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
1. 개요
동로마 제국의 황제 계승권자로 소마스 팔레올로고스(Θωμάς Παλαιολόγος)의 장남이자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조카이다. 공식 직함은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이자 모레아 공작이었다. 12세의 나이에 고아가 되어 망국의 마지막 계승권자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했지만, 이름 말고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어떤 시도도 성공적이지 못했고 빈곤 속에서 사망했다.
2. 생애
콘스탄티노스 11세 이후로 이어진 제위는 어차피 망명한 상태에서 이어진 것이고 실질적인 지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 명목상 황제인 안드레아스 팔레올로고스는 이전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방탕한 삶을 살다 재산을 탕진하였다. 다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교황에게서 받은 생활비 자체가 부족했기에 방탕하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고 본다. 실제로 교황은 아버지 토마스를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로 인정해서 풍족하게 지원했지만 안드레아스는 '모레아 공작'으로만 인정했고, 교회 내의 유일한 후견인이었던 그리스 출신의 베사리온 추기경이 사망한 이후에는 교황청은 그에게 관심을 끊었고 지급하던 금액도 1/5 이하로 줄였다. 아버지 토마스는 그래도 망명 정부를 꾸리고 수백명의 가신들을 먹여살릴 여력이 있었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가신들에게 지급할 급여가 없어서 하인 두세명 말고는 모두 떠나버렸다.
1481년에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트 2세가 사망한 이후 제위 복귀를 노렸으나 소수의 피난민들 외에는 지지를 얻지 못해서 실패했고 전 재산인 2,000 두캇을 잃어 파산 상태에 빠졌다. 이후에는 조부 마누일 2세가 그러했듯 유럽을 순회하며 지원을 구했으나 그를 동정했던 프랑스 왕 샤를 8세나 여동생인 모스크바의 소피아를 제외하면[1] 어딜 가나 귀찮은 불청객 수준의 박대를 당했다. 여행 경비 때문에 빚만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1494년 샤를 8세에게 제위 계승권을 팔았다. 샤를 8세는 오스만을 공격하여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고 연간 4,300두캇의 연금과 백 명의 기사들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지급되지 않은 것 같다. 나중에 안드레아스는 유언으로 스페인의 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에게 또다시 계승권을 넘겼는데, 이미 죽어가던 무렵이었기에 그의 가족이 돈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리고 1502년 안드레아스가 죽고 나서 그의 아내는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교황에게 104두캇을 구걸하다시피 해서 얻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동로마 황제라는 자리는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고, 샤를 8세와 후손들은 단순히 명예 칭호로만 '콘스탄티노플의 황제'를 사용했고, 샤를 9세는 이 칭호가 무의미하다며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스페인 부부왕 또한 로마 황제라는 칭호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다. 제국 역사상 가장 긴 왕조였던(1258~1453) 팔레올로고스 왕조는 명목상의 계승권마저 흐지부지하게 소멸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3. 대중매체에서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선 템플 기사단원으로 등장. 로마에서 어린 시절 템플 기사단에 대해 알게 된 그는 동생 마누엘 팔라이올로고스와 함께 템플 기사단에 가입한다. 템플 기사단의 힘을 빌려 동로마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그는 로드리고 보르지아와 친분을 유지하려 했으나 보르지아는 점점 관심을 끊기 시작하며 후원도 중단한다. 보르지아의 후원으로 살던 그는 살기 위해 제위 계승권까지 팔며 버텼으나 1502년 로마 빈민굴에서 사망한다.
4. 둘러보기(계보)
[1] 오빠가 반갑긴 하지만 올 때마다 돈을 빌려간다며 불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