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마테라치

 

'''마르코 마테라치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2006'''

''' 이탈리아의 축구감독 '''
[image]
''' 이름 '''
'''마르코 마테라치''' '''UOMRI'''
'''Marco Materazzi UOMRI[1]'''
''' 출생 '''
1973년 8월 19일 (51세) /
이탈리아 레체
''' 국적 '''
이탈리아
''' 신체 '''
193 ㎝|93 ㎏|AB형
''' 직업 '''
축구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감독
''' 주발 '''
왼발
''' 선수 시절 등번호 '''
23번
''' 소속 '''
''' 선수 '''
SC 마르살라 1912 (1993~1994)
SC ASD 트라파니 칼초 (1994~1995)
AC 페루자 (1995~1998)
카르피 FC (1996/임대)
에버튼 FC (1998~1999)
AC 페루자 칼초 (1999~2001)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1~2011)'''
첸나이 FC (2014~2016 / 선수 겸 감독)
''' 감독 '''
첸나이 FC (2014~2017)
''' 국가대표 '''
41경기 2골 (이탈리아 / 2001~2008)
1. 소개
2. 클럽
4. 은퇴 이후
5. 플레이스타일
5.1. 더티 플레이
5.2. 득점 능력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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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前 첸나이 FC의 감독. US 레체를 상징하는 선수 중 한 사람이자 스포르팅 CP 감독 등을 역임한 이탈리아의 축구인 주세페 마테라치의 아들이기도 하다.
2006년 월드컵에서 특이한 방식으로 자국의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전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2. 클럽


어린 시절의 마테라치는 유명 축구인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정작 아버지는 그가 너무 키가 크다는 이유로 축구는 관두고 농구나 해보라고 하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마테라치가 불과 15살이 되던 해에 요절하면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0년과 91년 사이에 유스 선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마테라치는 1993년 세리에 C2의 SC 마르살라에서 데뷔했으며, 이후 세리에 C1의 트라파니 칼초를 거쳐 1995-96 시즌부터 세리에 BAC 페루자 칼초로 이적했다. 시즌이 끝난 이후 페루자는 세리에 A로 승격했으나, 마테라치 본인은 세리에 C의 카르피 FC로 1시즌 동안 임대되었다. 카르피 소속으로 18경기에 출전해 7골을 득점하며 공격본능에 눈을 뜨게 되었고, 6개월만에 페루자로 복귀했다. 그의 자서전에서의 회고를 보면 커리어 내내 요긴하게 써먹은 소위 더러운 기술들은 이 시절에 많이 익혔다고 한다. 심판이 제재를 하지 않는 등 리그 자체가 거의 무법천지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고, 세리에 B에서 활동하다가 1998-99 시즌을 앞두고 프리미어 리그에버튼 FC로 이적했다. 에버튼에서 27경기에 출전해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활약했으나, '''1시즌 동안 레드 카드만 4번을 받는'''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 등 문제를 일으켜 결국 1999-00 시즌 친정팀인 페루자로 복귀했다. 2000-01 시즌에는 리그에서 '''30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넣는''' 놀라운 득점 행진을 벌였으며, 시즌이 끝난 이후 1000만 유로의 이적료로 명문 클럽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 입단했다.
인테르 이적 이후 팀의 주전급 수비수로 자리 잡아 활약했으며, 특히 2006-07 시즌 득점 본능이 다시 깨어나 '''30경기에 출전해 10골을 넣는''' 기록을 세웠고, 이러한 활약으로 '2007년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무리뉴 감독 부임 후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중용되었으며, 트레블 시즌 당시에는 통곡의 벽으로 활약한 루시우, 왈테르 사무엘 듀오의 백업 수비수로 트레블 달성에 공을 세웠다. 이상 2010-11 시즌까지 활약하는 동안 세리에 A 5연패와 코파 이탈리아 4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1회 우승 등을 경험했다.

3. 국가대표


200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상대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으며, 2002 한일 월드컵에 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이 당시에는 알레산드로 네스타파비오 칸나바로의 후보 선수로 기용되었으며, 크로아티아와의 경기에서 네스타와 교체되어 활약했으나 팀의 1-2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2] 이후 UEFA 유로 2004에도 출전했으며, 이 당시에도 벤치를 지키다가 칸나바로가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불가리아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다.
그 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체코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네스타가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자 그 대타로 교체되어 들어왔으며, 그 경기에서 팀의 선제골을 득점하는 등 활약을 했다. 이후 칸나바로와 함께 팀의 수비를 책임지며 칸나바로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고, 팀은 호주우크라이나, 독일을 연달아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다만 마테라치 본인은 후반 5분 마크 브레시아노에게 가한 개태클로 다이렉트 퇴장을 당해 우크라이나 대표팀과의 경기에선 출장하지 못했고, 독일과의 경기에선 풀타임을 치뤘고 무난한 활약을 보여줬다.
'''그리고 결승을 들었다 놨다 하며 사실상의 주인공이 된다.''' 이탈리아의 결승 상대는 지네딘 지단의 활약으로 스페인, 브라질, 포르투갈을 연파한 강호 프랑스. 출발은 영 좋지 않았는데, 전반 7분만에 페널티 박스로 파고드는 플로랑 말루다에게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 킥을 허용한 것. 리플레이를 보면 동료 수비수인 파비오 칸나바로가 신속히 커버를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파울이 더욱 아쉬웠던 장면. 그러나 전반 19분 안드레아 피를로코너킥을 머리로 받아 넣으며 동점골도 만들어 냈다. 이후 위협적인 헤더 장면도 만드는 등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운명의 연장전에서 지단에게 어그로를 끈 뒤, 신사적으로 대응하던 지단한테 패드립치며 도발했고 흥분한 지단은 마테라치의 가슴에 박치기를 한 다음, 퇴장당한다[3]. 결국 서로 간에 득점 없이 연장전이 끝나고 승부차기 끝에 이탈리아가 통산 4회째 우승을 차지하게 했다. 마테라치는 승부차기 두 번째 키커였고, 성공시켰다.
이후 UEFA 유로 2008에도 출전했으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첫 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보여 결국 후반 도중 파비오 그로소와 교체되었고, 이후에는 조르조 키엘리니가 마테라치를 대신해 선발로 기용되었다.

4. 은퇴 이후


은퇴한 이후 2014년 인도 슈퍼 리그의 첸나이 FC의 선수 겸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등번호는 인테르와 같은 23번을 받았다.

5. 플레이스타일



5.1. 더티 플레이


그의 플레이가 어느 수준인지 수치로 설명하자면, 선수에 대한 고증이 비교적 정확한 게임인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 에디터로 데이터를 뜯어보면 더티 플레이 수치가 최대치인 20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냥 틈만 나면 반칙을 범하는 수준.
전체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국내에서 흔히 통칭되는 별명이 '''마태클'''인 부분에서 드러나 듯, 무지막지한 몸싸움과 진짜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는 진성 살인태클'''로 유명하다. 심판이 안보는 데서 대놓고 발로 차버리기 같은 비매너성 플레이도 일삼는 편. 지금처럼 VAR이 적용되었다면 바로 퇴장+사후징계가 내려졌을지도?
한창 마테라치가 인테르의 주전으로 뛸 시절에는 마테라치의 태클성 플레이를 조롱하는 식으로 '''마태클 태클 컬렉션''' 동영상 같은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태클 컬렉션 까지 갈 것도 없이 마테라치 스페셜 영상을 보면 이것이 마테라치 스페셜 영상인지 솁첸코 처형 기록 영상인지 헷갈릴 지경. 이 덕에 마테라치의 딸이 학교에서 "그런 살인태클을 일삼는 축구선수의 딸"이라는 놀림을 받게되어, 태클성 플레이가 약간 수그러든 편이다.
일반적으로 중용되는 더티 플레이어 타입은 스토크 시티의 찰리 아담, NBA빌 레임비어처럼 눈에 안띄게 치사하고 지저분하게 상대를 괴롭히는 타입이 있고, 하인스 워드의 현역시절처럼 더 맞기 싫으면 얌전히 굴어라라는 식으로 경기 시작부터 일부러 평소보다 거칠게 기선제압하는 타입이 있는데[4] 마테라치는 '''둘 다 잘 했다'''.
깡패 같은 스타일의 거친 축구의 경우, 상대방을 도발하고자 하는 용도로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으로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전 상기한 지단 도발 사건이 극명한 예시가 되겠다.
반면, 야비한 반칙들의 경우 트래쉬 토킹은 기본에, 슈바인슈타이거 사건 당시 넘어진 슈바인슈타이거를 일으켜 세우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휙 쳐내버리는 등 온갖 방법으로 어그로를 끄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즉, 상대편 다혈질 선수들을 자극해 경기를 꼬이게 만드는 데 있어선 사실상 세계 최고급의 권위자였다. 여기에 본직인 수비 실력도 월드클래스였으니 적으로 만나면 실력으로나 경기 외적으로 참 뭐 같지만 아군이라면 든든한 선수.
선수 본인은 '''"나에겐 재능이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라고 말하는데... 사실 저렇게 말해도 2007년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된 상당한 실력자다. 재능이 없었다고 하기에는 피지컬부터가 사기적. 나머지 수상자들은 총 5명으로 파올로 말디니, 파비오 칸나바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조르조 키엘리니, 왈테르 사무엘 같은 괴수들 수준이면 말 다한 것이다.

5.2. 득점 능력



또한 수비수답지않게 공격본능과 슈팅력이 매우 뛰어나 인테르페널티 킥이나 프리킥의 키커로 자주 나오기도 했으며,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피지컬과 키를 이용한 헤딩슛이 일품.
이런 재능으로 현역 시절 중 두 번이나 한 시즌에 10골 이상을 득점하기도 했으며,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도 2006 FIFA 월드컵 독일 본선무대에서 체코와의 조별 라운드 마지막 경기와 프랑스와의 결승전 당시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슛으로 골을 뽑아냈다. 특히 이 두 경기에서의 득점은 팀에 반드시 필요한 골이었던지라 그 순도가 더했다.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수비수: 2006-07
  • ESM 올해의 팀: 2007

6.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훈장 4등급: 2006

7. 여담


  • 안정환이 페루자에 있던 시절 당시 팀 주장이 마테라치였다고 한다. 안정환이 팀에 오자마자 마늘 냄새 난다고 시비 걸어 싸웠다고 이야기했는데 막상 마테라치는 팀의 왕따였다고 한다. 편들어 주는 다른 선수들이 많이 도와주면서 마테라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다. 처음엔 이방인 취급을 하며 왕따를 당한 안정환이었지만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파스타와 치즈로 허기를 때우고 명품도 걸치고 스포츠카도 사면서 그들의 호감을 얻어 같이 술도 먹고 밀라노 클럽도 같이 가고 했다.[5] 결국 마테라치도 안정환과 친해진 후에는 괜찮게 지냈다고 한다.[6] 나중에 인테르로 이적할 때 안정환이 어디 갔냐고 물어보며 인테르 측에 안정환을 추천하기도 했다 카더라.

  •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지단과는 계속 원한을 갖고 서로 인신공격을 일삼았으나 평소에 지단과 친분이 있던 주제 무리뉴가 나서서 지단과 마테라치를 부른 뒤 그 둘을 잘 설득시켜서 마테라치는 지단과 화해했다고 알려졌었는데, 정작 지단은 화해한 적도 없고 화해할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7] 마테라치가 사과를 요구하자, 사과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대답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지단에게 박치기를 당한 뒤 약 반 년 뒤인 2007년 1월 29일에 있었던 UC 삼프도리아와의 세리에 A 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 겐나로 델베키오에게 또 박치기를 시전당한 바 있다. 델베키오 역시 해당 행위 직후 즉각 퇴장당했다. 당시 기사 그러나 이 때의 박치기에 대해서 마테라치는 "이번에는 단지 델베키오에게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냐'라는 말 밖에 하지 않았다"고 해명한 반면 델베키오는 "네가 아드리아누줄리우 세자르를 다치게 하려고 작정했냐"고 말해 특정 선수의 이름까지 들어가며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해치려 한다는 모욕적인 말을 먼저 했다고 주장했다.기사
  • 조용하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시비가 붙었다. 마테라치의 소속팀인 인테르나치오날레와 슈바인슈타이거의 소속팀인 FC 바이에른 뮌헨이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었는데 이 때 마테라치는 결장했다. 대부분 축구팬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사실인데, 해당 경기 VOD를 보면 경기 끝난 직후 바로 충돌 장면을 3~40초 정도 볼 수 있는데, 정황을 보면 슈바인슈타이거는 마테라치가 대놓고 면전에 욕 하는걸 듣고도 꾹 참고 나가려는데 마테라치가 끝끝내 삿대질을 하며 슈슈 앞에 덤빈 것. 슈바인스타이거는 몸싸움 거는 걸 뿌리치며 최대한 돌발 행동을 자제하고 나가는 걸 마테라치는 기어이 3~4차례 더 덤벼들다가 안드레아 라노키아와 다른 동료들에게 제지당했다. 사무엘 에투루시우등 다른 인테르 동료들은 오히려 슈바인스타이거를 위로했다. 슈바인스타이거는 이후 "지네딘 지단의 심정이 어땠을지 완벽히 이해했다."라고 한방 날렸다. 자세한 상황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문서 참조.
  • 09-10 시즌 챔스 결승 때 경기 종료 2분을 남겨놓은 시간대에 디에고 밀리토와 교체되며 피치를 밟았는데, 이는 2골을 득점하며 영웅으로 등극한 밀리토에게 관객들에 박수받을 기회를 주는 동시에, 선수로서 커리어 황혼기를 보내던 마테라치에게 사실상 다시 없을 챔스 결승 무대를 밟아 볼 기회를 주기 위한 무리뉴의 배려였다고 한다.인터뷰
  • 여담으로, 그의 등번호인 23번은 마이클 조던의 번호를 따온 것이며 나이키에서 자신의 스니커즈 라인업을 내놓았을 때 에어조던 1을 오마주하기도 하였다.
  • 브루노 시릴로라는 선수에게 주먹질을 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유는 브루노 시릴로가 선빵날릴거 같아서 먼저 때렸다는 말을 남겼다.
  • 인터 밀란의 전 감독이었던 라파엘 베니테스와 사이가 매우 나쁘다.[8]


[1]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사실 무승부를 만들뻔했다. 경기 종료 직전에 롱패스로 필리포 인자기의 골을 어시스트했는데, 어처구니 없는 오심으로 골이 날라갔다....[3] 자꾸 유니폼을 잡아당기며 방해하자 지단이 "그렇게 내 유니폼이 갖고 싶으냐? 경기가 끝나고 주마."라고 반응하니, "니 유니폼보단 창녀같은 니 누이가 차라리 낫겠다"라고 도발했고 이에 빡친 지단이 그의 가슴에 박치기를 해버린 것이다.[4] 물론 반칙이라기보단 거친 충돌같은 거다. 브루스 보웬이나 메타 월드 피스같이 진짜로 일부러 후려까는 비매너는 미친놈 & 동업자정신 상실로 퇴출대상이고...[5] 그 밀라노 클럽에는 유럽의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는데 거기서 본 여자가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이었다는 후문.[6] 같은 팀이니까 겉치레로 잘 지냈는지 몰라도, 안정환 자신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토크쇼 등에서 마테라치 욕을 엄청 했다. 사실 초면에 인종차별까지 당해놓고도 나중에 사이가 친해졌다고 그 앙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무리일테고, 당시 현지 적응에 목을 매고 있던 안정환 입장에선 정말 마테라치가 반성을 했거나 자기가 용서를 해줘서 친해졌다기 보다는 현지 팀동료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덮어두고 지낸 것이라 볼 수 있다.[7] 마테라치는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 당시에도 지단이 사과하지 않았기에 내가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물론 자신의 말이 나쁜 것은 인정하나, 그런건 축구장에서 늘상 나오는 말이고 유니폼을 주겠다는 말도 모욕적이라며 피장파장이라는 반응을 했다. 심지어 4년뒤인 2010년에는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며 지단의 사과를 기다린다는 적반하장격의 반응을 보였다. 10년이 지난 2016년에도 역시 그럴 정도의 말은 아니다며 철판을 깔았다. 참고로 마테라치에 따르면 이 사건 이후 지단과 마테라치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8] 사실, 베니테스는 마테라치 이외에도 인테르의 위대한 주장이자 팀의 영구 결번인 하비에르 사네티도 비판할 정도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