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프레드 세이어 머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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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fred Thayer Mahan'''
1. 개요
2. 초기 생애
3. 장교 시절
4. 해군대학 교수로서
5. 이후
6. 대중문화에서
7. 같이보기


1. 개요


미 해군의 제독이자 전략지리학자이자 역사가. 현재까지 미 해군의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로 해군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세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해군에 큰 사상적 영향을 가하기도 했다. '''해양력'''(sea power)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해군력이 강한 국가가 막강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가 1890년에 집필한 저서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전 세계 해군 강국에 영향을 미쳐 건함 경쟁을 불러 일으켰으니 이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이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은 모두 간접적으로나마 이 사람이 원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 독일,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가 주장한 해양력의 개념은 아직까지도 미 해군의 전략속에 아주 중요한 핵심으로서 자리잡고 있으며 그 공로를 기려 마한급 구축함을 비롯해 여러 함정에 그의 이름이 부여되었다.

2. 초기 생애


알프레드 머핸은 1840년 9월 27일 웨스트포인트 교수 데니스 하트 머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머핸이 육군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일례로 그의 미들네임인 새이어는 미국육군사관학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실바너스 새이어의 성에서 따온 것이다. 세인트 제임스 스쿨에서 공부한 머핸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다가 아버지의 바램과는 달리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에 편입했다.

3. 장교 시절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남북전쟁이 터지자 북군 해군 대위로서 참전하여 우스터, 콩그레스, 포카혼타스, 제임스 애드거 등의 함선을 거친 뒤 해군사관학교에 교관으로서 복귀하게 된다. 이후 대령까지 무난하게 진급한 그는 태평양 전쟁(남아메리카)에서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USS 와추셋의 함장으로서 페루에 파견되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가 얻게 될 명성과는 달리 실전과는 영 맞지 않았던지 항해 중인 선박은 물론 정박 중인 선박을 상대로도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고 한다. 더군다나 당대의 대세인 증기선 대신 범선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4. 해군대학 교수로서


1884년 해군대학 학장이던 스티븐 루스는 머핸을 강사로서 초빙했다. 거기서 그는 해군의 역사와 전략에 대해 강의했다. 1886년에는 스티븐 루스에 이어 학장이 되었다. 그는 해군대학 학장의 직위를 1889년까지 유지한다. 해군대학에 있는 동안 청강생으로서 이후 대통령이 되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1890년 그는 마침내 그의 대표작인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을 저술하였다. 1892년 '해양력이 프랑스 혁명과 제국에 미친 영향'을 집필하였으며, 빠른 속도로 발전중이던 건함기술과 맞물려 본격적으로 건함경쟁에 불이 붙게 되었다.
머핸은 1896년 해군에서 퇴역하였으나 이후에도 때때로 부름을 받아 간간히 강의도 하고 저술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1897년에 작성한 호레이쇼 넬슨의 전기는 한동안 넬슨에 대한 유력한 연구 저서로서 자리하였으나 넬슨 개인의 치부를 많이 가렸기 때문에 다른 저서들이 많이 등장한 이후로는 영향력이 많이 감소하였다.

5. 이후


1906년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해군 대령들을 일괄적으로 진급시키면서 머핸도 준장이 되었다.
1914년 12월 1일,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지 수 개월 뒤였다.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DDG-72 머핸 함, 마한급 구축함은 머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6. 대중문화에서


미국의 대하 대체역사소설 시리즈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남북 분단된 미국 북부(미합중국) 대통령을 지내면서 해군력을 크게 강화한 것으로 등장한다.

7. 같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