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타족
1. 개요
1990년대 사회 문제로 떠올라 화제가 됐던 종족.
2. 상세
80년대부터 등장한 오렌지족들이 번화한 밤거리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 차를 세운 후 창문을 내린 후 '''"야, 타."'''라고 하면 여성들은 남성이 맘에 들면 차에 타고 같이 놀면서 밤을 보내는 형식이었다.
야타라는 이름은 저들의 명대사(?)인 ''''야, 타.''''에서 유래했다. 당연히 자기들이 직접 붙이지는 않았고, 당시 이런 문화가 등장하자 한 언론에서 지었다. 참으로 90년대스러운 네이밍 센스다.
90년대 당시엔 꽤나 센세이셔널한 사건(?)으로, 당시엔 처음 보는 젊은이들이 고급차를 타고 안하무인격으로 여자들을 꼬시는 행태에 대해 전국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주었다. 덕분에 저 야타족이라는 이름을 지은 언론은 아직도 그 보도에 대해 자랑스러워한다.
황금만능주의의 일면 등등의 이유로 당시 많은 질타를 받고 TV에서 패러디하기도 했다.
다만 이 야타족 보도가 시민들에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는데, 야타족이 많은 질타 등을 받고 비판을 받았지만 사실상 야타족이라는 실체를 특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야타족 본인이 체감할 수 없었으며, 여성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차에 탔기 때문에 행동 자체도 법에 저촉될 만한 구석이 별로 없었다.
막상 알려진 바와는 달리, 압구정동 골목 등의 오렌지족 출몰지에서는 나름 첨단을 걷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강남 여성들이 남들의 이목을 의식하여 섣불리 차에 타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사실이다. 타지에서 압구정동을 구경(혹은 원정) 왔던 좀 논다는 언니들이 그 대상이었다고나 할까.
사실상 가장 활발히 야타가 성행했던 지역은 방배동 카페골목이었다. 밤 11시 전후를 기점으로 하얀색 승용차들(하얀색 중형 세단은 20대 야타족의 상징)이 길이 막힐 정도로 나타나 이후 새벽 2~3시까지도 계속 누비고 다녔다. 야타에 성공한 일행은 바로 인근의 심야 불법 영업(당시엔 12시 이후엔 술집 영업이 금지였었다)중인 가라오케나 실내포장마차 등으로 이동하여 즉석 만남을 이어가던 것이 순서쳤다.
그 외엔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는 시간인 새벽 2시경 클럽 앞에 나타나 부킹에 성공하지 못한 여성들 앞에서 차 문을 열어주며 가라오케나 어디 가서 술 한잔 더 하자...는 멘트로, 혹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여성에겐 그럼 그냥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멘트로 차에 태우곤 했다. 나름 매너를 보이며 후일을 도모하던 전략...
급기야 원래는 오렌지족이 자주 찾는 서울의 일부 번화가에서만 행해지던 야타가 뉴스로 인해 전국적 명성에 힘입어 남성들은 어떻게든 차를 빌려 야타를 하려고 했고, 여성들은 야타를 안 하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오히려 서울의 일부 번화가에서만 유행하던 야타의 전국적 대유행을 불러오기도 했다.
지금도 큰 차이는 없지만 당시에 자동차는 고가의 물건이었고[1] , 90년대 당시 고급차의 상징이었던 그랜저나 프리미엄 수입차인 벤츠, BMW, 볼보 같은 차는 더욱 엄청난 고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고급형 중형차만 되어도 야타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티뷰론의 경우 야타에 특화된 차로도 유명했을 정도다. 이런 차량들이 오늘날 말하는 소위 양카의 시초다.
물론 이같은 행동이 지극히 부도덕한 행동으로 보이기는 충분했지만, 중대한 범죄인 것 마냥 연일 보도하고 비난한 야타족 보도는 결국 사회에 무의미한 '열등감'과 '증오'만을 만들어냈다. 결국 열등감과 증오에 사로잡힌 사회 하층 청년들이 지존파, 막가파 같은 살인 조직을 결성하여 '고급차를 타는 부유층'을 노리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까지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체포된 지존파 두목은 인터뷰에서 "야타족, 오렌지족을 죽이겠다!"고 소리 질렀는데, 이들이 실제로 소위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단 1명도 죽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야타족 괴담이 당시 경제 환경에서 얼마나 허황된 뜬소문 같은 이야기였는지 알만 하다. 언론들의 반성이 필요하다.
당시 MBC 코미디 프로그램 <길 떠나는 은장도>에선 가마를 홀로 타고 다니는 (바닥을 뚫고 안에 들어가서 가마를 들고 다닌다.) 양반 자제들이 젊은 처자들에게 야타~ 이렇게 하는 걸로 패러디했다.
[1] 자가용의 유무로 집안 형편을 가늠하던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