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야마 타케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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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山武徳[1]
(1965년 11월 12일 ~ ) 홋카이도 삿포로시 출생
일본의 록 음악 보컬 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1. 개요
SABER TIGER의 보컬리스트로 LOUDNESS의 니이하라 미노루, ANTHEM의 사카모토 에이조, VOW WOW의 히토미 겐키, E.Z.O의 야마다 마사키와 함께, 일본 메탈 팬들에게 '''일본의 5대 메탈 보컬'''로 거론되는 메탈 보컬리스트. 다만 5대 보컬 운운하는 이야기는 공식적인 자료는 아니다. 일본의 3대 메탈밴드로는 일반적으로 LOUDNESS, ANTHEM, VOW WOW가 꼽히지만 지역에 따라 44 MAGNUM, E.Z.O 혹은 DEAD END등이 꼽히기도 한다.
단 이 항목에서는 밴드가 아닌 보컬리스트를 다루기 때문에 호사가들이 말하는 5대 보컬 호칭도 표기한다.
통칭으로 후덕한 외모 덕에 아니키(형님)로 불리고 있다. 2016년 현 시점에서 일본 현역 '''최고의 메탈 보컬리스트'''로 불리며, 록 잡지 '''BURNN!'''뿐만 아니라 일본의 H/M 메체에서는 자국의 보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푸쉬와 극찬을 아끼지 않는 보컬리스트이다. 일각에서는 일본 록 사상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불리는 '''겐키 히토미'''를 능가한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2. 데뷔
1992년 ANDROGENUS로 일본 록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제 4회 BS YOUNG BATTLE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2년 후 1994년 ANDROGENUS를 탈퇴하고 MOLD RUST란 밴드를 결성, NHK 홀 에서 열린 제 5회 BS YOUNG BATTLE 전국 대회에서 준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당시 수상곡은 'SINGER " 1995년 준 그랑프리를 탄 MOLD RUST를 해산하며 DIALL에 가입했지만 별 다른 활동은 보여주지 않았다.
3. SABER TIGER
1996년 '''SABER TIGER'''의 『PROJECT ONE 』앨범에 객원으로 참가했는데 앨범의 반응이 좋아 1997년 정식 가입하게 되었다.[2] 나이에 비해 다소 늦은 메이저 대뷔를 했는데, 그가 메이저 데뷔를 한건 98년 토쿠마 재팬 프로덕션에서 발매한 SABER TIGER의 BRAIN DRAIN였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다른 점은 삿포로 예능 적십자 봉사단 50주년 기념 송을 제작하였고 감사장을 수여 받은것이다.
4. DOUBLE DEALER ~ 솔로 앨범
2000년 노리후미 시마와 '''DOUBLE DEALER'''를 결성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여러의미의 '''전설'''이 된다.
CONCERTO MOON에서 활동했던 노리후미 시마와 결성한 이 팀은 단숨에 시모야마 타케노리란 이름을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록 보컬리스트'''로 올려놓았다.
특유의 과장이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자국 밴드에게는 이상하리만큼 가혹한[3] BURRN!!지가 이렇게 과한 평을 내린건 사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이 시기에 까들도 많이 생겼는데, 당시 BURNN!을 비롯한 다양한 일본의 H/M, 록 잡지에서는 더블 딜러를 제외한 다른 밴드들은 대놓고 아래로 깔아뭉개며 타케모리에게 '시적인 재능’ 시마 노리후미에게는 ‘주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속주 기타리스트의 따분한 플레이와는 차원이 다른 플레이' 그리고 더블 딜러로는 ‘일본의 위업’,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완벽한 앨범’ 등 욕을 안 먹을래야 안 먹을수가 없는 과도한 빠심으로 인해 빠가 까를 만든다.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시기에 심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후지리코의 엔딩테마인 「VAGUE BLESS YOU」가 사용되고 아마 위키러들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법한 명곡 '''더 파이팅의 엔딩곡인 「ETERNAL LOOP」'''를 불렀다. 그 인연 덕분인지 제 1회 요코하마 권투 컵 대회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솔로 활동을 하며 첫 솔로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는데 메탈이나 록 앨범이 아닌 "어쿠스틱" 앨범으로 발매하였다. 블루스에서부터 에스닉, 가스펠에 이르기까지 가창력으로만 승부한 앨범은 상당한 수작으로 평가 받으며 성공적인 첫 솔로 앨범으로 장식하였다. 하지만 밴드 프론트맨으로서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4] 2002년 SABER TIGER를 탈퇴한다. 이 시기에도 분쟁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사회활동에 관심이 많아 레바논으로 떠나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5. SIXRIDE ~ DOUBLE DEALER
SABER TIGER를 탈퇴한지 1년도 되지 않은 2003년 5인조 프로젝트 밴드인 SIXRIDE로 돌아온다. 대뷔작인 TICKET TO RIDE는 마이너조의 멜로디와 하드록을 기본으로 한 정통 사운드로 각종 록 매체에서 '''견실한 희망'''이라는 높은 평가를 획득한다. 동년도 FM NORTH WAVE에서 'Ride on SIXRIDE "를 방송하기도 하였으며, 2004년 록 잡지 ROCKIN "F"에서 컬럼을 연재하였다. 그리고 2004년 SIXRIDE에 활동 중단을 공표했다. 2005년 Double Dealer로 다시 활동하였으며 마지막 결합이였던 '''Desert of Lost Souls'''라는 앨범은 BURRN!지가 선정한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락 앨범 1위'''에 올려놓는 위용을 보여준다. [5] 그 후 소규모의 라이브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라디오 방송등으로 팬들과 소통하였다. 이 후 매니저와의 불화로 Double Dealer 역시 그만두게 된다.
6. KAJIYAMA AKIRA & TAKENORI SHIMOYAMA
2008년 일본의 '''슈퍼 기타리스트'''인 카지야마 아키라와 손을 잡고 프로젝트 앨범인 IN TO THE DEEP을 발매하였다. 카지야마 아키라는 일본의 하드록 자파메탈씬에서도 슈퍼 기타리스트로 통하는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80년대 중~후반 잉베이 맘스틴의 영향을 받은 속주 배틀이 불붙기 시작했을때 모든 경쟁을 무의미하게한 기타리스트가 바로 카지야마 아키라(梶山 章)이다.
카지야마 아키라와의 결합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결과물은 평작수준으로 평가 받았다. 단 거기서도 타케노리의 보컬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7. 다시 SABER TIGER로
2010년 그의 고향으로 볼 수 있는 SABER TIGER에 재 가입하였다. 2011년 9번째 앨범인 '''DECISIVE'''을 발매하였으며, 현행 SABER TIGER의 실질적인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현재까지 다양한 세션과 솔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ANTHEM의 30주년 공연때는 노리후미 시마와 다시 한번 DOUBLE DEALER로 한정 재 결합하여 공연하기도 하였다.
2016년 4월 30일 SABER TIGER로 대한민국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2017년도에도 재 내한하여 SABER TIGER로 내한 공연을 가졌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이며 완벽한 기량을 보여주었으며, 한시간이 조금 넘는 공연 동안 엄청난 스테미너와 폭발력으로 일본 헤비메탈계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평가이다. 라이브 후의 머천다이즈와 굿즈 칸의 CD와 티셔츠가 동 날 정도로 엄청난 무대를 보여주었다는 후문.
8. 평가
DOUBLE DEALER 시절에는 심포니 X의 프랑스 투어를 함께 참여할 정도의 실력자이기도 하며, 데뷔 초부터 '''일본 록의 대형 보컬리스트'''로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에도 명실상부한 일본 록계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거장이다.
헤비메탈에 기반을 둔 보컬리스트이지만 허스키하고 굉장히 블루지 한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비브라토나 다른 가창 테크닉도 매우 뛰어나다. 헤비메탈이란 장르의 특성상 다른 장르에 약점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시모야마 타케노리는 블루스나 발라드는 물론 어쿠스틱 계열에서도 대단히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솔로 앨범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어쿠스틱은 물론이고 가스펠까지도 소화한다. 또한 남성 보컬리스트가 가장 힘들어한다는 2옥타브 시 ~ 3옥타브 미의 음역대는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부르는데, 샤벨 타이거 재 가입 이후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그 진가를 알수 있다. 무시 무시한 중고음역대는 물론이며 초 하이톤의 샤우트도 역시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스튜디오 녹음에서도 대단히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라이브에서는 좋은 쪽으로 충격과 공포의 깡패'''수준이다. 엄청난 성량으로 다른 악기 파트를 압도할 정도로 성량이나 울림이 좋으며, 음정이나 박자에서도 거의 큰 실수가 없는 끝판왕 급 라이브 실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에 따른 음역대의 저하나 기복 문제도 현재까지는 없으며 오히려 그 원숙미는 더욱 올라가 더욱 중후한 목소리 톤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불러왔던 모든 노래를 아직도 원키로 소화할 정도로 스테미너도 대단하다.
한마디로 '''약점을 찾기 힘든 보컬'''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어수선하게 단어만 지나치게 늘어놓는 가사[6] '''라던지, 꾸준히 비교당하는 겐키 히토미나, 야마다 마사키보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7] .''' 라던지, '''파워풀하지만 지나치게 끈적거린다[8] ''', '''지나친 푸쉬로 생각만 해도 불쾌감이 앞선다'''와 같이 나쁜 평을 내리는 일부 매체나, 록 팬들도 분명히 있다. 다만 이 모든 평가를 합산하더라도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일본 헤비 록씬에서 최고 레벨로 평가받는 거물급의 보컬리스트임에는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9. 여담
- 98년 메이저 데뷔 후 밴드, 유닛, 솔로등 모양은 다르지만 매년 메이저급 레이블에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혼자서 연주하는 야외투어를 일년에 몇 차례 정도 꾸준히 열고 있으며, 팬들과의 만남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있다. 특히 팬에 대한 사랑이 매우 지극하여, 서울에서의 샤벨 타이거 공연 후 몰려드는 모든 사인과 사진 요청을 단 한번도 거절하지 않을 정도로 프로 의식이 강하다.
- 고치의 「토사의 손님 2008」이나 「히로시마 플라워 페스티벌」 등 다양한 이벤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고향인 삿포로의 지역 행사인 「타일러 페스트」등에도 출연하고 있다. 출연 후에는 높은 반응과 인지도로 인해 록킨 F과 같은 유명한 잡지에 컬럼을 연재하기도 했으며, 현재에도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스케쥴을 쪼개서 갈 정도로 지역 행사에도 힘을 쏟고 있다.
- 지역 봉사나 구제활동 등에 관심이 많다. 특히 삿포로 적십자 50주년을 기념한 앨범을 제작하거나, 삿포로 적십자 60주년에는 기념 사회자를 맡았다. 또한 2006년 부터는 특수학교 등에서 위문 공연을 열어 장애인과 불우이웃의 구호를 돕고 있으며 토호쿠 대지진때는 4톤 트럭에 구호물품을 보내서 일본 적십자사 은빛 유공자 상을 수여 받을 정도로 인품이 매우 훌륭하다.
- 한국 음식중 삼겹살과 설렁탕을 특히 좋아한다. 설렁탕에 만두를 넣어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뜨거운 음식을 꽤 잘 먹는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한국 관련한 글을 쓰기도 한다. 관객들이 매우 열정적이라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 술은 맥주를 조금 마실 뿐이며 과음을 절대 하지 않는다. 또한 담배도 절대 피지 않으며 자신의 가방에는 전용 마이크를 두개 이상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 라이브 전에는 많은 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말하면서도 노래하는 목소리를 무리하지 않게 이야기 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하다. 프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에 걸 맞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게 신조라고.
- 놀랍게도 미국 시애틀 파워메탈 밴드 Nevermore의 영향을 받은, 미국 조지아 주 아틀랜타 파워메탈 밴드 Paladin의 보컬 테일러 워싱턴(Tailor Washington)이 일본의 전설적인 파워메탈 밴드 SABER TIGER의 전설적인 보컬 시모야마 타케노리와 동일한 목소리와 동등한 역량을 갖고 있을뿐만 아니라 기타까지 연주하는 출중한 실력을 갖고 있으나, 아직 유명세를 타지 못했다.
[1] 독음 그대로 하자면 하산무덕으로 한국 팬들 한정으로 무덕이형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2] hide가 가입했던 밴드와는 다른 밴드이다. 후에 메이저로 데뷔하는 히데에게는 매우 소중한 밴드였지만 평가는 매우 안 좋았던 밴드이다. 히데의 고향인 요코스카에서도 3대 쓰레기 밴드(...)로 불리며 평단의 악평을 받았었다.[3] 세이키마츠에게는 0점을 주기로 했다. 이쪽은 해외의 밴드에게는 과할만큼의 애정을 보여주면서 정작 자국 밴드에게는 평가가 짜고 이해안가는 리뷰를 적기로도 유명하다.[4] 라지만 기타인 키노시타와의 불화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당시 SABER TIGER의 드러머도 함께 탈퇴하였다.[5] ANTHEM의 Bound To Break와 함께 공동 1위[6] 다만 이는 일본의 다테마에 문화로 인해 일본 음악이 직설적인 표현의 가사를 피하는 경향이 강해서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심이 높은가 아닌가에 따라 외국인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있고, 일본 음악인이 영작을 잘해서 가사를 쓰더라도 영미권 및 유럽권의 느낌으로 로컬라이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7] 반대로 말하면 영어 발음이 좋지 않은데도 음색과 역량만으로 보컬 거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돼서 본 평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본 평가가 부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의문이 든다는 것.[8] 서양 대중음악의 계보를 따지면 블루스 및 재즈 등 흑인 음악-로큰롤-록 음악-하드 록-헤비메탈로 흘러간지라 이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평가가 아닐 수 없다. 흑인 음악에서 파생된 것이나 다름없는 메탈에 흑인 음악 특유의 끈적거림(블루지함)이 있는 것이 불쾌하다는 것은 오히려 메탈의 원천인 흑인 음악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9] 유튜브에 올린 Sin Eater Official Live Vid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