에 머물다가 2002-03 시즌 세리에 B에 소속되어 있던 리보르노 칼치오에서 본격적인 주전으로 데뷔, 왼쪽 풀백으로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며 세리에 A 클럽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 다음해 유벤투스에서 바로 6.5M을 제시하며 영입을 시도했으나 그 전에 피오렌티나가 공동 소유권을 제시, 피오렌티나에서 1년을 뛰게 되면서 세리에 A에서도 실력을 입증하며 주전자리를 확보.

2.1. 유벤투스 FC



2.1.1. 2005~2016


이후 유벤투스 FC로 이적하게 되고 꽃같은 미래가 펼쳐지는가 싶었으나, 당시 레프트백인 키엘리니는 지안루카 잠브로타라는 큰 벽을 넘어서야 했다.[5] 그러나 시즌 도중, 파비오 카펠로의 애제자 중 한 명인 라이트백 조나단 제비나가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 못 하면서 잠브로타가 오른쪽으로 옮기자 그제야 기회를 받으면서 유망주 치고는 꽤 적당한 경기 숫자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 팀이 칼치오폴리 사건으로 강등되어 키엘리니는 3년 만에 세리에 B로 다시 끌려간다. 이 때, 잠브로타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고 센터백에 릴리앙 튀랑파비오 칸나바로가 각각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자 키엘리니는 2006-07 시즌에는 센터백의 위치에서도 뛰게 된다. 이 때, 주전 레프트백으로 뛴 선수는 페데리코 발자레티였다.
2007-08 시즌, 유벤투스는 다시 승격하게 되었고 키엘리니는 피오렌티나로 이적한 발자레티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다시 레프트백으로 뛰고 있었다. 그런데 센터백이던 장 알랭 붐송은 부상에 시달리고, 새로 영입한 조르제 안드라데는 몇 경기 뛰지 못 하고 로마와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에 시달리게 되며 이 경기에서 도메니코 크리시토는 크게 부진한 활약을 보여준다. 남은 센터백이라고는 니콜라 레그로탈리에뿐. 이 때, 감독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는 크리시토를 임대로 보내 버리고 키엘리니를 다시 센터백으로 전향시켰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6] 세리에 A를 넘어 세계에서도 꿀리지 않는 유벤투스의 철벽 쓰리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10여년간 지켜온 자리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전 센터백을 맡고 있다. 국대에서의 활약으로 훈장까지 받은 적이 있다.
알레산드로 델피에로가 유벤투스를 떠난 뒤에는 부주장이던 잔루이지 부폰이 주장에 임명되면서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다.
유로 2012 이후로 단점이 하나 생겼는데, 손이나 팔을 쓰는 경우가 심히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3-2014 시즌 레알 마드리드와의 조별 예선에서도 페널티 박스에서 손을 쓰다 퇴장+PK크리를 맞았다. 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예선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전반 43분에 코스타리카의 조엘 캠벨이 페널티박스 안쪽을 돌파하자 팔꿈치로 찍어 눌러 넘어뜨렸다. 완벽한 페널티킥을 줘야했음에도 주심은 넘어갔다. 그러나 1분뒤에 이탈리아는 실점당했고 결국 패배를 막진 못했기에 키엘리니가 반칙한 보람도 없었다. 원래도 거칠었으나 폼 떨어지고 나서는 굉장히 더티하게 팔꿈치를 휘두르며 특히 유벤투스가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박살날때 상대 공격수인 만주키치를 거의 폭행하다시피 했다.
이처럼 반칙이 늘어나는 이유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피지컬 저하 때문으로 여겨진다. 순발력과 스피드가 떨어져서 상대 공격수의 돌파를 허용하거나 위치 선정에 실패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로 2012 직전과 대회 도중 연이어 장딴지 부상을 당했고, 유로 이후로도 2012-2013 시즌 12경기 연속 결장을 비롯하여 두 시즌 동안 도합 5차례 22경기에 결장할 정도로 계속된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2014-15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안정적이었으나 16강 1차전 도르트문트전에서 로이스의 동점골을 허용한 실수, 8강 2차전 모나코전에서 퇴장당할뻔한 반칙 , 4강 2차전 레알전에서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반칙을 해서 팬들을 식겁하게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 실수를 잘 메꾸는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고 팀은 결승에 진출했다. 그런데 결승 상대가 악연의 상대인 루이스 수아레스가 속해있는 FC 바르셀로나다.
다만, 부상때문에 결국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오질 못햇다. 때문에 공격적 성향이 강한 보누치와 나이많은 바르잘리를 선발로 기용했지만 높아진 수비라인이 역습폭격을 받고 패배해버렸다. 키엘리니가 있었으면 유벤투스가 정말로 우승했을지도 몰랐다.
상술한대로 멀쩡히 경기들을 잘 뛰다가 큰 경기를 앞두고 자꾸 부상을 당하는것이 문제이고[7] 그렇게 되는 순간 어김없이 지고만다. (...) 결국 2015-2016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 뮌헨전에서도 결장하면서 팀이 역전패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2.1.2. 2016-17 시즌


2016-17 시즌은, 예전보다 더욱 더 노련해진 수비력에 피지컬까지 더욱 강력해지면서, 유벤투스 쓰리백의 한 축을 공고히 지키고 있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무렵부터 알레그리가 본격적으로 가동중인 비대칭 4-2-3-1 전술에서 알레그리와의 불화를 겪어 선발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던 보누치보다도 더 빼놓을 수 없는 센터백 붙박이가 되었다. 특히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보누치와 함께 '''"토리노의 벽"''' 을 결성, 천하의 바르셀로나를 홈-원정 180분 내내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면서 기염을 토했다. 캄프 누에서의 원정 경기 후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네이마르로 인해 "통곡의 벽"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4월 28일 아탈란타 전에서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세리에A 300번째 경기를 펼쳤다.
이후 팀은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갔으나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후반전부터 처참하게 무너지며 4-1 완패, 다시 준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2.1.3. 2017-18 시즌


2017-18 시즌은 메드히 베나티아와 함께 짝을 맞춰 센터백으로 출장하고 있다. 이 시즌에는 베나티아가 각성하여 전반기 세리아 베스트 11에 들 정도로 훌륭한 플레이를 보여주었는데, 키엘리니 역시 변함없는 월드클래스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보누치가 밀란 이적 후에 보여준 초반 플레이가 너무나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파트너로 뛰었던 키엘리니의 기량이 재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원래 한국에서나 평가가 좀 박한 편이지, 해외에서는 월드클래스급 수비수를 논할때 반드시 언급되는 선수임을 잊어선 안된다.
1월 11일,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image]
3월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토트넘전에서는 해리 케인을 완전히 삭제시키는 맹활약으로 다시 한 번 기량을 입증했다.
3월 17일 SPAL 전에서는 세리에A 개인 통산 350번째 경기를 펼쳤다.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1-0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부폰과의 소통 미스로 인해 실수를 범했고, 이는 호날두의 바이시클킥의 골이 되고 말았다(...).

2.1.4. 2018-19 시즌


17-18 시즌 종료 후, 잔루이지 부폰이 유벤투스를 떠나게 되면서, 유벤투스의 차기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6월 29일에 2020년까지 2년 재계약을 하면서, 유벤투스맨으로 커리어를 마칠 것임을 선언했다.
18-19시즌 현재 폼을 봐서는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센터백이다. 수비력은 물론이고 라인 조율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가 미안할 정도로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테르와의 리그 전반기 경기에선 마우로 이카르디를 아예 지워버렸다.. 잔부상 및 체력문제로 전경기에 뛸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경기에선 빛을 발하는 캡틴.
1월 16일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에서 우승을 거머쥐면서, 주장으로 부임한 이후 첫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챔스 16강 1차전 AT전에서는 수비진 중에서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동료 보누치의 병크로 0:2로 패배하였다....
그러나 챔스 16강 2차전 홈경기에서 공수 모두 훌륭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자신도 전반 3분만에 골을 넣을 '''뻔''' 하였으나 골이 취소되었다. 여기에 이 경기로 키엘리니는 유벤투스 구단 역사상 5번째로 500경기 출전 선수에 이름을 올리는 기쁨도 누렸다.
챔스 8강 2차전 경기에서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는데, 키엘리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유벤투스는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도 리그 우승을 거머쥐면서, 주장 완장을 달고 첫 주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1.5. 2019-20 시즌


잔루이지 부폰의 컴백에도 불구하고 주장직을 이어나간다.
리그 개막전 파르마 전에서 결승골을 기록했다. 허나 며칠 뒤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수술이 확정되면서 약 6개월 간 아웃된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당분간은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주장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중 복귀가 예상 되었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2월 16일 세리에 A 24R 브레시아 칼초전에서 78분에 교체로 출전하였다. 보누치로부터 주장완장을 돌려받으며 경기에 투입되었고, 팬들은 기립박수로 캡틴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2.1.6. 2020-21 시즌


시즌 전 중국행 이적설이 돌았다.
세리에A 1R에서는 5백에 정중앙 백, 2R에서는 4백에서 레프트센터백으로 출전하였으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2021년 1월 21일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팀의 우승에 일조했다. 장기 부상에도 불구하고 좋은 기량을 보이는 중.
인테르전 참패 이후 피를로가 전술을 약간 수정한 뒤로는 계속되는 난적들과의 경기에서도 기복없이 최고의 폼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AS 로마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거의 수비 스페셜영상을 찍으며 호날두와 함께 할아버지 두명이서 경기를 멱살캐리했다. 비단 키엘리니뿐만 아니라 보누치,데미랄 등 다른 센터백들도 지옥같은 일정때문에 피를로가 게임을 수비적으로 운영하면서 덩달아 폼이 좋아졌다.[8]

3. 국가대표 경력


2004년 11월 17일 핀란드전에서 성인 국가대표로 데뷔하였다. 이후 2007년 11월 21일에 펼쳐진 유로 2008 예선 페로 제도전에서 국가대표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2007년 이전까지는 주로 이탈리아 U-21 대표팀으로 선발되었고, 유로 2008을 앞두고 A대표팀에 점차 중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이 이끄는 유로 2008 최종 명단에 선발되었는데, 당시 주장인 파비오 칸나바로와 훈련 도중 칸나바로를 부상시키면서 본선 직전 칸나바로가 명단에서 제외되는 악재를 발생시켰다. 키엘리니는 대회 기간 주전으로 크리스티안 파누치와 센터백 라인을 맞추어 8강까지 출전했으나 스페인에게 승부차기로 패해 4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도나도니에서 마르첼로 리피가 다시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돌아오면서 키엘리니는 리피의 명단에 꾸준하게 들어갔으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23인 최종 명단에 선발되었다. 주장 칸나바로와 호흡을 맞추며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맞봤다.
유로 2012에서는 레오나르도 보누치-안드레아 바르찰리 혹은 다니엘레 데 로시와 함께 3백의 수비 라인을 구축하여 안정적인 수비로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진출시켰다. 그러나 스페인과의 결승전에서 전반 초반 부상을 당해 아웃되었다. 이미 그 전인 4강에서 약간의 부상이 있었으나 결승전에는 출전했는데 이미 그 전에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키엘리니가 부상을 당하면서 공백 끝에 전반전 0-2로 마쳤는데 후반 교체 투입된 티아고 모타가 부상을 당해 교체 카드로 다 써버린 이탈리아는 이후 10명으로 싸웠기 때문에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0-4로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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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는 우루과이와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루이스 수아레스의 단백질 공급원 3호(...)가 되었다. 하지만 심판은 이 광경을 보지 못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바로 우루과이의 코너킥으로 이어졌고, 고딘의 헤딩 골로 이어지고 말았다. 결국 이탈리아는 다 잡은 16강을 키엘리니가 수아레스에게 물리고 나서 3분 후 디에고 고딘에게 결승골을 빼앗겨 끝내 짐을 싸게 되었다. 이에 칼카나마가 별명인 징징이와 이름을 합쳐서 만평을 올렸다(...) 물론 경기 후 수아레스는 출전정지 징계를 먹고 우루과이로 돌아갔고, 결국 우루과이는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서 0-2로 지고 떨어졌다.[9]
2014년 10월 10일 아제르바이잔과의 유로 2016 예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사실은 전반 43분에 코너킥을 헤딩으로 끊어 골을 기록했으나, 후반 75분 아제르바이잔의 코너킥 상황에서 상대를 마크하다가 공이 자신의 몸에 맞고 들어가 자책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6분 뒤, 다시 이탈리아의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가 걷어낸 볼을 세바스티안 지오빈코가 크로스 하자 다시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승리했다. http://youtu.be/56_9Q35O6Cg
유로에서의 성적은 괜찮지만 월드컵의 성적은 심히 안쓰러운 선수.유로야 뭐 3번 출전해서 한번 결승전도 밟아봤고 3번다 토너먼트에 진출했지만 월드컵조별광탈이라는 아주리 군단 답지않은 매우 처참한 성적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예선에서는 예선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받게 되고 결국 월드컵 토너먼트는 밟아보지도 못하고''' 대표팀 은퇴를 고려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2018년 3월 이탈리아 대표팀이 잉글랜드, 아르헨티나와의 A매치 명단에 선발되면서 대표팀 생활은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후 2018년 11월 17일 UEFA 네이션스 리그 포르투갈전에서 A매치 100경기를 달성하며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흔히들 이탈리아의 카테나치오를 잇는 선수라고 말한다. 그만큼 뛰어난 수비스킬을 가지고 있고, 프로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뛰어난 체격조건으로 상대 공격수를 묻어버리는 수비스타일을 구사한다.
굳이 분류하자면 파이터형 센터백인데,[10] 그만큼 맨투맨마크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공을 끝까지 보고 서있는 채로 침착하게 공만 빼내는 것이 키엘리니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준수한 피지컬을 활용할 줄도 아는데, 영리하게 사용한다. 어깨를 집어넣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빠르게 들어가서 파울을 피하거나 더이상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고 끊어낸다. 이런 스타일은 발이 느린 공격수으로써는 그를 뚫지 못하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11]
물론 현대적인 의미의 '수비를 잘한다'는 더이상 맨투맨 마킹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만큼, 오프사이드 트랩을 구사하거나 그러한 트랩이 만들어질때 그 라인을 최대한 활용한다. 자신의 실수로 어이없게 라인이 깨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빌드업에 큰 일가견이 있다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공을 넘겨줄 수 있는 정도. 그래도 경험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패스 경로 설정과 의외의 우당탕탕 드리블 능력을 갖췄다. 보기에는 엄청 아슬아슬한데 실패해서 소유권을 헌납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주 특출나지는 않더라도 근본이 레프트백인 만큼 어느정도 크로스 능력도 갖췄고, 어마어마한 스로인 능력도 갖춰 사람들의 생각보다 공격 기여도는 낮은 편이 아니다. 거기에 파트너가 2020년 현 시점 최상급의 빌드업 능력과 환상적인 롱패스 능력을 갖춘 레오나르도 보누치이기 때문에 빌드업 상황에서 문제가 생길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협동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는데,[12] 키엘리니는 주로 최후의 길목을 차단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이때문에 골키퍼까지 넘긴 공을 끊어내거나 골키퍼와 1대1 상황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끊어내는 모습을 자주 연출한다. 이와 직결되는 사항이기도 한데, 수비범위가 굉장히 넓어서 주변 풀백의 오버래핑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도 한다.
클러치 능력도 뛰어나서, 세트피스에서 좋은 옵션으로 활용 되기도 하고, 페네트레이션을 통해서 킥 득점도 종종 보여준다.
다만 키엘리니의 가장 큰 단점은 나이가 듦에 따라 유리몸화가 되고 있는 것. 30줄이 넘어간 이후, 매 시즌 부상으로 결장하는 시간이 꽤 많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팀에 필요한 상황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잦아지고 있다. 가장 큰 예로는 14-15 시즌 UCL 결승전을 들 수 있겠다.
비교적 근래의 아주리 군단카테나치오를 상징하던 파올로 말디니, 프랑코 바레시,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비오 칸나바로 등에 비하면 살짝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것은 키엘리니가 못한다기보다 저들이 비정상적으로 잘했던 것이다.'''[13] 키엘리니가 본격적으로 활약했던 시기인 2010년대에는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센터백이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기타


  • 뭔가 모르게 봉변을 자주 당하는 선수이다. 후술할 말디니 멱살 사건, 수아레스 핵이빨 사건, 나체 노출 사건(...) 등등.
  • 파올로 말디니에게 멱살을 잡힌 사건[14]이 있다. 밀란 대 유벤투스의 경기 중 키엘리니가 당시 밀란의 에이스인 카카의 뺨을 실수로 쳤다. 이에 격분한 말디니가 키엘리니의 멱살을 잡았는데, 문제는 키엘리니의 우상이 말디니[15]였다는 것. 한 성깔하는 키엘리니였지만, 이 때는 싸움은 고사하고 사진과 같이 거의 울상이 되었고, 경기 끝난 후에는 진짜 울었다.(...) 다행히 나중에 고의가 아닌 실수라는 것을 알게 된 말디니가 너무 미안해하면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고. [16] 참고로 보통 이런 멱살잡이가 벌어지면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데 상대가 말디니이다 보니 키엘리니 동료들도 말디니 달래기로 일관했다.[17]
  • 경기장 밖에선 매우 지적인 선수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 의사가 되길 원했으며 축구선수가 되고난 뒤에도 경제학 학사를 딴 선수이다. 2017년 4월 6일 토리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논문의 제목은 국제 환경 속 유벤투스의 비즈니스 모델(The Business Model of Juventus Football Club in an International Context). 출처 때문에 키엘리니가 은퇴하고 나서는 축구행정가사업가를 할것이라고 많이 예상하고 있다.
  • 기계덕후이기도 하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 은근히 멘탈갑이다. 수아레스한테 물렸을땐 수아레스 징계가 너무 크다고 선처를 빌었고, 자서전에서 수아레즈 이야기를 할 때는 그의 투지와 승부욕이 현재 수아레즈의 모습을 만들어냈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수아레즈는 평범한 선수였을 것이라고 묘사를 했다. 그라운드에선 늘 투지넘치는 수비로 붕대는 기본 옵션, 또한 그라운드 밖에선 늘 어린이를 도와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파 18 광고로 나온 악플 읽기에서 오죽하면 악플이 하나도 없었을까.....오오 키엘리니...
  • 2018년 11월 12일 봉변(?)을 당했다. AC밀란과 유벤투스의 경기 후 밀란의 유망주였던 라울 발레노바는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우상이었던 호날두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소원성취를 했다. 기쁜 마음에 그는 곧바로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문제는 사진 뒤쪽에 나체(!)로 지나가던 키엘리니가 찍혔던 것.[18] 이후 발레노바는 곧바로 그 사진을 지운 후 키엘리니에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사과했다.
  • 프로필 사진으로도 티가 나지만, 어깨가 매우 넓다.
  • 키엘리니는 유벤투스 에서만 500경기 이상을 소화 했는데 그가 출전한 100,200,300,400,500번째 경기 모두 클린시트를 달성했다.
  • 최근의 젊은 수비수들에게 쓴 소리를 남기기도 했다. 현대 축구의 주류중 하나인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이론에 따라 수비수들이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빌드업 능력을 장착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반대급부로 수비수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는 맨마킹은 형편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19] 팀에서도 수비수들에게 맨마킹 훈련을 따로 시키지 않고 있을 정도라고 하며, 특히 이탈리아의 수비수들은 이걸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키엘리니의 파트너가 이런 부분이 약점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 모이스 킨이 상대 팀 팬에게 인종차별 문구를 들었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변호해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트너 보누치는 50:50이라며 킨도 잘못이 있다고 말한 것과 대조적.
  • 2020년 자신의 자서전을 출간하였는데, 그 내용중에 국대 동료인 마리오 발로텔리펠리피 멜루를 비난하는 글을 기재하여 논란이 되었다. 발로텔리 에게는 '실력이 없는 선수'라고 하는 한편 멜루에게는 '존중이 부족한 선수'라고 평하였다. 키엘리니가 워낙 인성이 좋은 선수로 알려져 있고, 저 멘탈은 안좋은 의미(...)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해한다는 반응이 많지만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였다는 비판도 있는편.
  • 유명 축구만화 The Champions에서는 수아레스에게 진짜로 잡아먹혔다... 운석 충돌로 지구가 아수라장이 될때 수아레스가 사람을 잡아먹어도 된다며 키엘리니에게 냅다 달려드는게 일품이다.

7. 같이 보기




[1] 이탈리아어 발음 : [ˈdʒordʒo kjelˈliːni\][2] 팀이 승격하고 나서 야심차게 영입했던 센터백 조르제 안드라데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변경하였다가 포텐이 터졌다. 참고로 조르제 안드라데는 영입 당시만 해도 유럽에서 알아주는 수비수였다. 2000년대 초반 포르투갈의 핵심 수비수였으나 로마와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후 그대로 사라졌다...[3] 공교롭게도 자신이 존경하는 선수인 말디니와 같은 포지션 변경이다. 물론 말디니는 레프트 백으로 더 오래 뛰었지만.[4] 레프트백도 소화 가능하지만 거의 기용되지 않는다.[5] 잠브로타는 레프트백만이 아니라 라이트백, 레프트윙, 라이트윙까지 뛸 수 있는 엄청난 수준의 멀티플레이어이지만 유벤투스에서는 레프트백으로 제대로 대박이 터져서 레프트백으로 거진 고정이 된 상황이었다.[6] 아이러니한 것은 키엘리니와 정반대로 이후, 크리시토는 제노아로 돌아가면서 센터백에서 레프트백으로 주요 포지션을 변경한다.[7] 키엘리니는 클럽에서 저러지만 로이스는 큰 국가대표 대회를 앞두고 자꾸 부상을 당하는 성향이 있으며 러시아 월드컵에서야 참여할수 있었다. 허나 팀이 카잔의 기적을 당하면서...[8] 다닐루,더리흐트 이 둘은 그런거 상관없이 시즌 초부터 계속 잘했었다.[9] 수아레스는 2020년 9월 유벤투스 FC와 계약하게 되자 전화로 키엘리니에게 사과했다고 한다. [10] 센터백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센터백의 분류는 편의상의 분류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키엘리니, 존 테리, 카를레스 푸욜 등의 레전드 수비수들도 파이터처럼 수비하면서 라인커맨딩을 해 내는 선수들이다.[11] 실제로 경기에서 키엘리니에게 처음 막힌다면 그 이후로도 계속 막히는 등 공격수 입장에서 까다로운 수비수이다.[12] 애초에 카테나치오의 기반은 개개인의 확실한 마크가 아니라 커버링과 활동량이다.[13] 애초에 역대 최고의 레프트백, 베켄바워 바로 다음으로 평가받는 센터백, 수비력만큼은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받은 센터백, 스토퍼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랑 비교가 될 만한 선수는 21세기에 라모스, 푸욜, 테리 정도 뿐이다.[14] 08/09 시즌으로 파올로 말디니의 은퇴 시즌이었다.[15] 국대와 클럽에서 키엘리니의 등번호가 말디니의 그것을 따 3번일 정도로 존경했다고 인터뷰함.[16] 사실 말디니가 저렇게 과민 반응을 한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밀란은 선수 평균 연령 29.6세로 세리에 최고령 팀이었으며 주전 선수 중 30대 이하인 선수가 카카, 플라미니 단 둘 밖에 없을 정도로 노쇠한 스쿼드였기에 사실상 카카 혼자 먹여살리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당연히 상대팀들은 카카에 온 수비를 집중했고 카카는 매 경기 거친 반칙을 당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고의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얼굴 가격을 본 순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 것. 물론 전체 영상을 보면 키엘리니는 고의성이 없었기에 달려드는 말디니에게도 반항 한 번 못하고 억울함만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시간 12분 10초쯤 참조 [17] 실제 영상을 보면, 상대팀 키퍼인 부폰이 말디니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이 때 말디니는 이탈리아의 현역 레전드이자 대선배였기 때문에 멱살잡는다고 대들만한 상대는 이탈리아 리그 내에 없었다(...). 더군다나, 부폰의 경우 말디니가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있을 당시에 같이 선수 생활을 한 경험이 있어서 다른 선수들보다 말디니의 실제 모습이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같은 팀 동료가 멱살 잡힌 것에 대해 말디니에게 항의를 하기 보다는 말디니를 먼저 달래주고 나중에 상황을 수습하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18] 그곳도 모자이크 없이 보인다.(...)[19] 과르디올라 체제 바르사의 핵심 수비수였던 제라르 피케는 가끔씩 보여주는 실수로 저평가받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리그 최상급의 수비능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월드 클래스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