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무스의 신존재증명

 

1. 개요
2. 상세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4. 기타


1. 개요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대주교가 고안한 하느님 존재증명의 한 가지. 본체론적 증명이라고도 한다. 데카르트라이프니츠는 존재론적 증명을 지지했다. 또한 헤겔은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이론 중 존재론적 증명만이 하느님의 존재를 입증해냈다고 생각했다.

2. 상세


안셀무스는 하느님을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어떤 것"이라고 정의했다.[1] 그런데,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것''''이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은 그 본성상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안셀무스의 하느님 존재증명의 대략적인 논의이다.
이것을 매우 단순하게 도식화한다면,
  • 전제: 하느님은 가장 위대한 것이다.
  • 사실: 가장 위대한 것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 결론: 따라서 하느님은 존재한다.
당시의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믿음의 영역을 이성으로 증명하려 하는 시도 자체가 비판의 여지가 있었다. 안셀무스의 증명이 나오자마자 안셀무스와 동시대의 사람인 중세 프랑스수도자 가울리노는 다음과 같이 안셀무스의 증명을 패러디해서 비판하기도 했다.
  • ① 그보다 더 근사한 섬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근사한 섬을 상상해 보라.
  • ② 그런 섬은 상상할 수 있으므로 적어도 상상 속에 존재한다.
  • ③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근사한 섬'보다 '실제로 존재하는 근사한 섬'이 더 근사하다.
  • ④ 그렇기 때문에 그보다 더 근사한 섬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근사한 섬은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 ⑤ 따라서 가장 근사한 이 섬은 실제로 존재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섬이란 것이 섬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나무에 고기가 열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섬이라도, 안셀무스의 논리에 따르면 그런 터무니없는 섬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판에는 다음과 같은 반박이 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완벽한 섬을 생각해도, 그것보다 더 완벽한 섬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 섬은 완벽함이 부여될 수 없는 대상이고, 거기서는 존재를 끌어낼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정의상 더 이상 완벽한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완벽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으로부터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속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경우 '존재'는 실체의 '속성'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 자체가 넌센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3.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하지만 왜? 오히려 어머니와 만났으면 교회의 신 같은 건 거짓말이다 싶지 않아?"
>그보다 더 강력한 신의 존재에 대한 반증은 좀체 없으리라.
>하지만 신앙이란 좀 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뭐랄까, 그렇지가 않아요. 신이 실제로 천상에 계시느냐 하는 그런 존재론적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이 세상에는 진심으로 믿을수 있다는 무언가가 있다는, 그런 가르침을 준 것이 입니다."
>
>『늑대와 양피지』 1권 173~174p

4. 기타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더글라스 개스킹은 '가장 위대한 존재가 하느님이라면, 존재하면서 천지를 창조하는 하느님보다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천지를 창조하는 하느님이 더 위대할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개스킹의 주장의 가장 큰 결점은 ‘존재하지 않는 주체가 어떤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행위의 주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과연 존재하지 않는 존재자가 어떤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신의 ‘전능’이 모든 논리적 모순을 초월한다면 위 결론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적어도 ‘존재하지 않는 신의 행위’를 타당한 개념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고, 이로써 개스킹의 논증은 설득력을 잃는다.

[1] 여기서 '위대하다'라는 말은 '우월하고 좋은 속성과 능력을 가졌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