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덴부르크

 


<colbgcolor=#dd0000> '''브란덴부르크
Land Brandenbu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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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석 / 25석'''

'''1석 / 25석'''
'''연방상원'''
4석

1. 개요
2. 역사
3. 정치
4. 사회
5.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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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and Brandenburg, 브란덴부르크 주 '''[1]
프로이센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주. 주도는 포츠담 회담의 바로 그 포츠담이다. 홈페이지
서쪽으로는 작센안할트, 동쪽으로는 폴란드, 북쪽으로는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남쪽으로는 작센과 접하고 있다. 주 안에는 베를린이 쏙 파묻혀 있다. 음덕들에게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브란덴부르크 협주곡으로 알려진 이름일 듯. 브란덴부르크 문으로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지만 정작 문은 브란덴부르크 주가 아닌 브란덴부르크 주 안의 베를린[2]에 위치해있다.[3]
베를린을 브란덴부르크가 빙 둘러싸고 있는 형태라 굉장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대중교통 승차권도 하나로 통합되어있고, ARD 방송국 지방 관할 구역도 RBB(Rundfunk Berlin-Brandenburg :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국) 하나로 동일하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베를린 자체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수도였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베를린과 통합해서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를 신설하자는 떡밥이 있었는데 주민 다수는 정작 통합은 원치 않는 듯. 주 이름을 폴란드러시아에 갈라먹히고 없어진 프로이센 주로 바꾸자는 떡밥도 분쇄된 걸 보면 주민들 대부분은 딱히 시끄러운 변화를 원치 않는 모양이다.[4] 1995년에 브란덴부르크 주와 베를린의 두 주 정부가 합병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여 이듬해 주민투표가 실시됐는데 부결돼서 무산되었다. 구 서베를린 시민들은 찬성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과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주 남동부의 라우지츠(Lausitz) 지방에선 코트부스와 슈프레-나이세를 중심으로 저지 소르브어를 사용하는 소르브인 주민이 존재한다.
동서독 통일 당시 기민련 쪽에서는 프로이센 주로 되돌리자는 떡밥을 몇 번 낸 적이 있다. 그런데 동서독 통일을 할 때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제2차 세계 대전 당사국들이 모조리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금지할 것'''도 조건에 붙었다. 그래서 프로이센 주를 포기한 것.

2. 역사


게르만족의 영역이었던 이 지역에 7세기 무렵 슬라브족들이 비스툴라 강 동쪽에서 건너와 이 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하인리히 1세11세기 무렵 슬라브족들에 대한 통치권을 행하였지만 이후 다시 슬라브족들에게 통치권이 넘어갔다가 13세기 무렵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오토 대제와 그의 후계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다시 게르만족이 주도권을 행사하게 된다. 이후 슬라브족들에게 기독교가 전해지고, 양 민족 사이의 통혼이 이루어지면서 이 일대는 서서히 게르만화되고 이에 힘입어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오데르 강 동쪽으로 영토를 확대한다. 이렇게 확대된 영역을 노이마르크(Neumark)라고 부르며, 기존의 영역을 알트마르크(Altmark)라고 부른다.
950년대 오토 1세는 새로 정복한 지역에 북부 경계지방(Mark)을, 브란덴부르크 하펠베르크에 주교령을 설치한다. 1150년대 알베르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로타르 3세로 부터 이 북부 경계지방과 브란덴부르크 마을을 하사 받는데, 알베르트는 이 지방의 슬라브 반란을 진압한 후 스스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을 자처한다. 그와 그의 후손 아슈카니아 가문은 베를린이 위치한 중부 경계지방이란 뜻의 미텔마르크(Mittelmark)를 거쳐 오데르 강을 넘어서 새 경계지방, 노이마르크(Neumark/Nowa Marchia)로 알려져있는 지금의 폴란드 서부 지방까지 동진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경계지방이라고 불리었던 곳은 오래된 경계지방이란 뜻의 알트마르크(Altmark)가 되어 지금의 지명에도 남아있다.
1320년 브란덴부르크에서 아슈카니아 가문이 끊기면서 1323년부터 1365년까지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에게 변경백작위가 넘어갔다 1373년부터 룩셈부르크 가문의 차지가 되었다. 1356년 금인칙서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은 선제후 작위도 얻게 된다. 엄밀히 말해 그 전부터 이미 사실상 선제후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본래 브란덴부르크가 가지게된 선제후는 슈바벤 공작위 것이었으나 해당 작위는 1268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 선제후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프로이센 공작의 후신이 되는 프로이센 왕국이 계승한다.
이후 1415년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지위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프리드리히[5]에게로 넘어가면서 1차 세계대전까지 약 500년의 세월에 이르는 기나긴 호엔촐레른 왕조의 통치가 시작된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종교개혁 당시 재빠르게 개신교로 개종하여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한편으로 오데르 강과 슈프레 강의 수운을 이용한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 매섭게 세력을 확장해나간다. 프로이센 공국, 라인란트 등에 호엔촐레른의 세력이 뻗친게 이 시기. 하지만 정작 브란덴부르크는 30년 전쟁으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 브란덴부르크에게는 다행이게도, 이 시기 호엔촐레른 가문에는 프리드리히 1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대왕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군주들이 연이어 배출되었고 이들의 치세에 프로이센은 쭉쭉 성장해서 남독일의 오스트리아, 북독일의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이라는 독일어권의 양대 강국으로 성장했고, 프로이센의 핵심 지역인 브란덴부르크, 특히 베를린도 당연히 엄청난 성장을 이룬다. 이후로도 프로이센의 성장세는 거침없었고, 당연히 브란덴부르크도 마찬가지였다. 1848년 혁명 당시에도 프랑크푸르트와 더불어 포츠담에 정부 기구가 설치되었을 정도. 그렇게 독일 제국 시기를 거쳐 바이마르 공화국까지도 잘 나갔었는데...
어떤 정신나간 종자정신나간 짓거리를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원래 주 영토의 1/3에 이르던 노이마르크 지방을 폴란드에게 내어주었다. 이 지역에 살던 독일인들이 추방된 것은 덤. 급기야 동독이 수립되자 주 제도가 없어지면서 1952년 이후로 브란덴부르크 주는 사라진다. 독일이 다시 통일을 이루는 1990년이 되어서야 브란덴부르크 주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 주도는 포츠담. 다만 부활한 주 경계는 작센-안할트, 작센, 메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과 땅을 서로 뜯고 뜯긴 관계로 프로이센 시절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작센-안할트에서는 주로 삥뜯은 편(...). 거기에 주 내부 행정구역 경계선은 전쟁 이전에 비해 완전히 바뀐 상태다. 전쟁 이전에는 지역별로 덩어리진 경계선이었다면 현재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경계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북서부 프리그니츠나 남부 지역같이 베를린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들은 그 지역별로 묶었지만.
서독 정부가 오데르-나이세 선을 절대로 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오데르 강/나이세 강 너머 동쪽의 미수복 영토를 되찾을 가능성은 무한히 0에 수렴한다. 2차대전 후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문제 참고.

3. 정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사회민주당의 아성이었으며, 공산주의 치하를 거치고 주가 부활한 뒤에도 사회민주당이 강세인 점은 마찬가지이다. 1990년 이래 사회민주당이 제1당의 지위를 줄곧 유지한다. 또한 브란덴부르크 정치의 특징은 '''사회민주당이 좌파당과 연정을 하는''' 유일했던 주라는 점이다. 2014년에 튀링겐 주에서 좌파당-녹색당-사회민주당이 적-녹-적 연정을 구성함으로써 브란덴부르크가 유일한 주라는 기록은 깨졌다.
  • 1990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36석으로 자유민주당, 녹색당과 연정
  • 1994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52석으로 단독 과반수
  • 1999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37석으로 민주사회당[6]과 연정
  • 2004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33석으로 기독교민주연합과 연정
  • 2009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31석으로 좌파당과 연정
  • 2014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30석으로 좌파당과 연정
  • 2019년 선거: 88석 중 사회민주당이 25석으로 기민련과 녹색당 연정

4. 사회


현재 인구는 약 250만 명 가량이며 독일 자체의 고령화 문제와 더불어 경제적 요인등으로 인한 구 서독 지역으로의 이주 러쉬로 인해 인구수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2000년 경에 270만 정도였는데 10년 사이에 20만 정도가 빠져나갔다. 현재 지역정부에서는 2020~30년 쯤이면 230~240만으로 더 인구가 줄 것으로 예상 중. 한편 공산주의 치하에서 50년 가까운 시기를 보낸 탓인지 독일 내에서 종교색이 가장 약한 지역 중 하나다. 인구의 80% 가량이 무교이며, 나머지 인구는 대다수가 개신교 계열이다.

5. 행정구역



취소줄이 쳐진 곳은 2차대전 이후 폴란드령이 된 도시.
  • 독립시
  • 다메-슈프레발트 군
    • 뤼벤 임 슈프레발트(군 청사 소재지)
    • 쾨니히스 부스터하우젠
  • 메르키쉬-오데르란트 군
    • 바트 프라이엔발데 안 데어 오데르
    • 슈트라우스베르크
  • 바르님 군
    • 베르나우 바이 베를린
    • 에베르스발데(청사 소재시)
  • 엘베-엘스터 군
    • 핀스터발데
  • 오데르-슈프레 군
    • 아이젠휘텐슈타트
    • 에르크너
    • 퓌르스텐발데
  • 오버슈프레발트-라우지츠 군
    • 뤼베나우
    • 젠프텐베르크(군 청사 소재지)
  • 오버하펠 군
  • 오스트프리그니츠-루핀 군
    • 노이루핀(군 청사 소재지)
    • 비트슈토크
  • 우커마르크 군
    • 슈베트 안 데어 오데르
    • 앙게르뮌데
    • 템플린
    • 프렌츨라우(군 청사 소재지)
  • 슈프레-나이세 군
    • 구벤 - 강 건너 동쪽이 폴란드령이 되었다.
    • 슈프렘베르크
    • 포르스트 안 데어 라우지츠(군 청사 소재지)
  • 포츠담-미텔마르크 군
    • 베르더 안 데어 하펠
    • 벨리츠
    • 벨치히(군 청사 소재지)
    • 텔토
  • 프리그니츠 군
    • 비텐베르게
    • 프리츠발크
    • 페를레베르크(군 청사 소재지)
  • 텔토-플레밍 군
    • 루드비히스펠데
    • 루켄발데(군 청사 소재지)
    • 위테르보크
    • 초센
  • 하펠란트 군
    • 나우엔
    • 라테노
    • 팔켄제
  • - 일부가 퀴스트리너 포를란트라는 이름으로 메르키쉬-오데르란트 군에 남아있다.

[1] 폴란드어로는 Brandenburgia.[2] 베를린은 독립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베를린이 서울특별시이고 브란덴부르크 주는 경기도가 되는 셈이다. [3] 브란덴부르크 주 포츠담에도 브란덴부르크 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선문이 존재하기는 하다[4] 물론 이 것은 독일 정부가 다시는 프로이센이라는 지명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5] 원래 뉘른베르크 백작 프리드리히 6세인데, 뉘른베르크가 제국자유도시가 되면서 영지를 빼앗겼다.[6] 사회주의통일당의 후신이자 좌파당의 전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