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알프레트 페터 프리드리히 폰 티르피츠(Alfred Peter Friedrich von Tirpitz : 1849년 3월 19일~1930년 3월 6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통치하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의 퀴스트린에서 태어났다.
독일 제국의 3대 카이저인 빌헬름 2세가 원수(Großadmiral)로 임명했던 군인으로, 1897년부터 1916년까지 독일 제국해군을 담당한 강력한 행정부서 독일 제국해군청(Reichsmarineamt)의 대신을 겸하기도 했었다.
1871년에 독일 제국이 성립하기 이전, 프로이센을 포함한 독일 열국들은 제대로 된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보잘것 없는 해군을 맡게 된 티르피츠는 1890년대 이후 해군력을 세계 최강으로 일컬어지던 영국 왕립해군을 위협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강군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제국 해군은 영국 해군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고, 유틀란트 해전에서의 무승부 이후 잠수함 작전으로 선회하지만 이 때 내린 무제한 공격 명령으로 인해 미국의 적개심을 사게 된다. 티르피츠는 1916년에 해임되었고, 다시는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훗날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에 의해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에게 붙여졌다.
1. 요약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통치하고 있던 프로이센 왕국 브란덴부르크의 퀴스트린에서 태어났다.
독일 제국의 3대 카이저인 빌헬름 2세가 원수(Großadmiral)로 임명했던 군인으로, 1897년부터 1916년까지 독일 제국해군을 담당한 강력한 행정부서 독일 제국해군청(Reichsmarineamt)의 대신을 겸하기도 했었다.
1871년에 독일 제국이 성립하기 이전, 프로이센을 포함한 독일 열국들은 제대로 된 해군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보잘것 없는 해군을 맡게 된 티르피츠는 1890년대 이후 해군력을 세계 최강으로 일컬어지던 영국 왕립해군을 위협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강군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제국 해군은 영국 해군을 완전히 압도하지 못했고, 유틀란트 해전에서의 무승부 이후 잠수함 작전으로 선회하지만 이 때 내린 무제한 공격 명령으로 인해 미국의 적개심을 사게 된다. 티르피츠는 1916년에 해임되었고, 다시는 권력을 되찾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훗날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에 의해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에게 붙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