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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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자신이 가진 꿈의 아름다움을 믿는 자의 것이다."
- 엘리너 루스벨트
1. 개요
Anna Eleanor Roosevelt (1884년 10월 11일 ~ 1962년 11월 7일)
미국의 제34대 영부인이자 정치가, 여성주의자, 사회운동가이며 '''역대 최장 임기 미국 영부인'''이다. 미국의 26대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다. 처녀일 때도 성씨가 루스벨트였다는 뜻.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시어도어의 12촌 동생뻘이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13촌 조카뻘이지만, 어느 나라건 13촌은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이다.
2. 생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뻐드렁니가 예쁘지 않다면서 창피해했으며[1] , 아버지[2] 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였다. 10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살기 위해 중노동을 했으며, 영국의 앨런스우드 학교에 들어갔다.
1905년에 백부 시어도어의 중매로 프랭클린과 만나 결혼해 다섯 아이를 낳았으며, 1918년에 프랭클린이 비서인 루시 머서와 불륜을 저질러 이혼 위기까지 가기도 했지만[3] , 다섯 아이와 프랭클린의 정치 생명 등을 고려하여 그와 화해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하였다.[4]
1921년에 프랭클린이 소아마비를 겪자 그를 대신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6년부터는 '나의 하루'라는 칼럼을 집필했고 1940년 7월에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했다.
FDR도 그녀를 정치적 동반자로 아꼈는지, 엘리너의 저서 '내가 기억하는 것들'에 의하면 FDR은 보좌진들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을 경우 식사 자리에서 자신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이때 FDR의 견해와 반대되는 견해를 심지어 약간은 짜증섞인 어조로 그녀가 말해도 빙그레 웃으며 자기 할 말만 하던 양반이, 다음 날 공식 석상에선 그녀의 의견을 마치 원래부터 자기 의견이었던냥 그대로 말해 당황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5년부터 1951년까지 국제 연합 대사를 지내면서 1946년에는 국제 연합 인권 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세계 인권 선언을 기초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61년에는 여성 최초로 여성 지위 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고 1962년에 뉴욕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
3. 평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부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녀는 불행을 기회로 만드는 행복의 연금술사라고 불린다. 적극적인 내조로 장애인이 된 남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무려 4번이나 연임에 성공시켰다.
남편 사후에는 여성 최초로 유엔 인권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여성 지위 향상에도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특히 <세계인권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엘리너에게는 '인권의 대모'라는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처럼 그녀는 대통령의 아내로서 정부 정책에 지지를 호소하는 선에서 머물지 않고 뛰어난 사회운동가로서 독자적 행보를 걸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을 철폐하는데도 앞장서며 항상 약자들 편에서 활동하던 이 시대의 참된 영부인상이라는 평을 받았다.
4. 기타
힐러리 클린턴이 존경한 인물이기도 했다. 힐러리는 퍼스트 레이디 시절 시련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5] 엘리너를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었으며, 항상 자신의 책상 위에 엘리너의 초상화를 올려두었다고 한다. 게다가 엘리너의 초상화와 기념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을 만큼, 그녀를 존경할 뿐만 아니라 닮기 위해 노력했다고.
현대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양성애자였다는 설도 강력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루스벨트의 초선을 취재하던 레즈비언 AP 기자 로리나 히콕과는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극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는데, "키스하고 싶다"는 등의 말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편지들을 매일 보내기까지 했다.
19세기 후반에 태어난 인물임에도 키가 180cm로 미국 영부인 중 미셸 오바마, 멜라니아 트럼프와 함께 최장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굽시니스트에 의해 모에화당했다. #
[1] 그녀를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였다.[2]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동생인 앨리엇 루스벨트.[3] 당시 FDR은 엘리너와 이혼하고 루시 머서와 결혼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나름 진지했던 모양. 때문인지 화해한 이후에도 둘의 사이는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지 일상적인 부부 사이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 외 다른 여자와의 불륜설, 엘리너가 레즈비언이라 부부 관계를 거절했기 때문에 FDR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는 설 등 무수한 말은 많은데 확실하게 팩트체크된 건 드물다.[4] 다만 엘리너도 일종의 복수극인지 뭔지 훗날 레즈비언 여성 기자 로리나 히콕을 백악관에서 동거하게 했는데, 관련 내용은 후술 참조.[5] 힐러리 클린턴도 남편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으니,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